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한 중국이 등장했다. 인구의 수와 영토의 크기가 국가의 힘이라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내부적으로는 국내 정치권력의 크기이고, 외부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국가권력의 실제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세계 인구의 1/5을 가졌고, 가장 방대한 인적, 물적 동원 능력을 가진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취임사는 그런 중국의 힘을 공식화하는 자리였다. 과감하게도 그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겸손에서 벗어나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할 것이라 천명했다. 차분한 목소리의 연설에서 그는 ‘중국의 힘’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중국의 꿈’은 과거에 대한 향수나 몽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책임이고 의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 요지는 진흙탕 황허(黃河)에서 기생하던 지렁이가 용으로 승천하여 오대양 육대주를 활공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오천년 중국 역사가 갈망해 온 ‘용꿈 이야기’였다. 시진핑은 시종 여유롭고 온화하게 미소로 ‘꿈’을 말했지만 그 후덕해 보이는 두꺼운 얼굴로도 강한 중화의 자부심과 우월감을 덮지 못했다. 그의 눈망울에는 ‘세상을 호령하는 중국용’의 잔영이 일렁거렸다.
2.
중국인에게 ‘용(龍)’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내부 통합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이다. 용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가장 설득력 있는 하나가 다음의 이야기이다. 용이 중국의 상징이 된 것은 황제(黃帝)가 제후들에 의해 천자로 받들어진 때이다. 치우(蚩尤)와 염제(炎帝)를 제압하고 대소 부락을 통일할 때 각 부락은 각기 다른 상징물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당시의 사회상이었다. 인간 존재 보다 더 상위 개념이었던 각 부족의 상징물들 가운데 하나를 취사선택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황제는 모든 부락의 상징물들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형상물을 만들었다. 몸은 뱀, 머리와 꼬리는 사자로 이루어졌고, 사슴뿔과 매 발톱을 달고 물고기 비늘을 입혔다. 그렇게 하여 모든 부족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물인 ‘용’이 탄생한 것이다. 용은 하늘을 날고, 물속을 헤엄치며, 땅에서 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지전능의 “상징물”로 형상화되었다. 용을 만든 황제는 음력2월초 이틀간의 황도길일(黃道吉日)에 용의 깃발을 게양하도록 하였고, 각 부족의 상징물을 대신하여 용을 공동의 상징물로 삼게 했다.
그 후 용의 형상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변모되었다. 낙타머리, 뱀목, 사슴뿔, 거북이 눈, 고기비늘, 호랑이 발, 매의 발톱, 소의 귀 등 다양한 복합 형상체로 발전하였다. 지금도 용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시진핑이 ‘중국의 꿈’을 말한 것도 그런 의미이다. 새로운 중국용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이다. 홍콩, 마카오, 대만 뿐만 아니라 그들이 꿈꾸어 온 중화 세계가 통합된 ‘중국용’을 만들고 싶은 게다.
3.
용에 담긴 다른 하나의 의미는 진흙탕에서 벗어나고 싶은 농경국가 중국의 소망이다. 오천년 중국역사는 물(水)과 흙(土)이 뒤섞인 진흙탕(泥)에서 버둥거리며 살아 온 시간이었다. 황하를 용으로 형상화하고 중국의 상징으로 삼았지만 황하는 극복하기 힘든 벽이었고 한계였다. 명분만 있고 실이 없는 자연과의 싸움에서 모든 진기를 소진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탈진한 중국은 근대 제국주의 열강들의 합공에 난도질당하고 말았다. 자중지란이 일어나고, 냉전의 창살이 옭죄어 사면초가의 처지로 전락했다. 마오쩌둥이 신중국을 건설했다고 하지만 오천년 역사의 거푸집을 벗는 과정에서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은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시진핑의 판단은 자명하다. 수렁에 빠졌던 중국이 덩샤오핑 대에 이르러 국면전환의 전기를 마련하였고, 장쩌민, 후진타오의 시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도약의 동력을 확보하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시진핑은 중국 승천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준비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의 꿈을 구체적으로 설계한 자는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흑묘백묘론으로 유명한 고양이업자 덩은 중국 발전을 위한 3단계 발전 전략(三步走戰略)을 구상했다. 장래 중국은 온포(溫飽), 소강(小康)의 단계를 거쳐 굴기(崛起)할 것이라는 포부를 구체화한 것이다. 덩의 집권 동안 중국은 최소한 먹고 입는 문제는 해결했다. 덩의 바통을 이어받은 장쩌민은 십년의 살림을 마무리하면서 소강 단계에 도달했다고 자평했고, 뒤를 이은 후진타오(胡錦濤)는 초반부터 화평굴기(和平崛起)를 내세우며 중국굴기의 기치를 올렸다. 물론 초반 공세는 역량부족과 반격으로 인해 무산되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재점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을 대하는 주변의 태도가 달라졌다. G20에서 G2로, 중국의 이야기들이 인구에 회자되었고, 중국 역시 2012년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해양굴기’를 화두로 내놓을 정도로 당당해졌다.
4.
2013년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악착같은 중국, 중국인이다.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중국과 중국인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중국의 세계화, 세계의 중국화”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15억 중국인이 중국용으로 일체화되어 승천한다’는 시진핑의 중국꿈, 용꿈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다시보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1, 2013년 9월, 이정태, 경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