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출판된 리링(李零) 교수의 《집 잃은 개-내가 읽은 <논어>[丧家狗-我读〈论语〉]》는 세간에 한바탕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이 이 책에서 말하려 하는 것이 공자의 진면목이라고 선언한다. 공자는 한평생 실패와 좌절 속에서 유랑하며, 어찌할 줄 몰라 갈팡질팡하였고, 마치 한 마리 집 잃은 개와 같았다는 것이다. 실제의 공자는 성인도, 성왕도 아니었고, 그저 돌아갈 집이 없는 지식인에 불과했다.(1)  이러한 방식의 묘사는 예로부터 있어왔으며, 리링이 새롭게 밝혀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거리낌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다. 물론 그는 “‘집 잃은 개’가 결코 모욕적인 말이 아니며”, 단지 공자의 “불우함”(2)을 비유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필자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이 “불우함”이란 바로 재능을 품고도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공자에 관한 사실적 진술이다. 그런데 리링은 “불우한” 공자가 “가소로우면서도 매력적”(3)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공자에 대한 가치판단이다. 대부분의 논쟁들은 사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가치 판단에 대한 것이다.

일찍이 5 • 4 이래로 공자의 이미지는 대부분 짓밟혔다. 짓밟는 방식도 자연히 몇 가지로 나뉜다. 과거에 공자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공 씨네 둘째 늙은이가 되었다. 지금의 공자는 오락적 수요에 맞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가 되었다. 리링은 원문으로 돌아가서 공자가 스스로를 이해했던 방식으로 공자를 이해할 것을 제창하며,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솜씨는 탄복할 만하다. 그는 원문에 대한 세밀한 독해를 바탕으로, 견강부회하거나 고담준론하지 않으면서, 예리한 필봉으로 솔직 담백하게 펼쳐낸 이야기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원문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분석하는 솜씨와 꾸밈없는 태도만 놓고 볼 때, 리링의 공자 독해 자체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이러한 독해는 매우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당시의 요란한 분위기도 지금은 이미 사그라졌다. 오늘날에 이르러 다시 살펴보면 리링이 제기한 일련의 문제들은 여전히 숙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필자는 그 가운데 상호 관련된 두 가지 문제를 강조하려 한다. 첫째로 리링이 공자를 “가소로우면서도 매력적이다”라고 한 것은 공자의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하려는[知其不可而爲之]” 정신을 말하며,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 돈키호테와 같이,” 자신의 이상 속에서 살고 있음을 가리킨다. 둘째로 그는 공자의 일생을 “지식인의 숙명”으로 결론짓는다. “이상을 품은 채, 현실 세계에서 정신적 고향을 찾지 못한 모든 사람은 집 잃은 개이다.”(4)  모든 논란의 불씨는 근본적으로 “가소로움”과 “매력적임”의 관계를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서 시작된다. 가소로운 것은 부정적이고, 매력적인 것은 긍정적이다. 이렇게 돌아갈 집이 없는 세계에서 정신적 고향을 찾는 것이 어째서 가소롭고, 또 어째서 매력적인가? 리링은 단언을 내렸지만, 그것을 풀어내지는 않았다.

이러한 말을 들으면 왕궈웨이(王国维)의 지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철학에 있어서, 대체로 매력적인 것은 믿을 수 없고, 믿을 만한 것은 매력적이지 않다.” 리링이 말한 가소롭다는 것도 어쩌면 정암(静庵) 선생이 말한 믿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리링의 말을 빌자면, 현실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유가에서 말하는 군자의 나라는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다. 법가는 현실적인 말을 즐겨 했지만, 모두가 듣기 싫어했다.”(5) 따라서 유가는 가소로우면서도 매력적이다. 법가의 말은 믿을 만하지만 매력적이지 않다. 이렇게 볼 때 매력적인 공자를 적절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믿을 만한 한비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리링이 한비자를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병가의 경전, 그 중에서도 경전 중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손자(孫子)》에 대한 연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리링에 따르면 병가는 학문적으로 법가의 “형제”(6)이다.

리링은 중국의 경전을 읽으려면 우선 네 개의 텍스트를 먼저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들은 바로 《논어(論語)》와 《노자(老子)》, 《손자(孫子)》, 그리고 《주역(周易)》이다. 리링은 각각의 경전 텍스트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두 가지가 가장 뛰어난데, 첫째가 공자, 둘째가 손자에 대한 독해이다. 공자 독해에서는 집 잃은 개 이야기를 주장하여 널리 주목 받았으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손자 독해에서는 전쟁은 속임수라는 주장으로 오랜 세월 연구를 거쳤으며, 가장 조예가 깊다.

