작성일 : 20-08-26 07:55
[이정태 칼럼] 중국 다시보기: 땅(地)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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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태 칼럼] 중국 다시보기: 땅(地)

이정태(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 공산당 2013년 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는 시진핑 체제 10년 동안의 살림살이 청사진이 제시되는 회의였다. 첫 번째 화두는 땅이었다.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이 기획한 최고의 작품인 토지공유제에 덧칠을 하자는 내용이다. 농민의 집단 토지를 수용할 때 보상금을 충분히 지급하고 농민의 토지 소유권 일부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주의 중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가 다르다.
 
토지공유제는 사회주의중국 성립을 가능하게 했던 가장 핵심적인 장밋빛 공약이었다. 대대로 땅 한 평을 가진 적이 없던 소작농들에게 땅을 준다는 약속은 달콤함을 넘어 소원성취였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행동원리는 간단했다. 특정 소수가 가졌던 땅을 몰수해서 ‘우리의 땅’으로 공유하게 한 것이다. 땅은 강한 자의 몫이라는 관념을 뒤집어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를 없앴다. 1953년 당시 약6억 명의 중구인구 중에서 농민이 5억 이상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중국인들이 느꼈을 감동과 지지를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분배받은 땅이 연명하기에도 힘들 정도의 넓이였지만 ‘우리 땅’, ‘나의 땅’이 생긴 것이었다.
 
문제는 사람과 땅의 비율변화였다. 1953년의 6억이던 인구가 2005년 기준으로 13억으로 늘었고, 농민의 수도 5억에서 8억으로 불어났다. 반면 공산당 정부는 땅을 늘리기는커녕 도시화전략을 추진하면서 있던 땅마저 줄였다. 그 결과 중국농민 일인당 토지면적은 분배초기에 비해 절반수준으로 줄었고, 설상가상으로 민생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농산물 가격을 통제하였기 때문에 농가소득은 더 줄었다. 중국농민은 더 이상 땅을 기반으로 살 수 없는 농민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땅을 팔고 도시로 이주하려해도 ‘집체 토지’라 팔수도 없고, ‘농촌호구’라는 족쇄 때문에 이주도 쉽지 않다. 구체적인 실상을 통계자료로 보자. 1978년 중국 도시민의 평균소득은 343위안, 농민평균소득은 134위안이었다. 통계수치로 두 배 반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당시 농촌의 물가나 자급자족의 농촌상황을 고려하면 차이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2년의 통계를 보면 양자 간 차이는 천양지차이다. 평균소득 면에서 도시민은 2만 4565위안, 농민은 7917위안으로 비율적으로는 약간 차이가 벌어졌지만 같은 기간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3645억 위안에서 52조 위안으로 152배 증가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지금의 농민소득은 생계유지조차 힘든 수준이다. 자녀를 대학에 보낸다는 사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중국인에게 있어 땅은 어머니 같은 존재였지만 지금 중국 농민은 앞 다투어 땅을 떠나고 있다. 생존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땅은 더 이상 땅으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땅을 떠난 2억5000만 명의 농민공들이 중국 전역을 헤매고 있다는 것은 땅으로 성립된 사회주의 중국이 위험에 처했다는 신호이다.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땅 문제를 화두로 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토지공유제가 빈부격차를 줄이지도 못하고 배고픈 농민을 달래지도 못하는 것은 토지공유라는 사회주의 공약이 한계효용에 달한 것이다. 3중전회를 통해 시진핑 정부가 도시로 진출한 농민공들에게 임대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도시호적을 주겠다고 유인하고 있지만 미봉책이다. 도농 간의 격차나 농민들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는 제도개혁은 시늉일 뿐이다.
 
농촌의 땅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장과 티베트의 땅도 문제다. 사회주의 중국이 그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그들만의 땅’을 ‘우리들의 땅’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땅에서 생산되는 재화를 ‘우리의 것’으로 규정하고 빼앗고 있다. 최근 신장이나 티베트에서 발생하는 소요의 원인은 바로 그 때문이다. 땅은 땅에서 기생하는 자의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사회주의 중국이 인위적으로 구획하고 조정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횡포는 그 뿐만이 아니다. 땅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다. 공해와 시멘트로 가득 찬 중국의 도시에서는 더 이상 살아있는 땅을 볼 수 없다. 땅 냄새나는 땅을 찾을 수 없다. 숨 쉴 구멍이 완전히 봉쇄된 도시가 썩고 있는 것이다. 땅이 썩으면 물도 썩고, 물이 썩으면 사람도 썩는다. 곧 중국이 썩을 수도 있는 데도 중국 공산당은 요지부동이다. 땅을 빌미로 한 사회주의 혁명이 농민을 희생시킨 또 다른 형태의 착취제도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성하지 않는 것과 같다. 중국 공산당, 지금은 땅을 보아야 할 때이다. 땅을 보아야 땅에 매달려 살아가는 인민도 볼 수 있고, 인민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중국’도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다시보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4, 2013년 12월, 이정태,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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