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11-09 09:24
중국정치 다시보기(11): 맹(盟)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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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치 다시보기 (11): 맹(盟)

중국 공산당의 집정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14억 인구를 일사분란하게 통솔하여 중국 역사 이래 최고의 국가능력을 갖추었다. 특히 경제부문에서의 발전은 괄목상대하다. 1964년 도쿄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루고 일본과 한국이 그랬듯이 중국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시키면서 소위 경제기적(economic miracle)을 만들었다. G8이 독점하던 세계 시장판을 뒤집고 중국을 포함한 G20로 확대시켰고, 냉전시기의 제3세계 시장들을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했다. 동아시아 인접 국가들의 중국화도 빠르게 진행시켰다. 마치 종이가 물에 젖듯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스며들어(infiltration) 중국색깔로 염색했다. 동아시아모델(East Asia Model), 중국발전모델(Beijing consensus),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라는 화두가 세인들의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獨不將軍(독불장군) 노릇은 한계가 있었다. 중국의 경제, 군사부문의 발전과 soft power발전 간의 불균형을 감지한 인접국들이 위협(china threat)을 느끼기 시작했다. 경쟁국들도 좌시하지 않았다. 국제사회 여론에 중국위협론, 중국견제론이 급부상했다. 주변국들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때를 맞추어 미국이 아시아복귀전략을 발동하고 과거의 동맹들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영토분쟁과 안보문제를 핑계로 냉전시기와 같은 유형의 편 가르기를 진행했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위기에 직면한 후진타오정부가 조화사회(harmonious society), 조화세계(harmonious world), 평화굴기(peaceful rise)를 내세워 진화에 나섰지만 때가 늦었다. 미국은 공격적이고 노골적으로 미국-일본-한국동맹 체제를 가동시켰고, 남중국해분쟁을 빌미로 필리핀해역에 항모를 투입시켰다. 경제적으로도 환태평양경제협력체(TPP) 구축을 서둘렀다. 

시진핑 정부의 선택은 자명하다. 중국도 원색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다. 군자는 근엄하게 행동하면서 남과 다투지 않고, 서로 어울리기는 하지만 당파를 짓지 않는다(矜而不爭, 群而不黨)는 공자의 말씀을 지키기에는 상황이 다급하다. 상대진영의 동맹을 파회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동맹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방법은 두 가지이다. 상대진영의 중심국가와 직접 동맹을 체결하거나 하부구조와 동맹을 체결하여 상대동맹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방법, 그리고 균형(balancing)을 위해 상대동맹에 대응할 수 있는 대응동맹을 결성하는 방법이다. 중국은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구사한다. 미국과는 G2체제에 동의를 하고, 일본과 한국은 개별적으로 접근하여 국제정치에서 가장 본질적인 “이익”으로 해당국들을 유인하고 있다.    

이미 장쩌민, 후진타오 정부시기부터 전통병서에 나오는 원교근공(遠交近攻)에서 근원불문(近遠不問) 선린우호(善隣友好)로, 불맹(不盟)에서 다자외교(多者外交)로 정책전환을 시작하였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ASEAN+3, ASEAN+1,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상하이협력기구(SCO), 동북아시아에서는 6자회담 기제를 구축하였다. 시진핑 정부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RIMPAC)에 참여하는 것으로 미국과의 군사협력의지를 보였고, 최근 중국이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 (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를 주도하여 아시아에서 다자안보협력을 제안하였다. 

문제는 정책효과와 전략성과이다. 국제정치와 외교는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다. 중국의 일방적인 정책결정과 전략행위들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혈맹이든 동맹이든 맹(盟)은 마음이 통해야 결성될 수 있다. 왜냐하면 거대 중국과 주변국처럼 비대칭적 동맹관계의 경우 약소국들은 항상 동맹딜레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맹국에게 포기당하나 불필요한 분쟁에 연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존도를 줄여 자율성을 확보해야하는 과제가 있다. 때문에 상대국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는 한 동맹(同盟)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특히 공동의 적이나 위험요소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 어렵다. 중국이 선린우호를 외교명분으로 삼아 열심히 공을 들이는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말레이시아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살찐 중국(fat china)”이라는 제목의 책자가 진열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중국 아이들이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어서 비만아가 되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들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숨은 의미들이 있다. 중국 아이들이 살찌는 이유가 KFC, 맥도날드 등 미국의 패스트푸드를 먹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발전모델을 고민하는 동남아국가들의 실망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이 경제, 군사에만 몰두하고 있어서 문화, 교육, 가치관, 정신 등 소프트파워 분야에서는 모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중국이 살찌는 이유가 결국 주변지역에서 먹을거리를 폭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품시장은 물론이고 노동시장까지 잠식해가는 중국의 저인망식 흡입을 비꼬고 있다. 

지금 동남아국가들은 중국에 대한 실망과 중국의 맹(盟)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맹(盟)을 결성을 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슬람금융포럼이다. 최근 이슬람국가들이 두바이에 모여 개최한 동 포럼은 작은 국가, 작은 기업들이 모여 거대금융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구상하는 야심찬 계획의 하나는 중동의 두바이처럼 동남아의 이슬람자본의 금고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이슬람자본을 유입시켜 중국자본, 유럽과 미국자본에 대응하는 동시에 동남아를 결집시켜 새로운 발전의 축으로 부상시킨다는 전략이다. 2015년에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간 고속전철이 개통된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방콕까지 연결되는 열차가 인도네시아까지 연결되면 ASEAN10은 더 이상 10개의 국가가 아니라 EU처럼 하나의 ASEAN이 될 수 있다. 말레이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격추된 이후 중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을 되새기는 말레이시아가 중국의 ASEAN 동맹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처럼 화교들이 경제적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조차도 쉽지 않다. 화교들이 이번 홍콩의 우산시위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결국, 시진핑 중국정부의 가장 큰 숙제는 마음으로 된 盟을 결성하는 것이다. 지역평화와 공동의 번영을 믿는 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盟(맹)의 주인이 되어야만 중국의 발전은 지속될 수 있다. 중국의 안정되고 건전한 발전이 인류전체를 하나의 盟(맹)으로 결집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실천을 가져야만 중화인민공화국도 중국으로 남을 수 있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11, 2014년 11월, 이정태,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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