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갖는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쏠림을 막는 것이다. 잘못된 사실 또는 억측에 근거한 소문이 무분별하게 파급되거나, 다수의 일방적인 집단적 의사가 토론과 비판의 통로를 가로막거나, 이념 또는 정치적 이해로 갈라진 집단들의 진영논리가 판을 칠 때,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면 민주주의 사회는 쏠림과 진영논리로부터 그만큼 자유롭다. 물론 정치권력의 일방적 요구로부터 시민들의 자유를 지키는 일 또한 언론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면 그만큼 가능하다.
2.
그럼 우리 나라는 어떠한가? 주요 일간지는 사회관계망에서 벌어지는 진영논리를 그대로 옮겨놓았고, 댓글에 취한 몇몇 기자들과 논설위원들은 마치 트윗을 하듯 자기 생각을 신문지상에서 주절된다. 심지어 주요 일간지조차 사회관계망의 인플루언서들의 글들을 자기 프레임에 맞게 윤색하거나 베낀다. 탐사와 단독은 이미 진영논리의 프레임에 맞춘 기사로 인식되고, 팩트체크는 선택적 편견(selective bias)을 교묘하게 감춘 또 다른 진영논리라는 인식에 잠식당했다. 이른바 미국의 웬들 홈스 연방대법원 대법관이 말했던 '우리가 혐오하는 그리고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표현들'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립적 판단이나 신중한 표현들은 어정쩡하다는 대중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대신 '사이다'가 판치고, 니편 내편은 이미 기사 제목에서 딱지를 달고 버젓이 특정 '프레임' 특정 '꼬리표'를 원하는 자기편의 누리꾼들에게만 호소한다. 고발은 있지만 사실은 없고, 비판은 있지만 책임이 없다. 지식과 사려는 폄훼를 당하고, 결국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이런 상황에 신물을 느낀 사람들은 설 땅도 읽을 거리도 없다. 정치는 과도하게 열정으로 가득차 있지만, 정치적 삶은 지나치게 척박하다. 그 결과는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냉혹할 수밖에 없다.
3.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연이어 쏟아내는 트럼프에 대한 비판을 들여다보면, 한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가 왜 필요한지를 잘 알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트럼프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이 겨누어진 것 같다. 그렇지만, 핵심은 '쏠림'과 '진영논리'로부터 민주주의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최소한 '황색언론'이라고 비난을 받는 것 자체를 수치로 여기는 미국의 언론들은 '쏠림'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쏠림으로부터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부터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문제는 있다.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미국 언론들이 풀어야할 숙제들 중 하나다. 그러나 언론 자체가 한 사회의 거대한 정치권력으로 자리잡지 않았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쏠림'과 '진영논리'로부터 스스로를 조심해 온 언론 종사자들의 노력, 특정 언론의 사회적 영향력을 사주가 독점할 수 없는 제도, 그리고 사회적 역할을 방기하고 쏠림을 유도하거나 진영논리를 앞세운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따가운 비판들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한다. 그러기에 언론 사주도 주요 신문의 논조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지 못했다.
4.
사소한 다툼을 경험한 경우에도 정신의학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치료를 요구하는 시대다. 그러나 무분별한 정치적 열정이 우리의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상황 속에서, 누구도 이러한 일상이 갖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 오늘도 거침없는 막말과 독설들이 주요 일간지와 인터넷 포탈, 그리고 사회관계망들을 휘젓는 일상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문제에 눈뜨지 못하고 오히려 대중의 입맛을 따라다니는 정치인들이 일차적인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쏠림을 막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언론도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