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길이 있다. 사람도, 자동차도, 기차도, 배도, 비행기도 길을 따라 다닌다. 땅에도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있고, 바다에도 물고기나 배가 다니는 바닷길이 있고, 하늘에도 새나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있다. 사람이 밟고 다니는 땅이 곧 길이고, 배가 다니는 흔적이 물길이며, 비행기가 다니는 궤도가 바로 하늘길이다. 그러나 얼마나 가깝고 안전하냐의 차이만 있을 뿐, 세상에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무수히 많은 길이 있다.
이 세상에는 내가 가 본 길과 가 보지 않은 길이 있고, 누군가가 먼저 가 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려주는 길이 있다. 우리가 자주 다니는 출퇴근 길이나 집 근처 산책로나 오솔길은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고, 모르는 시골길과 고속도로 조차도 지도를 보거나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 갈 수 있다. 길이 막혀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고 적게 걸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려는 길에는 남의 경험이나 정보만으로 안 되는 길이 있다. 늘 큰 변화 없이 그대로인 길은 선배나 앞서 갔던 사람의 훈수가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막의 길은 드물지만 대체로 누군가가 가 본 길이지만 고정된 길이 없고 가름할 지표도 없으며 이정표도 세울 수가 없다.
아무리 훌륭하게 만들어진 지도라도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것이 바로 늘 새로운 미래의길, 스스로 개척해야 할 미래의 길이며 사막길과 같은 길이다.
필자는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많이 참고 했었고, 그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권하는 참고가 될 책이 있다. 바로 스티브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이라는 책이다. 오늘날 유명한 탐험가이며 인생컨설턴트가 된 스티브는 젊은 시절 친구 탤리스와 함께 파리에서 출발하여 스페인을 거처 지중해 남쪽 북부 아프리카 알제리부터 시작하여 중서부 아프리카 가나해안에 이르는 대장정을 경험하고 한 권의 얇은 책 한 권으로 발간했다. 이 책은 어쩌면 새로운 출발이나 미지의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사막길을 막 출발한 젊은 청년들에게 꼭 맞는 인생 내비게이터 인지도 모른다.
2. 첫번째 방법: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북극성)을 따라가라
누군가가 미리 가보고 비행기로 찍은 사진으로 지도를 만들고 스마트기기 안으로 디지털화 한 것이 지도 내비게이션이다. 하지만 큰 사막에서는 포장된 길을 물론이고 참고할 만할 언덕이나 강도 없다. 앞서서 갔던 사람이 아무리 좋은 지도를 만들어 전해 준다고 해도 내가 있는 위치를 알 수 없으므로 그 지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래서 여행가이자 인생 컨설턴트인 작가 스티브 도나휴는 사막을 건너는 첫번째 방법으로 ‘지도를 보고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이나 밤의 북극성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것이다.
사실 요즘은 여행을 할 때 종이로 된 지도를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웬만한 신형차에는 내장형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고 오래된 차를 운전하는 사람도 대부분 거치형 내비게이션을 설치했거나 휴대용 스마트폰의 내비게이터 앱을 사용한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볼 것은 아무리 첨단의 내비게이션을 장착하고 목적지를 정확히 설정해도 위치를 찾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를 정하기 이전에 내가 어디에 있느냐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그래야 목적지를 제대로 찾아갈 수 있다. 서울은 부산에서 보면 북쪽이지만, 평양에서 보면 남쪽이다. 목표를 정하기 전에 나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자, 그래야 방향이 나온다. 동쪽으로 갈지, 서쪽으로 갈지를 결정할 수 있다. 가까운 길은 지도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가면 된다. 하지만 인생의 먼길, 미지의 길을 누가 가르쳐 주겠는가 그들도 모르는 길인데.
