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이 《역사철학》 강의에서 서술하고 구성한 세계사에는 미국의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미국을 경시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역사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과거와 현재에 있다. 헤겔의 입장에서 미국은 미래에 속해 있었으며, 아직 역사에 포함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헤겔은 철학적 개념과 체계로써 동서고금을 망라하고자 했던 학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세계사의 미래에 대한 그의 통찰―미국은 “내일의 땅이며, 그 곳에서 미래에 세계사적 사명이 계시될 것이다.”(1)―은 선지자적 예리함을 갖추고 있었다.
약 1세기가 지난 후, 헤겔이 예언한 미래는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구대륙 전체를 뒤덮었던 유럽정신을 소모시켰고, 세계사의 무대 또한 서쪽, 즉 유럽 열강의 자양분이 되었던 지중해로부터 대서양 및 그 서쪽에 위치한 신세계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는 분명 어떤 의미에서 “미국이 만든 세계”였으며, 국제 질서는 미국의 주도 하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논단의 배경이 되는 현실은, 소련의 해체 및 동유럽의 혁명으로 냉전이 종식되었고, 미국은 이로 인해 작금의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헤겔의 역사 철학에서 세계사의 미래 시대를 새롭게 부활시켰다. 사람들은 동유럽 혁명을 통해 헤겔적인 의미에서 역사의 종언을 보았고, 동구의 전제 정치에 대한 서구 자유 민주의 승리에 환호했다. 대서양은 자유와 민주, 승리를 체현한 바다가 되었고, 자유 민주의 바람은 필연적으로 대서양의 양안을 거쳐 세계의 구석구석으로 불어갈 것이다.
헤겔에 근거한 역사 종말론은 다소간 헤겔의 눈에 비친 세계사적 노정의 문제를 가려버린다. 헤겔의 서술에서 세계사는 절대적인 의미의 동양―중국―에서 시작하여, 인도를 거쳐,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를 지나 서쪽으로 나아가 게르만 세계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사는 지중해에서 몸을 일으켜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대서양의 시대로 들어섰으며, 점차 대서양 서쪽의 미국에 내려 앉았다. 그리하여 세계는 미국의 시대로 들어섰다. 그러나 세계사가 결코 이로 인해 발걸음을 멈춘 것 같지는 않다. 21세기에 들어 비록 세계사의 중심은 여전히 미국에 있지만, 이미 그 시선은 재차 서쪽을 향하고 있으며, 태평양을 넘어 아시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특히 굴기하는 중국에 집중되고 있다. 세계사는 바로 헤겔적인 의미의 시발점―중국―을 향해 새로이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2.
대서양의 바람은 세계 각지로 불어가게 될 것인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세계적으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을 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문제가 이미 움트고 있었다. 유일의 초강대국—미국—이 머지않아 세계사의 발걸음에 뒤쳐지지는 않을 것인가? 미국 신보수주의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하나인 케이건(Robert Kagan)은 여러 저서를 통해 위의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시종일관 부정적인 대답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답변에는 기본적으로 케이건의 거시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 특히 유럽과 미국, 그리고 아시아(특히 중국)에 대한 분석이 전제되어 있다.
동유럽 혁명이 발생한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념적인 차원에서 자유 민주 제도의 필연적인 우위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이러한 제도가 자연히 보편적인 세계 현상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케이건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현실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다. 그의 논변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서구 자유 경제와 민주 정치의 우위는 결코 이념적인 필연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서방 강대국,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 국가들의 투쟁을 통해 얻어진 결실이다. 또한 만일 명철한 이성과 자유 민주제를 지키기 위한 투쟁 의식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천신만고 끝에 얻은 결실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역사 종말론에 대해서 케이건은 명확하게 “역사의 회귀”를 내세운다. 그는 자유 민주 진영의 일시적 승리로 역사가 종언을 고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칸트의 ‘영구평화’ 구상은 전세계적 범위에서 여전히 하나의 이상이고, 당금의 국제 관계는 여전히 홉스가 말했던 자연 상태이며, 동시에 불안정한 투쟁 상태이다.
