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잔칫집의 꽃,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이제는 목마르면 물 마셔야 한다. 술 대신 물을 마시고 말똥말똥하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 삶의 팍팍한 짐을 그대로 감당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포도주는 앉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아내를 여읜 뒤로 입을 다물어버린 사내도 포도주를 마시면, ‘죽고 싶다’는 말을 할 힘이 생긴다. 자신을 끊임 없이 괴롭히는 보스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말단직원도 술김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용기가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포도주는 진실을 말하게 하는 마법의 물약이다. 진실 나누면서 치유를 경험하게 하는 만남을 이뤄내는 촉매다. 그래서 포도주는 생기 있는 공동체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저녁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포도주를 나눠 마시며 하나됨을 강조한다.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말한다. 우리는 포도주에서 나눠있지 않고, 하나로 존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진실을 말하게 하는 마법의 물약을 먹고 진실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된다. 그런데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포도주가 바닥이 났다. 우리를 공감으로 이어주던 끈이 사라져버렸다.

삶의 포도주는 언젠가는 바닥이 난다. 인생에서 우리는 축제를 즐긴다. 그 축제에서 술 한 잔에 취해서 삶을 만끽하고 축제가 주는 만족감에 젖어 든다. 그런데 인생의 축제는 언젠가 마감할 때가 있다. 포도주가 바닥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포도주가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순간 우리는 삶이 너무도 덧없게 느껴진다.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말했듯이 포도주가 바닥이 났다고 말해야 한다. 내 삶의 포도주가 바닥이 나서 내게는 어떠한 기쁨도 없다고, 그래서 우울해서 죽겠다고 예수님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냉랭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을 못 들었다는 듯이 잔칫집 종들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에 반하는 지시를 시종들에게 내리는 것이다. 조금 전에는 이 문제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더니, 예수님도 이에 반대되는 지시를 내린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대화는 어떻게 보면 서로 뚱딴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교묘하게 서로의 말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서로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오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언어들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그들만의 내밀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가 이 문제에 개입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포도주가 바닥났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알려준다. 아들은 어머니의 이 말이 ‘아들아, 네 때가 온 듯하구나’라는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감지한다. 하지만, 아직 예수님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문제에 개입하지 말자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마음에 어떤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입으로는 이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내면에 어떤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귀에는 이런 부정적인 아들의 멘트가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처럼 들린다. 그 질문에 마리아는 강력한 행동으로 대답한다. 종들을 불러서 예수님의 지시에 따르라고 명령을 한다.

나는 한때 마리아의 이런 행동이 아들 예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무례한 행위처럼 보였다. 아들은 안 하겠다고 하는데 그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반대되는 행동을 감행하는 것으로 비쳤다. 마리아가 자신의 고집만 내세우는 문제 많은 엄마가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는 서로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를 기울인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멘트들로 가득 차있다. 그 대화의 당사자들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깊은 언어들이다. 마리아는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아들에게 나는 아들을 믿는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마리아는 불안으로 가득 찬 아들 예수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용기를 주고, 지지해준다. 마리아는 아들에게 다른 질문이나 대답을 해서 아들의 불안을 증폭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아들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한다. 

예수님의 최초 기적이 어머니 마리아와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어머니의 지지와 믿음, 신뢰가 인류에게 포도주를 선사한다는 놀라운 은유다. 예수님을 움직이게 한 것도 어머니의 믿음과 사랑이었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축제로 만들어주는 것은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대화다. 가나의 축제 테이블에서 아들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가 나눈 대화는 아름다운 포도주 향기처럼 내 마음에 스며든다. 경청과 믿음, 사랑과 용기가 오가는 이런 의미심장한 대화가 식탁에 넘친다면 우리의 삶은 날마다 축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