3. 두번째 방법: 오아시스(휴식처, 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너무나 바쁜 세상이다. 30여년동안 너무나 바빴던 직장생활에서 본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이제 학교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대학생들도 직장인들 못지 않게 너무 바쁘다. 그래서 공부하고 탐험할 시간도 없는 것 같다. 어디 어른들 뿐만 아니다. 요즘은 심지어 유치원생도 너무 바쁘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사막을 건너는 두 번째 방법은 ‘길을 가다가 오아시스를 만나면 쉬라’고 한다. 그것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쉬라고 한다. 인생이나 잘 모르는 길을 가다 보면 아무리 여유가 없고 바빠도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고 충전을 해야 한다. 그것도 오아시스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리 바빠도 쉬면서 물도 채우고 잠도 자고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 오아시스에서 쉬어야 할 이유는 단지 휴식(Refresh) 때문만은 아니다. 휴식하면서 걸어온 길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일정도 점검해 보며 무엇보다도 앞서가던 사람이나 반대편에서 오던 사람과 교류하고 대화하면서 그들의 시행착오나 경험을 통한 지혜와 아이디어를 구하는 반추(Reflection)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4. 세번째 방법: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조금 빼라.
포장이 안된 시골길을 운전해 가거나 비 오는 날 웅덩이에 차 바퀴가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해 엑셀을 밟으면 밟을수록 차는 더 깊이 빠져든다. 작가의 세번째 방법은 ‘자동차가 모래에 빠지면 타이어의 바람을 조금만 빼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새로운 사업에서 막다를 골목에 빠지면 친구나 가족의 도움의 손을 벌리기가 일쑤다. 더 힘을 넣고 온갖 자원을 다 동원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원을 더 넣지 말고 오히려 빼라는 것이다. 타이어에서 바람을 조금 빼면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위험에 빠졌을 때는 바람이 어느 정도 빠지면 지면과의 마찰이 커서 쉽게 나올 수가 있다. 자동차의 바퀴가 둥근 반면 탱크나 트랙터의 바퀴는 타원형으로 지면과 마찰하는 부분은 일직선처럼 평평하다. 빨리 달리려면 둥글고 팽팽한 바퀴가 도움이 되지만 험한 길을 가거나 모래에 빠지면 바람이 약간 빠진 타이어가 더 낫다. 힘을 빼자. 몸에서 마음에서 쓸데없이 더 들어간 힘을 빼면 사업이나 인생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에서도 기본이다.
5. 네번째 방법: 여행을 갈 때는 혼자서 또는 함께 여행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여행은 일상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휴가 때 ‘방콕’이라고 불리는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책을 읽거나 영화만 보다가 있다가 허무하게 휴가가 끝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휴가는 어디를 가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며칠이나마 안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여행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일종의 고독을 맛보는 일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혼자서 여행을 가기도 한다. 하지만 맘에 드는 친구와 같이 하는 여행을 더욱 재미 있다. 사진을 찍어 주거나 서로의 어려움을 도와 줄 수 있고 친구가 못 보던 것을 대신 봐 줄 수도 있다. 인생이나 사업에서 어떤 전략도 늘 옳을 수는 없다. 사막의 여우로 불린 롬멜 장군이나 23전 23승의 불세출의 영웅인 이순신장군 역시 같은 전술을 반복해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승불복(戰勝不服)이다. 같은 방법으론 안 된다. 나는 그대로 인데 주위와 환경이 바뀌면 원칙을 가지되 거기에 맞추어 나의 일부를 변화시켜 전체의 힘으로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힘만 아니라 동료나 자연의 힘도 전체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혼자서 따로, 또 어떨 때는 같이 해야 한다. 따로 또 같이라는 영화가 있다. 따로(Alone) 같이(Together) 전략을 요즘 경영학이나 컨설팅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6. 다섯번째 방법: 캠프파이어(칭찬, 인정, 안전함과 순탄함)에서 한걸음 멀어지라.
더운 사막이지만 밤이 되면 참으로 춥다. 그래서 밤이 되면 장작을 모아서 불을 지핀다. 이것이 캠프파이어 이다. 두 손을 모으고 가까이 가서 불을 쬐지만 조금 지나면 따뜻하고 졸리어 거기서 떠나기 싫어진다. 하지만 불은 너무 멀리 있어도 얼어 죽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타서 죽는다. 높이 날고 싶어하는 아들에게 밀랍날개를 달아주고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 다이달도스의 말을 어겨 날개도 녹고 추락한 이카루스의 신화 이야기는 때로는 용기와 도전의 정신으로 이야기 되기도 하지만,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가지 말라는 불가근불가원 (不可近不可遠)의 원칙을 비록 캠프파이어 와의 간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조직의 실세나 윗선과 가깝거나 칭찬이나 성적이나 상위고과의의 달콤함에 오래 가까이 하다 보면 불에 타 죽는 불나방처럼 된다.