케이건의 분석에 따르면 오늘날의 국제 질서는 주요한 삼대 투쟁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강대국 경쟁, 민주 정치와 전제 정치 사이의 투쟁, 그리고 이슬람 급진주의와 세속주의 권력 간의 투쟁이다. 케이건의 분석에서 앞의 두 가지 투쟁은 분명 세 번째 것에 비해 더 중요하다. 비록 최근 미국과 이슬람 세계 사이에 복잡한 갈등 관계가 있으나, 잠정적으로 이슬람 세계에서는 미국과 경쟁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눈에 비친 최대의 라이벌은 분명히 중국이다. 케이건은 이 점에 대해 매우 솔직하다. “’9·11’ 이전에 미국의 전략 부문은 이미 그 예봉을 중국에 겨누기 시작했다.”(2) 단지 느닷없는 ‘9·11’ 테러의 발생으로 미국의 이러한 전략적 고려가 잠시 지연되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이슬람 급진주의는 단지 미국의 전투 대상일 뿐이며, 중국이 바로 미국의 전략적 라이벌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삼대 투쟁 가운데 앞의 두 가지에 대한 케이건의 분석은 모두 중국의 굴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강대국 사이의 세력 경쟁과 관련하여, 케이건은 지역 강대국으로서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이란 지역의 각축을 분석한다. 이들 강대국들 가운데 일본과 인도의 민주동맹은 미국의 우방이고, 이란의 경우 이슬람 수니파 국가 혹은 미국의 여러 맹방에 의해 포위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전세계적인 범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위협할 수 없다. 그러므로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위협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강대국들이다.(3) 케이건은 양자 가운데 중국의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본다. 중국의 경제적 번영은 중국이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다시금 굴기할 것을 예고한다.
하지만 케이건은 미국의 지위를 대체하려면 중국이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점 또한 자신있게 지적한다. 그는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원인을 분석한다. 첫째로는 경제력과 관련하여, 중국이 비록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일인 평균의 측면에서는 아직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라는 점이다. 둘째로는 경제 모델과 관련하여, 중국의 시장 경제는 여전히 정부 주도적인 경향이 있으며, 국영기업이 사기업을 능가한다는 것이다.(4)
그 밖에도 그는 국제 관계 측면에서 중국의 굴기가 아직 미국에게 진정한 도전이 되지 못하며, 기껏해야 냉전 시기 미국이 직면했던 도전에 비해 큰 것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왜냐하면 중국이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나아가서는 타이완 지역과 같은 미국 우방들의 포위망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포위망의 존재만으로도 중국이 ‘지역의 맹주’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고, 하물며 미국을 대체하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다.(5)
미국 쇠퇴론과 관련하여, 케이건은 미국을 대체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중국이라 할지라도,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에 있어서도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고, 민주 정치를 추동하며, 자유 경제의 촉진과 강대국 사이의 균형을 조화시키는 주된 역량이다.
신보수주 진영의 인물로서 중국 굴기에 대한 케이건의 태도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논술은 귀에 거슬리기도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관찰과 논술도 경우에 따라 더 큰 깨달음을 시사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케이건의 중국에 대한 논술은, 적어도 중국이 굴기의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어떻게 사회 공동 부유를 촉진하고 경제 모델의 경쟁력을 제고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미국의 포위망을 돌파 혹은 와해시킬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3.
케이건은 민주의 축과 전제 체제 사이의 투쟁을 계몽 운동 시기까지 소급시킬 수 있고, 그것이 줄곧 멈추지 않았으며, 또한 “21세기의 주요한 지정학적 갈등”(6)을 구성했다고 본다. 실상 그는 그저 또 다른 각도에서―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강대국 사이의 경쟁을 분석한 것이다. 민주 진영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들을 가리키며, 그가 중앙 집권제라고 일컫는 것은 주로 중국, 러시아를 대표로 하는 국가들이다.