앞서 말한 글뿐만 아니라, 리링은 20세기 90년대 중반에 손자를 다룬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출간했는데, 《<손자>고본연구(〈孙子〉古本研究)》와 《오손자발미(吴孙子发微)》가 바로 그것이다.(7) 십여 년 뒤에는 두 권의 책을 하나로 합친 개정판이 《<손자>십삼편 종합 연구(〈孙子〉十三篇综合研究)》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8) 같은 해에 리링이 손자에 대해 분석한 《전쟁은 속임수다[兵以诈立]》가 새로 출판되었다.(9) 2007년, 《집 잃은 개》가 나온 것과 같은 해에 리링은 《<손자>역주(〈孙子〉译注)》를 출판했다.(10) 삼 년 뒤에 리링은 또 《유일한 규칙⎯⎯<손자>의 투쟁철학[唯一的规则⎯⎯〈孙子〉的斗争哲学]》을 출판했고, 자신이 이전에 했던 모든 손자연구를 이 책 준비와 포석으로 여겼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볼 때 《손자》가 리링이 중국 경전을 독해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바탕임을 알 수 있다.

리링이 읽은 《손자》는, 종이 위의 전쟁이다. 종이 위라는 말은 폄훼의 의미가 아니며, 문인이 전쟁을 논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문인의 전쟁과 군인의 군인은 서로 다르다. 주요한 차이점은 문인의 경우 전쟁을 전쟁의 층위에서 논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인의 전쟁론은 문화와 사상을 논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러므로 리링은 《손자》가 한 편의 병서지만, 일반적인 병서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것은 “철학적 색채”, 혹은 고차원적인 “철학의 풍미”를 지닌 병서이다.(11) 보다 넓은 의미에서 《손자》는 단순한 병서를 넘어서 “중국의 지혜를 논하는 책”이다.(12) 그는 한발 더 나아가서 “중국적 사유와 병법 사이에는 큰 관련이 있으며, 병법을 알지 못하고서는 중국 철학을 알 수 없다.”고 단언한다.(13)  리링은 공자의 가소로움과 매력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병법과 중국 철학(중국의 지혜, 중국적 사유)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지 않는다.

만약 《손자》에 철학이 담겨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철학인가? 리링은 “병법이란 생존철학”(14)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그는 생존철학을 “투쟁철학”이라고도 부른다. 투쟁철학, 즉 “투쟁을 통해 생존을 추구하는 철학”이다. 투쟁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투쟁을 가리키며, 생물학적인 의미와 함께 사회학적인 의미의 투쟁도 포괄한다. 간혹 그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투쟁철학을 정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힘 주어 강조하는 것은 “인류가 매우 호전적”이라는 냉혹한 사실이다. “이처럼 냉혹한 사실을 연구하는 철학을 일컬어 투쟁철학이라고 한다.”(15) 사실 “투쟁을 통한 생존의 추구”를 강조하는 것과 인류의 호전성이라는 “냉혹한 사실”을 연구하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투쟁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그것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후자의 경우 투쟁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리링은 전자에 치중한다. 전쟁에 대한 논의에서 우선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은 투쟁이다. 투쟁에는 서로 다른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손자•군쟁(孫子 •軍爭)》에서 말하는 사기, 심리, 체력, 응변은 모두 투쟁이다. 이러한 투쟁은 씨족간의 싸움이나 개인적 다툼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의 대결을 말한다. 투쟁철학과 그것에 내포된 냉혹한 사실에 대해 논의할 때, 리링은 보통 고대의 손자와 현대의 마오쩌둥(毛泽东)을 예로 들며, 종종 마키아벨리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적실하게 유추할 수 있는 인물은 사실 칼 슈미트(Carl Schmitt)일 것이다.(16) 슈미트의 정치적 개념들은 지극히 현실적일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도 않으며, 리링 교수가 높이 평가하는 중국 병가의 정신과 딱 맞아떨어진다. 

