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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29 16:45

[조선의 책, 조선의 서평(1)] 서설

글쓴이 : 아포리아

"『연암집』의 간행이 이미 그만큼 진행되었다고 하시니 완료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다만 제가 이전부터 간행을 반대한 것은, 이 분의 글은 정통에서 벗어난 속임수가 많아서 한갓 이단적인 문장일 뿐이므로, 간행해서 널리 전하게 함으로써 학자들을 오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중략) 그의 ｢허생전｣은 우언으로 쓴 것이니 실제 있는 일은 아닐 테지만, 그 첫머리에 “(기술자도 못 되고 장사치도 못 된다면) 어찌 도적질이라도 하지 않소?[何不盜賊]”란 네 글자가 나오는 것은 매우 큰 잘못입니다. 일생 동안 공부하는 선비에게 부인이 이토록 심한 악담을 했는데, 어찌 이런 구절을 깎아내 버리지 않으십니까?"

연암 박지원의 문집을 간행하려던 김택영에게 당대의 석학 조긍섭이 보낸 편지다. 오늘날 독서 대중에게 조선시대의 인물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한 인물이 연암 박지원이다. 그런데 조긍섭은 장문의 편지로 매우 구체적인 근거들을 들며 그 간행을 반대하고 있다. 더구나 김택영이 『연암집』의 중편을 추진하던 이때는 1917년이다. 1900년에 선집이 나온 것이 『연암집』의 첫 번째 간행이므로, 이것을 기준으로 해도 박지원의 문집은 그의 사후 100년이 되도록 이런 저런 반대들에 부딪쳐서 간행이 늦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혹자들은 우리나라를 ‘출판의 나라’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 모두 우리나라에 현전한다는 사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려대장경,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우수성과 방대함 등을 볼 때, 기록과 간행을 중시한 것은 확실히 우리나라가 내세울 만한 문화 전통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명대실록, 청대실록을 합쳐도 3천만 자인데 비슷한 기간 작은 나라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은 5천 3백만 자에 달한다. 현전하는 승정원일기 3,243책에 28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세세하게 기록해 놓은 날씨 정보만 해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개인 문집 저술의 규모이다. 문집이란 한 개인이 평생 지은 글들을 모은 전집을 말한다. 문학 장르인 시와 산문도 있지만 상소문, 편지글, 비문, 제문, 일기, 독후감, 기행문, 수상록, 전기문, 학술논문, 역사평론 다양한 종류의 글들이 망라되어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아직 집계되지 못했지만 19세기까지 최소한 3,100종에서 많게는 5,000종 넘는 문집이 저술되었다. 그 99%가 조선시대 인물의 문집이다. 인구 대비를 고려할 때 한자문화권의 종주국 중국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많은 것이고,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도 찾기 어려운 개인 저작의 역사가 아닌가 한다.

다만 연재를 진행하면서 언급하겠지만, 이처럼 많은 개인 문집들이 모두 의미 있는 저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저런 관행과 제약에 의해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간행되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 국가 주도의 관찬 역사기록의 발달에 비해서 독자적인 사관에 의한 역사서 기술의 성과가 양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는 점, 주자학적 경서 해석을 벗어나는 학술서나 전문서의 간행이 활발하지 못했다는 점 등도 미리 인정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로 다양한 책들이 조선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다. 이 연재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이 저술한 문집과 역사서, 학술서들 중 당대나 후대에 논란을 불러온 책들의 뒷이야기이다. 그 ‘책을 둘러싼 논란’이라는 것을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넓은 의미의 ‘서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책의 앞뒤에 달린 서문과 발문이 가장 일차적인 서평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글들은 그 책에 대한 칭찬으로 일관하기 마련이지만, 오늘 우리보다 오히려 더 엄밀한 글쓰기를 실천했던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그 칭찬에도 금도와 법식이 있었다. 어떤 책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담은 편지글이나 독후감들도 적지 않고, 더 흥미로운 것은 서문 청탁을 거절하는 편지글에 들어있는, 예의 바르지만 날 선 논평들이다. 책이 발간되었을 때는 물론이고 편집 및 필사만 되어도 그에 대한 독서와 서평이 의외로 실시간에 이루어졌고, 때로는 비판의 강도가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는 것들도 있다. 서평은 완성된 상태에서만이 아니라 편집 또는 간행의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앞서 인용한 조긍섭의 편지글에서처럼 특정한 글을 선택하거나 배제하는 일, 때로는 어떤 구절을 깎아 내거나 개작하는 일까지 여러 사람의 논의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저자 스스로 편집 과정에서 주변의 지인들에게 질정을 요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아가 어떤 책은 좋은 상황을 만나서 왕명으로 간행되고 어떤 책은 당대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몇 백 년 씩 간행되지 못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지의 사연 역시, 그 책을 둘러싼 편지글, 상소문, 독후감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몇몇 책들의 편집과 간행, 그에 대한 논평이라는 다소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서 조선시대 지성사의 속내에 한 걸음 더 접근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조선의 책, 조선의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1, 2013년 9월, 송혁기,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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