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세계견문록으로 명성을 떨친 미국의 기자 카플란(Robert D. Kaplan)은, 이후 점차 국제 정세와 지정학적 분석에 눈을 돌렸다. 그의 저술과 관점은 클린턴과 아들 부시 정권의 외교 정책에 다소간 영향을 미쳤다고 하며, 일부 저서들은 근자에 중국어로도 번역되었다.(1) 그러나 이전에 출간된 몇 편의 저작들은 중국에서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올해 들어 카플란의 신작 《아시아의 가마솥 : 남중국해와 태평양 균형의 종말[亚洲之锅 ：南中国海与稳定太平洋的终结]》이 출판되고, 그의 구작 《무사정치(武士政治)》의 중국어 번역본이 출판되면서 비교적 많은 관심이 일어났다.(2) 

비록 《무사정치》는 미국인 독자, 특히 미국의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국제 정세와 지정학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중국인 독자에게도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선 카플란은 정치적 현실주의자이다. 이 점에서 그의 태도는 키신저의 입장과 유사하며, 신보수주의자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종종 노골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미국의 힘을 통해 전세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파하려는 경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반면 카플란은 과거를 거울삼는 것, 특히 고대사──중국과 서구를 막론하고──를 통해 천하의 대세를 명확히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카플란의 이 책이 궁극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미국이 천하통일의 패업을 완성하려면 끊임없는 정치적 충돌을 분명히 의식하고 시종일관 강력한 힘을 유지해야 하며, 한 명의 폭군을 밀어내거나 체제를 변화시킴으로써 세계의 영구적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제목은 “무사정치”인데, 전체 책의 논의를 통해 볼 때 “무사”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적을 가리킨다. 카플란은 전사와 무사를 구분하여, 전자는 기율과 직업정신을 갖춘 것, 후자는 폭력을 추구하며 고정된 충성의 대상이 없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오늘날의 무사는 “개발도상국의 수억 명의 남성 청년 실업자”와, “전과자, 종족적•민족적 ‘애국자’, 냉소주의에 빠진 무기 및 마약 밀매꾼, 그리고 실패한 군인──제3세계 군대에서 추방된 군인” 들을 포함한다.(11) 

신보수주의자와는 달리 카플란은 중국에 대해 강렬한 적의를 보이지 않으며, 중국의 경전, 그 중에서도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전국책(戰國策)》에 대해 명확한 경의를 표한다. 카플란의 이러한 정치적 현실주의 및 도덕관념은 리링(李零) 교수의 손자병법과 문화 문제에 대한 논의를 상기시킨다. 병법의 측면에서 리링 교수는 전국시기의 새로운 병법을 중시하고, 춘추시기의 고전적 병법을 폄하한다. 문화적으로 리링은 법가의 전통을 숭상하고, 공자의 도를 억누른다. 그러므로 리링이 말하는 병법은 법(法)에 대한 것이지 병(兵)에 대한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리링은 도덕과 고별한 법가의 정치학을 추숭하고, 인의도덕의 유가 정치학을 폐기한다. 이 점에서도 카플란과 리링의 입장은 매우 유사하다. 

병(兵)과 중국의 문화에 대해 논의한 문인으로 20세기 중국에는 또 한 명의 학자가 있는데 그의 분석 또한 매우 독특하다. 그것은 바로 저명한 역사학자 레이하이종(雷海宗) 선생인데, 그는 일찍이 난카이(南开) 대학에서 오랜 기간 교수직에 있었다. 그의 명저 《중국문화와 중국의 병[中国文化与中国的兵]》은 항일전쟁을 전후로 하여 저술되었고, 1940년 상무인서관에서 출판되었다. 근자에 중국의 여러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재판하였다.(13)  

병에 대한 레이하이종의 이야기는 주로 중국을 대상으로 하며, 그의 분석은 5•4 세대 학자의 과감하고 패기있는 사상적 기개를 보여준다. 레이 선생은 동한(東漢) 말 이래로 병의 문제가 줄곧 이어져 왔으며, 본질적으로 변화가 없었다고 보고, 따라서 그는 동한 말 이전의 병을 주로 이야기한다. 또한 그는 병을 논함에 있어서 병법(兵法)을 이야기 하지 않고, 병제(兵制)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대신 몇 십 페이지에 불과한 그의 저명한 논문 《중국의 병[中国的兵]》은 춘추시기부터 동한 말까지 병의 근원, 병의 기율, 병의 기풍과 병의 심리를 검토한다. 

문화의 측면에서 볼 때 진나라도 하나의 경계선이다. 레이 선생은 선진시기 역사에서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군인이 되었고, 이것을 영광으로 삼았으며, 국가에 대한 책임감이 투철했다고 본다. 진(秦)대 이래로 백성들은 군인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고, 이것을 고통으로 여겼으며, 국가에 대한 책임감이 약했다. 이것을 근거로 레이 선생은 선진시기 역사를 정치 사회의 변화와 변혁이 확연한 “동적인 역사”라 불렀고, 진대 이후의 역사를 “정적인 역사”라고 일컬었으며, 비록 “치란의 소요”는 있었으나, “본질적인 변화”는 없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소극적 문화를 “무병(無兵)의 문화”라고도 칭했다.(15)  이러한 무병의 문화는 한말에 정형화 되었고, 이후로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그러한즉 병이 강하지 않으면 나라가 자연히 약해진다.

