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2-04 19:00
중국, 중국인 (6): 유가왕도(儒家王道)와 세계질서
 글쓴이 : 아포리아
조회 : 13,368  


중국, 중국인 (6): 유가왕도(儒家王道)와 세계질서

1.

20세기 초의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 이래로 중국의 전통 사상은 줄곧 현대 사회의 위기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 과연 적응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에 직면하여 왔다. 일부 학자들은 전통 사상, 특히 유가 전통이 왕권과 전제제도를 옹호하며, 현대 정신과는 격이 맞지 않고, 중국의 민주화와 현대화 과정에 걸림돌이 되었다고 여긴다. 

한 예로 난카이(南开) 대학의 리우저화(刘泽华)는 신문화 전통의 이러한 비판적 사고방식을 견지해왔다.(1) 또 다른 학자들은 유가 전통과 현대의 민주, 자유, 과학 등의 사상적 가치에 서로를 밝혀주는 부분이 있으며, 나아가 현대 정신의 각종 폐단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1958년 1월 1일, 탕쥔이(唐君毅)와 모우종산(牟宗三), 장쥔마이(张君劢), 쉬푸관(徐复观) 네 사람이 공동으로 발표한 《중국 문화에 대해 세계의 인사들께 드리는 선언[为中国文化敬告世界人士宣言]》은 바로 이러한 생각을 대표하는 문헌이다. 하지만 네 사람은 모두 고국을 떠났고, 이로부터 일어난 현대 신유가(新儒家)는 주로 홍콩과 대만, 해외의 학계에서 활약하였으며, 중국 문화와 정치 현실에 대한 주목도와 영향력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20세기의 90년대부터, 장칭(蒋庆)과 천밍(陈明), 캉샤오광(康晓光), 쳥홍(盛洪) 등의 인물들을 대표로 하는 대륙의 신유가는 유가 사상 고유의 가치와 현대적 의의를 고양하였다. 해외의 신유가와 달리 대륙의 신유가는 본토에 발을 딛고 서서, 중국의 현실에 더욱 밀착해 있었다. 또한 해외 신유가의 심성유학(心性儒學)과 비교하여, 대륙의 신유가는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제도 건설 방면에 대한 유가 사상의 의의를 논설하는 데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2.

중국 대륙에서 흥기한 유가 사상의 사조에서, 왕도(王道) 천하관은 항상 핵심적인 문제였다. 작금의 현대 정치 구조와 국제 체제 속에서 왕도 천하관의 부흥은 중국 정치 내지 세계 질서에 대해 어떤 남다른 사유를 제공하는가? 

깐춘송(干春松) 교수의 《왕도로 돌아가다——유가와 세계질서[重回王道——儒家与世界秩序]》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현대성과 신유가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어떻게 더욱 이상적인 세계 질서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해 유가적 사유를 제시하고자 한다.(2) 비록 저자의 《유가의 제도화와 해체[制度化儒家及其解体]》(3)만큼 상세하고 풍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으나, 이 책은 보다 명확한 입장에서 이상적인 천하 질서를 만드는 것에 대해 왕도사상이 지니는 의의를 서술한다. 

《왕도로 돌아가다[重回王道]》라는 제목은 유가왕도의 복원이라는 저자의 의도를 짚어낸다. 부제에 해당하는 “유가와 세계질서”는 논의의 범위를 가리키며, 그것은 바로 세계 질서 구성에 대한 유가 사상의 의의를 상세히 밝히는 것이다. 

전체 책은 머리말을 제외하고 여섯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저자는 전반부의 두 부분에 걸쳐 유가왕도정치에 대한 정명(正名)과 함께, 천하관념과의 결합을 통해 왕도정치의 의미를 정의한다. 이어지는 세 부분에서는 근대 중국에서 유가왕도의 해체(解體)와 유산(遺産), 그리고 퇴장(退場)을 각각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각종 세계주의(世界主義)와 천하관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 왕도정치는 중국정치의 원칙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인류 문명 발전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3.

