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과 2012년, 리쩌허우(李泽厚)는 두 권의 담화록을 출간했다. 하나는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中国哲学该登场了?]》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철학이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中国哲学如何登场?]》이다.(1) 이 두 편의 제목이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중국의 굴기와 함께 중국의 사상이 어떻게 새롭게 굴기할 것인가에 대한 의식 또한 계속해서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만청(晩淸) 이래로 중국은 늘 강압적인 서구와 그 문화에 대응하는데 지쳐 있었고, 중국의 전통적인 문화에 대한 자신감도 확연히 약해졌다. 최근 10년 사이 중국은 점차 문화적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사상계도 중국의 문화적 자신감을 되살리기 위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길을 탐색하고 있는데, 그 예로 천하제도, 유가헌정, 유가공산주의 등이 있다. 리쩌허우는 두 편의 담화록에서 중국철학이 자신감을 되찾고, 재차 무대의 전면에 나설 때가 되었음을 명확하게 밝힌다. 관건이 되는 문제는 어떻게 등장할 것인지, 다시 말해 중국철학이 어떻게 자신 있게 재등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리쩌허우의 담화록에서 영감을 받고, 오랜 시간 중국철학 연구에 천착해온 천라이(陈来) 교수는, 중국 철학이 다시 빛을 발하기 위한 근본이 “인학(仁体)”을 긍정하고 발양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인(仁)”은 중국 유가사상 전통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도덕관념”일 뿐 아니라, 한(漢) 대 이후 이천여 년의 중국 정치문화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온 “정치와 행정 원칙”이다.(2) 도덕과 정치는 인학본체론(仁學本體論)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천라이에게 있어서 인학은 끊임없이 생장하고 이어지며, 만물에 편재하는 일종의 본체론이며, 이것은 중국의 유가전통이 현대 서구의 도전에 대응하고, 현대문명을 넘어설 수 있는 근본이 되는 학설이다. 2014년 천라이는 《신원인: 인학본체론(新原仁:仁学本体论)》(3)라는 제목의 매우 무게 있는 저작을 출판하여, 이러한 관점과 입장을 충분하게 논술했다. 이것은 확실히 무게 있는 저작이다. 물리적으로 그것은 500여 쪽에 이르며, 충분히 두껍고 무겁다. 사상적으로 그것은 역사와 이론을 포괄하며, 사상사와 이론 구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국의 인학본체론을 재건하고 발전시킨다. 사상사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저작은 중국 전통 사상사, 특히 유가 사상사에서 인학 사상의 기원과 발전을 정리하고, 20세기 중국의 신유가를 대표하는 인물, 그 중에서도 슝스리(熊十力)와 량수밍(梁漱溟)의 사상 가운데 인학본체론과 관련된 논의를 분석하며, 또 리쩌허우의 “정본체론(情本體論)”을 검토하면서, 이론적으로 일종의 “신인학(新仁學)”이라 할 수 있는 철학 체계를 논증한다.
인학본체론의 구축을 제외하더라도, 유가 인학 사상의 역사에 대한 천라이의 정리는 사람을 매우 경탄하게 한다. 《신원인》에서 천라이는 인학 사상 발전의 맥락을 상세하게 그려낸다. 인(仁)과 관련하여, 어쩌면 일반 독자들도 “인한 자는 남을 사랑한다[仁者愛人]”는 맹자의 명구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종종 유가와 기독교 사상의 친연성 또는 유사성을 분석하는 데에 이용되기도 했다. 물론 천라이의 사상사 분석은 이처럼 좁은 의미의 단순한 비교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서주(西周)로부터 근대의 인학 사상에 이르는 변화·발전과 그 중점을 충분히 드러낸다. 천라이의 정리에 따르면, 인(仁)의 원시적 함의는 부모에 대한 사랑[愛親之謂仁]이며, 혈연관계에 근거한 친족 간의 사랑을 말한다. 이러한 혈연·친족 간의 사랑은 공자에게서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논어(論語)》에서 번지(樊遲)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인(仁)이 곧 애인(愛人)의 사상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인(仁)이 혈연·친족 간의 사랑으로부터 “보편적인 인간 관계의 윤리”로 발전하였고, 가족 간의 사랑을 넘어서 보편적인 윤리적 의의를 지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4) 맹자는 보다 명확하게 친족을 친히 하고[親親], 백성을 인하게 하고[仁民], 물건을 사랑한다[愛物]는 말로 친족과 백성, 물건을 대함에 군자가 갖춰야 할 덕성을 확립하였고, 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측면에서 인(仁)을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한다.(5) 천라이가 보기에 비록 선진 유가 사상은 인체(仁體)를 구성하지 않았지만, 인학 본체의 사상적 기초를 확립하였다.
한(漢) 대 유학, 특히 동중서(董仲舒)는 인학의 기본적인 도덕 입장을 수립하였다. 동중서의 공헌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박애(博爱)로써 안(仁)을 논한 것이고, 둘째는 인(仁)을 천심(天心)으로 하는 천도론(天道論)이다. 이 두 가지는 인(仁)이 지니는 도덕적 의의를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고, 박애(博愛), 겸애(兼愛), 범애(汎愛)를 긍정하면서, 동시에 외부로 연역하여, 우주의 원칙을 드러낸다. 천라이는 이것을 인학 사상의 진보에서 한 차례 중대한 도약으로 간주한다.(6) 바꿔 말하면, 한 대 유학은 “인(仁)”에 일종의 우주론으로서 전향적 의의를 부여한 것이다.
