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6-25 18:52
중국, 중국인 (22): 쑨거의 동아시아 담론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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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 (22): 쑨거의 동아시아 담론

지리학적으로 중국은 아시아의 국가이다. 그러나 현대 중국의 주된 사유와 참조체계는 서구――이 서구가 대표하는 것이 유럽이든 미국이든, 그리고 이 참조체계에 대한 중국의 자세가 모방이든 대립이든 간에――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이루어낸 경제발전은 일찍이 중국 사회의 아시아 의식과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의식을 촉발했다. 그러나 아시아의 네 마리 용과 같이 아시아에 산재한 작은 국가들은 중국의 참조대상이 되기 어렵다. 물론 이것은 일종의 대국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것은 단순한 이치인데, 바로 룩셈부르크와 스위스가 프랑스와 독일에게 참조가 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에 소련이 짧은 시간 동안 참조체계의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대략적으로 볼 때 20세기 전반기 중국의 주된 참조체계는 유럽이었고, 2차대전 이후의 주된 참조체계는 바로 미국이다.

쑨거(孙歌) 교수는, 아시아의 동료 학자들이 비판한 바와 같이, 중국사회와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뚜렷한 또는 명확한 “아시아 의식”(1)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쑨거는 “우리”, 즉 중국 사회 속의 “우리”가 아시아 의식을 확립하고 동아시아를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기서 “우리”가 가리키는 것은 중국 사회의 지식인들이다. 쑨거의 논술은 주로 한·일 양국의 두 세대에 걸친 학자들의 사상을 참고하는데, 여기에는 일본의 미조구치 유조(沟口雄三)와 한국의 백낙청(白樂晴), 그리고 그보다 앞선 세대의 다케우치 요시미(竹内好)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真男)가 포함된다.(2) 이러한 참고는 일본과 한국의 동료 학자에 대한 경의를 드러내며, 한 명의 중국 학자로서 아시아 담론의 중요성을 창도한다는 자의식을 보여준다.

쑨거가 보기에 동아시아 담론의 강화는 세 가지 이론적 오류를 피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 세가지 오류는 각각 거대담론 제국주의, [동·서양] 이원대립 사유의 절대화, 그리고 보편성과 개별성에 대한 대립적 상상이다.(3) 중국 사회와 지식인의 시선이 주로 서구의 조류를 향할 때에, 쑨거 교수는 아시아 의식, 특히 동아시아 담론에 눈을 돌린다. 이러한 관심은 상당히 독특한 사유로 드러난다. 물론 쑨거 교수는 결코 외톨이가 아니다. 예를 들어 거자오광(葛兆光) 교수의 최근 저작은 일정한 의미에서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중시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를 강조하는 시각은 자연히 서구적 시각과 명확한 대조를 이루고, 단순히 서구를 주된 참조체계로 삼는 사유와도 어느 정도 대조를 이루면서, 동시에 또 다른 종류의 시각을 제공한다.

쑨거 교수가 특히 강조하여 논하는 것은 동아시아, 특히 중·일·한 지식인의 동아시아 의식이다. 물론 쑨거 교수는 아시아 의식을 논의할 때에 남아시아를 언급하기도 하고, 서아시아의 존재를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아시아를 논의할 때 쑨거는 인도 학자 채터지(Partha Chatterjee)를 중시하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와 인도 사이의 공통성이 우리와 구미 사이의 공통성보다 훨씬 더 크다”(4)고 지적한다. 그러나 쑨거는 중국과 인도의 뚜렷한 공통성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지 않는다. 동시에 쑨거는 서아시아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분명히 중국과 서아시아의 공통성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는다. 사실 중국 서부와 서아시아의 문화와 종교적 공통성은 확실히 매우 뚜렷하다.

