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해안가에 죽어서 떠밀려온 시리아 출신의 3살짜리 아이 알란 쿠르디의 사진으로 연일 미디어는 난민 이야기를 쏟아낸다. 처음에는 유럽의 난민 정책에 집중을 하더니, 이제는 한국에 찾아온 난민들에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 보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도 난민이 있었구나”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맞다. 한국에도 난민이 있었고 난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도 마련되어 있었다.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 정한 난민 정의 따르면 난민이란 “본국에 돌아가면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인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될 외국인”이라고 할 것인데, 한국이 1992년에 위 협약을 비준하여 난민을 보호할 제도를 갖추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러한 의미의 난민은 한국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난민이 찾아왔고, 우리는 그 난민을 얼마나 잘 보호하고 있는가? 우선 우리의 관심을 촉발 시킨 시리아 난민을 예로 들어보자. 2015년 8월 말까지 760여명의 시리아인들이 한국에 입국해서 난민신청을 하였다. 대부분이 시리아 내전이 일어난 직후에 한국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 받은 사람은 단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난민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거나 인도적 체류지위를 얻었다. 다른 나라에 갔다면 난민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소위 보충적 지위라고 하는 인도적 체류지위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인도적 체류지위라는 것이 전혀 인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체류 자격을 갱신 하지 않아도 되는 1년 동안만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주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여행증명서도 발급 받지 못하고, 지역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겨우 취업허가는 받을 수 있지만,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근로계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취업허가가 없는 외국인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이므로 현실적으로 인도적 체류지위자에 대한 취업허가는 그림의 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리아 난민 말고 다른 난민들은 어떤가? 2015년 5월 31일 현재 누적적으로 한국에서 난민을 신청한 외국인의 숫자는 11,172명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 받은 사람들은 496명이다. 난민인정율이 5%가 안되는 것이다. 몇 달전에 캐나다 난민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에 따르면 그 나라의 난민인정율이 35%정도라고 하니 한국의 난민인정율은 낮아도 한참 낮은 것이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전세계에는 약 2천만명의 난민이 있고 국내 실향민 까지 합치면 5천만명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자랑하는 높은 경제력과 국제적인 위상을 가진 한국이 겨우 총 500여명의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난민으로 인정된 총 496명 가운데 법무부 1차 심사로 난민인정이 된 사람은 165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이의신청이나 소송이라는 불복절차를 밟아서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이다. 이 말은 한국 정부가 초기 난민인정에 실패해서 진정한 난민들이 난민으로 인정 받을 때까지 수년 동안 거의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채 생고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왜 이렇게 난민을 잘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난민을 인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법무부나 법원에서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상의 난민 정의를 너무 협소하게 해석하거나 난민요건의 입증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또 난민인정 절차가 투명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가장 근본적으로는 난민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이다. 난민을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는 공무원들과 판사들은 난민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난민이라는 말을 들으면 부담이 되는 존재, 나아가서는 잠재적인 범죄자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생각나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정부가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영종도에 몰래 세웠던 난민지원센터는 문을 여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지역주민들은 정부가 위 센터를 여는 과정에서 자신들과 협의를 안했다고 항의 했으나, 주된 반대의 이유 중에 하나는 난민들에 의해 범죄가 일어날 우려가 높다는 것이었다. 그후 우여곡절 끝에 난민지원센터는 문을 열었지만, 그 곳에 머물고 있는 난민들의 자녀들은 역시 지역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여전히 인근 학교에 가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소위 다문화 학교라는 곳에 다니고 있다. 2013년 난민법이 제정되어 시행되었을 때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누리꾼들은 난민법이 제정되면 난민들에 의해 도심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마약이 길거리에 넘쳐나고 총기까지 들여오게 될 것이라는 말로 포털 사이트를 도배 해서 일약 난민법이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난민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는 알란 쿠르디의 죽음 이후 난민에 대한 보도에 대한 반응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난민에 대한 인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난민(難民)이라는 번역 자체도 문제이다. 난민에는 refugee나 asylum-seeker처럼 피난처를 구하는 사람이라는 인도주의적인 함의가 전혀 들어있지 않고 단순히 힘든 사람이라는 뜻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난민 인식의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가 역지사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과거에 우리도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그리고 오랜 독재 정권 시절에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고, 한국 전쟁 직후에는 유엔에서는 UNKRA(한국재건단)이라는 별도의 난민보호기구까지 만들어야 할 정도로 수 많은 난민이 이 땅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역지사지의 불능은 과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유효하다. 이마누엘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누구든 이방인을 자기 땅으로 맞아들일 환대의 의무와 함께 낯선 땅에서 적으로 대우 받지 않고 환대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는데, 이 때의 환대는 나도 미래에 이방인이 될 수 있고 난민이 될 수 있기에, 오늘 이방인이되고 난민이 된 사람을 환대해야 한다는 것으로 역지사지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은 시리아 사람 알란 쿠르디가 난민이었지만 앞으로는 내가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알란 쿠르디의 사진이 충격적인 이유는 그 ‘평범성’에 있다. 알란 쿠르디를 보면서 아이를 키워본 부모는 집 근처 마트에서 산 평범한 빨간 셔츠와 파란 반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위로 살짝 올린 채 엎드려 자던 적이 있던 자녀를 떠올렸을 것이다. 혹시나 아기가 숨을 쉬고 있는지 코 밑에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던 기억이 나면서, 알란 쿠르디도 곧 일어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알란 쿠르디의 죽음 이후 미디어가 쏟아내는 난민에 관한 수많은 말들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난민은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알란 쿠르디는 과거의 우리였고 미래의 우리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