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양계초(梁启超)는 《소년 중국이 말하길[少年中国说]》에서 “늙은 제국”인 전통 중국의 쇠락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소년 중국의 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은 노쇠한 중국과 작별을 고하는 영탄곡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중국을 찬미하는 찬송가이다. 양계초는 추호의 망설임 없이 점차 생기를 잃어가는 전통 중국을 내버리고, 소년 중국의 생기발랄한 기상을 소리쳐 부른다. 양계초는 소년 중국을 기준으로 중국의 역사를 네 개의 시대로 구분한다. 당우(唐虞) 이전의 태아시기와, 은주(殷周)의 영아시기, 공자로부터 그 당시에 이르는 소아시기를 거쳐, 당시를 기점으로 어린아이가 되고 소년시대로 바뀌는 것이다. 그가 《소년 중국이 말하길》을 지을 때, 유럽의 세력들은 천하를 경시하였고, 열강은 아직 내분을 겪지 않았으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따라서 양계초는 유럽의 열강을 “장년국”으로 간주하고, 중국은 아직 성년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병상에서 일어나야 할 어린아이이자 정상적으로 성장해야 할 소년국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양계초 이래로 늙은 중국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소년 중국이 어떻게 빨리 성년이 될 것인지는 백 년에 걸친 중국의 꿈이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스스로가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고 여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어쩌면 경제적인 지표에서 생겨난 문제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적인 책략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에는 근본적인 자아이해의 문제 또한 존재한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른바 선진국(developed country)은 이미 성년이 된 국가이고, 양계초가 말한 장년국에 해당한다. 그리고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은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국가이며, 바로 양계초가 말한 소년국이다. 양계초는 국제정세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전통 중국의 과거 지향성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강성한 유럽을 만들었던 미래 지향적 성격을 품에 안는다.

지난 백여 년간 이 같은 성장 충동의 채찍질 속에, 중국은 정세의 변화에 상관없이 항상 앞으로의 전진을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 소년 중국은 스스로를 돌이켜보기 시작했고, 앞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신속한 발전 속도만을 고려할 수 없게 되었으며, 심신의 건강한 성장 또한 고려하게 되었다. 백여 년 전 양계초는 서구 열강을 장년국의 전범으로 보았다. 그리고 백여 년 후인 오늘날 미국의 신보수주의는 이미 유럽을 포스트 모던의 천국으로 보고 있다. 부정적으로 볼 때 미국의 눈에 비친 유럽도 늙은 중국의 발자국을 되밟고 있으며, 점차 늙어가고 있다. 비록 적지 않은 목소리들은 미국이 이미 성에서 쇠로 돌아섰다는 것을 개탄하고 있지만 지금의 미국이야말로 바로 장년일 것이다. 백 년 전 늙은 중국은 유럽 열강의 강성한 기세를 마주하여, 몸을 굽히고 소년이 되면서 서구 열강과 같은 장년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하여 세계가 미국의 질서에 편입된 이래로 소년 중국의 성장은 끊임없이 장년 미국의 눈길을 마주하였다.

현대화 과정 속에서 늙은 중국은 항상 소년 중국의 짐 보따리와 같았다. 짐 속에는 어쩌면 구제도의 건량이 들어있을지도 모르지만, 소년 중국에게 짐 속의 건량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듯 하며, 무거울 뿐만 아니라 입에 넣기도 어렵고, 결국에는 공물이나 심지어는 장식물이 되어버렸다. 중국의 자아 이해에 있어서, 유럽을 마주하든 미국을 마주하든, 소년 중국의 꿈에는 사실상 변화가 없었는데, 그것은 소년 중국이 장년 중국이 되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되며, 동시에 완전한 의미의 현대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소년 중국의 자아 이해를 위한 참조물은 항상 장년의 유럽이나 미국이었다. 바꿔 말하면 서방은 늘 중국이 자신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던 것이다.

《중국에 거하라: ‘중국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탐구[宅兹中国：重建有关“中国”的历史论述]》와 《이역을 상상하라: 조선의 한문 연행 문헌 읽기[想象异域：读李朝朝鲜汉文燕行文献札记]》라는 두 권의 책에서 거자오광(葛兆光) 교수는 “오랜 기간 습관적으로 ‘서방’(특히 유럽)을 기준과 배경으로 하여 중국을 관찰하고, 현대 정치의 국가로써 역사적인 문화 중국을 논의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그리고 중국 주변(일본, 조선, 베트남, 인도, 몽골 등)의 ‘타자’를 참조하여 새롭게 ‘역사적 중국’을 관찰하고, ‘현실의 중국’을 살펴볼 것을 주장한다.(1) 이 두 권의 책에서 거자오광은 중국 주변, 특히 일본과 조선의 전근대 문헌에 나타나는 중국에 대한 이해를 고찰함으로써 역사와 현실의 중국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새로이 제기한다. 《이역을 상상하라》에서는 주로 《연행록(燕行錄)》에 근거하여 청대 조선인의 중국에 대한 이해를 고찰하는데 중점을 둔다.