만약 병법이 중국의 지혜를 체현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지혜인가? 리링은 이러한 “전형적인 중국의 지혜”가 바로 손자가 말한 “전쟁에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 것[兵不厌诈]”(17)이라고 밝힌다. 비록 그가 직접 나누어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에서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는 말도 서로 다른 층위에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가 정위(定位)로, 병법은 “중국 특유의 산물”이며, 전쟁에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 것이 병법의 “정수(精髓)”(18)라는 것이다. 다음이 정의(定義)인데, 전쟁에서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는 의미는 “규칙이 없는 것이 유일한 규칙” (19)이라는 것이다. 《유일한 규칙[唯一的规则]》이라는 책의 제목은 이러한 뜻을 보여준다. 그 다음은 정식(定式)이며, 규칙이 없다는 규칙은 병가의 사유방식으로, 대항과 투쟁 속에서 임기응변한다. “변화”가 유일한 규칙이며, 규칙이 없는 규칙이자, “법 없는 법”(20)이다. 마지막은 정론(定論)이다. 리링은 병법이 중국 정치학의 본질(21)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중국 고전적인 병법은 “투(鬪)”와 “변(變)”, 즉 “투쟁”과 “기만”으로 구성된다. 물론 리링의 논변을 곡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말의 의미를 보다 한정 지을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한 “중국의 고전적 병법”은 전국시기 이래로 속임수를 숭상하는 병법의 신전통을 말한다.(22)  신전통은 자연히 구전통에 대한 반동이었다. 고금의 전술에서 차이를 보이는 가장 전형적인 경우는 송나라 양공(襄公)과 사마자어(司馬子魚)를 예로 들 수 있다. 《좌전(左傳)》에 따르면, 송나라와 초나라가 싸울 때, 송나라 군대는 이미 진영을 갖추었고, 초나라 군대는 아직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사마자어는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고 있을 때 공격하기를 청했으나, 송나라 양공은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넌 후에 진영을 정비하지 못했을 때, 양공은 여전히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공격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는 강을 건너고 있거나 진영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공격하는 것이 모두 옛 법도와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고대의 전술은 귀족의 전술이었으며, 양쪽의 군대가 “모두 진영을 갖추면”, 그때서야 “개전”을 명한다. 양공은 이러한 고대 귀족의 전쟁 규칙을 따랐으며, 옛 법도를 사수하였기에 다른 이의 위태로움을 틈타 패퇴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양공의 완고한 태도는 고서들 속에서 “바보의 대표”로 여겨졌을 뿐 아니라, 동시에 마오쩌둥의 《지구전을 논함(论持久战)》에서는 “맹꽁이식 인의도덕”(23)이라고 조롱 받았다. 리링은 《손자》가 송나라 양공과 같은 고대의 전법에 반대하여 도하 중에 공격할 것과, 전쟁에서 속임수를 꺼리지 않을 것을 주장하여 신조류와 신전법을 대표했다고 말한다. 후세의 병가들이 이러한 신전법을 따랐기에 “중국의 고전적 병법”이 된 것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리링이 언급한 바와 같이, 양공이 비록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으나, 어떤 이는 그를 일러 “중국의 돈키호테”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점이다. 보다 눈 여겨 볼 만한 것은 리링이 중국의 또 다른 돈키호테로 “전형적인 복고주의자” 공자를 언급했다는 점이다.(24) “중국의 돈키호테”로 일컬어지는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면 그가 어째서 공자를 “가소로우면서도 매력적”이라고 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에 옛 예법을 말하고, 좁은 세상에서 큰 도리를 말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현실을 도외시한 채, 대세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리링은 중국 정치학의 본질이 병법 속에 있다고 말했다. 병법의 정수가 투쟁과 기만에 있는 이상, 중국 정치학의 본질도 따라서 투쟁과 기만에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말하는 정치학의 개념에 대해서도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중국 특색 정치학은 “도덕과 고별한 정치학”을 가리키며, 이것은 또한 “형명(刑名)과 법술(法術)의 학문”(25)이기도 하다. 분명 리링은 “도덕적 정치학”과 “도덕과 고별한 정치학”을 구분한다. 고금의 전술이 서로 구별되는 것에 상응하여 정치학도 신구로 구분된다. 도덕적 정치학을 대표하는 것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한 유가이다. 도덕과 고별한 정치학의 전형은 법(法), 술(術), 세(勢)를 강조한 법가이다. 도덕을 강조하는 정치학의 입장에서 이처럼 새로운 정치학은 일종의 충격이자 도전이었다. 하지만 법가는 진(秦)에서 성립되고, 또 진(秦)에서 무너졌다. 한대 이후로 법가의 신전통은 줄곧 유가의 구전통에 의해 억압되었다. 그러나 법가와 상호 참조하는 병가의 전통은 속박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리링이 병가로써 법가를 말하는 것은 하나의 우회전략이다.

