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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9-20 07:18

[이병주 칼럼] '욕'해야 사는 인간(人間) - Homo 辱cus

글쓴이 : 아포리아

'욕'해야 사는 인간(人間) - Homo 辱cus : '욕'의 정치사회학 (1)

1. ‘욕(辱)’의 필수성(必須性) : ‘사람은 욕을 안 하고는 살 수가 없다!’

1.1. 내가 다니던 로펌의 성경공부모임에 잘 믿고 착한 자매 변호사 두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취미는 ‘뒷 담화,’ 즉 둘이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 욕하는 것이 분명 ‘잘못’인 것 같기도 하고 ‘죄’인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다고 했다.

1.2. 거의 모든 사람은 일상 속에서 항상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하며 산다. 일터에서는 나를 괴롭히고 학대하는 상급자나, 나와 경쟁하고 나를 밀어내려는 동료, 그리고 일은 열심히 안 하면서 말도 안 듣는 하급자를 미워하고 욕하며 산다. 가정에서는 호시탐탐 자기 인생의 짐을 서로에게 뒤집어씌우려는 남편과 아내가 ‘집안의 원수(怨讐)’가 되어, 그리고 공부를 시킨다고 애들을 잡는 부모들과 잡히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자녀들이 ‘전생의 원수(怨讐)’가 되어, 힘겹게 서로 미워하고 욕하며 살아간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이는 하이에나처럼, 사람들은 ‘욕’ 사냥꾼이 되어 ‘욕’할 먹잇감을 찾아 이리저리 들과 산을 헤매이면서, 이 달은 ‘이 아무개’를 욕하며 살고 다음 달은 ‘저 아무개’를 미워하고 살며 그 다음 달에는 ‘그 아무개’를 욕하면서 산다.

1.3. 나는 내성적이고 겁이 많아 사람들을 대면하고는 거의 ‘욕’을 하지 못한다. 착하고 순한 편이라 뒤에서도 사람들을 잘 ‘욕’하지 못한다. 그러면 나는 욕을 안 하고도 잘 사는 사람인가? 천만의 말씀! 나는 내가 매일, 평생, 열심히 ‘욕’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을 잘 안다. 내가 욕하는 방법은? 내가 싫어하는 정파나 사람들이 욕먹을 짓을 할 때 관련 뉴스나 인터넷 글들을 ‘열심(熱心)히’ 검색해서 읽으면서 욕하는 것이다. ‘말’로 소리 내어 욕하지는 않으나 ‘머리로’ ‘묵상으로’ 욕한다. 내가 싫어하는 쪽에 욕먹을 일이 넘칠 때에는 수시로 뉴스검색을 하면서 ‘욕’하는 재미로 산다. 그러나 그 쪽 사람들이 영리하게 굴어서 욕할 만한 일이 없을 때에는 ‘욕’하는 재미가 없어지니 뉴스 보는 맛도 없고 사는 재미 자체가 없어진다.

1.4. 사람이 ‘욕’을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좋을까? 사람은 ‘욕’을 안 하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고 선(善)한 것일까? ‘욕’을 안 하면 우리가 인생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욕’을 안 하면 우리는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욕’은 선악과 윤리적 판단에 앞서서 인생의 필수재가 아닐까?

2. ‘욕(辱)’의 존엄성 – ‘욕하는 사람은 욕먹는 사람만큼 높아진다!’

2.1. 몇 년 전의 일이다. 미국소고기 수입파동으로 한참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지던 2008년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서대문에 있는 회사에서 주말 일을 하다가, 컴퓨터에서 광화문 사거리에 컨테이너로 이른바 ‘명박산성(山城)’이 축조되었다는 속보기사를 보았다. 흥미를 못 이겨 하던 일을 중단하고 곧바로 명박산성의 역사적 현장을 구경하러 갔다. 걸어서 광화문 사거리 명박산성과 촛불집회가 벌어질 시청광장 사이의 휘장과 플래카드들을 쭉 둘러보니 마치 우리 사회의 가난한 쪽 사람들 절반, 세상 살기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집단과 사람들은 거의 다 대통령을 ‘욕(辱)’하러 거리에 튀어나온 것 같았다.

