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외로웠다. 그래서 배우자를 다섯 번이나 바꿔보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배우자는 그녀의 갈증을 채워줄 것 같았다. 새로운 만남이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 같았다. 잠깐 동안은 그녀의 외로움과 답답함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이내 헛된 희망이었음이 드러났다. 어떤 남자도 그녀의 내면에 있는 공허함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녀 옆에서는 배우자가 누워있었지만 그녀의 가슴은 한 없는 추위에 떨었다. 그리고, 이 갈증과 고독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다시 고민해야 했다. 그녀의 삶은 출구가 없는 터널 같았다.

그날 아침에도 목이 말랐다. 내면의 갈증인지 육체적 갈증인지도 분간되지 않았다. 이미 비어버린 물동이에 공허한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야곱의 우물로 향하고 있었다. 멍한 정신으로 우물에 도착하자 우물가에는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청년이 앉아있었다. 그녀는 낯선 청년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목마름이 너무도 급했다. 물이라도 마시면 내면의 갈증이 채워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청년이 갑자기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말투와 행색으로 보아 그는 유대인이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유대인들은 이방민족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들을 짐승 보듯이 했고, 전염병처럼 피했다. 인종적 순수성을 자랑하는 유대교도들은 부정한 혈통이 섞인 사마리아인들을 불결하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땅을 밟는 일은 드물었다. 사마리아 지방에 유대인이 등장한 것은 너무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렇게 등장한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까지 건네는 것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것은 스캔들이었다. 자신의 공허함과 외로움에 짓눌려있던 여인은 갑자기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이 남자는 누구일까? 삶의 허무와 회의에 짓눌려 대화할 의욕을 상실한 그녀조차도 이 상황에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대답한다.

물을 달라고 하던 사내는 자신이 물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정말 물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물은 이 우물에서 채워질 수 있는 그 무엇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내면에 타오르는 갈증을 알았던 것일까? 우물에 앉아서 물을 길어 올릴 두레박도 없는 청년이 생수를 주겠다고 하는 말은 어쩌면 그녀가 내면 깊숙이 갈구하던 것이었다. 그가 줄 수 있는 물은 무엇인가? 그녀는 묻는다.

그녀에게 이 우물을 선사한 야곱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으로 전해오던 믿음의 조상이라는 위인이었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 지방사람들은 산 너머 마을까지 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을 것이다. 그녀는 야곱처럼 대단한 인물은 되야 그녀의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야곱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목마름에 죽어버릴 것 같았다. 이 청년이 누구인지, 그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를 온전히 알면 그 물의 비밀도 풀릴 것 같았다. 이 청년은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말을 이어간다. 

사실 그녀는 갈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녀의 목마름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그녀의 목마름이 공허함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처방까지 제시한다. 그녀는 목마름 때문에 물을 마셨고, 자신을 이해해줄 배우자들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목마름만 돌아왔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말한다. 

그녀에게 남편은 진정한 대화의 상대를 의미했다. 온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런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꾼 까닭도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집에 건장한 외관의 남편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 참다운 관계를 맺지 못했다. 남편이 없다는 진실한 고백을 쏟아놓자, 그녀의 짙은 외로움이 목소리와 얼굴에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예수님은 그런 그녀를 보고, 따스하고 섬세하게 다독인다.

그녀의 마음을 읽어준 이 한 마디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깊은 공허함, 절망감을 읽어주는 따스한 음성에 그녀의 마음은 녹아 내렸다. 그녀의 얼음장 같던 심장이 깨졌다. 그 사이로 샘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굳어있던 그녀의 심장에 생명의 약동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은 따스했다. 그녀의 가슴은 기분 좋은 간지럼에 꿈틀거렸다. 샘물이 그녀의 속에서 솟아난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예수님에게 평소부터 궁금해왔던 질문을 던진다. 그는 그녀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불가능한 것을 강요할 리는 없지 않은가? 유대인들이 전염병 취급하는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예배 드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대답이 궁금했다. 그녀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요한지는 알았지만,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산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 예루살렘을 찾아가는 것도 이상했다. 그녀는 하나님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할지 궁금했다. 예수님은 대답한다.

예배란 순수혈통의 유대인들, 위엄 있는 제사장, 학식 있는 서기관이나 드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하는 예배는 너무도 단순했다. 진실한 마음, 겸손한 마음만 있으면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인 신비였다. 지금 그녀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이 순간이 완벽한 예배라는 깨달음이 스쳤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에 관해 묻는다.

예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기다렸던 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알 수 없는 충족감과 만족감을 얻었다. 뻥 뚫려있던 마음의 구멍에는 새로운 샘물이 흘러 들어왔고 그녀의 마음은 알 수 없는 빛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삶의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는 듯했다. 그녀에게는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말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녀가 했던 말들이 알 수 없는 오해와 비난의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수 없이 경험하면서 체득한 결과였다. 침묵만이 살 길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할 말이 생겼다. 아니 뭔가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그녀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우리의 갈증을 해결해줄 메시아가 왔다고 말이다. 그녀 앞에 나타난 예수라는 인물의 존재가 그녀를 압도했다. 그녀는 이 기쁨을 이웃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녀의 마음에 견고하게 세워져 있던 장벽이 허물어졌다. 그녀는 이제 외로움 속에 시들어가는 실어증 환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내면에 참다운 언어와 의미가 찾아왔다. 이 언어는 그녀에게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줄 씨앗이었다. 그녀의 남편을 참다운 배우자로, 마을사람들을 참다운 이웃으로 받아들일 내면의 자산이 생겼다. 남편도 마을사람들도 그녀의 변화에 놀랐다. 늘 어두움 속에 공허하게 빛나던 그녀의 눈빛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녀의 눈은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은 기쁨에 반짝거렸다. 그녀의 변화된 모습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더할 나위 없는 확실한 증거였다. 이 버림받는 저주의 땅, 사마리아에 구원자가 나타난 것이다. 

마을사람들의 삶도 변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들에게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통로였다. 이제는 하나님에게로 직접 나아갈 수 있다. 이 마을은 거룩한 영에 덥혔다. 그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입에는 흥겨운 노래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그곳이 예루살렘 성전이었고, 거룩한 산이었다. 예배의 장소는 축제의 장소였다. 죽은 듯이 고요하던 마을에 축제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 한 가운데는 공허한 눈빛으로 절망에 빠져있던 한 여인에게 생수를 마시게 해준 예수라는 청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