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갑자기 형제들을 동편의 곁채로 들라 하셨다. 가보니 웬 낯선 사람이 아버지 곁에 서 있었다. 태위(太尉) 극감(郤鑒) 어르신께서 보낸 문하생이었다. 그는 우리 형제 한 명 한 명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었다. 기분이 상했다. 문벌세족에 고위관료의 제자이니 오죽하겠냐마는 그래도 상한 맘은 쉬이 진정되질 않았다. 이윽고 아버지께서 모이라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극감 어르신께서 사윗감을 고르신다고 한다. 순간 형제들이 몸가짐을 더욱 바로 한다. “허어~, 헛, 허허!” 난 마루에 배를 깔고 누웠다. 고위직의 사위가 된다는 게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구속됨 없이 사는 삶이 더욱 아름다운 것을….
극감의 문하생은 돌아가 있는 그대로 보고하였다. “왕 씨 집안의 자제들은 뼈대 있는 집안의 후예답게 모두들 준수했습니다. 제가 어르신의 사윗감을 고르러 왔다고 하자 한층 몸가짐을 바로 했는데 참으로 의젓했습니다. 다만 한 사람만이 들은 척도 않고 배를 깔고 누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보고를 들은 극감은 무릎을 치며 바로 그 자가 물건이라며 서슴지 않고 사위로 삼는다. 그가 바로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였다.
그는 명문귀족의 후예로 이미 어려서부터 총명함과 비상한 재주로 명성이 자자했다. 조정에서도 그의 재능을 아껴 우군장군(右軍將軍)에 임명하는 등 그를 중용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활달하고 선이 굵었던 그는 도회지의 번화한 삶보다는 산수자연의 드넓은 품에 더욱 끌렸다. 회계(會稽)현의 내사(內史)로 근무하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옛 신화적 인물 우(禹) 임금이 묻혀 있는 곳,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와신상담했던 곳 회계현. 이 유서 깊은 고장은 경관 또한 그지없이 좋았다. 푸근함을 느끼기에 딱 좋은 규모의 산들, 바라만 봐도 맘 절로 풍성해지는 들판. 그리고 산과 들 사이로 흐르는 푸르른 물길들. 특히 회계산 북쪽 난정의 정치가 왕희지의 천성을 약동케 했다.
기나긴 겨울을 이겨낸 삼월 삼짇날, 드디어 왕희지는 인근의 명사를 난정으로 초청하였다. 명분은 삼짇날이니 함께 계제사를 치르자는 것이었다. 겨우내 목욕은 고사하고 머리 한 번 제대로 못 감았을 터, 난정을 휘감아 도는 맑은 물에 머리나 감으면서 한 해의 액막이를 한바탕 벌려 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속셈은 모임 그 자체에 있었다. 수려한 경관을 벗 삼으며 시대의 인걸들과 호탕하게 어울리는 것. 정녕 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기쁨 그 자체였다. 어찌 이러한 기쁨을 놓칠 수 있겠는가?
왕희지는 서둘러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물길을 끌어들여 술잔을 띄울 수 있게끔 조처했다. 시간이 되자 인근의 명사들이 모여들었다. 물길 구비마다 인걸들이 들어찬다. 한 잔 술에 시 한 수요, 벌주는 석 잔이라. 흥에 젖은 시선을 때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에 실어 허공으로 띄운다. 청명한 하늘은 인걸들의 파고드는 눈길에 속살까지 드러낸다. 천공(天空)의 구석구석을 훑는 시선들, 육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드넓은 창공을 내달리는 영혼들. 절대자유의 경지…, 잠시라도 좋다. 늙어감이 무슨 상관이랴! 새봄, 만물은 소생하여 저리도 번성하나니, 시절을 놓치지 않고 만물을 굽어보며 생동하는 기운을 만끽한다. 그렇게 왕희지는 극한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자리가 파하고 ―― 슬픔의 원천
자리가 파했다. 모두들 돌아가고 난정만이 남았다. 자리를 둘러보며 잠시 전 늙음조차 잊게 했던 즐거움을 떠올려본다. 순간 무상한 삶에 주체치 못할 회한이 밀려든다. 즐거움이 극에 달했기에 더욱 허망한 것일까, 목숨이란 결국 소멸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밀려드는 슬픔은 가시질 않는다.