2.2. 그 때로부터 불과 반년 전인 2007년 12월 ‘아주 가난하게 태어나서, 큰 부자가 된’ 이명박 후보는 보수진영 표를 다 모으고, 진보진영 표의 절반 정도를 빼앗아서 3/4 득표의 압승을 거두었다. 2002년 선거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진보진영 표의 절반 정도가 ‘뼈 빠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죽어라고 고생하며 성장한 이명박 후보’를 ‘같은 편’으로 느껴서 정을 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 기대하면서 표를 던졌던 것이다. 그런데 집권 후 몇 달 동안 MB정부는 ‘잃어버린 10년, 좌익척결’이라는 구호로 사회의 반대쪽 절반 사람들을 사정없이 ‘무시(無視)’하고 ‘욕(辱)’하면서 사회와 권력을 보수 일색으로 재편하려고 들었고, 이에 배신감과 모욕감을 느낀 반대쪽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서 대통령을 ‘욕(辱)’하게 된 것이다.

2.3. 나는 솔직히 광우병 시위와 관련하여,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해서 먹어도 되느냐 여부에 관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뚜렷한 의견이 없다. 다만 명박산성의 날 광우병 시위현장을 보면서 내가 중요하게 깨달은 정치적 원리가 두 가지 있었다. 그 하나는 ‘세상에는 절반씩의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 그 중 한쪽이 선거에 이겨서 권력을 잡았다고 신이 나서 다른 쪽 절반을 무시하고 모욕해서는 결코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도 보수 쪽 절반을 완전히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르고는 헤매다가 끝났고, 이명박 정권도 진보 쪽 절반을 완전히 무시하고 모욕하면서 사람들 마음에 한(恨)이 맺히게 했으며, 지금 정부도 그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욕(辱)에는 욕(辱)으로!’ 권력이 권력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욕’하면, 권력 없는 사람들은 권력에 대한 ‘욕’으로 이에 대응하고 반격할 수 있다. 이것을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온전한 정치는 할 수가 없다.

2.4. 다른 하나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타당성 여부를 막론하고 시민들이 대통령이나 권력을 마구 욕(辱)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는 것, 사람들이 욕을 못하고 침묵하며 조용하게 사는 사회보다는 사람들이 마구 욕하면서 시끄러운 사회가 더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2.5. 사람들은 직장에서 고용주는 물론 한 직급 위의 상사(上司)에게조차도 신상의 위해를 입을까 두려워 정면에서 단 한마디 반발도 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들 인생(人生)의 냉정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 윗사람이 눈앞에 없을 때 허공을 보고 삿대질을 하거나, 또는 술집에서 만취한 상태에서 ‘누구누구 XXX’라고 욕을 해대면, 그 순간 ‘욕의 마법(魔法)’을 통하여 욕하는 사람과 욕먹는 사람 사이의 계급 차이가 해소되고 양자 사이에 대등한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이 회복된다. 일반 국민과 대통령은 1:1로 따지면 그 힘과 지위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힘도 없고 권력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일반 시민들이 어떤 상황에서 소리를 모아 ‘대통령 XXX’라고 마구 욕을 하게 되면, 그 순간(瞬間) 욕하는 사람은 급격한 신분상승을 거쳐서 대통령과 대등(對等)한 존재가 되고, 어떤 측면에서는 욕먹는 놈인 대통령보다도 우월한 도덕적 인격적 존재로서의 존엄성과 dignity를 순식간에 회복하게 된다.

2.6. 결혼 직후 아내에게 배운 격언이다. 사람의 행동양식에는 (i) 잘난 놈이 잘난 척 하는 경우, (ii) 잘난 놈이 못난 척 하는 경우, (iii) 못난 놈이 잘난 척 하는 경우, (iv) 못난 놈이 못난 척 하는 경우의 네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견디기 어려운 최악은 첫 번째의 ‘잘난 놈이 잘난 척 하는 경우’라고 한다.