쑨거는 동아시아 시각에 관한 세 가지 이해를 개괄한다. 첫째로는 전통 유가의 시각인데, “고도로 추상화하는 방식으로, 중국과 조선반도, 일본을 ‘유학’이라는 틀을 통해 하나의 총체로써 통일하는 것이며, 동시에 상술한 지역에서 유학의 가장 기본적인 추상적 가치 관념(예를 들어 ‘인(仁)’이나 ‘중용(中庸)’과 같은)이 지니는 보편성을 논쟁하는데 힘쓰는 것”이다. 두 번째 시각은 일본 지식인을 위주로 한 “현대화”의 시각으로, “동아시아를 서구에 대항하고 그것을 넘어섬으로써 현대화를 실현하는 구역으로 보는 것”이다. 세 번째 시각은 상처의 기억이다.(5) 특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아시아에 안겨준 상처의 기억이다. 아마도 독자들은 쑨거가 동아시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동아시아 담론을 구성하였는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나의 개인적인 인상은 그러한 구성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중국 학자들이 아시아 의식과 동아시아 담론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호소함과 동시에, 쑨거는 자신의 동아시아 담론을 구성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이러한 시도는 상당한 망설임 속에서 나타난다. 논술 과정에서 그는 다만 동아시아 담론을 구성하는 “역사성”과 “유동성”에 대해 강조할 뿐이다.(6) 그러나 이러한 역사성과 유동성이 “우리”가 중국과 아시아,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어떤 식으로 보다 더 도움이 되는가? 이 문제에 있어서는 충분한 논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쑨거는 “중국은 본래 서구 이론의 틀로 귀납하기 어려운 국가”임을 지적하는데, 물론 그는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결코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중국을 특수화하기 위해서”(7)가 아니라는 점도 밝히고 있다. 중국의 독특성에 대해 쑨거는 대략 두 가지로 설명하며, 그 하나는 전통 중국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 중국에 관한 것이다. 전통 중국에 관해서는, “중국에서 ‘천하’ 사상이 ‘국가’ 사상의 전통에 비해 더 강대하며, 따라서 유럽 근대 이후에 형성된 민족국가의 모델을 형성하기 어렵다”(8)고 서술한다. 한국 학자 백낙청을 언급할 때, 쑨거는 중국 전통의 천하질서가 현대 서구의 제국질서보다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9) 현대 중국에 관해서는, “현대 중국의 정치 전통으로써 중국의 혁명은 기성 질서에 대한 파괴를 의미할 뿐 아니라, 그것은 동시에 일종의 건설과 관리의 양식”(10)이라고 서술한다. 아쉬운 것은 쑨거가 중국의 톡특성을 드러내는 전통적 천하사상과 현대의 혁명전통에 대해 각각 상세한 분석을 진행하지 않았으며, 거기에 더해 양자 사이의 가능한 사상적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쑨거 교수의 논술은, 일본과 한국의 학자가 명확한 아시아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나아가 비교적 무게 있는 아시아 담론을 제기하였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상대적으로 중국의 학자들은 아시아 담론 불감증에 걸린 것 같다. 중국의 학자들 사이에서 아시아 담론에 대한 관심은 서구의 담론에 대한 열의와 비교하여 확실히 매우 생기가 없다. 우리는 이로부터 어째서 쑨거 교수가, 우리 중국 학자들이 명확한 아시아 의식을 세우고, 중국의 동아시아 담론을 구성해야 한다고 호소하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볼 때 중국은 확실히 아직 쑨거 교수가 바라는 것과 같은 “일찍이 없었던 동아시아 담론의 풍년시대로 진입”(11)하지 않았다. 

<주>
(1)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状况中的政治与历史》,北京:三联书店,2011年,第17、171页。
(2)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第13页。
(3)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第3-4页。
(4)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第120页。
(5)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第18-20页。
(6)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第23页。
(7)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第282页。
(8)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第293页。
(9)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第301页。
(10)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第120页。
(11) 孙歌:《我们为什么要谈东亚》,第53页。

<참고문헌>
孙歌:《我们为么要谈东亚——状况中的政治与历史》,北京:三联书店,2011年。391页。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7, 2015년 7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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