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강남(江南)은 물자가 풍부하고 인물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저주 역시 강남의 일부였다. 중심지인 남경(南京)이나 소주(蘇州), 항주(杭州)보다는 변두리였지만 수려한 봉우리와 맑은 물 덕분에 승경으로 제법 이름난 곳이었다. 여기에 한창 웅지를 펼치던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뜻하지 않은 참소를 당해 태수로 좌천되어 온다.
노상 취옹정으로!
심사가 편할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가슴에 품은 바를 버린다면 그건 그저 그런 선비나 하는 일, 그는 범인이 헤아리기 어려운 큰 그릇이었다. 그릇이 클수록 자신만이 자신을 추수를 수 있는 법, 그는 자신을 돋울 즐거움을 찾아 길을 나선다.
마침 저주 서남쪽, 낭야산의 산세가 수려하고 물이 맑아 번민을 내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얘길 들어보니 저주 사람들도 노상 그곳에 놀러간다고 한다. 관아의 일이야 몰아쳐 하면 잠깐이면 된다. 옛적 봉추(鳳雛) 선생도 한 달 치 업무를 단 몇 시간만에 깔끔하게 끝냈다고 하지 않던가! 자칫 잡무에 깎이고 원망에 시들 수 있는 지금,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잘 가꾸고 키워 앞날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그는 날마다 단호하게 길을 나선다, 낭야산으로.
태수가 간다 하니 많은 사람들이 덩달아 따라나선다. 개중에는 태수가 청한 이도 있다. 태수에게 초청을 받았으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던가! 그런데 하루 이틀, 초청이 잦아지고 놀러 가는 곳도 늘 낭야산 한 곳이다. 서서히 심드렁해진다. 태수의 귀에도 사람들의 쑥덕거림이 들려온다. “아니, 한 두 번이라면 몰라도 왜 만날 낭야산에만 가는 거지? 그곳에 뭐 볼 것이 그렇게 많다고….” 그랬다. 늘 같은 길로 올라갔다가는 같은 길로 내려온다. 아침에 갔다가 저녁이면 돌아오니 더욱 단조로웠다. 그러나 태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취옹’-되기
구양수가 저주지사로 좌천됐을 때 그의 나인 서른아홉이었다. 그는 불혹의 눈앞에 놓인 스스로를 ‘늙은이[翁]’라 칭했다. 정치적 부침 탓에 실제로 몸이 많이 쇠해졌을 수도 있다. 다만 환갑 맞이가 귀했던 시절, 그는 66세까지 살았다. ‘늙은이’ 운운은 투정 어린 엄살이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나 더 있다. “조금만 마셔도 늘 취한다.”는 그의 고백 말이다. 아쉽게도 그의 주량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을 리 만무한 그런 기록을 기대했음이 아니다. 명색이 ‘취옹’인데, “모름지기 한 번 마시면 삼백 잔!” 식의 호기가 있을 법도 한데, 토로된 말은 적은 술에도 매양 취한다는 엄살이다. 늙었다고 할 수 없음에도 늙은이라 부르고 취했다고 할 수 없는데도 취했다는 우김…, 그런데 그 억지 속에 그는 어느덧 취옹이 된다.
늙음이 싫음은 산 아래서나 있는 일, 순환하는 산수자연서 노쇠란 또 다른 생성의 씨앗일 뿐, 늙은이라 자처해도 도무지 싫을 일도 또 엄살 필 일도 아니 된다. 그저 모인 사람 가운데 나이가 많으면 그 자리에선 늙었다고 할 수 있나니, 이립(而立)인들 어떻고 불혹이면 또 어떠하랴! 본시 늙음은 그렇게 관계 속에서 규정됐음이니, 꼭 흰머리 성성하고 기력이 쇠해야 늙은이라 칭해짐은 아니니라. 게다가 늙은이라 자처함으로 더 할 수 있는 바가 생긴다면?
취함도 마찬가지이리라. 양껏 마셔야 비로소 취했다고 하는 건 저어기 아랫동네의 이야기. 있다면 삼백 잔도 마다 않고 없다면 물만으로도 너끈하나니, 주선(酒仙)의 이 오묘한 경지를 취옹은 약간의 술로 넘나든다. 그는 말한다. “취옹의 뜻은 술에 있지 아니하고 산수자연에 있다”고, 자신이 취한 건 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산수자연이라고. 거기 있는 즐거움[樂]이 내 취기의 원천이기에 술은 그레서 조금으로도 족하다고. 산수 바깥에 있던 구양수가 취옹이 되어 산수로 접어드는 데는 양이 문제가 아니었음이다.