2.7. ‘잘난 놈이 못난 척 하는 경우’는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존경할만하니 아무 문제가 없다. ‘못난 놈이 못난 척 하는 경우’는 내가 이익을 볼 일도 손해를 볼 일도 없으니 아무 상관이 없다. ‘못난 놈이 잘난 척 하는 경우’는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사실이 아니니까 그가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비웃거나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잘난 놈이 잘난 척 하는 경우’에는 그 놈이 잘난 것 자체는 사실이니까 기분이 나빠도 반박을 할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고 비웃을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니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도 나쁘고 도저히 견디어내기가 힘들어진다.

2.8. 생각건대 ‘잘난 놈이 잘난 척 하는 것’은 다른 사람 개개인의 미약한 존엄성과 흔들리는 자기확신(self-confidence)을 훼손하는 최고의 악덕(vice)이다. 이 교만한 악덕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적당하고 시의적절한 ‘욕’ (예컨대 ‘잘난 ㄴ이 잘난 ㅈㄹ하네’ 등) 으로 그의 ‘잘났음’을 즉시 희화화(戱畵化)하고 무력화(無力化)함으로써 나와 그의 인격적 대등성을 신속하게 회복하는 길 밖에 없다.

3. ‘욕’을 못하게 하다가 무너진 체제 – 동유럽 공산주의 등

3.1.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봉건 짜르 체제를 무너뜨리면서 호기차게 출범한 동유럽의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의 1/3을 휩쓸었으나, 불과 70년 정도가 지난 1990년을 전후하여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마르크스의 사회과학적 유물론을 튼튼한 이론적 기초로,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구호를 중심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이상주의적 현실적 정치체제로 등장했던 맑스레닌주의 체제가 바벨탑처럼 한 순간에 무기력하게 무너진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3.2. 사람들에게 ‘욕’을 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러시아의 경우에는 70년 동안, 동유럽의 경우에는 45년 동안 사회 내부에 산더미같이 차곡차곡 누적되었던 ‘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체제를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3.3.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에서, 사회주의 체제는 ‘총(銃)의 무력’과 함께 ‘시(詩)의 낭만’을 가진 특징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공산주의의 장점과 한계를 ‘젊은이들의 군무(群舞)’로 비유한 적이 있다. 구체제가 무너지고 공산주의 체제가 시작할 때 남녀 젊은이들은 새로운 혁명시대에 대한 희망과 낭만으로 서로 손을 잡고 군무(群舞)를 시작한다. ‘오른 쪽으로 두발, 왼쪽으로 세발, 앞으로 두발, 뒤로 세발,’ 청춘 남녀들은 박자와 리듬에 맞추어 즐겁게 춤을 춘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그런데 문제는, 그 춤이 도무지 끝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그 다음날도, 그 다음 다음 날도, 그리고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한 해 두 해가 지나도... 젊은이들은 계속 서로 손을 잡고 같은 춤을 추어야 한다. ‘오른 쪽으로 두발, 왼쪽으로 세발, 앞으로 두발, 뒤로 세발/ 다시 오른쪽으로 두발, 왼쪽으로 세발, 앞으로 두발, 뒤로 세발...’ 이제는 그 춤의 박자와 리듬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 된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춤을 다르게 추어서도 안 된다. 틀린 춤을 추거나 춤에서 빠지면 체제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엄중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춤은 이제 재미가 없다. 그만 추자. 다른 춤으로 바꾸자. ㅅㅂ”하고 불평하고 ‘욕’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 이것이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가장 큰 문제이자 약점이었다.

