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이(汪晖)는 일찍이 루쉰 연구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그의 대표작 《절망에 반항하라[反抗绝望]》 (1)는 “루쉰의 정신구조”와 루쉰의 《납함[呐喊]》과 《방황[彷徨]》이라는 저명한 현대소설 텍스트 두 편에 대한 연구이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어, 왕후이의 논의는 현대성과 당대 중국 사상의 현황이라는 보다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죽은 불 다시 살아나[死火重温]》(2)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왕후이의 논의 가운데 진정으로 폭 넓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그 이후에 출간된, 천여 쪽의 빛나는 대작 《현대 중국 사상의 흥기[现代中国思想的兴起]》(3)이다. 차후에 출간된 《탈정치화된 정치[去政治化的政治]》는 이 책의 잔향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2년 사이에 왕후이는 루쉰의 저작에 대한 재해석을 출간하여 사람들에게 루쉰 연구자로서의 왕후이를 다시금 각인시켰다. 그가 다룬 텍스트는 여전히 과거의 그것이지만, 왕후이는 이미 20여년 전의 왕후이가 아니고, 당연하게도 루쉰 또한 완전히 같은 루쉰일 수 없다.(4)   

왕후이는 같은 루쉰에게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루쉰을 관찰하고 “5·4”운동을 사유하는 방향은 이미 완전히 달라졌다. 이러한 차이점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문화와 정치의 변주——제1차 세계대전과 중국의 “사상전”[文化与政治的变奏——一战和中国的“思想战”]》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5)

2. 

《문화와 정치의 변주》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왕후이의 연구이며, 후반부는 5·4 문화운동 시기의 사상 논쟁 텍스트들을 편집·수록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책의 영향력은 《절망에 반항하라》와 《현대중국사상의 흥기》에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이 책 또한 5·4 문화운동에 대한 왕후이의 전문적인 성찰 논집이라 할 만하다.

《문화와 정치의 변주》는 유럽에서 발생한 제 1차 세계대전과 그것이 중국의 문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유럽 1차 대전의 위기와 중국 공화의 위기는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왕후이는 1차 대전이 중국의 문화에 끼친 영향 가운데 그것이 중국인의 눈에 비친 유럽의 이상적 이미지를 타파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유럽의 전쟁은 중국에서 만청(晩淸) 이래로 누적된 서방의 모범적 이미지를 깨뜨렸으며, 유럽의 위기와 중국의 위기를 연관지어 사유하는 ‘사상전’을 야기했다.”(6)  

그렇기 때문에 1차 대전은 유럽 정치의 전환점이면서, 또한 중국 문화 사조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왕후이가 보기에 점차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만청과 비교하여, “5·4” 문화운동이라는 전환점은 보다 근본적인 의의를 지닌다. 그 중요성은 중국인들이 전쟁 속에서 유럽의 허황된 꿈을 보았고, 따라서 현대 유럽의 국가 정치에 대한 실망을 재촉했다는 데에 있다. 왕후이는 이러한 실망을 18, 19세기 유럽의 국가 정치에 대한 고별과 유럽의 현대성에 대한 환멸로 요약하며, 동시에 이로부터 20세기 중국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자각적 추구가 싹트기 시작했다.(7) 왕후이가 논증하려는 것은 이러한 자각적 추구가 진보를 대표하는 신문화 진영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수호를 대표하는 보수주의 사조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왕후이는 넓은 의미의 “5·4” 문화운동과 좁은 의미의 “5·4” 신문화운동을 구분한다. “5·4” 신문화운동이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신청년[新青年]》과 《신조[新潮]》등의 간행물과 그 지지자들이 추앙한, 낡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일으키는 문화 사조 운동이다. “5·4” 문화운동은 보다 넓은 의미를 지니며, 신문화 사조 운동 당시의 대립면 사상을 포함하는데, 그것은 주로 《동방잡지[东方杂志]》와 편집장이었던 두야췐(杜亚泉)으로 대표된다.(8)  