변이[易], 그 질리지 않는 즐거움
낭야산, 거기서 만큼이라도 그는 구양수이고 싶지 않았음이다. 태수라고 하여 뭐 중뿔난 인간이었겠는가? 그라고 하여 어찌 늘 가던 곳이 싫증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취옹으로 거듭나는 순간 그는 태수를 좇아온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달리 있을 수 있었다. 하여 따라온 이들에겐 항상 그게 그거인 것이 취옹에겐 언제나 그렇지 않았다.
취옹의 눈은 그저 수려한 산봉우리와 맑은 물,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거두지 않은 눈길을 따라 그의 마음은 산수의 속살을 파고들었다. 거기엔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즐거움[樂]’이 있었음이다. 그는 고백한다. “산수자연이 주는 즐거움은 마음에서 얻어 술에 기탁하는 것”이라고. 마음엔 시간의 흐름이 담겨진다. 그 속에선 그때그때 눈에 담기는 정경이 그 전에 담긴 것, 더 전에 담긴 것들과 포개진다. 그래서 산천이 매 순간 취하는 자태서 나아가 그들이 자아내는 변화상이 포착된다. 바로 거기에 취옹의 남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그의 즐거움은, 그 질리지 않는 기쁨의 원천은 산천이 순간 빚어내는 정태(靜態)가 아니라 조석으로 움직이고 시절에 따라 변모되는 동태(動態)서 비롯됐던 것이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변화하고 철마다 풍경 다르니 기쁨 또한 무궁하다.”며 그만의 기쁨을 상찬한다. ‘사계절의 경치’ 그 자체가 무궁한 즐거움의 원인이 아니란다. ‘같지 아니함’이 기쁨을 무한히 연장한다고 한다. 그가 마음으로 바라본 것은 순간순간의 경관이 아니라 산천 경관의 변이 그 자체였던 셈이다. 그것은 가시적 세계 저 너머에서 끊임없이 가시적 세계에 변모를 추동하는 존재였다. 무궁함의 연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경관이 매양 똑같고 올봄과 지난봄이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의 즐거움은 결코 손상되지 않는다. 그의 눈길, 또 마음은 반복되는 양 보이는 외양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꿈틀대며 생동하는 변이라는 ‘힘’을 직관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형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 무궁한 즐거움이 마음으로만 얻어질 수 있음은 너무나도 당연했던 것이다.
그렇게 취옹은, 세인들이 못 보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단조로움 속에서 꿈틀대는 힘을 감지했다. 그건 변이였다. 하여 비슷한 외양 속의 미세한 차이를 읽어낸다. 단조롭기에 작은 변이가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법. 변이를 좇는 그의 눈길은 주변의 정경부터 머언 곳 구름이 나고 지는 암혈까지, 어느 하나도 예사로 스쳐 보내질 않는다. 산천이 깨어있음에 대한 확인, 자연이 살아있음에 대한 확증, 천지자연의 섭리가 여전함에 대한 가슴 벅찬 확신. 아련한 물소리로부터 맑디맑은 새소리까지, 모든 울림이 그를 반응케 한다. 모두가 살아있는 세계, 태수는 일상을 떠나 그 생생한 ‘살아있음’의 현장으로 향한다. 오늘의 낭야산이 어제의 그것이 아니요, 어제의 취옹정이 오늘의 그것이 아닌 것을, 이 안에 참된 즐거움이 있나니 어찌 단조롭다 할 것인가!
술의 힘
술을 마신다는 것이 알코올을 섭취한다는 진술과 같을 수 있을까? 옛날 동진(東晋)의 도연명(陶淵明)은 <음주(飮酒)>라는 제목의 연작시를 20수나 남겼다. 그 한 수 한 수가 다 빼어났던지라, 이천 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에도 그 인기는 여전하다. 그런데 이 연작시에 그려진 시 세계에서는 알코올 냄새가 일절 풍기질 않는다. 대신 청아하고 그윽한 평정의 세계가 소박하게 그려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왜 시인은 ‘음주’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그가 현령 봉급으로는 술 빚을 곡식을 마련할 수 없다며 현령 직을 박차고 돌아온 고향은 “항아리 속 잘 익은 술이 넘실대는” 곳이었다.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歸去來兮, 歸去來兮)”고 다짐했던 그의 고향은 “번잡한 속세에 접해 있으면서도, 우마의 시끄러운 소리 하나 없는(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그런 평정의 세계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도회지에 살면서 잡스런 소음 하나 없다 함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 도연명은 자기가 사는 곳을 그렇게 만들었다. 속세와 평정의 세계, 어울릴 수 없는 그 둘을 하나로 빚어내며 그는 거기서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그곳엔 늘 술이 있었다. 결국 그곳의 술은 그를 취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곳을 취하게 했음이다. 그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기에 그의 시는 그렇게 담백하고 투명할 수 있었으며, 세속의 이분법을 초월하여 평정의 세계를 자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적게 마셔도 충분히 취할 수 있는 것이리라. 아니 안 마셔도 취할 수 있을 터이다.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평정의 세계에 취하는 것이요, 술기운에 즐거운 것이 아니라 평정 속에 있는 무궁한 변화에 즐거운 것이다. 술은 그런 즐거움을 모르는 자를 위해 존재한다. 외양에 갇혀 그 너머의 세계를 미처 보지 못하는 이들, 태수도 자신처럼 수려한 산수 그 자체를 즐기는 줄로 알고 있는 이들, 태수가 정말로 술이 약한 줄로 알고 있는 이들, 그런 이들을 위해 참된 즐거움의 소재를 알려주는 것 역시 태수의 할 일이리라. 이를 위해서 술은 마셔야 한다.
