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천을 휘감은 여인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엘렌은 신실한 이슬람교도로 무슬림들의 전형적인 복장인 차도르를 두르고 있었다. 검은 천 사이로 간신히 내비치는 눈빛이였지만 간절함과 절박함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남편을 도와주세요!”
엘렌은 우즈베키스탄 전통악기인 두타르 연주자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그 실력을 인정 받아 장학금을 받고 한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은 우즈베키스탄으로 잠시 귀국을 한다. 이 때 엘렌의 남편은 이름과 성을 바꾸게 되는데, 이름은 남편의 아버지의 유언으로 이슬람 성자의 이름을 따라 바꾼 것이었고, 성은 결혼을 계기로 아내의 성을 따라 바꾼 것이었다. 많은 나라에서 그렇듯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결혼을 하는 경우 한 쪽 배우자의 성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엘렌이 한국에서 장학금을 지원 받으며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류를 변경하는 문제가 번거로울 수 있어 아내의 성을 따라 성을 바꾼 것이었다.
잠시 돌아간 고국에서 엘렌 부부는 불편함을 많이 느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무슬림에 대한 박해가 최고조에 달하여 국가에서 운영하는 사원이 아닌 사원에 가거나, 사적으로 기도를 하고 코란을 읽는 사람들을 극단적인 무슬림으로 여겨 체포해서 불법으로 구금하고 고문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신실한 무슬림이었던 엘렌은 차도르를 두르고 다닌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았고, 엘렌의 남편은 외국에서 살다왔다는 이유로 불온세력으로 의심을 받아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엘렌과 엘렌의 남편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였고, 두 사람은 곧 엘렌의 공부를 위해 한국으로 다시 입국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엘렌 부부는 두 딸을 낳고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엘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야금 공부와 연습으로 바쁘게 보냈고, 그런 엘렌을 대신해 남편은 두 딸을 보살피고, 엘렌의 뒷바라지까지 도맡아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렌은 남편이 출입국관리공무원에게 단속되어 강제출국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엘렌의 남편이 위명여권, 즉 본인의 이름이 아닌 이름으로 여권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강제출국 대상이라고 하며 엘렌의 남편을 체포하고 외국인보호소에 구금을 하였다. 엘렌의 남편은 수사 과정에서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와 자신이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갈 경우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설명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구금과 추방 위험에 놀란 엘렌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닌다. 그러던 중 유엔난민기구로부터 난민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편이 있는 외국인보호소에서 난민신청을 하려고 하였으나 직원에게 거절을 당하게 된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난민신청을 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 오히려 엘렌의 남편을 강제로 우즈배키스탄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였고, 엘렌의 남편은 이에 저항하다가 새끼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게 된다.
엘렌의 남편은 부러진 손가락의 통증을 계속해서 호소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진통제 뿐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하자 엘렌의 남편은 외국인보호소 밖의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남편의 부상은 진단서 상으로 1주일의 입원을 요하는 수술 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수술이 끝나자마자 외국인보호소로 다시 돌려보내지고, 그후로 한국에서는 추가적인 진료도 전혀 받지 못한 채 지내게 된다. 이렇게 엘렌과 엘렌의 남편이 난민신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보호소에서 부상을 입고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마침 보호소에 다른 난민신청자를 만나러 갔던 동료 J가 알게 되었고 엘렌이 우리 사무실로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엘렌은 남편이 갑작스럽게 단속이 되고 구금이 된 후 2주 정도가 지났지만 벌써 몇년이나 지난 것 처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토로를 하였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자신들을 돌보아 주던 아빠를 계속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 난민인정절차가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력을 하고, 또 그동안 일어났던 인권침해 – 난민신청접수거부와 보호소 내에서의 부상 및 적절한 치료의 부재에 대해서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는 것으로 엘렌 부부를 돕기로 하였다.
