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마르크스에 관하여 무언가를 말하고 쓴다는 것은 비교적 쉬운 듯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말하기 쉽다고 한 것은 거의 모두가 무언가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다른 모두가 말하지 못한 것을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회·정치 시스템과 이처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바, 마르크스라는 이 이름은 사상계에서 일종의 모순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영예를 동반하기도 하고, 경시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난점은 중국의 역사기억과 관계 있다. 역사기억의 긍정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마르크스가 인도한 길은 민족이 근대의 역사적 고난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역사기억의 부정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마르크스 사상의 경직된 형식이 일정한 시대의 고난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정한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비평과 반성은 그 속뜻을 헤아릴 수 없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뜻을 품고 있다.

만약 우선 마르크스를 유럽의 사상 전통 속에 놓고 고찰한다면, 역사기억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간에 마르크스는 독일인이며, 유럽인이고, 서구인이다. 마르크스를 논의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그 자신의 사상 전통에 근거하여 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나 공산주의의 발원지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이다. 우리는 먼저 마르크스 자신의 전통적 사상 체계로부터 그의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마르크스의 사상적 연원에 대한 논의는 계속해서 이어져 왔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영국의 정치경제학과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 독일의 고전철학에 중점을 두어왔다. 류샤오펑 교수가 편집을 주관한 “경전과 해석” 총서 가운데 “마르크스와 서구 전통” 시리즈는 일련의 남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맥카시(George E. McCathy)의 《마르크스와 고대인[马克思与古人]》은 마르크스와 고전윤리, 사회정의 사상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힘주어 강조하면서, 특히 마르크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하는 가운데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와 고대 그리스를 연결 지은 논의는 결코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와 에피쿠로스는 고전적인 화제이며, 또 다른 예로 마르크스와 플라톤 또한 포퍼(Karl Popper)의 비판으로 인해 다분히 논쟁적인 주제이다. 마르크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결 지은 연구는 매우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 시리즈에 속한 또 다른 책으로 버어키(R. N. Berki)의 《마르크스주의의 기원[马克思主义的起源]》이 있다. 그 안에는 생각해 볼 만한 관점이 있는데, 여러 유행하는 관점——동서양을 막론하고——과 사뭇 다르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는 상호 대립하는 물과 불의 관계로 여겨진다. 버어키는 마르크스주의가 근본적으로 “유럽 정치와 사회 이론의 주류 전통에 속하는 것”이며, 이러한 주류 전통의 핵심은 유럽의 자유주의 학설이라고 본다. 따라서 버어키는 마르크스주의가 유럽의 자유주의에서 발원하였으며, 또한 후자의 완성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버어키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나는 두 가지 견해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로 마르크스는 독일인이자, 유럽인이며, 서구인으로서, 그의 사상이 어떤 식으로 서구의 전통에 반하든 간에, 그것은 여전히 서구의 정치와 사회이론의 사상 전통에 속한다. 둘째로 마르크스주의와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 전통 사이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이에 대한 오해이다. 마르크스와 서구의 정치사상 전통 사이의 관계에 대해, 나는 아렌트(Hannah Arendt)의 관점과 입장을 결부시켜 말해보려 한다. 일찍이 아렌트가 말하길, 그녀는 정치이론가이지 철학자가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은 아렌트의 겸사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이론적 입장과 연관된다. 아렌트가 보기에 전체적인 서구의 정치사상사는 철학이 정치를 억압해온 역사이다. 이 역사의 발전은 시종일관 실천에 대하여 이론, 정치에 대하여 철학, 의견에 대하여 진리의 우월한 지위를 논증하고 지키는 데에 힘써왔다. 아렌트는 이처럼 우월한 지위의 형성, 그리고 실천과 정치, 의견에 대한 억압이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녀 자신의 정치이론적 입장은 바로 플라톤 이전의 정치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이러한 정치 전통을, 진리가 유일한 표준이 되는 공화 전통이 아닌, 일종의 다원적인 의견의 공존으로 간주하며, 나아가 소크라테스로써 플라톤을 반박하면서 이러한 대조를 설명한다. 물론 나는 뒷부분의 내용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아렌트의 입장에서 서구 정치철학의 전통은 플라톤에서 시작되며, 마르크스에서 끝이 난다. 그녀는 이 전통에 대해 시종일관 명확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아렌트 자신의 이론적 목표는 바로 이러한 비판을 통해 그녀가 잊혀졌다고 보았던 정치 자체의 전통을 재건하는 것이며, 이론과 철학, 진리의 전제정치로부터 벗어나, 실천과 정치, 의견의 활력을 다시금 해방하는 것이다. 아렌트는 마르크스가 어째서 서구 정치 사상 전통의 종점이자 전복자인지 대략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논증한다. 여기에서 나는 그 가운데 한 가지만 강조하려 하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 개념과 그 전복적 의의이다. 노동이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어떠한 의의를 지니는가 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유해볼 만한 문제이다.