케이건은 국제 관계 문제에서 전제 정권이 사력을 다해 현대 정치 체제의 “주권 신성 불가침” 원칙을 수호하려 하고, 그것을 기초로 타국 내정에 대한 불간섭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 체제를 지키고, 외부의 간섭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민주 세계가 이 원칙을 어기고 있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유 민주제의 세계화 속도를 높이고자 함이라고 말한다.(7) 그는 서구의 이상주의자들에게 자유 민주란 이념적 우위에 의한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 투쟁의 성과라는 점을 경고한다. 그러므로 케이건은 “전세계의 민주주의자들이 반드시 결속을 굳혀나가야 한다”고 외치면서, “민주국가의 전세계적 조화와 동맹의 수립”(8)으로써 현재의 민주세계를 수호하고, 미래의 세계 민주를 만들어 나갈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때때로 미국 자신 또한 이 지극히 중요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입장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케이건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는 미국 또한 “전략적-경제적인 이유에서” 오랫동안 “아랍의 중앙 집권 정부와 동맹을 맺어왔고,”(9) 동시에 일부 국가의 군사 정권과도 동맹을 맺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케이건의 고백은 그가 견지하던 민주 원칙에 대한 의문을 절로 불러 일으킨다. 중앙 집권제를 마땅히 경계하고 심지어는 그것과 투쟁해야 한다면, 미국과 중앙 집권 정부, 그리고 군사 정권의 동맹은 또 어째서 정당한 것인가? 미국의 이러한 “전략적-경제적 이유”의 정당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더구나 미국은 팔레스타인과 기타 지방의 일부 민주 정권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민주세계이든 중앙 집권 체제이든 간에 국제 관계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요소는 여전히 국가의 이익이다. 국가간 상호 이익이 충돌하는 상태에서,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각종 요소들은 모두 눈에 띄는 충돌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민주 이념에 근거하고 심지어 그것을 이용하여 국제적으로 간섭할 때, 이것이 지역 강대국의 우려를 자아내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케이건도 미국의 동맹국인 유럽 국가들 또한 미국의 적극적인 간섭주의에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는 시종일관 중국과 러시아가 틀렸다는 것뿐만 아니라, 유럽 또한 틀렸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하지만 양자가 범한 것은 서로 다른 잘못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잘못은 정치 체제 자체에 있고, 유럽은 계몽 이념을 견지한 것에 잘못이 있다.
양차 세계 대전의 비극을 겪은 유럽은 “평화와 상대적 번영을 추구하는 역사 이후의 천국에 들어섰으며, 임마누엘 칸트가 말하는 ‘영구평화’를 실현하고 있다.”(10) 전쟁의 상처를 입었던 유럽의 전략 문화는 “협상을 강조하고, 외교와 경제 관계를 중시한다. 국제법을 강조하고, 힘은 배제한다. 설득에 힘쓰며 위협하지 않는다. 단극주의가 아닌 다자주의를 강조한다.”(11)는 특징을 지닌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케이건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유럽의 입장이 나타나는 현실적인 원인이 힘의 상대적인 약세에 있으며, 그들에게는 미국과 같이 적극적인 간섭을 할 역량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념적인 측면에서 유럽의 생활 방식이 존중하고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이러한 생활 방식은 미국의 보호 아래에서만 실현된다고 여긴다. 만약 미국인의 세계 질서에 대한 적극적인 간여와 안배가 없다면, 유럽인의 포스트 모던 천국은 하시라도 백척간두에 서게 된다. 유럽인들은 줄곧 영구평화의 신념을 견지하는데 반해, 미국인들은 현실적인 정글의 법칙을 믿는다. 속되게 말해 유럽인들이 포스트 모던의 천국을 향유하는 동안,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유럽의 천국을 수호하면서 도탄에 빠진 인간세상을 지키는 셈이다.
4.
케이건이 보기에 유럽의 포스트 모던 천국은 미국의 힘에 의한 보호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세계의 자유 경제, 민주 정치와 평화 질서도 모두 미국의 슈퍼 파워를 필요로 한다. 그는 어떠한 국가나 지역도 영원히 도전 불가능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항상 견지하는 입장은 “미국을 제외하고, 어떠한 다른 국가도 세계의 안전과 민주 원칙을 수호하는 사명을 책임질 수 있는 나라는 없다.”(12)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슈퍼 파워를 계속해서 유지해야만, 현재의 세계에 자유와 민주, 번영과 안전이 있을 수 있다.