너무나 힘든 고난도 참기 어렵겠지만 너무 안전하고 실세와 가까운 자리만 추구해도 캠프타이어를 너무 가까이 하는 것이다. 감당할 만한 고난과 추위는 그 당시에는 힘들겠지만 어쩌면 인생에 남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구할 때 졸업장이나 자격증 같은 스펙보다는 그의 스토리를 보라고 한다. 공장직공과 식당식모에서 하버드대학 박사가 된 서진규 박사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하버드 대학 박사는 많지만 식모출신 하버드 박사는 그녀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7. 여섯번째 방법: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마라
초심을 잊지 말자고 한다. 그만큼 초심을 변치 않고 원래 목표한 뜻을 지속하기는 쉽지가 않다. 약간의 성공이나 절반의 성공에 교만하고 당초 뜻한 목표를 잊기가 일수 이다. 당초 목표는 그 목표가 달성된 뒤에 더 높고 고귀한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허상의 중간 목표에서 무너지는 어리석음을 많이 본다. 내가 목표한 명예나 자산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궁극적인 목표인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받은 은혜와 도움을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을 끝까지 달성하는 후배들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8. 길과 희망
우리에게 아큐정전(阿Q正傳)으로 유명한 근대 중국을 대표하는 중국의 문학자이자 사상가인 루쉰은 그의 문집 [고향]에서 “원래 땅 위에 길이란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싯구를 남기고 이어서 “희망도 땅 위의 길과도 같다. 원래 희망도 없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처럼 희망도 가꾸 가져야 생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길과 희망은 내가 먼저 조금씩 만들어 가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더 튼튼하게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 작가 루쉰의 [고향]과 미국 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에서 말한 것처럼 길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희망 역시 길처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도전해 보고 넘어져도 보고, 잘못 가서 돌아오기도 해보는 시간을 통하여 길도 희망은 생겨나고 그렇게 만들어진 길이 포장도 되고 확장도 된다. 마찬가지로 작은 희망, 때로는 절망하면서도 그 끈을 놓지 않고 북극성을 바라보며 때로는 쉬어도 가고, 좀 내려 좋기도 하고 하며 가는 사막 길처럼 희망도 점점 자라서 또 다른 희망을 키워가리다.
시인 도종환의 시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중에는 “처음 가는 길”이라는 시가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그렇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지나갈 때는 남이 갔던 때와는 다른 환경으로 바뀌기 때문에 또 다른 길이 되고 처음 되는 길이 되는 것이다.
누구는 인생이 큰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면 인생은 오히려 사하라 사막과 같은 광야를 건너는 것과 더 닮아 보인다. 큰 사막에는 가 보지 못했지만 오래 전 로스엔젤스 에서 라스베가스 까지 자동차로 운전해 갈 때 작은 사막을 지나가 본적이 있다. 스티브 도나휴와 그의 친구가 스페인 남부 해안에서부터 시작하여 북부아프리카를 관통했던 거대한 사하라 사막여행과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사막에 가 보면 사막이 산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사하라 사막을 건널 때는 사막이 도대체 어디서 끝나는 지 도저히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강도 없고 언덕도 없고 길도 없고 국경도 없고 어떤 표지도 없을 것이다.
인생이 그렇다, 지구본을 보여주고 아프리카 지도를 가르쳐 주는 어른들은 많지만 사막을 직접 걷게 되는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은 지도 위를 걷는 것이 아니고 그냥 모래 위를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걷게 된다. 길을 안내하여 하지 말고 그냥 방향과 스티브 도나휴의 책 한 권을 주고 맡기자. 인생에서 변화를 겪는 시기에 우리가 허우적거리는 것은, 인생의 양상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산을 탈 때처럼 전략적인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서가 아닐까?
이제 하루 남은 2014년 갑오년, 하루 뒤면 2015년 을미년 양의 해가 다가 온다. 힘센 말의 해도 이렇게 어렵고 혼돈이었는데 연약한 양이 잘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다만, 오히려 부드럽고 연약하기에 강한 말(馬)보다 순한 양(洋)이 올해 보다 더 어렵다는 내년을 순탄하게 잘 건너가리라. 당신은 사막을 건너고 있습니까? 산을 오르고 있습니까? 작가가 나에게 묻는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1, 2015년 1월, 권강현, 서강대 교수/전(前) 삼성전자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