저자의 생각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책은 우리에게 세 가지 의문을 던져준다. 첫째로 어째서 왕도로 돌아가야 하는가? 이 문제는 세계 질서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저자의 인식과 관련된다. 둘째로 유가왕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이는 유가왕도에 대한 저자의 정의와 관련된다. 셋째로 어떻게 해야 왕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저자의 사유에서 아쉬운 점에 대한 것이다.

우선 어째서 왕도로 돌아가야 하는가? 다시 말해 현재 시점에서 왜 왕도로 돌아갈 필요가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유가왕도인가? 저자의 논술에 따르면 왕도로 돌아갈 필요성은 현대 정치 체제 및 그 기초의 결함에서 출발한다. 저자의 분석을 종합하면 현대 정치 체제에는 주요한 세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는 현대 정치 체제가 “민족국가를 특징으로 하는 제도와 관계 모델”(3쪽)이며, 이는 저자가 동의하는 세계주의 정신을 가로막는다(105쪽). 둘째로 민족국가를 특징으로 하는 국제 체제는 반드시 힘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이 국제 체제 속의 어떠한 국가라 할지라도 “다른 국가의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나아가 다른 국가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의 가치 원칙과 법률을 내세울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표면적인 평등일 뿐이며, 국제 체제에는 실질적인 차등 구조가 존재한다. 즉 국가와 국가 간의 평등한 지위와 상호 인정은 보통 “서방 열강과 경제 강국 사이에서만 적용될 뿐”이며, 약소국은 일반적으로 “자본의 먹이사슬에서 말단”에 위치하고, 서방의 식민주의적 목표이자 상품시장에 지나지 않는다(106~107쪽). 셋째로 현대 정치 체제의 기초는 “이익(利益)과 사욕(私慾)”(4~5, 98, 139, 144쪽)이다. 그러므로 충돌과 이익이라는 외형적 관점에서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한다. 저자는 현대 정체 체제가 이미 “전환의 시대에 적응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유가의 왕도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4.

그렇다면 유가의 왕도정신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현대 정치 체제와 비교하여, 어째서 유가의 왕도질서가 보다 바람직한 것인가? 

첫째로 민족국가를 특징으로 하는 국제 체제에 비해, 유가왕도는 일종의 보편주의이자 세계주의의 질서관념이다. 그것은 민족국가의 본위를 초월하여 “보편적 가치원칙”(42쪽)의 확립을 추구한다. “천하일가(天下一家)”의 관념은 곧 유가왕도의 보편주의와 세계주의의 면모를 체현한 것이다. 동시에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대륙의 신유가, 특히 유가왕도를 단지 “중국 특수성의 표지”(98쪽)로 여긴 장칭(蒋庆)을 비판한다. 

둘째로 유가왕도는 일종의 덕치(德治)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가왕도의 정신은 “덕으로써 따르게 하는 것”이지, “힘으로써 복종시키는 것”(12~13, 21쪽)이 아니다. 저자는 일정 부분 전통 문헌 속에 나타난 왕도와 패도 논쟁의 논리를 활용하여, 한편으로는 유가정치의 왕도를 고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정치의 “패도”를 비판한다. 이는 곧 저자가 고대의 왕도와 패도 사이의 논쟁을 통해 고금의 정치적 차이를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로 유가왕도의 기초는 “충돌”과 “이익”이 아니라, “동정(同情)”과 “미덕(美德)”(4~5, 144쪽)이다. 저자는 “리바이어던 식의 적대 관계와 이익 충돌을 기초로 하는 근대 서방의 정치 철학”과 달리, 유가왕도는 “적의가 아닌 가족애로써”, “적아가 아닌 원근으로써”,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바라본다. 그러므로 유가 정치 질서의 기초는 “‘패권’이 아닌 ‘도덕’(不忍人之心, 차마 남의 고통을 참지 못하는 마음)”에 있으며, “‘타인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끌어 당기는 것’”이다. 따라서 유가의 정치 이상은 기본적인 도덕 원칙의 견지를 통해 “먼 곳의 사람을 오도록”하는 것이며, 유가는 교화와 모범이 다른 국가에 대해 지니는 흡인력을 굳게 믿는다. 저자는 이러한 길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새로운 세계 구도가 수립될 수 있다”고 여긴다(144쪽).

5.

