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아니 믿고 싶지 않은 무겁고 비통한 소식으로 전국민이 울고, 울고, 또 울고 있다. 못다 핀 목숨이 아까워 울고, 답답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분노해 울고, 혹시나 돌아오지는 않을까 기다리다 지쳐 그렇게 모두가 울고 있다. 이 거대한 슬픔 앞에 누가 감히 위로의 말을 던질 수 있으랴. 나 또한 그저 슬픔에 젖어 마음을 놓고 있다가도, 마음 한 켠에 자꾸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아프리카의 A국에서 태어난 조셉의 어린 시절은 평범하고 평온했다. 공무원인 아버지 덕분에 가정 형편도 넉넉했고, 가족들도 모두 화목하여 조셉은 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하지만 어느 날 A국에 내전이 일어나면서 온 나라는 혼란을 겪게 되었고, 조셉의 가족 또한 난민 캠프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어 식량 배급마저 끊기자, 조셉의 아버지는 식량을 구하러 길을 나선다. 하지만 아버지는 두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조셉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난민 캠프를 떠나 떠돌게 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다른 도시에서 정부군에게 반군으로 오인을 받아 살해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노한 조셉은 정부에 항의를 하러 갔으나 오히려 관련자에게 총기로 구타를 당하고 쫓겨났다. 이 일을 계기로 반군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조셉의 친구들은 조셉에게 반군에 가담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고 권유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조셉은 반군들이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에 반군에 가담할 수 없다고 거절을 하였다.
그러는 사이, 반군의 지도자는 A국의 총수가 되었고, 조셉의 친구들은 저마다 정부 요직을 차지하게 되며 조셉에게 더욱 거세게 그들에게 가담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조셉이 번번이 거절을 하자 그의 친구들은 그를 미워하기 시작하였고, 일터에까지 찾아와 그에게 시비를 걸고는 하였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너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있는데, 너는 이렇게 편안하게 돈이나 벌면서 살고 있구나’ 라고 빈정거리며, 함께하지 않으면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하기까지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조셉의 집이 폭격을 받는 일이 발생하였다. 당시 동네의 다른 모든 집들은 멀쩡했지만 조셉의 집 만 폭격을 받아 파괴된 것을 보고, 조셉은 그를 미워하는 그의 친구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셉의 마을을 반군이 점령하게 된다. 반군은 총기를 난사하며 사람들을 협박하여 축구장으로 소집하고, 빈 집들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강간하였다. 그러는 사이 마을의 남자들은 약탈한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하게 되었고, 조셉도 반군이 시키는 대로 약탈한 물건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귀에 딸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고 조셉은 딸을 지키고 있던 소년병에게 딸이 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놓아달라고 애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소년병은 조셉의 요구를 들어주기는커녕 소란을 일으킨 조셉을 다른 군인들에게 넘겨주었고, 조셉은 건물 뒤로 끌려가 군인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코코넛 나무에 손을 묶인 채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사실 이곳에서 나무에 손이 묶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기에, 조셉은 닥쳐 올 죽음에 대한 공포와 초조함을 애써 억누르려 하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 보니 열두세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소변을 보기 위해 총을 든 채 조셉이 있는 건물 뒤로 온 것이 아닌가. 조셉은 소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고,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이 풀어줬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조셉을 풀어주었다. 조셉은 밤새도록 달리고 또 달려 미국대사관이 있는 도시에 도착하였다. 미국대사관은 그나마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과 두고 온 가족들 또한 미국대사관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미국대사관 근방에서 숨어 지내며 기다렸지만, 며칠 후, 미국대사관은 폭격을 당한다. 조셉은 인근의 가톨릭 병원으로 피신하여 가족들을 기다렸지만, 기약 없이 기다리는 동안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A국을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된다.
당시 각국에서는 A국의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자국민의 안전한 송환을 위해 A국으로 비행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문제는 A국 국민은 국경 밖으로 나가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A국의 반군 세력은 자국민이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항에 삼엄한 경비를 배치하였고, A국의 여권을 소지한 채 공항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조셉은 공항 근처에서 지내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음료수를 파는 친절한 노인을 만나게 되어 조셉은 노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노인은 조셉의 여권을 음료수통 밑의 쿨러에 숨겨 놓았다가 적절한 순간에 조셉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조셉은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하는 고위관리의 아내로 보이는 부인을 발견하게 되는데, 마침 임신 중인 그녀에게 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처음에는 조셉을 못미더워하던 부인이었지만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 음료수를 파는 노인에게서 조셉의 여권을 받아다가 조셉 대신 출국 도장을 받아주게 된다. 더욱이 이 부인은 조셉에게 ‘어서 짐을 가지고 이리와!’라고 소리를 치면서 상황을 생생하게 연출해내었고, 덕분에 짐꾼으로 가장한 조셉은 비행기 안까지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짐꾼으로 비행기 안으로 들어간 조셉이 나오지 않자 상황을 눈치 챈 요원들이 조셉의 여권을 빼앗고 밖으로 끌어내려 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조셉을 끌어내려는 요원들에게 호통을 쳐 조셉의 여권을 다시 돌려받고, 조셉을 일등석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조셉은 그렇게 무사히 A국을 떠날 수 있었다.
