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다시금 굴기하고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굴기는 항상 외부로부터 제기되는 각종 부정적 우려와 의심, 심지어는 질투를 마주하게 된다. 그 이유는 제각각이다. 혹자는 남겨진 이데올로기의 멍울 때문에, 혹자는 지정학적 이해관계 때문에, 혹자는 세계 질서의 재편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중국의 굴기가 전면적인 부흥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어쩌면 이것이 일종의 경제적 굴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중국의 경제가 총체적으로 굴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인당 평균 수입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미국의 보수주의자들 조차도 매우 명확하게 보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자신의 핵심 이익에 관계된 각종 국제 분쟁에서 중국은 항상 친구가 적고, 적은 적지 않은 난처한 국면을 맞이한다.
중국이 다시 굴기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곤혹과 의혹, 비난에서 나약했던 근대 중국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비친다. 이 나약한 중국은 경제적으로 허약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무능하고, 문화적으로도 낙후된 것 같다. 그러므로 중국의 굴기와 그 미래의 향방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중국의 경제적 굴기를 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정치적 굴기를 기대해야 하며, 한 발 더 나아가 중국의 문화적 재굴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방이 빛, 선진, 과학과 문명을 대표하고 있다면, 중국은 줄곧 어둠, 낙후, 미신과 우매를 의미해왔다. 이러한 대비는 현대 서방의 역사 서술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중국 현대 정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도 점차 착상되었다. 중국의 문화적 전통, 특히 중국의 정치체제가 중국의 재굴기에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일찍이 키신저는 《중국 이야기》에서 신중한 찬양의 태도로 중국예외론을 언급했다. 하지만 동시에 키신저는 이방의 사람들을 회유하던 중국예외론이 결국 유럽의 군함과 화포 속에서 무너져 내렸음을 암시한다. 그는 때때로 공화국 지도자의 외교 수단이 부분적으로 중국예외론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음을 지적한다. 여하간 키신저가 중국예외론을 일종의 새로운 부흥의 모델로 고려하거나, 천하질서를 민족국가 중심의 사유에 대한 대체방안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신좌파의 주요 인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한위하이(韩毓海) 교수는 줄곧 이러한 고민을 사상적 탐구의 핵심 문제로 삼아왔다.
2.
북경대학 중문과 교수로서, 한위하이는 결코 자신의 시야를 문학에 국한시키지 않고,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천하질서의 몰락과 부흥 문제를 사유한다. 그는 천하질서에 대한 믿음의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존마시경(尊马读经)”과 “존모시경(尊毛读经)”(1)이지, “존공시경(尊孔读经)”이 아니라고 본다.(2) 이러한 한위하이의 좌파적 태도는 유가가 생각하는 천하질서의 재건(姚中秋 와 같은)과 완전히 다르며, 또 유학 전통의 힘을 빌어 왕도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는 것과도 다르다. 한위하이는 천하질서에 대한 자신의 사유와 유가 전통, 나아가 공자 본인의 사유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긋는다. 아울러 유학 자체가 천하질서의 광활한 시야를 지탱하기에 부족하고, 사대부 관료제 폐단의 사상적 기초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3)
천하 대세의 변천에 대한 한위하이의 분석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주요한 두 가지 측면의 요소로 결정 지어진다. 그 가운데 하나는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의 이론적 시각과 정치적 입장이며, 둘째는 아시아의 주체적 관점에서 중국 문명 및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한위하이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 근거하여 현대 민족국가의 굴기가 유럽 대국의 군사적 역량, 즉 “전쟁의 산물”이며, 나아가 그 기초가 되는 것은 “전쟁 국채 제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바꾸어 말하면, 신용체계의 형성을 표지로 하는 현대 금융혁명과 무력이 서방 대국의 굴기를 뒷받침했던 것이다.(4)
이러한 굴기에 전제된 대가는 바로 풍요로운 왕조 중국의 쇠락과 해체이다. 서방 대국의 군사적 확장과 현대 금융혁명이 천하질서를 와해시킨 외부적 요인을 구성했다면, 내부적으로는 전통시기 중국 정치의 통치 능력 상실이라는 요인이 있다. 한위하이가 보기에 이러한 능력 상실은 주로 관(官)과 리(吏)의 분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관은 과거 출신으로, 시(詩)·사(詞)·부(賦), 경(經)·사(史)·사장(辭章)에 능하며, 재정, 경제, 사법 등의 요직은 리[胥吏]의 수중에 장악되었다. 관은 영전(榮轉)하게 되지만 리는 교대가 없었고, 이로 인해 오랜 시간 지방에 머물던 리가 강대한 지방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 최종적인 결과는 문관의 무능력과 서리의 전횡이다.(5)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 세 측면의 원인은 ‘기나긴 16세기”(1359-1650)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중국을 “기나긴 19세기(1688-1915)에 세계 체제의 변경으로 전락시켰다. 