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당황하셨어요?”는 <개그 콘서트>에 “황해”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조선족 청년이 어설프게 보이스피싱을 하는 과정에서 자주 말하는 표현이다. 별로 당황할 것도 없는 황당한 상황에서 “당황하셨어요?”라는 말 자체가 듣는 이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드는 상황설정인 것이다. 이제 이 말은 다소 코미디 같은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는 순간에 즐겨 활용되는 말이 되었다.
2.
그런데 그런 황당한 상황들이 요즈음 정치를 통해 시리즈로 연출되고 있어서 우리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통해 대선에 개입하고 있다는 고발이 작년 12월에 언론을 시끄럽게 장식하더니 마치 그것이 찻잔속의 태풍이었던 것처럼 대선은 치러졌다. 사건 자체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당황스런 일이었다. 이후 새로 대통령이 집무를 시작했고, 국회에서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조사하기로 합의하여 진행되는가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사팀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던 검찰총장이 의심스런 방식으로 등장한 ‘혼외자’ 사건을 통해 총장직을 사임하여 우리를 당황케 하더니,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사의 핵심에 있던 윤석열 수사팀장이 수사 결과를 공소장에 반영하려다 논란을 일으켜 수사팀을 그만두게 된 일이 우리를 당황케 했다. 그런데 그 일로 그가 징계까지 받는다는 소식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국회에서 감사 과정을 통해 기무사의 대선 개입이 드러나게 되고, 그것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점차 확실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관계 당국의 진지한 자체 조사와 반성, 그리고 재발 방지의 약속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것이 과연 있었냐 싶게 조용히 사라지는 듯하여 당황했다. 또 주요 언론들이 이와 관련된 사안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을 뿐 아니라, 다루더라도 공정보도라는 추상적이고 양적인 균형이라는 미명아래, 사건의 진실은 들추어내지 않고 이해를 달리하는 두 집단의 달변가들 사이의 논쟁으로 보도를 대신하여 사안의 본질을 흐려가는 상황에 또 다시 당황하였다. 그나마 사태의 진실을 제한적으로나마 추적하고 짚어내려 했던 손석희 앵커의 뉴스 진행을 불공정 보도라는 명목으로 징계를 한다하여, 정말 당황하게 되었다.
3.
법과 정책을 통해 일을 하는 제도 혹은 기구 혹은 공적 조직들은 한결같이 ‘고객’인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데, 종교계에서는 이를 지적하면서 들고 나왔다. 가톨릭,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에서 성명서를 통해 이런 과정 일체가 잘못되었고 사태를 근본적으로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종교계의 선언의 내용들은 선명하고 명확했다는 점에서 그것이 공적 기구들의 모습과 너무 대비가 되고, 또 그저 당황하면서 관전만 하던 나의 허를 찌르는 듯하여 또 다시 당황스러웠다. 종교계가 반대하는 편이 서있는 이들이 종교계를 향해 “지나친 정치참여”니 “반국가적”이니 하면서 격앙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전혀 당황스럽지 않았고, 그저 진부할 뿐이었다.
제도는 법률에 근거하고, 법률은 헌법에 기초한다. 헌법은 국민의 합의를 담은 기본적인 지침이며, 정부의 정당성은 이에 기초한다. 그런데 조직이 법률의 의도와 집행을 호도하거나, 국민의 시선이 잘 닿지 않은 곳에서 법률을 조작하여 제도로 하여금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법과 제도를 압도하는 또 다른 의지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곳에서는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이나 개인의 의지가 눈에 보이는 법과 제도를 능가하였다.
4.
논쟁에 휘둘리다보면 진정으로 중요한 화두를 놓치지 십상이다. 종교계에서 연이어 터져 나온 시국선언이 우리에게 주는 당황감은 정치권이 나름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언론의 입을 교묘하게 재갈물리는 의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묻는 물음과 그 의지를 중단시키는 행위를 통해서만 해소될 것이다. 우리를 어처구니없는 웃음으로 몰아넣는 정치에서의 “고객님~~ 당황하셨어요?”는 고객을 통해서만 해소될 사안인 것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김선욱 세상보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4, 2013년 12월,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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