케이건은 또한 암암리에 미국의 지정학적 우위에 대한 헤겔의 논술을 발전시켜, 미국이 세계 질서 속에서 지니는 천부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설명한다. 일찍이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미국은 유럽과 달리 강대한 국가들과 이웃하지 않고, 캐나다와 멕시코는 힘에 있어서 모두 고려의 대상이 아니며, 그러므로 미국은 이웃 국가에 대해 경계 태세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13) 케이건은 이와 같은 사실을 충분히 피력한다. 미국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유럽 대륙의 강대국 경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효과적으로 강대국 세력들의 균형을 맞출 수 있으며, 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강력한 인접 국가가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천리 밖에서 활약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패권 인접국으로서 타국의 근심거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14) 그는 이 점에 근거하여 미국이 가장 이상적인 세계의 맹주라는 점을 암시한다. 따라서 “미국은 국제 체제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세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민주의 확장, 번영 및 강대국 평화 유지―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미국의 권력과 영향력에 의지한다.”(15) 이에 따라 케이건은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세계가 다극체제에 비해 평화롭고 안전하며, 자유와 민주와 번영을 더욱 촉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의 관점에서 미국의 파워는 실상 전혀 쇠락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그는 미국의 파워가 쇠락해서는 안 된다고 논변한다. “만약 미국이 진정으로 쇠락하고 있다면, 중국, 러시아, 인도와 브라질 등 기타 강대국은 각자가 위치한 지역에서 이내 더욱 큰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고, 세계는 19세기 유럽의 다극체제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16) 이에 따라 세계는 또 다시 “특별히 안정적이지도 않고, 특별히 평화롭지도 않은” 다극체제에 빠져들 것이다. 유럽의 양차 세계 대전은 이미 이러한 다극체제가 인류를 얼마나 무서운 상태로 인도하는지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미국 질서의 쇠퇴 혹은 미국의 쇠락이라는 말은 미국만의 불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불행이기도 하다. 기타 강대국의 굴기, 특히 중국의 굴기는 이로 인해 미국에게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미국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세계에도 위협이 되는 것이다. 파국을 피하기 위해 미국 예외론은 이해되고 심지어 장려되어야 하며, 이는 미국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간난신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고, 또한 이러한 노력을 바치길 원하기 때문이다.
5.
케이건의 논술에서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현재 세계 인류의 삶을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는 그의 관점이다. 유럽의 문화와 생활은 포스트 모던의 천국을 의미하며, 반드시 수호되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다는 것은 지옥과 같은 어둠을 의미하며,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 통치 하의 세계는 희망의 빛으로 가득한 세상이고, 따라서 지지해야 한다. 미국 중심의 질서를 견지해야만 인간에게 빛이 있을 것이다. 케이건은 자신의 미국 중심론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논변에서 때로는 민주 원칙에 기대고, 때로는 힘의 원칙을 강조한다. 이 두 가지 원칙 사이의 끊임없는 교차 속에서, 미국 중심론의 설득력은 상당히 약해진다. 어떤 의미에서 케이건은 민주 원칙을 트라시마코스(Thrasymachus)의 정의 관념에 접목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 관념 자체와 현대 민주 이념은 근본적으로 상호 충돌한다.
卡根(Robert Kagan):《天堂与实力:世界新秩序下的美国与欧洲》(Of Paradise and Power: America and Europe in the New World Order),肖蓉、魏红霞译,北京:新华出版社,2004年。[原文2003年出版]
卡根:《历史的回归和梦想的终结》(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s),陈小鼎译,北京:社会科学文献出版社,2013年。[原文2008年出版]。
卡根:《美国缔造的世界》(The World America Made),刘若楠译,北京:社会科学文献出版社,2013年。[原文2012年出版]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3, 2013년 11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