한위하이는 주로 마르크스주의의 현대 자본주의 및 그 원칙에 대한 비판에 기대고 있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비판에서 서방대국의 흥기와 문명 중국의 몰락이 야만에 대한 문명의 정복이 아니라 야만의 문명에 대한 정복이며, 동시에 “무력전쟁”과 “금융수탈”이 “신도덕”이 되도록 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로부터 “강약의 구분”이 “문명과 야만의 구분”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6)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사방 이민족을 포용하는 천하질서인가? 천하중국은 무엇보다 다원적 중국이며, “민족과 사상이 다원적인 중국”이다.(7) 이러한 관점에서 한위하이는 유가 자체가 천하 중국을 지탱하기에 부족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구조적인 측면에서 천하중국은 순수한 내륙의 중국 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내륙과 변경, 사방의 이민족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내륙 중국은 단지 천하중국의 한 부분일 뿐이다.(8) 이 삼자의 구조적 관계는 제국주의 시대의 종주국과 식민지 관계와는 다르다. “전자가 ‘빈례(賓禮)’의 기초 위에 선 ‘주(主)-객(客)’의 관계라면, 후자는 약탈을 기초로 한 ‘주(主)-노(奴)’관계이며, 전자의 관계에서 원근친소가 문화 교류, 문화적 동질성의 정도에 따라 확정되는 것이라면, 식민지는 결국 노예제, 계급제도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9)
이어서 문명체제의 측면에서 볼 때, 천하중국은 호혜관계의 조공체제를 확립했다. 페이쩡칭(费正清)의 부정적 시선과는 달리, 한위하이는 조공제도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변호한다. 그는 천하중국의 조공제도가 ‘무력에 의한 위협에 의지한 것’이 아니며, ‘문화와 경제 교류’의 역량에 근거하여 세계질서를 건립하였다고 본다. 이러한 체계는 교류관계의 친소에 근거하여 ‘원근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성의 관계 체제’를 구성하였다. 이것은 또한 천하중국의 왕도와 민족국가 체제의 패도, 예악의 중국과 강권 통치 사이의 구별이다.(10) 그리고 천하중국의 정치적 기초로서, 왕도는 ‘여민동심(與民同心)’을 의미한다. 왕도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천하의 억조창생과 더불어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고, 손과 손을 맞잡으며, 추위와 배고픔을 나누고, 차고 따뜻함을 함께하며, 인민 군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만 한다.”(11)
경제 모델 측면에서 다시 살펴 본다면, 천하중국은 “‘근로혁명’과 시장경제의 발전 모델”을 추구하며, 현대 서방은 “전쟁 투자 혹은 ‘전쟁금융’으로 추동되는 자본 축적의 모델”을 추구한다.(12) 마지막으로 자못 의외인 것은 한위하이가 불교에서 나타나는 중생개고(衆生皆苦)와 중생평등(衆生平等)사상이 천하중국에 대해 “보편가치”(13)를 제공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는 고통 받는 현실이 노동자로서 인간성의 진실을 대변하며, 마르크스의 인성 회복 또한 바로 모든 사람들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라는 점을 지적한다.(14) 이 입장은 어쩌면 불교 공산주의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3.
한위하이의 천하중국과 깐춘송(干春松)이 말한 왕도로의 복귀는 최소한 두 가지 문제에 있어서 일치점을 지닌다. 첫째로 왕도와 패도의 관점에서 중국의 천하질서와 서방 민족국가체계 사이의 대립을 서술한 것이며, 둘째로 천하질서 체제의 기초는 원근과 주객 관계인 것에 반해, 민족국가 체제는 피아와 강약 관계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위하이는 그의 논의에서 보다 많은 부분을 중국 정치의 역사적 변천에 근거하며, 유가 사상에서 천하질서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서 그의 천하질서 구상에서 불교 정신은 긍정적 작용을 지니고 있지만, 그에 비해 유가 및 사대부 정신은 부정적인 작용을 드러낸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는 또한 때때로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 정신과 ‘육억 중국이 모두 요순이 된다[六亿神州尽尧舜]’(15)는 유가적 지향이 상통하다는 것을 암시한다.(16)
양자가 가장 근본적으로 공명하는 지점은 아마도 대중 계몽에 대한 공통적인 긍정일 것이다. 한위하이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류 지식이 마르크스로부터 공공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관점에서, “마르크스가 이러한 방식을 ‘비판’하거나 혹은 이러한 무기를 ‘비판’함으로써, 지식의 ‘비밀스런 모의’를 제거하고, ‘비밀스런 모의’로서의 지식을 제거하여, 그는 일체의 모든 것을 공개했다.”는 것이다.(17)
이러한 비판은 더 이상 무언가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이 있고, 어떤 말은 어떤 이에게만 할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할 수 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비판에서 지식은 어떠한 사람에게 숨겨질 필요가 없고, 어떠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이어서도 안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계몽은 인민 대중을 향해야 하며, 지식은 엘리트의 특권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불교 공산주의의 천하질서와 슝스리 (熊十力)가 심혈을 기울여 구성한 유가 사회주의 이상은 공통의 목표를 지니며, 일종의 보편 지성론에 해당하는 정치철학을 그 사상적 기초로 한다.(18) 이 점에서 볼 때 한위하이의 천하중국이 의지하는 사상원칙은 여전히 현대 계몽의 근본 정신을 벗어날 수 없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4, 2014년 4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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