“산수자연이 주는 즐거움은 마음에서 얻어 술에 기탁하는 것이라!” 취옹은 마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그 즐거움을 맘 바깥으로 드러내기 위해선 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술은 눈에 갇힌 영혼을 해방시켜 눈이 마음이 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연명은 평정의 세계에 몰입하고자 술이 필요했음이요, 구양수는 평정의 세계를 써내고자 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원문과 번역】
취옹정기(醉翁亭記): 송(宋) 구양수(歐陽修)
저주 고을은 사방이 온통 산이다. 그 중 서남쪽 봉우리들은 수풀과 골짝이 자못 빼어난데 저으기 바라보면 우거진 가운데서도 사뭇 빼어난 곳이 바로 낭야산이다.
한 6, 7리쯤 오르다보면 돌돌 거리는 물소리 점점 커지고, 두 봉우리 사이서 왈칵 흐르는 것이 양천이다. 봉우리들이 굽이쳐 돌고 산길도 따라 굽이진 곳, 취옹정이 활짝 나래를 펴고 양천가에 임해 있다. 정자를 지은이는 누구인가? 산중 스님 지선이라. 이름을 붙인 자는 누구인가? 나 태수가 직접 붙였다네. 태수는 예서 객들과 어울려 술 마실 때면 적게 마셔도 늘 취한다. 나이 또한 가장 많았던지라 자칭 ‘취옹(술 취한 늙은이)’이라 했다. 그러나 취옹의 뜻은 술에 있지 아니하고 산수자연에 있나니, 산수자연이 주는 즐거움은 마음에서 얻어 술에 기탁하는 것이라.
해 뜨면 수풀가 안개 걷히고, 구름 돌아오면 산봉우리 어둑해진다. 어둡다 밝고 밝다 어두워지니 이것이 산 속 하루의 변화라. 들꽃 피어나 향내 그윽해지고 수려한 나무에 녹음 우거진다. 바람 높고 찬 서리 지고 물 줄어 냇바닥 돌 드러나니 이것이 산중의 사계절이라. 아침저녁으로 변화하고 철마다 풍경 다르니 기쁨 또한 무궁하다. 짐 진 자 산길서 노래하고 길 가는 이 나무 밑서 숨 돌린다. 앞선 이가 메기면 뒤따른 이 받아주고 남녀노소 끊임없이 오고가니 이는 놀러 나온 저주 사람들이라. 계곡에 임해 낚시질한데, 깊은 계곡 살진 물고기라! 양천 길어 술 빚으니 물 맑아 더욱 상그러운 술 내음. 산나물과 야채 이것저것 펼쳐 놓은 것은 태수의 연회상. 풍악이 있어야만 연회가 즐거운 것은 아닌 법. 투호와 바둑 승패에 따라 벌주잔 어지러이 오가고, 앉았다 섰다 하며 시끌벅적함은 뭇 객들이 즐겁기 때문이라. 그 가운데 스러져 있는 창백한 얼굴에 쉰 머리칼, 그가 바로 취한 태수라!
이윽고 해는 석양에 걸리고 사람 그림자 어지러이 섞일 제, 태수가 돌아가니 객들도 좇아 나선다. 수풀엔 땅거미 서리고 새소리 오르내림은 행락객이 떠나 새들이 좋아함이라. 그러나 새들은 수풀의 즐거움만 알 뿐, 사람의 즐거움은 모른다. 사람들은 태수와 놀며 즐거워할 줄만 알고 태수가 그들의 그러한 즐거움을 즐김은 도통 모른다. 취하여 사람들의 즐거움과 함께 할 수 있고 깨어나 그 일을 기록할 수 있는 이, 그가 태수이다. 태수는 누구인가? 여릉 땅의 구양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