거자오광은 서구를 기준으로 중국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지만, 이것은 결코 그가 아시아를 통해 아시아를 이해하는 것에 직접적으로 찬성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천하: 사방을 포용하는 중국[天下：包纳四夷的中国]》에서 한위하이(韩毓海)는 그와 마찬가지로 서구의 잣대를 비판하지만, 아시아를 통해 아시아를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도 상당한 열정을 보이고, 특히 유럽의 민족국가체제에 저항하는 아시아 조공체제에 관한 일본 학자의 논술을 긍정하면서 거울로 삼는다. 이 점에 있어서 거자오광은 분명히 보다 더 신중하다. 근 몇 십 년간 일본, 한국, 중국의 학자들이 “아시아”에 대해 새로이 사유하였던 것은, 한편으로 서방의 헤게모니에 대항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라는 정치적 경계선을 넘어서고자 함이었다. 거자오광은 이러한 아시아 담론이 실제로도 “중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와해 내지는 적어도 “약화시켰다”는 사실을 의식한다.(2) 그러면서 그는 “아시아주의”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것이 사실상 일본의 근대, 특히 메이지 유신 시기의 굴기와 관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본의 “아시아주의”는 이중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중국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조공체제로부터 근본적인 이탈을 꾀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서방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변두리의 지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 담론은 사실상 근대 일본이 새롭게 확립한 자아의 담론 체계이다. 한위하이가 그의 저서에서 일본학자와 함께 장단을 맞출 때, 확실히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은 거자오광만큼 분명하지 않다.

전통 중국에서 적어도 17세기 중엽 이전에는 중국만이 존재할 뿐 아시아는 없었다. 전통 중국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의 개념과 세계를 통치하는 천하 관념이 있었고, 지리적•정치적인 의미에서 유럽과 구별되는 아시아 개념은 없었으며, 그보다 작은 동아시아 개념은 말할 것도 없다.(3)  거자오광은 전통 중국과 천하 질서가 붕궤된 시기를 대략 17세기 중엽의 명청 교체기로 잡는다. 그 이전에는 중국을 조종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 공동체가 확실하게 존재했다. 청나라가 산해관 안쪽으로 들어온 이후 원래 문화적 통일체였던 동아시아 각국(특히 중국, 일본, 한국)에는 “메우기 어려운 문화적 간극”이 생겨났다.(4)  문화적으로 일체를 이루던 정치적 동아시아는 이로부터 분열되어, 점차 지금과 같이 상호 격리된 지리적 동아시아로 변하였다. 따라서 거자오광이 보기에 중국, 일본, 한국의 일부 학자들이 근래에 강조하는 조공 체제를 기초로 한 아시아적 근대성이 실제로 의지할만한 것이 아니며, 이는 문화 일체의 “동아시아”가 17세기 이래로 단지 일종의 “상상의 공동체”에 지나지 않을 뿐 역사적 현실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거자오광은 조선의 《연행록》과 일본의 《화이변태(華夷變態)》를 토대로, 한(漢)•당(唐)•송(宋)의 중화 문명 공동체가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와해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주변국들이 자신과 중국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어온 것은 중국 주변국들에게 있어서 중국의 야만화, 또는 문명이 야만족에 의해 정복당한 것을 말했다. 그러므로 조선의 사절단이 중국에 와서 지은 문장에는 더 이상 “조천록(朝天錄)”을 표제로 붙이지 못했고, “연행록(燕行錄)”이 된 것이다.(5)  심한 경우 조선인들에게 “명나라 이후의 중국은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명조의 멸망은 문명의 소멸을 의미했다. 그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뜻밖에도 한인들이 금세 만주족의 청나라를 섬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명나라 이후의 중국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중국인들에게 “명조에 대한 망각”이 아니라 “중국에 대한 망각”을 책망하는 것이며, 이는 곧 문명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줄곧 대명력을 고치지 않았고, 복색을 바꾸지 않았으며, 이것을 영예로 여겼다. 당시 조선인들은 더 이상 청 제국을 문명이라는 의미의 “중국”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중국은 이미 오랑캐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조선은 중국 문명의 혈통을 보전하고 있는 “소중화(小中華)”로 자인했다.(6)  당시 청에 대한 일본인의 시선도 대체로 비슷했다. 그들은 중국의 화이관을 이어받아 청을 오랑캐로 보았고, 자신을 진정한 중화 문명을 체현한 신도(神道) 일본이라 여겼다.(7)  하지만 중국의 주변 특히 조선과 일본이 청조가 들어선 후의 중국을 오랑캐 점령지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중화문명을 버리고 또 다른 정통을 세우지는 않았으며, 자신을 중화문명의 정통 계승자로 여겼다는 사실 또한 거자오광의 논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당시의 조선과 일본은 비록 오랑캐 만주족의 청나라를 경시하였지만, 중화문명의 정신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며, 이미 문명이 중심으로부터 주변을 향해 이동했다고 보았던 것이다.