마지막으로 과연 어떻게 해야 유가왕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유가왕도로의 회귀를 통해 진정으로 이상적인 세계정치 질서를 건립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저자는 “왕도정치의 미래”에 대해 서술하면서 개방적인 자세로 롤스(John Rawls), 칸트(Immanuel Kant), 하버마스(Jurgen Habermas) 및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세계주의 사유를 거울삼아, “사해일가(四海一家)”의 왕도 천하관을 제창한다. 

하지만 저자의 논술은 동시에 적지 않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저자의 서술을 보면 근대 서방의 두 가지 면모를 구분해낼 수 있다. 

한 가지 모습은 홉스(Thomas Hobbes)와 로크(John Locke)로 대표되는, 충돌과 이익에 기초한 권력 정치이며, 다른 한 가지 모습은 바로 칸트와 스미스(Adam Smith)를 대표로 하여 동정과 덕성을 기초로 하는 영구 평화 이념과 진정한 다원주의의 이상이다. 뿐만 아니라 당대 서방에서 롤스와 하버마스, 그리고 벡은 모두 세계주의 정치 질서를 추구하는 서로 다른 사유의 체현으로서, 길은 다를지라도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다. 

만약 이와 같다면,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취하여 유가왕도사상으로 돌아가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만약 서방의 현대 정치 자체에 양면성이 있다면, 저자가 책을 통해 현대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유가의 왕도정치를 고취하는 것은 결국 서방의 일면으로 다른 일면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음으로 저자가 서술하는 유가왕도에서 왕도정치의 기반은 “민(民)”에 있다. 아쉽게도 이 지점에서 저자는 논의를 충분히 전개하지 않으며, 왕도정치가 어째서 민본정치인지, 혹은 어떤 형태의 민본정치인지 상세한 논증을 하지 않고 있다. 

6.

끝으로 저자는 왕도정치가 과연 일종의 유토피아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어떠한 정치적 유토피아인지 분명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저자의 여러 논술을 통해 볼 때, 왕도는 일종의 유토피아이며 이상적인 정치 형태이다(2, 5, 14, 19, 26쪽). 그런데 저자는 때로 왕도가 일종의 유토피아라는 점을 부정하는 듯하며(21~22쪽), 어떤 경우에는 왕도를 “현실의 정치적 실천으로부터 유토피아 식의 천하로 나아가는 중요한 접점”으로 정의한다(4쪽). 아니면 왕도는 일종의 정치 원칙이고, 대동천하(大同天下)가 바로 유토피아적 정치이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만일 이와 같다면 이러한 유토피아가 대체 초월론적인 유토피아인지, 아니면 미래의 유토피아인지에 대해 여전히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초월론적인 유토피아이며,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미래의 유토피아에 해당한다. 저자는 왕도 천하를 “현실의 국가형태를 초월한 이상국가”(39, 49, 137쪽)로 보지만(39, 49, 137쪽), 또한 그것을 이상적인 미래의 세계주의와 구분하지 않고 있다(58쪽). 왕도 천하가 만약 미래의 정치 형태라면, 아무리 먼 미래라 할지라도 그것은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초월론적인 이상국가라면 아무리 요원한 미래라도 그것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며, 단지 영원한 이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유가의 왕도천하는 과연 어떤 유토피아인가? 이 문제는 사실상 왕도정치의 근본정신을 구성한다. 

(주)
(1)刘泽华:《中国的王权主义》,上海:上海人民出版社,2000年;《王权思想论》,天津:天津人民出版社,2006年。
(2) 干春松:《重回王道——儒家与世界秩序》,上海:华东师范大学出版社,2012年。155页。
(3) 干春松:《制度化儒家及其解体》(修订版),北京:中国人民大学出版社,2012年。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2, 2014년 2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아포리아 칼럼
  • 칼럼니스트
  • 아포리아칼럼

월간 베스트 게시물

공지사항
  • 1 아포리아 북리뷰(Aporia Review of Books)
  • 2 궁금하신 사항은 언제든지 문의하여 주시기 바…
이용약관| 개인정보 취급방침| 사이트맵

Copyright (c) 2013 APORIA All rights reserved - www.apor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