레이하이종 선생이 보기에 춘추시대의 전쟁 주체는 귀족이었고, 왕후장상이 모두 전쟁에 직접 출전했으며,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복잡하고 불필요한 예절을 강조하였고, 일정한 놀이의 규칙이 있었다. 그러므로 전쟁의 목적은 살상과 궤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 세력의 균형”에 있다. 전국시대의 전쟁은 매우 참혹하여, 목숨을 걸고 적국을 멸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는데 이것은 “도살장식 전쟁”이었다.(16) 

이로부터 예악은 붕괴되었다. 본래 문무(文武)를 함께 중시하던 귀족 정치는 분열되기 시작하여, 문(文)은 유세지사(游說之士)로 무는 유협지사(游俠之士)로 나뉘었다. 동시에 점차 사회적으로 전쟁에 대한 혐오심리가 나타났다. 옛 예법은 이미 무너졌고, 새로운 예법은 세워지기를 기다린다. 전국시대 각국은 잇달아 법제를 고쳤다. 그 가운데 상앙(商鞅)의 변법이 가장 성공적이었다. 상앙의 변법은 대가족제도를 폐지하고, 가족의식을 약화시켰으며, 소가족제도를 제창하고, 국가의식을 결집시켰다. 레이하이종은 변법 이후 당시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에 이미 “오늘날 서양의 분위기가 상당 부분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리링의 법가에 대한 찬양과 달리 레이 선생은 전국시대 변법 이후의 좋지 않은 결과를 더 강조한다. 

레이 선생은 일찍이 이천 년에 걸친 중국 사회의 각종 천박하고 어두운 현상들이 “어쩌면 모두 기형적으로 발전한 문덕(文德)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며 개탄하였다.(18)  이렇게 볼 때 전통 중국의 오랜 쇠퇴와 부진은, 주로 과도하게 발전한 문덕과 “무덕(武德)”에 대한 경시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 선생은 결코 맹목적으로 무덕을 추종하지 않는다. 그는 순수한 문덕이 “허위와 천박함”으로 이어지기 쉽고, 순수한 무덕이 “폭력과 잔인함”을 피하기 어려우며, 그 폐단이 더욱 심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한다. 레이 선생은 복고하려는 이상은 “전국 이전의 문무를 함께 중시하던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다.(19)  

결국 레이 선생의 복고는 리링이 선언한 그런 것이 아니다. 옛 서적들을 읽는 것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골동품을 감상하는 것이며, 그것은 현실과 미래에 희망을 주어야 한다. “미래의 중국은 춘추이전 문무겸비의 이상을 회복하지 않을 수 없다.”(20)  레이하이종 선생은 항일 전쟁 시기 중국 군인의 기개에 대해 흥분을 금치 못했고, 그는 이 전쟁을 당대에 펼쳐진 비수(淝水)의 전쟁(21)으로 보았다. 그는 시대에 한 획을 그었던 당시의 전쟁으로부터 이와 같은 이상을 달성할 가능성을 어렴풋이 보았고, 문무겸비의 대변혁이 도래하는 발소리를 들었던 것이다.(22) 

레이 선생의 저작은 중화민족이 존망의 위기에 처해있던 시기에 집필되었으며, 주로 중국의 오랜 쇠퇴와 부진의 문화적 이유를 검토하였다. 카플란의 저작은 미국이 천하를 제패하고 있을 때 지어졌고, 미국이 힘으로 천하를 장악하는 효과적인 전략을 검토하였다. 설사 민족이 위기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레이하이종은 이를 이유로 문덕을 버리고 무덕만을 떠받들지 않았으며, 시종일관 춘추시기 문무겸비의 문화적 이상을 강조하였다. 

미국이 독보적인 시대에 카플란은 오히려 현대 서방 문명의 이상에 대한 환멸을 드러내 보이고, 방향을 바꿔 무사의 도를 이용해 적으로서의 무사에 대적할 것을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실상 이러한 전략으로는 일시적인 패업만을 이룰 수 있을 뿐이며, 천하의 장기적인 평화는 결코 유지할 수 없다. 결국 천하의 패권은 주로 무력에 의지하며, 천하의 안정은 주로 문치에 의지한다.

대영제국의 식민통치 모델과 달리, 미국식 제국의 세계 지배는 주로 군사적인 측면에서 전세계 미군 기지를 통한 압박, 그리고 정치적으로 여러 반미 국가의 정권 교체와 문화적으로 민주화 운동의 추진을 결합한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식 제국의 세계 지배라는 이 사실 자체에 대해 회의를 품을 때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다. 하지만 이러한 통치 모델이 과연 얼마나 거대한 정치적 유산을 남길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미국의 패권천하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쉽게도 중국과 서구문명이 공유하는 왕도천하(王道天下)의 이상은 끊임없이 인류의 정치 생활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이처럼 요원하고,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