3.4. 선한 의도가 당연히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정한 이해가 없는 선의는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인간에 대하여 희망했던 과도한 기대, 즉 ‘사회주의 제도하의 인간은 개인주의적 행동양식과 이기심을 버리고 공동선,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이타적인 존재, 집단주의적 존재로서 연합할 수 있고, 공산당은 이 모든 과정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지도할 수 있다’는 성선설(性善說)적인 환상은 실제로 작동하지 않았다. 당(黨)은 신(神)의 역할을 대신하고자 했으나, 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었고, 대중은 혁명의 시작 때에는 행복했으나 갈수록 ‘자기의 것이 하나도 없는 삶’에 흥미를 잃었다. 소련과 동유럽 체제는 제도적으로는 부르조아 계급을 철폐했으나 사람들의 이기적인 부르조아 지향은 남아있으니 항시 계급전쟁의 전시체제를 유지하게 되었고, 체제나 권력이나 일상생활에 대한 대중들의 일상적(日常的) ‘욕’은 위험하여 허용할 수가 없었다. ‘욕’을 하면 처벌을 받게 되니, 사람들은 자유롭게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체제는 사람들의 사랑을 잃었고, 적당한 기회가 오자 사람들은 그 체제를 미련 없이 버렸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체제 전체를 하나의 ‘거시적(巨視的) 욕(辱)’, 즉 부르조아 계급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지속적 적대심에 기초해 수립, 유지하려고 애썼으나, 역설적으로 내부적인 비판과 불평의 자유,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일상적(日常的) ‘미시적(微視的) 욕(辱)’의 가능성을 허용하지 못한 잘못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맑스레닌주의 실패 이후의 새로운 사회주의적 이념은, 반드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정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사람들의 ‘욕할 자유와 욕할 공간의 허용’을 전제로 하여야만 그 성공적 전개가 가능하지 않을까.

3.5. ‘욕’을 못하게 해서 망한 것은 동유럽 사회주의뿐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제5공화국 때까지 ‘욕’할 권리는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다. 정부를 ‘욕’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옥에 갇혔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이승만 정부도 사람들이 욕하는 것을 막다가 무너졌고, 유신정권도 사람들의 욕이 터져 나오자 무너졌으며, 제5공화국은 거리를 가득채운 1987년 6월 항쟁의 ‘욕’ 함성에 여리고성처럼 무너졌다. 유신시대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그 당시 ‘유신체제 따위...’라는 정도의 간단한 ‘욕’만 해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체포되어 수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는 어두운 현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4. ‘욕’의 제도화(制度化) - ‘욕할 권리(權利)’와 ‘욕을 들을 의무(義務)’

4.1. 민주주의와 선거–주기적(週期的) ‘욕 잔치’ : 우리나라에서는 5년에 한 번씩 커다란 국민적 ‘욕 잔치(festival)’가 벌어진다. 대통령 선거 때에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절반씩 패를 나누어 적어도 반년, 길면 1년 내내 상대방 진영에 대한 ‘욕’을 하며 지낸다.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인 자유선거가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실제로 보수에서 진보로, 진보에서 보수로 두 차례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죽어라고 욕을 잘 하면 이길 수도 있다’는 기회와 가능성이 양쪽 모두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번 ‘욕 싸움’에서 져도 5년 뒤에는 다시 ‘욕 싸움’에서 이길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에 전적인 절망으로 세상을 비관할 필요는 없어진다. 한 쪽만 계속 이기는 것은 이기는 쪽에도 위험하므로, 이긴 쪽이 영구히 이기려고 모사를 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욕 잘 하는 사회에서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영구집권의 가능성은 이제 거의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4.2. ‘욕’과 ‘선거’와 ‘전쟁’ :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보면 한국전쟁 당시 한 마을에 살던 계급, 계층 간의 대립과 미움은 결국 서로를 죽이고 죽는 전쟁으로 진행되었다. ‘욕’을 하면 죽거나 ‘욕’을 들으면 죽여야 한다는 상황은 너무 참혹하고 두려운 일이다. 우리가 ‘욕’하는 것이 곧 죽고 죽이는 문제로 되었던 시대를 벗어난 지는 참으로 30년도 되지 않는다. 서로 해치지 않고 ‘욕’하는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그 비효율성에 대한 그 어떤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장 귀중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4.3. ‘욕을 잘 들을 의무(義務)’ : 민주주의 제도에서 ‘욕을 할 자유와 권리의 보장’이 중요하다면, ‘상대방이 하는 욕을 잘 들을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상대방이 하는 욕을 잘 알아듣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화가 나서 욕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모욕적인 반응은 ‘그것은 당신이 오해한 것이다. 내가 오해를 풀어주겠다.’는 오만한 답변이다. 욕하는 사람에게는 욕하는 이유가 있고, 욕하는 이유 중에는 ‘표면적(表面的) 이유’보다 더 깊숙한 ‘이면적(裏面的) 이유’가 더 중요하다. 표면적 이유가 옳고 그름에 대한 이성적, 인식론적 이유라고 한다면, 이면적 이유는 배제와 무시에 관한 감성적, 존재론적 이유이기 때문이다. 인식론적 이유로도 ‘나는 옳고 너는 오해다’는 교만은 참을 수 없는 것이지만, 존재론적 이유에 대해서 ‘너는 오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존재론적 반발 자체를 무시하는 것’으로 화(禍)에 기름을 붓는 무모하고도 바보 같은 짓이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보수 측에도 존재하고 진보 측에도 존재한다. 상대방이 하는 욕을 잘 듣는 능력과 자세가 없는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이루어낼 수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자기가 왜 욕을 먹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적 바보가 된다.