B국에 도착한 조셉은 당시 정세가 불안정한 A국을 떠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난민 캠프로 향하였다. 과연 조셉은 그곳에 도착해서 몇몇 지인들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정부군이나 반군들이 틈틈이 캠프에 들러 A국을 탈출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게다가 유엔난민기구 직원이 출장을 떠나 당장 난민신청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조셉은 난민캠프를 떠나 B국의 수도로 향했다. 조셉은 A국을 떠나기 전 일하면서 모은 돈 900달러와 가보로 내려오던 다이아몬드를 숨겨서 가지고 다니고 있었는데, B국에서 생활을 하기 위해 900달러를 환전하려고 했으나 환전소에서는 지폐가 너무 손상되었다며 환전을 거부당했다. 조셉은 도시를 떠돌며 빨래와 허드렛일을 해주며 음식이나 돈을 얻어 근근이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셉은 어떤 사람의 세차를 도와주게 되었는데, 몸이 너무 아팠던 조셉은 돈 대신 약을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차 주인은 친절하게도 조셉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 치료를 받게 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휴식까지 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찰스라는 이름의 이 친절한 남자는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조셉이 묵주를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더 관심을 기울여 돌보아 주게 된 것이었다.
찰스 가족의 정성스러운 보살핌 덕분에 건강이 회복된 조셉은 다시 난민캠프로 가보았으나 난민캠프의 상황이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바로 찰스의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난민캠프에서는 16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A국의 반군의 지도자급 인사들의 소행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 조셉은 B국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B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가지고 있던 900달러와 다이아몬드를 보여주며 찰스와 그의 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들은 조셉의 여권으로는 반군 혐의를 받기 때문에 유럽으로 가기 힘들 것이니,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인권보호국인 한국으로 갈 것을 추천해 주었고, 찰스의 부인이 조셉의 다이아몬드를 바꾸어 마련해 준 여비를 가지고 조셉은 한국으로 떠나게 된다.
조셉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난민신청을 하였고, 그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게 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난민법 상으로는 난민신청 후 6개월이 지난 후에도 난민심사가 종결되지 않은 경우에는 취업을 허용해주지만, 당시에는 난민신청자는 합법적으로 취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셉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늘 다른 사람들의 호의에 기대어 지낼 수 밖에 없는 위태롭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게다가 말도, 음식도, 이웃들의 생김새도, 그 어떤 것도 친숙하지 않은 곳에서 내일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은 조셉을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조셉을 괴롭게 만든 것은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었다. 어려운 시간을 함께하며 위로할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그를 깊은 외로움으로 몰아갔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불안함이 조셉을 지독하게도 괴롭혔다.
하지만 조셉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그 때마다 조셉을 지탱해 준 할머니의 조언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희망은 절대로 저버리는 것이 아니란다. 어려울 때에도 모든 상황이 가장 잘 풀릴 가능성을 굳게 붙잡으렴.” 그래서 조셉은 이 세상 어디엔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살아 숨쉬고 있기를 간절히 바랐고, 그 희망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조셉은 B국의 난민캠프에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가족의 행방을 물었고, 어느 날 드디어 아내와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아내는 B국의 다른 도시에 살면서 조셉의 연락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가끔 난민캠프에 들르곤 했는데 그곳에서 조셉이 연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조셉과 그의 아내는 한국에서 재회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셉의 아내는 변장을 하고 A국으로 돌아가 여권을 받는 데 성공하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입국하여 난민인정을 받게 되었다.
조셉의 삶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흑인으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도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그립다. 하지만 조셉은 지난 50년간의 삶은 결국 희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니, 할머니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상황을 믿어야 합니다. 상황이 너무 힘들고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았을 때마다 언제나 저에게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습니다. 저를 풀어준 소녀 병사로부터 거리에서 음료를 팔던 노인, 고위관료의 아내였던 만삭의 부인, 찰스와 그의 부인, 그리고 한국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까지, 이들은 인생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저에게 보여준 산 증인들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궁지에 몰려도 빠져 나갈 길이 있으며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습니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고, 그렇게 믿고 오늘 희망을 붙잡는다. 나도 먼 훗날, 오늘을 돌아보며 조셉과 조셉의 할머니의 말이 옳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눈물을 닦고, 최선의 상황을 믿으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아야겠다.
* 이 글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정신영의 사람 이야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5, 201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