하지만 엘렌의 남편의 난민 면담에는 고지가 없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우리가 참석을 할 수 없었고, 난민면담공무원은 한글도 잘 읽지 못하는 통역을 대동하여 엘렌의 남편에게 윽박을 지르고, 대답을 강요하였다고 한다. 이런 고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가 제대로 이루어졌을리가 만무함에도 불구하고 엘렌의 남편은 한글로 적혀 있는 면담조서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서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며칠 후, 더욱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는데, 엘렌의 남편이 난민인정절차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송환을 당한 것이었다. 엘렌의 남편은 난민인정불인정 통지서를 받고 그로부터 세시간 후, 인천공항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강제로 탑승을 하게 된다. 당시 우즈베키스탄에서 요원 두명이 인천으로 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엘렌의 남편을 데리고 탑승한 것이 목격되기도 하였다. 엘렌의 남편의 어머니는 아들이 강제송환되었다는 소식에 타슈켄트 공항에서 아들을 기다렸으나 만날 수 없었고, 그 후로 엘렌의 남편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모든 난민신청자들이 겪는 것은 아니다. 출입국관리공무원들이 불친절하고, 접수거부를 하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난민신청을 방해하고, 무례하게 대하고, 심지어 난민인정절차가 종료되지도 않았는데 강제송환을 집행하는 경우는 드문 경우이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엘렌의 남편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테러용의자’들을 단속하고 있던 중 ‘테러용의자’로 지목이 되어 강제출국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엘렌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나는 왠지 모르게 불편함을 느꼈다. 그동안 알게 몰게 들어온 무슬림에 대한 편견은 나의 머릿속에 한자리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종종 엘렌의 절절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 그녀의 차림새에 시선을 멈추고 겉돌기도 하였다. ‘무슬림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던데, 이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믿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엘렌의 남편이 테러용의자로 지목이 되어 강제출국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슬림에 대한 편견은 의심과 두려움이라는 날개를 달고 겉잡을 수 없이 커져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차도르 두르고 나타났을때부터 수상하다 했지…혹시 엘렌도 테러용의자는 아닐까? 만약에라도 테러리스트를 돕게 된다면 큰일인텐데…’ 몇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동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거절을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동료 J는 달랐다. 엘렌의 남편이 ‘테러용의자’로 지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J는 흔들림이 없었다. 막연한 의심과 두려움보다 눈 앞에 있는 살과 피를 가진 의뢰인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J가 무조건 남의 말을 믿는 순진무구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J는 오히려 엘렌의 남편이 왜 테러용의자라는 명목으로 강제추방된 것이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 침착하게 살펴보았다. 법무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엘렌의 남편은 테러조직의 핵심 요원으로 알려진 사람과 지속적으로 교신을 해왔기 때문에 테러용의자로 지목되어 강제출국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 테러단체의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누구와, 얼마나 자주, 무슨 내용으로 접촉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코멘트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을 하였다. 또한 ‘지속적 교신’ 외의 활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히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테러용의자라면 왜 테러용의자라고 하지 않고 위명여권의 사용으로 단속이 되었는지, 단속된 후에도 테러와 관련된 추가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다. 이렇게 불충분한 이유로 테러용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난민신청자로서의 권리도 박탈당한 채 강제송환을 당한 것은 난민협약과 다른 국제법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유엔에도 실종된 엘렌의 남편을 찾기 위하여 진정을 하였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테러용의자라는 의심에 편승하여,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판단을 유보한 채, 무슬림 = 테러리스트 = 강제추방으로 로직을 전개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J처럼 상황을 꼼꼼히 따져보고 창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 일이다. 더욱이 그렇게 신뢰한다고 해서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만에 하나라도 의심했던 일이 현실화된다면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 돈을 모두 헛되이 날려버리게 될 뿐 아니라, 배신당한 것에 대한 비웃음마저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신뢰한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J는 용감하게 엘렌의 가족을 신뢰하였다. 그것은 J가 막연한 의심에서 비롯된 상상 속의 테러리스트에 대한 확신이 아닌, 엘렌과 아이들이 아빠를 그리워하며 흘리는 눈물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J는 계속해서 엘렌을 도왔고, 유엔의 조사 결과 엘렌의 남편이 타슈켄트의 어느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편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엘렌은 안도하였고, J는 계속해서 도울 수 있는 일을 돕겠다고 하였다.
하루는 엘렌이 이태원에 있는 경찰서에서 확인할 일이 있다고 하여 J와 함께 방문을 하였는데, 일을 마친 후에 엘렌이 자주 간다는 케밥 가게에 들러서 함께 케밥을 사먹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엘렌이 얼굴에 두른 차도르를 걷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의외로 앳된 모습에 장난기 있는 말투로 “우리 남편 말이에요, 글씨도 제대로 못읽어요. 그런 사람을 테러용의자라고 하다니…” 라며 혀를 차는 모습에 나도 J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저도 아이들도 남편이 갑작스럽게 없어져서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J 변호사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남편을 찾기 위해 끝까지 애써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수줍은듯한 미소가 번졌다. 편견과 의심 뒤에 감추어져 있던 그 미소는 용감하게 그녀를 믿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그 미소를 기억하며 내 눈 앞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 이 글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정신영의 사람 이야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7, 2014년 7월, 정신영, 공익법센터 어필 상근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