4.4. ‘욕하는 절차’로서의 ‘재판’ : 법과 재판제도가 없다면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특히 이웃의 상린관계(相隣關係) 속에서 서로 부딪혀 다투고 욕을 하다가 주먹다짐을 하고 칼부림을 하게 된다. 정밀하게 마련된 민사법과 형사법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욕하고 어떤 일을 욕할 수 없는지’ ‘욕의 ‘기준’에 대한 상세한 규범을 제공한다. 또한 아주 지루하게 만들어져있는 소송법과 재판제도는 사람들이 구체적인 분쟁 속에서 어떻게 자기주장을 하고 상대방에 대한 욕을 해나갈 수 있는지 ‘욕하는 절차’를 세련되게 제공한다. 민사재판 제도는 법관이 삼세번에 걸친 심리를 통하여 가장 그럴듯한 상대적 진실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는 변론주의(辯論主義)를 통하여 분쟁의 당사자들에게 ‘최대한 세련되고 집요하고 효율적으로, 자기주장을 하고 상대방 주장에 대한 욕을 전개해 나갈 절차적 기회’를 제공하고 실컷 욕하고 난 후에는 억울하더라도 제3자의 재판결과에 승복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재판에서 법관의 역할은 진실을 찾는 신의 대행자 역할 뿐 아니라 참을성 있게 당사자들의 ‘욕’을 들어주는 ‘욕 싸움의 진행자’라는 역할이 더욱 중요하므로, 재판과정에서 법관이 귀찮다고 당사자들의 입을 막는 우(愚)를 범하면 안 된다.

5. ‘욕’의 범주와 한계 - ‘살리는 욕’과 ‘죽이는 욕’

5.1. 예수는 산상수훈에서 “형제를 대하여 라가(바보)라 (욕)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22)”고 ‘타인을 바보라고 함부로 욕하지 말라’는 ‘욕’ 지침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예수님 장본인은 당시의 종교지도자와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태복음 23:3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27).” 라고 하여 거의 maximum으로 ‘욕’을 퍼 부우셨고, 급기야 바리새인과 유대 지도자들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 처형을 받기에 이르게 된다. 예수는 우리에게는 욕하지 말라고 하고, 본인은 욕을 하다 돌아가신 것인가? 이 두 가지 말씀과 행동은 상호 모순되는 것인가?