거자오광은 방법론적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중국”에 대한 개념 정의를 제시한다. 첫째로 역사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경계가 이동하는 ‘중국’”이며, 둘째로 문화 동질성 측면에서 중국은 하나의 “핵심영역이 상당히 명확하고 안정적인 문화공동체”이고, 셋째로 정치 체제 측면에서 “중국”은 “국가”가 아닌, “하나의 왕조 혹은 하나의 정부”를 가리킨다.(8)  청대 이전에 중국의 주변국들은 문화적으로 중국을 존숭하였다. 청대 이래로 조선과 일본은 청 왕조를 인정하지 않았고, 지리적 공간으로서 중국이 이미 오랑캐에 의해 점령되었다고 여겼지만, 여전히 문명 원칙으로써 중국 정신을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당시 조선과 일본이 인정한 중국 문명의 정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계는 변화하고 왕조는 교체되지만, 문명 중국의 원칙은 강역과 왕조의 변화에 따라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거자오광의 논술을 종합하면 문화 공동체로써 중국 정신은 대략 몇 가지 의미를 포괄한다. 첫째로 화이관념이다. “고대 중국인은 시종 자신이 천하의 중심이고, 한나라 문명은 세계 문명의 정점이며, 주변의 민족은 야만적이고 개화되지 못한 민족이라고 믿어왔다.”(9)  비록 거자오광 자신 또한 지적하듯이 화이관념 속의 중국은 “하나의 문명에 관한 관념이며, 명확한 국경이 있는 정치적•지리적 관념이 아니다.” 혹은 당나라 사람이 말한 바와 같이 “중국이 되는 까닭은 예의이고, 오랑캐라 하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들이다.”(10)  그러나 그는 자주 관점을 바꾸어 정치적•지리적 관념을 통해 전통적인 의미의 중국을 이해한다. 예를 들어 마테오리치의 세계 지도가 중국에게 가져다 준 충격을 이야기할 때 거자오광은 이 지도가 “천원지방의 오랜 관념을 와해”시켰고, 세계가 매우 크고 중국은 매우 작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주었으며,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견해를 부정했고, “동해든 서해든 마음도 같고 이치도 같다”는 관념을 제시하였다는 점을 지적한다.(11)  지도에 근거하여 전통적인 중국 중심론을 부정하는 것은 분명 예의의 유무에 근거한 문명의 원칙이 아니며, 지리적 영역의 개념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둘째로 문화를 통한 회유이다. 주변의 오랑캐들은 개명되지 않았고 예의가 없으며, 따라서 화하 중국의 교화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중국의 교화 원칙은 일반적으로 전쟁의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이방의 사람들을 회유하는” 방식을 취하며 문화 차원에서 “권위로 이국을 굴복시키는 것”이다.(12)  셋째로 천하주의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거자오광은 우선 천하주의의 핵심이 “하늘 아래 왕토 아닌 곳 없는 것” 혹은 중국이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의 오랑캐를 내려다보는 세계관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천하관은 고대 중국의 세계지도에 반영되어, 중국은 크고 주변의 만방은 작게 그려진다. 거자오광은 “고대 중국의 화하 문명 중심적 관념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사방의 국가들에 대해 지리적 공간이 작을 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도 작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13)  거자오광은 또한 고대 중국의 천하주의가 다만 일종의 “상상”이고, 하나의 “오만한”, “자아 중심적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한다.(14)  분명 거자오광은 실정에 부합하는가를 근거로 하여 천하를 상상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가 인정하는 실정인가. 지리적인 사실과 관련하여 중국은 분명히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정치적인 차원에서 거자오광은 “상상의 천하”와 “실제의 만국”을 한데 섞어 논한다.(15)  이 점에서 볼 때 거자오광의 눈에 비친 “천하”의 실정은 만국이 분쟁하고, 군웅이 할거하는 천하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전통 중국의 화하 문명론은 자연히 버려야 할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부분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전통적 정치 철학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상상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님을 직접적으로 지적한 것과 유사하다.

거자오광은 화이의 구별과 천하주의의 핵심이 “문명”과 “문화가치”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지만, 어째서 문명으로서의 “중국”과 문화가치체계의 “천하주의”가 그저 하나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지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는다. 문명의 역량으로서 중국에 대해 거자오광은 분명 스피노자만큼 믿음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스피노자는 유대인의 민족 정신과 그 독특한 기호로서 할례를 논하면서 중국인과 비교한다. 스피노자는 중국인이 유대인과 비슷하게 “머리에 선명한 표지가 있고, 이러한 표지는 그들이 극도로 조심스럽게 간직해온 것이다. 이 표지가 있기 때문에 그들과 다른 사람들은 구분되며, 나아가 이렇게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사람들과 격리되었으며, 어떠한 다른 국가보다도 유구하게 이어져왔다. 그들이 항상 그들의 국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가 망하고 난 후에 다시 부흥시킬 수 있었다. 타타르족이 교만과 사치로 인해 기개를 상실한 이후 중국인들은 다시 그들의 국가를 부흥시킬 수 있었다.”(16)  스피노자는 1665년부터 ≪신학정치론≫을 쓰기 시작하여, 1670년에 출판하였다. 당시는 청나라 군대가 산해관을 넘어온 지 20여년이 지난 시기였는데, 유대인 스피노자는 오히려 당대의 중국인보다 중국의 필연적 부흥을 더욱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