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서구에서 협상민주(1) 이론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나아가 일종의 정치 사조가 되었다. 이 이론은 정치 공동체 속의 공민이 자유와 평등의 기초 위에서, 각자의 취향과 신념을 존중하며, 문제 제기와 상호 토론 및 논변, 그리고 차이의 봉합을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강조한다. 긴 시간 속에서 협상민주 이론의 나이는 아직 젊다. 그러나 30여년의 짧은 시간 속에서 협상민주 이론은 이미 자신의 발전 과정을 종합 및 개괄하고 있다. 초기의 하버마스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미 3세대의 이론 변화가 나타났으며, 세 가지 서로 다른 경향을 드러냈다. 제 1대 이론가는 협상민주 이론의 규범 연구에 치중하였고, 제 2대는 이론과 경험의 결합을 점차 중시하였으며, 제 3대는 협상민주의 기술 설계와 제도화에 특히 중점을 두었다.

금세기 초 이래로 중국의 학자들은 서구에서 흥기한 협상민주 이론에 주목하고 그것을 소개하기 시작했으며, 국외의 협상민주 이론서들을 대대적으로 번역하였다. 10여 년의 연구와 이해를 거쳐, 중국학자들은 협상민주 이론과 중국의 정치적 실천 사이의 관계 문제에 대해서도 사유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중국 정부 지도자의 협상민주에 대한 유례없는 중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협상민주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중국 학자들의 진일보한 탐색을 자극하였다. 

지난 십여 년간 협상민주에 대한 공통의 관심을 바탕으로, 이미 일정한 규모의 학자 집단이 형성되었고, 적지 않은 저작과 논문이 출현하였다. 2014년에는 정치권의 동향에 호응하여, 대량의 협상민주 저작과 편저가 나왔다. 그 가운데 리쥔루(李君如)의 《중국의 협상민주[协商民主在中国]》, 린상리(林尚立)의 《협상민주: 중국의 창조와 실천[协商民主：中国的创造与实践]》, 그리고 탄훠셩(谈火生)과 훠웨이안(霍伟岸), 허바오강(何包钢)이 공동으로 집필한 《협상민주의 기술[协商民主的技术]》은 모두 선구적 탐색과 이론적 반성의 자각적 의식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2)  

세 권의 책 가운데 리쥔루의 《중국의 협상민주》는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이하 중공 18대) 보고의 정신과 그 언어적 특징에 가장 가깝다. 어쩌면 이것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이하 인민정협) 전국정협 위원이라는 그의 신분과 일정 정도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전체 책은 아홉 개의 장으로 나뉘며, 현대 중국 정치 발전 노선 속의 협상민주에 대해 논한다. 앞의 두 개 장에서는 협상민주에 대한 강조가 중공 18대 보고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협상민주가 결코 “서구의 이론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며”, 현대 중국의 정치 발전 과정에 이미 존재하는 “성공적인 경험이자 좋은 방법”이라는 점을 지적한다.(3) 

다음으로 제 3장에서 리쥔루는 정당협상, 정협협상, 입법협상, 그리고 기층협상이라는 네 가지 형식을 포괄하는 중국의 실천 경험에 대해 논의한다. 이어서 제 4장부터 7장까지는 근대 이래 중국의 통일 전선과 인민정협을 중심으로, 중국의 협상민주 경험을 설명하는 데에 역점을 둔다. 이러한 몇 개의 장들은 리쥔루가 중국의 협상민주 경험을 설명하는 주된 내용이 인민정협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인민정협은 실제로 중국사회의 축소판이자, 중국의 각종 이해관계가 집중적으로 체현된 것이며, 중국 민주정치 발전의 좋은 형식”이라고 여긴다.(4)

마지막의 제 8장과 9장에서 리쥔루는 협상민주가 중국에서 발전한 맥락과 원인, 원칙, 그리고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동시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국외의 협상민주 이론은 중국의 협상민주 노선 탐색에 있어서 본보기가 되었다는 의의가 있지만, “표준”이 될 수는 없으며, 중국의 자체적 발전 과정에서 누적된 “풍부한 실천 경험”, 특히 인민정협이 누적한 협상민주의 경험으로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5)

  

인민정협의 협상민주 경험을 부각시킨 것은 분명 리쥔루 책의 주요한 특징이다. 이것은 리쥔루 자신이 강조한 것이기도 한데, 그의 목적은 “협상민주 이론의 일반적 논의가 아니라 인민정협의 실천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 협상민주 경험과 이론의 깊이 있는 연구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며, 동시에 “선거+협상”을 “중국 민주 이론 연구의 공식”으로 삼고,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 민주의 이론과 실천에서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다.(6) 신중국 건립 초기에 정치협상회의는 초석의 역할을 하였지만, 5년 후에는 거의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러나 발전 과정에서 제도적으로는 인민정협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리쥔루는 인민정협을 통해 중국의 협상민주 경험을 논술하지만, “선거+협상”라는 공식으로써 강조된 결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는 저서에서 논술을 펼치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선거와 협상의 방식을 결합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리쥔루가 기본적으로 간략하게 언급하기만 하고 일종의 공식으로 내세울 뿐, 상세한 논술을 내놓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리쥔루는 “협상민주가 일종의 현대 민주 이론이자, 광범위한 인민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민주 방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나아가 중국의 정세에 부합하고 중화문화의 전통을 포괄하는 민주제도”라고 여긴다.(7) 이러한 논단은 마찬가지로 상당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일종의 현대 민주 이론으로써 협상민주는, 또 어떤 의미에서 중국의 문화전통과 들어맞을 것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도 리쥔루는 충분한 논술을 펼치지 않았으며, 이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리쥔루와 마찬가지로, 린상리의 《 협상민주: 중국의 창조와 실천 》 또한 협상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생명 속에 내재한다”고 본다. 하지만 린상리는 리쥔루에 비해, 중국의 협상민주제도 실천 및 중공 18대 보고가 가리키는 협상민주제도와 서구의 협상민주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보다 더 명확하게 강조한다.(8) 이것은 주로 신중국의 인민민주원칙——신중국 건설의 근본적 출발점——에 표현되어 있다. 린상리는 협상민주가 “중국에서 인민민주의 기초이자 기본적인 표현 형식”이라고 여긴다.(9) 이 점을 확실히 한 다음, 린상리는 중국 협상민주의 특징과 원칙, 구조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동시에 중국의 협상정치가 결코 민주 속의 경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구의 민주경쟁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린상리가 보기에 경쟁은 민주의 수단일 뿐이고, 민주의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협상을 기초로 하고, 협상민주의 실현을 기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린상리는 단순하게 경쟁민주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협상정치와 경쟁민주”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하며, 아울러 제도상의 규범이 협상과 경쟁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제기한다.(10) 