서구에서 철학의 발흥은 여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가는 우선 일상생활의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뿐 아니라, 보다 관건이 되는 것은 정치적 사무작업으로부터 벗어나서, 이론과 철학, 진리의 사색에 전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규정하는 근본개념이자 가치창조의 원천으로써 노동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의 입장은 전통적인 서구 정치철학의 질서와 구조를 완전히 뒤집는다. 물론 마르크스에게도 이론적인 모순이 남아있다. 그는 한편으로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으로써 노동을 강조하였고, 또 다른 한편으로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노동이 폐지된 미래의 이상사회를 구상하였다. 이러한 구상은 서구 정치사상의 전통적인 유산을 체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렌트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마르크스가 비록 서구의 정치사상 전통을 전복하면서도, 시종일관 서구의 정치사상 전통에 속한다고 본다.

아렌트의 사유에 대해 필자는 개인적으로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아렌트는 이상사회에 대한 현대와 고대의 서로 다른 구상을 구분하지 않은 채, 플라톤에서 마르크스까지를 단절이 없는 연속체로 간주한다. 내가 보기에 미래의 이상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구상은 보다 많은 부분 현대 유럽의 정치철학적 목표를 드러내고 있으며, 고대의 정치철학에서 이상사회에 대한 구상은 미래지향이 아닌, 초월적 지향을 지닌다. 유럽의 자유주의가 마르크스에게서 완성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도, 내가 보기에 주되게는 일종의 현대적 정치구상의 연속과 완성이다.

인류사회의 비전에 대한 구상에 있어서, 자유주의든 마르크스주의든 간에, 모두 인성에 대한 낙관적 태도와 미래 인류의 이상적 사회에 대한 전망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아렌트는 마르크스를 서구 정치사상의 종점으로 보았던 것이다. 보다 명확히 말해, 마르크스 사상은 유럽 현대 자유주의의 사상적 연속이자 이론적 종결이다. 마르크스와 유럽 자유주의 전통 사이의 관계라는 이 점에 있어서, 나는 관념적인 차원에서 마오쩌둥의 정치개념을 결부시킴으로써 인식을 명확하게 하려 한다. 류샤오펑 교수의 노력에 힘입어, 지난 몇 년 사이 중국에서는 슈미트에 대해 비교적 많은 관심과 논의가 있었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중국의 대지에 한바탕 “슈미트 바람”이 불었다고 보았다. 어떤 이는 슈미트의 사상이 중국에 들어오고 이슈가 되는 것이, 개혁개방 이전의 정치투쟁의식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표명한다고 여긴다. 내가 분명히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완전한 오해라는 사실이다.