5·4문화운동 시기의 혁명과 보수 사조 사이의 경쟁에 대해서는 이미 적지 않은 연구가 있으며, 한 예로 량수밍(梁漱溟)에 관한 연구가 있다. 물론 왕후이는 결코 문화적 입장에서 급진과 보수, 정치적 태도에서 혁명과 보수 사이의 대립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며, 그의 목적은 진보 진영이든 보수 사조든 간에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자각적으로 18, 19세기 유럽의 낡은 정치 이념과 고별하고, 주동적으로 20세기 중국의 새로운 정치 노선을 추구했음을 논증하는 것이다.

왕후이의 논술에서 두 가지 정치 이념은 국가에 대한 두 가지 이해를 동시에 드러낸다. 낡은 정치 이념에서 국가는 민족국가와 동일시되고, 정치는 국가정치와 동일시된다. 새로운 정치 이해에서 국가는 문명국가로 간주되며, 정치는 문화정치로 이해된다. 

“정치는 더 이상 국가와 동일하지 않으며, 정치문제도 더 이상 체제와 정당의 문제와 같지 않고,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 및 기타 사회 영역의 명확한 분리도 그에 따라 취소되었다.”(9)  

왕후이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를 가리켜 “탈정치화된 정치”라 부른다. 이른바 “탈정치화”는 국가정치를 타파하고, 정치 이해에서 민족국가의 관점을 폐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탈정치화된 정치는 바로 국가정치와 대립하는 문화정치를 가리킨다. 국가가 아닌 문화가 새로운 정치의 핵심 내용이 되는 것이다. 《문화와 정치의 변주》라는 책의 제목에도 이러한 대립을 설명하려는 뜻이 있다. 물론 제목에서 말하는 “정치”는 분명 “낡은 정치”를 가리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왕후이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5·4” 문화운동에서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급진파와 보수파가 실질적으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거쳐 같은 지점에 이르고 있으며, 20세기 중국의 새로운 문화 정치에 대한 추구를 공동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개념적으로 볼 때, 왕후이는 분명 슈미트(Carl Schmitt)의 정치 개념 및 그의 유럽 정치 개념사에 대한 분석을 동원하고 있다. 슈미트의 관점에 따르면 정치는 적과 동지의 구분이며, 민족국가들 사이에 강자와 약자의 대비관계이다. 슈미트는 자유주의적 문화관이 정치의 본질을 은폐하거나, 심지어는 그것의 소멸을 기도한다고 비판하면서, 동시에 유럽 정치 사상사에서 중립화 경향 또한 탈정치화 경향이라고 분석한다. 왕후이는 슈미트의 정치 개념과 그것에 적대적인 문화 개념을 이용하여, 중국 현대 사상사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진행한다. 슈미트의 입장은 명확한데, 그것은 정치로 문화에 대항하는 것이다. 왕후이의 분석은 이와 상반된 중국 현대 사상 운동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운동은 문화로 정치에 대항한다. 왕후이는 일정 정도 중국의 20세기 초에 발생한 문화운동과 20세기 중엽의 문화혁명이 문화정치라는 의미에서 사상의 일치성과 관련성을 지닌다는 점을 암시하는데, 아쉽게도 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왕후이 자신이 선택한 국가정치와 문화정치에 대한 태도는 《문화와 정치의 변주》에서 그다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혁명파와 같이 “전세계 서민의 승리”와 “전체 민중의 대연합”에 환호하지도 않고, 보수파와 같이 공의(公義)와 공도(公道)를 기초로 하는 미래의 새로운 문명으로 이권 경쟁을 기초로 하는 현대의 낡은 문명을 대체할 것을 명확하게 주장하지도 않는다.(10) 

汪晖：《文化与政治的变奏——一战和中国的“思想战”》，上海：上海人民出版社，2014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