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2-26 08:50
김선욱의 세상보기(4): 도행역시(倒行逆施)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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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행역시(倒行逆施)

2013년을 회고하면서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사자성어가 “도행역시(倒行逆施)”였다. 사자성어의 선정은 여러 과정을 거쳐 정해진 몇 개의 선택지를 놓고 교수들에게 설문을 돌려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그 이유를 묻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나도 설문의 대상이 되어 하나의 선택을 했는데, 그것이 다수의 선택과 일치했다. 그런데 신문사에서 내가 쓴 이유를 보도기사 가운데 인용하는 바람에 졸지에 내 이름이 그 기사와 함께 두루 거론되어 버렸다. 그 덕이라 해야 할지 탓이라 해야 할지, 몇 언론사에서 전화 대담 요청을 받았고 심지어 내가 선정위원인양 거론되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이미 알려진 대로, 도행역시란 말은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인 일을 행한다.”는 의미이다. 출전은 <사기>의 <오자서편>이다. 오자서가 자신의 부모형제를 살육한 초평왕에 대한 원한을 풀기위해 초나라에서 오나라로 넘어가 오왕을 도왔고, 오나라가 부강해진 뒤 초나라를 침공해 거기서 이미 죽은 초평왕의 무덤에서 그의 시신을 꺼내 채찍 300대를 친 일과 관련이 된다. 함께 초평왕을 모셨던 신포서가 오자서에게 편지를 보내, 그 일이 도리어 어긋나며 지나치다고 말하자, 오자서는 이미 자신의 나이도 많고 달리 복수할 방법도 없어 “도리에 어긋나는 줄은 알아도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래도 오자서는 자신이 행한 일이 도리에 어긋난 것임을 알고 또 인정하기는 했는데,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지금의 세력자들은 과연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들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몇 십년간 우리들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쌓아 오고 제도화했던 것들이 가치가 있는 것임을 과연 인정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제도로 존재하고 있는 각종 기관들과 정당들은 의당 각자 그들 나름의 권위를 가지면서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 어떤 기관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어떤 기관들은 의견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각자 자기 기능을 한다. 이런 제도를 통해 정부가 다루는 공적인 사안들이 균형 있고 적당한 방식으로 다루어지게 된다. 제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갈등의 결과로 형성되어 온 것이며, 그 제도가 기능을 못하고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의해 제동이 걸리거나 컨트롤된다면, 그것은 결코 민주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작동 형식이 될 수가 없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종국에는 청와대를 향하고 있고, 또 청와대의 불통이 모든 문제의 근원처럼 보이는 현상은 곧 민주주적 제도의 고사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순리에 거스르고, 시대가 거꾸로 간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철도 파업과 관련하여, 사안의 핵심이 되는 철도 민영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안과 관련된 여러 기관들이 나름의 권위를 갖고 책임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결국 대통령에게 불통의 화살이 돌아가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민영화가 아니라고 세 번이나 말했다고 답답해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는 신뢰부재의 탄식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말, 심지어 대통령의 말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최근까지도 여러 선거공약의 번복을 통해 수차례 명백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고, 합의를 하게 되면, 그것을 약속으로 생각하고 서로 지키려 한다. 그리고 정치적 사안의 경우 그 약속은 법으로 명문화하는데, 법은 약속의 공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법으로 약속을 명문화함으로써, 시간이 변하여 상황이 달라질 때 약속을 초개처럼 버리지 못하게 한다. 제도는 그 법의 표현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사회는 그 모든 단계마다에서 그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나.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김선욱 세상보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1, 2014년 1월,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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