5.2. ‘살리는 욕’과 ‘죽이는 욕’ : 우리는 앞에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꼭 허용되어야 할 ‘욕’의 조건과 상황들을 살펴보았다. 그 공통점들을 추출해 보면 ‘힘없는 약자의 강자에 대한 욕’, ‘교만한 자, 즉 잘난 척 하는 잘난 놈에 대한 욕’, ‘정치권력에 대한 국민의 욕’, ‘집단과 집단 간의 대등한 욕’, ‘선거와 재판, 집회와 시위처럼 제도화된 통로를 이용하여 표출되는 욕’, ‘전쟁이나 살인,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욕’, ‘상대방의 욕할 자유를 인정하는 욕’,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욕’ 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이 그대로 ‘긍정적인 욕’, ‘사람이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욕’, 즉 ‘살리는 욕’의 요건이 된다. 예수님의 바리새인들에 대한 ‘욕’은 ‘종교권력에 대한 욕’, ‘교만한 자에 대한 욕’으로서 ‘살리는 욕’의 요건을 충족한다.

5.3. ‘죽이는 욕’의 범주와 내용은 위에서 본 ‘살리는 욕’의 음화(陰畵, negative print)를 생각하면 된다. ‘힘 있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욕’, ‘교만한 자의 겸손한 자에 대한 욕-형제를 라가라 미련한 자라고 하는 욕’, ‘국민에 대한 정치권력의 욕’, ‘전쟁이나 살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욕’, ‘상대방의 욕할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욕’,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배제하는 욕’ 등이 ‘부정적인 욕’ ‘사람이 살기 위해 없어져야 하는 욕’, 즉 ‘죽이는 욕’의 범주와 요건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발생한다. 즉 가난한 자, 약한 자의 욕만 ‘살리는 욕’이고 부한 자, 강한 자의 욕은 ‘죽이는 욕’이어서 부한 자, 강한 자에게는 ‘욕할 자유와 권리’가 부정된다는 것이냐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모든 국민의 것인 것처럼 ‘욕할 자유’ 또한 약자들에게만 독점될 수는 없는 일이다. 강자도, 부자도, 사장도, 대통령도, 당연히 ‘욕’을 하면서 숨을 쉬고 살아야 한다. 약자가 하는 욕도 ‘죽이는 욕’ ‘사악한 욕’이 될 수 있고, 강자가 하는 욕도 ‘살리는 욕’ ‘정당한 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힘없는 약자의 ‘욕’은 힘이 약해서 욕먹는 강자를 해칠 가능성이 아주 적은데 반하여, 힘 있는 강자의 욕‘은 힘이 수반되어서 욕먹는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원이 사장을 욕한다고 해서 사장이 직장을 잃지는 않지만 사장이 직원을 욕하면 직원이 잘릴 가능성이 아주 큰 것처럼. (나쁜 욕, 사람을 해치는 욕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찬찬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5.4. 어쨌든 우리는 욕을 안 하고 살기는 어렵다. 과거 수천 년 간 봉건왕조시대와 일제 식민지시대와 군부독재시대를 거칠 때까지 우리는 욕할 자유를 갖지 못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욕을 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인생에 엄청난 피해를 겪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욕도 하지 못하는 침묵의 울분을 품고 평생을 살았다. 이제 겨우 30년 정도, 수많은 사람의 용감한 욕들과 비굴한 욕들이 쌓여서, 우리는 가까스로 ‘욕할 자유와 권리’가 있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사람의 세상이 분쟁도 없고 갈등도 없이 완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지 않는 이상, 죄 많은 우리들이 욕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욕할 권리와 자유를 지키면서, 계속 욕을 잘 하면서 살아가자. 욕으로 정신건강을 지키면서, 욕으로 나의 dignity를 유지하면서, 욕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욕으로 잘난 놈을 비웃으면서, 개인적 차원에서, 그리고 집단적 차원에서. ‘욕’ 게임의 룰을 지키면서, 상대방의 욕할 권리를 존중하면서, 상대방이 하는 욕도 잘 들어가면서. 그리고 절대 다른 사람을 해치지는 않으면서...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이병주 칼럼]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2, 2013년 10월, 이병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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