리링의 공자 독해에서는 돌아갈 집이 없는 이상을 강조한다. 손자 독해에서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강조한다. 공자 독해가 구전통에 대한 해체를 의도했다면, 손자 독해의 의도는 법가 신전통을 고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링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신통치 않고, 예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신통치 않으며, 오직 나라로 나라를 다스려야만 순조롭다. 법, 술, 세는 바로 국가의 도리로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며, 이것은 현대 국가의 이념에 부합한다”(26)고 말한다. 무엇이 “나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인가? 법, 술, 세는 현대의 국가이념에 진정으로 부합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떠한 의미에서 부합하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리링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리링의 경전 텍스트 독해는 매우 세밀하고 정교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 관점의 표출은 대체로 간략한 언급에 그칠 뿐이다. 그러므로 자세하게 검토되어야 할 많은 입장들에 대해 간략한 실마리와 윤곽만을 드러낸다. 이것은 그의 서술 스타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사각지대가 만들어진다. 필자는 여기에서 오해를 야기하기 쉽거나, 보다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세 가지 지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로 리링은 전쟁에서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 것이 중국 특색의 병법이고, 전형적인 중국의 지혜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 그는 기만이 중국의 전매특허가 아니며, 서구의 “전략”도 그 어원이 기만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전쟁에서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 것은 중국만의 특색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문제는 왜 서구의 병법에서 기만이 막후로 퇴장하였고, 중국에서는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송나라 양공이 옛 예법을 고수했던 것은 오히려 현대 유럽의 정규전에서 나타나는 격식에 보다 부합한다. 사실 리링도 서구의 전쟁이 직업군인 사이의 실력 겨루기로, 이기지 못하면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언급한다.(27) 하지만 게릴라전이 출현함에 따라 유럽 열강은 식민지 확장 과정에서, 전쟁이 곧 속임수인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부터 자신의 게릴라전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실제 전쟁에서 그것을 활용할 수 있었다.(28) 그러므로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전쟁에서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 원칙은 중국만의 독자적인 것이 아닌 듯 하다.

둘째로 리링은 “약자의 병법이 보다 속임수를 강조한다”고 말한다. 또는 클라우제비츠식으로 말하자면 속임수는 약자에게 더욱 중요하다. 손자병법에서 강조한 전쟁은 속임수라는 말은 약자의 병법이고, 마오쩌둥이 강조한 지구전과 게릴라전과 같은 비정규전법도 약자의 병법이다.  이러한 설명은 틀린 것이 아니지만, 일정 부분 오해의 가능성이 있다. 마오쩌둥의 병법은 약자일 때 약자의 병법을 사용하고, 강자일 때도 “남은 병사로 궁지에 몰린 적을 끝까지 쫓는다.” 뒷 부분은 리링도 인용하고 강조했던 부분이다. 전쟁이 속임수라는 것을 특별히 강조했던 것을 보면, 리링은 손자병법 자체가 약자의 병법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듯 하다.(29) 하지만 “형편(形篇)”을 분석할 때 그는 손자가 말한 전쟁이 “모두 대국 사이의 전쟁”이고, “국가에 의해 뒷받침되는 정규전”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전쟁에서는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 강약의 형세가 정해지면, 승패의 구분이 드러난다.” 이처럼 손자가 말한 전쟁이 모두 정규전이라면, 리링이 인정한 것과 같이 손자에게는 “실력이 속임수보다 중요한 것이다.”(30) 

셋째로 리링은 병법이 중국 정치학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해 그가 말하는 것은 법가 정치학의 본질이다. 다른 한편으로 리링은 법가의 정치학이 유가 정치학에 의해 억압 받았고, 역사적으로 다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중국에서 전쟁의 규칙은 병가의 천하이지만, 정치적 규칙은 유가의 천하이다. 리링은 전쟁이 정치의 연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즐겨 인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전통 중국의 정치는 병가와 유가의 합작품이거나, 양자의 정신분열이다. 중국의 전통적 정치학에 대한 그의 논의는 한쪽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다. 손자의 독해를 통해 법가를 고양하고, 공자의 독해를 통해 유가를 내버린다. 이러한 편향의 근본적은 자신의 의도에 있다. 유가와 법가를 뒤집고, 약자를 강자로 바꾸며, 어두움을 밝음으로 삼아 법가를 조종으로 세운다. 어쩌면 리링의 법가 독해도 약자의 독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