왕희지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만다. 인생사에서 죽고 사는 일만큼 큰 것이 없다는 말을. 변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삼라만상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삼라만상 가운데 변하는 것은 없다고 했건만, 그는 8백 년을 산 팽조나 요절한 아이나 매일반이란 말이, 또 산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것이라는 말이 결국은 거짓이었음을 씁쓸하게 받아들인다. 그제야 풀리지 않던 의문이 풀렸다. 옛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면 늘 행간 저 깊숙한 곳에 서려 있는, 뭔가 형언할 수 없는 감개를 느끼곤 하였는데 그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된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존재의 부재(不在), 이는 어찌 할 도리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가슴 아픈 긍정….
왕희지는 서둘러 붓을 잡는다. 오늘 모였던 사람들의 면면과 그들이 읊조렸던 시편을 남김없이 적는다. 그가 옛사람의 글을 보고 탄식했듯이, 후인이 자신의 글을 보며 탄식하리라는 것을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천하의 명필이 아니던가! 시편을 기록하는 그의 손길에 거침이 없다. 비록 세상이 바뀌고 세태가 변한다 할지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극복할 수 없음은 매 한 가지. 그들도 무너지는 불멸의 꿈속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칠 것이다. 도도한 섭리 앞에 너무나도 무력한 인간 존재를 탓할 것이다. 왕희지는 바로 그렇기에 후인들도 자신이 글에 동감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마치 자신이 선인의 글에서 위안을 찾았던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글에서 위안을 찾을 것이라고.
「난정집서」의 밖으로 ―― 영원히 사는 법
사람이 유한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같은 뜻의 말을 약간 바꿔 “사람은 영원을 희구하게끔 되어 있다.”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신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에 품을 수밖에 없는 영원에의 희구. 왕희지는 난정의 뜨락에서 잠시나마 그 영원을 만끽한다. 비록 떨군 고개를 다시 드는 데 걸리는 시간 정도라도 좋다. 그의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 하늘의 이 끝에서 저 끝을 거침없이 오가며, 지상의 우거진 푸르름을 맘껏 훑는다. 그 순간만큼은 3차원적인 시공간의 제약, 육체의 구속으로부터 정녕 자유롭다. 이것이 영원이 아닐까? 바로 그 순간만큼은 영원을 누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육체를 타고난 이상 영원의 향유는 지속될 수 없다. “죽고 사는 것은 매우 큰일이다!” 왕희지는 이 참담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영원을 누린다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지, 그는 선인의 글에 배어있던 체념의 숨결을 떠올리며 가없는 비애에 젖는다. 순간 그는 고인의 글을 보며 그들의 탄식대로 탄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만날 수도 없는 고인의 숨결에 스르르 젖어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듯 나의 숨결이 후인들의 가슴에 되살아 날 수 있다면, 글 속에서 고인들을 만났듯이 나 또한 후인들과 만날 수 있다면….” 왕희지는 붓을 든다. 그의 가슴은 새로운 기대로 충만해진다. 영원을 누리는 방식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바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훗날 누군가가 그의 글을 읽으며 그를 기억해주면, 그는 그들의 가슴속에서 오롯이 되살아나 그들과 함께 감회에 젖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을 누리게 된다.