슈미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며, 따라서 확실히 자유주의자도 아니다. 슈미트는 정치를 적과 나를 구분하는 명확한 의식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오쩌둥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상기시키기 쉽다. “무릇 적이 반대하는 것은 우리가 지지해야 하고, 적이 지지하는 것은 우리가 반대해야 한다.” 마오쩌둥이든 슈미트든, 확실히 적과 나의 투쟁이 생사존망의 투쟁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실제로 슈미트의 적(敵)-아(我) 개념과 마오쩌둥의 적-아 개념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슈미트가 강조하는 적과 나의 구분에서 구분의 주체는 매우 명확한데, 그것은 바로 주권국가이다. 마오쩌둥의 정의는 계급을 적-아 구분의 주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은 국가를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정치가 인류의 생활에 항상 수반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은 완전히 다른 대답을 갖고 있다. 마오쩌둥의 사상에 근거하면, 정치는 최종적으로 극복될 수 있는데, 그것은 계급투쟁이 계급사회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슈미트는 정치의 극복을 완전히 부인한다. 그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정치가 있을 것이고, 투쟁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슈미트의 입장에서 볼 때, 도화원 식의 황금시대이든, 천하대동의 미래전망이든, 그것들은 모두 현실을 벗어난 일방적인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 슈미트의 정치 개념에서, 인류의 생활은 항상 정치투쟁 가운데 있으며, 구원의 희망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마오쩌둥의 정치사상에서 인류의 생활은 미래에 최종적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전통은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정신을 이어받으며, 또한 기본적으로 미래 문명사회에 관한 서구 현대 정치철학의 이상을 계승한다. 이러한 목표에 있어서, 자유주의든 마르크스주의이든 간에 그 기본적인 지향은 일치한다. 이러한 목표와 완전히 다른 노선은 바로 슈미트의 노선이다. 이 노선은 주권국가를 강조하고, 주권국가 사이의 세력 균형을 강조하며, 균형을 이룬 주권국가로 구성된 국제질서를 강조한다.

여기에서 마오쩌둥과 슈미트 사이의 두 가지 구별을 특히 강조한 것은, 사상적인 종지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와 광의상의 유럽 자유주의 사이의 차이가,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양자 사이의 차이만큼 그렇게 민감하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함이다. 이와 반대로 양자는 목표에 있어서 일치성을 지닌다. 이것은 하이데거가 미국과 소련이 형이상학적 본질이 일치한다고 여겼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스트라우스는 기본적으로 하이데거의 판단에 동의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와 유럽 자유주의는 쌍둥이 형제이며, 단지 미래의 이상사회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길과 방법이라는 이 문제에 있어서, 양자 사이에 근본적 분기가 존재할 뿐이다. 스트라우스 자신은 결코 현대 정치철학의 기초와 목표에 동의하지 않으며, 초월 정신을 강조하는 고전 정치철학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첫째, 마르크스는 유럽인이자, 서구인으로, 그의 사상은 불가피하게 서구 철학과 정치 사상 전통의 흔적을 띤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와 유럽 자유주의 사이의 사상적 관계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의 장막을 걷어내야만 근본적으로 양자 사이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문명 목표의 측면에서 마르크스는 유럽 자유주의 사상전통으로부터 나왔으며, 또한 현대 서구 정치사상 전통의 정점과 종결이다. 슈미트는 주권 사이의 적-아 의식으로 정치를 정의하며, 현대 유럽의 정치와 공법 전통으로 새롭게 돌아가려 한다. 이 비교의 각도에서 볼 때 마르크스의 사상은 연속혁명과 부단한 비판의 학설이며, 보수적이고 경직된 학설이 아니다. 셋째, 마르크스가 유럽인이라는 이 사실과 직시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중국 현대 사상의 내재적 요소로써 마르크스를 타당하게 다룰 수 있다. 실제로 서구에서 온 다른 여러 요소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중국 자체에 내재한 서구적 요소이며, 현재 가장 깊게 뿌리내린 서구적 요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원은 감출 필요도, 부인할 수도 없다. 유태사상이 서구 사상에 내재한 동양적 요소인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중국사상 속에 내재한 서구적 요소이며, 불교사상이 이미 중국에 뿌리내린 것과 같다. 넷째, 전통 중국 문명의 자의식은 당대에 뚜렷한 부흥의 태세를 드러내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부흥은 마르크스——현대 중국에 내재한 서구적 요소——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대응이 결여되어 있다. 중국의 굴기로 인해 현재 각계의 학자들——오늘 자리에 계신 자오팅양(赵汀阳)과 깐춘송(干春松) 교수를 포함하여——은 모두 어떻게 중국의 문명정신과, 중국 특색의 천하 질서를 부흥시킬 것인지 사유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여러 가지 부흥의 사유들은 대부분 현재의 주권국가 질서를 주된 논적으로 삼고 있으며, 현대 중국에 내재한 마르크스를 외면하고 있다. 내 생각에 중국 문명정신의 당대 부흥은 마르크스와 그것의 서구 전통——고금을 막론하고——사이의 사상적 관계를 비켜갈 수 없을 뿐 아니라, 현대 중국에서 마르크스의 육화(肉化) 문제를 피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