그러나 린상리도 이것을 단지 미래에 중국 정치의 발전 과정에서 대면해야 할 문제로 간주할 뿐이다.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이러한 결합과 제도화를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린상리는 충분한 논의를 펼치지 않는다. 린상리는 중국의 정치 발전에서 내생한 정치협상, 사회협상, 공민협상의 세 가지 영역을 이어지는 제 3, 4, 5장에서 각각 나누어 처리한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정치협상과 협상민주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술이다. 린상리는 서구에서 대의민주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협상민주”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정치협상은 “중국 정치 생활의 논리로부터 나고 자란 것”이며, 그 출발점은 “단결과 연합”, 그리고 “여러 가지 이익의 균형과 협조”에 있다.(11) 그런데 여러 가지 이익의 균형과 협조는 서구 협상민주가 도달해야 할 목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화국 정치에서 중국정치협상회의는 주춧돌의 역할을 했지만, 나중의 인민정협제도는 확실히 그 지위에 있어서 최초의 정치협상회의와 비교할 수 없다. 리쥔루가 인민정협의 측면에서 협상민주를 논술한 것과 달리, 린상리는 정치협상과 인민민주의 근본적 관계를 확립하고, 이로부터 중국 협상정치와 서구 협상민주 사이의 본질적 차이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 걸음 더 나아간 이론적 논변이 있어야만, 보다 분명하게 인민민주의 정신을 체현한 협상정치를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탄훠셩, 훠웨이안, 허바오강이 공저한 《협상민주의 기술》은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의 주지는 협상민주의 기술 문제를 탐구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실천에서 과연 어떻게 협상민주를 다룰 것인지에 대한 논의이며, 이는 이 책의 독특한 공헌이기도 하다. 중국어로 된 서적들 가운데 이 책은 협상민주의 유형과 절차, 지침을 체계적으로 논술한 첫 번째 책이며, 동시에 두 번째 부분에서는 여섯 가지 사례를 선별하여, 서로 다른 상황에서 협상민주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였다. 여섯 가지 사례는 지역적으로 중국대륙, 대만,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를 망라하며, 영역별로는 건국협상, 입법협상, 제도협상, 정책협상, 통치협상, 합의협상으로 나뉘며, 의제별로 보면 정치, 입법, 선거, 보건, 소원, 공동체의 이상을 포함한다. 

이 책은 확실히 중국의 협상정치에 대해 다층적이고, 다영역에 걸친, 다각도의 기술적 지침과 운영상의 참조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론 측면의 탐구는 대체로 제 1저자인 탄훠셩이 쓴 제 1장에서 볼 수 있다. 이 장에서는 협상민주의 출현배경과 기본이념, 이론유형, 응용범위 및 중국민주정치에서의 발전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분석한다. 나는 여기에서 하나의 관점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관점에 대해 질문을 던지려 한다. 동의하고자 하는 관점은 협상민주의 근본적인 목적이 끊임 없는, 혹은 결론 없는 협상에 있는 것이 아니며, 비록 반드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협상을 통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12)   

협상의 최종 목적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며, 이와 같이 근본적인 생각은 협상민주에 관한 여러 토론에서 경시된다. 뿐만 아니라 협상에 해당하는 서구어의 의미를 놓고 볼 때, 그 자체에 이미 심의와 균형의 의미가 들어있다. 의문을 던지고 싶은 하나의 관점은, 탄훠셩이 협상민주가 엘리트민주와 대의민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대의민주를 대체하려는 것도 아니며, 그에 필요로써의 보충으로 여기는 부분이다. 

현 시점에서 이것은 어쩌면 하나의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위의 측면에서, 혹은 미래에 착안하여 볼 때, 협상민주는 계속해서 “단지 하나의 필요한 보충”에 그칠 것인가? 만약 필요한 보충에 불과하다면, 일종의 민주 형식으로써 협상민주는 민주이론 발전의 역사에서 그다지 중요하거나 근본적인 의의를 지니지 않을 것이다. 

협상민주는 서구에서 유래한 이론일까? 선거민주와 비교하여, 협상민주는 하나의 보충인가 아니면 대체인가? 중국 자신은 내부적으로 또 어떠한 이론적 자원과 제도적 실천을 갖고 있는가? 전통시기 중국에서 천거와 찰거, 과거제도는 관료 선발 체계를 뒷받침하였다. 현대 중국은 금전에 극도로 의지하는 선거민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감찰과 임용제도는 따라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거민주가 성행하는 현 시점에, 과연 협상민주가 중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지는 여전히 탐색의 과정 속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