이렇게 왕희지의 「난정집서」에는 유한적 존재인 인간이 영원을 누리는 방식 두 가지 제시되어 있다. 하나는 인간 유한성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육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내 영혼이 또 정신이 절대자유의 경지에서 노니는 방식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는 영원할 수가 없다. 정신과 영혼이 육체와 맺은 끈은 육체가 죽어야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사람들은 영원의 세계를 맛보게 된다. 둘째는 글을 남기는 것이다. 무한할 수 있는 행간에 ‘나’의 숨결과 영혼의 자취를 고이 접어 넣음으로써, 대대손손 내 글을 읽는 이의 마음과 영혼 속에 ‘나’가 되살아오게 하는 방식이다. 전자의 방식을 택한 사람들은 단약(丹藥)을 복용하기도 하고 또 극한의 수련과정을 밟기도 하여, 선계(仙界)로 나아가기도 하고 깨달음의 경지로 접어들기도 한다. 후자의 방식을 택한 사람은 인간 존재가 소멸되지 않는 한, 독자의 기억 속에 그 존재가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육체의 측면에서 보면, 어느 경우든 그들이 모두 ‘죽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인 이상 다시 말해 육체를 타고 태어나는 순간, 육체적 죽음도 동시에 잉태된다. 죽음이 없다면 삶도 없는 셈이다. 죽음의 극복은 곧 죽음이 된다. 죽음을 극복하는 순간 삶도 존재하지 않기에 결국 죽음 그 자체가 되고 만다. 따라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그래서 석가도 육체적 죽음을 맞이했고, 예수는 육체의 죽음을 맛보기 위해 자원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라도 육체의 죽음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인 셈이다. 이렇듯 영원을 누리기 위하여 사람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아 영원을 누리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고자 애쓰는 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원문과 번역】
난정집서(蘭亭集序): 진(晉) 왕희지(王羲之)
영화 9년 때는 계축년. 음력 3월 초사흘, 회계산 북쪽 난정에 모여 계제사를 드렸다. 나이를 불문하고 빼어난 인재가 모두 모였다. 고산준령에 울창한 수풀, 쭉 뻗은 대숲이 있는 곳. 맑은 물 굽이쳐 여울지며 휘감아 흘러 주위를 비추이는 곳. 물길을 끌어들여 술잔 띄워 굽이 흐르게 하고는 차례로 줄지어 앉았다. 음악이 굳이 필요할는지, 한 잔 술에 한 곡의 읊조림만으로도 그윽한 회포 펼쳐내기에 족했다. 이 날, 하늘은 맑고 공기 또한 청명했다. 따사롭고 시원한 봄바람 속, 우러러 하늘의 광대함을 바라보고 굽어 만물의 번성함을 살폈다. 자유로이 눈을 돌리며 마음 가는 대로 생각을 치달리니, 보고 듣는 즐거움이 족히 극에 달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즐거웠다.
사람들은 더불어 지내며 일평생 우러르기도 하고 굽어보기도 한다. 어떤 이는 마음속에 든 것을 꺼내어 한 방에 마주앉아 얘기하고, 어떤 이는 자연에 의지하여 육체를 벗어나 자유로이 유랑한다. 비록 취사선택의 방식이 다 다르고 행동거지에 서로 다름이 있었지만, 좋아하는 것을 만나 잠시라도 마음에 흡족하게 되면 득의양양해져 곧 늙게 된다는 것조차 잊게 된다. 그러다 자신이 좋아한 바가 싫증나게 되면 마음도 사정에 따라 변하여 한탄이 이어 나온다. 이전의 즐거웠던 일이 순식간에 진부해지니 감회가 일어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수명이 길든 짧든 자연의 섭리를 좇아 언제든 다하기 마련임에랴! 옛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매우 큰일이다.”고 하였으니, 이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매번 옛 사람들이 감회를 일으키게 된 단서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정표를 하나로 맞춘 듯 다 똑같아서 고인의 글을 대할 때마다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속으론 왜 그런지를 이해할 수 없다보니 죽음과 삶은 하나라는 소리는 허황된 것이요, 팽조처럼 장수하는 것과 어려 죽는 것이 마찬가지라는 소리를 망령되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후세 사람들이 지금을 보는 것은 또한 지금 사람들이 과거를 봄과 같을 터이니 슬프도다! 그래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을 순서대로 적고 그들의 시편을 수록하였다.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사정이 변하겠지만, 감회를 일으키게 되는 이치는 한결같을 것이니, 훗날 이 글을 보는 자도 또한 이 문장에서 감회를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