천라이의 분석에서 실체로서의 인(仁)은 송(宋) 대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또는 말하자면 “인체(仁體)”라는 개념은 송 대에 명확하게 표현되고 진술되기 시작한다. 송 대의 심학(心學)은 인체(仁體)를 내재화하여, 인체를 심체(心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송 대의 이학(理學)은 인체를 우주의 통일체로 본다. 인체는 한편으로 만물에 편재하면서 끊임없이 생장하고 이어지며, 일상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송대의 심학은 심체를 강조하고, 주자(朱子)는 도체(道體)를 강조한다. 천라이는 도체가 사실 실체(實體)이며, 인체(仁體)인데, 주자는 이를 명확하게 의식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7)
천라이의 논술을 바탕으로 보면, 중국의 전통 유학에서 인학 사상은 대략 세 단계로 개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발원 단계로, 바로 선진(先秦) 유가이다. 두 번째는 발전 단계이며 곧 한(漢)·당(唐)의 유학이다. 세 번째는 형성 단계로 송(宋)·명(明) 이학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송·명 대의 서술에서 천라이의 사상사 분석은 핵심 개념에 대한 분석으로 전환한다. 천심(天心, 제6장), 만물일체(萬物一體. 제7장), 생물지심(生物之心, 제8장), 그리고 생기유행(生氣流行, 제9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나서 천라이는 방향을 바꾸어 현대(現代)와 당대(當代)의 유가 사상을 검토하며, 인학본체론의 입장에 서서, 현대 삼대 신유가─슝스리(熊十力)와 량수밍(梁漱溟), 그리고 마이푸(马一浮)─의 본체 사상을 각각 검토(제10장)하고, 리쩌허우의 중국 사상 “정감본체(情感本體)”론을 비판적으로 분석(제11장)한다. 책의 제 1장에서 인체 사상의 기본적 입장과 특징을 명확하게 밝혔던 것에 상응하여, 마지막 장에서는 인학 본체 사상의 현대적 의의에 대한 서술을 시도하는데, 특히 인애(仁愛)는 현대의 자유, 평등, 공정 관념과 서로 어울리며, 나아가 이러한 관념들과 조화 관념을 관통하여, 이로부터 중국 “왕천하(王天下)”의 인정(仁政)과 대동(大同)의 이상으로까지 확대된다. 천라이에게 있어서 유학은 곧 인학이며, 유학의 본체론이 인학의 본체론이다. 비록 천라이의 인학본체론은 간혹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전체 책을 통해 역사와 이론을 결합하였고, 내용이 자세하고 충실하며,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선명한 논지를 펼침으로써, 실로 중국 유가 인학 사상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인학 본체 구축의 영역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중요한 저작이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외람됨을 무릅쓰고 독서 과정에서 맞닥뜨린 두 가지 의문을 여기에서 제기한다.
첫째로, 천라이가 구축한 인학본체론, 혹은 인(仁)에 대한 깨달음은, 그 깊이를 떠나서, 결국 전통 유가 사상의 군자에 대한 요구인가, 아니면 군자와 소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요구인가? 예를 들어 맹자의 인애설에 대해 논의 할 때, 천라이는 기본적으로 《맹자(孟子)》 원문의 “군자(君子)”를 무시한다. “군자가 물건에 대해서는 사랑하고 인하지 않으며, 백성에 대해서는 인하고 친하지 않으니, 친족을 친히 하고서 백성을 인하게 하고, 백성을 인하게 하고서 물건을 사랑한다.[君子之於物也,愛之而弗仁;於民也,仁之而弗親。親親而仁民,仁民而愛物。]“ 이는 곧, 맹자가 여기에서 말한 친친(親親), 인민(仁民), 애물(愛物)이 “군자(君子)”에 대해 요구되는 덕성이며, 그 덕성의 주체는 “군자”이지 천라이가 모호하게 말한 일반적 인성이 아니다.(8) 만약 인학본체론에 군자의 인에서부터 보편적인 인성인 “인(仁)”의 구현까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전환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한·당대의 유학인가, 아니면 보다 생활화된 송·명의 이학인가? 군자의 인이 어떻게 보편적인 인성으로 변화·발전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천라이의 인학본체론에서는 분명한 논술이 이뤄지지 않는다.
두 번째 의문은 첫 번째 의문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만약 “인(仁)”학이 무엇보다 “군자”의 학문이라면, 인학 본체 위에 세워진 자연과 도덕, 정치 질서는 일종의 군자의 질서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질서가 아니다. 인간의 질서는 역사적으로 중서(中西)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속고 속이는 가운데, 불인과 불의로 가득한 질서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약 모든 사람이 군자가 된다면, 법률은 불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이유로 마키아벨리는 군자의 덕성 및 군자 국가의 이상에 대한 고전 철학자들의 묘사가 모두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공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든 마키아벨리든 모두 전통적인 정치철학에서 군자와 소인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의식했다. 물론 한쪽은 지키고자 했고, 다른 한쪽은 타파하고자 했다. 비록 천라이도 자주 인학 사상과 유대인 학자 부버(Martin Buber), 그리고 기독교 사상가 셸러(Max Scheler) 사이의 상통하는 부분에 대해 논의하지만, 그의 논술은 자신이 구축하려는 인학본체론과 현대 서구의 주류 사상의 서로 다른 경향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만약 인학 본체를 기초로 하는 천하대동이 보편적인 미래 인류사회의 이상을 지향한다면, 이러한 이상은 이미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지워진 현대 사상일 것이다. 만약 이러한 사상에 군자와 소인 사이의 구별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마키아벨리가 보았던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공론이 될 것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8, 2015년 8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