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판단 받는다는 것은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일이다. 다른 이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SNS에 올린 글이 일파만파로 퍼져서 악플과 비난, 조소와 경멸이 돌아오면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우울함에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기도 한다. 친구 사이의 사소한 오해로 친한 친구로부터 비난이라도 받는 날이면 밤잠을 설치며 자신을 오해한 친구를 자신도 모르게 원망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나를 정말로 아껴주는 가족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건네는 권면의 말도 눈엣가시처럼 불편하게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다른 이에게 부당하게 비판 받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은 보다 심각한 비난과 오해를 감당해야 했다. 예수님의 재판은 모멸감을 어떻게 견디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이야기다.

겟세마네에서 체포된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사저에 끌려왔다. 막상 예수님을 심문한 사람은 대제사장이 아닌 그 장인 안나스였다. 그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에 관해 묻는다. 안나스은 한 마리의 매였다. 마치 예수님의 진술에 한치의 오류가 있으면,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채려는 듯 날카로운 눈을 번득였다. 이렇게 위압적이고,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조차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담담히 해낸다.

“저는 모든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회당이나 성전에서 가르쳤지요. 저는 몰래 숨어서 혁명을 모의를 하거나 감추고 싶은 말을 한 일도 없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만입니다. 저는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했기 때문이지요. 저는 반란을 도모한 사실이 없는데 왜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 말에 심문장소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당황했다. 예수님의 말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다. 체포되면 굴욕감에 횡설수설할 줄 알았는데 전혀 기가 죽지 않은 모습에 놀랐다. 안나스의 표정에서 무엇인가를 읽은 사내가 예수님 앞에 선다. 이 험상궂은 얼굴의 경비병은 대뜸 뺨부터 후려친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가 홀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거칠고 격앙된 목소리고 소리친다.

“범죄자 주제에 대제사장 앞에서 무슨 말버릇이냐? 입을 다물지 못하겠어?”

예수님의 볼에는 다섯 손가락의 흔적이 선명히 박힌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우선 제 잘못에 대한 증거부터 제시해주세요. 저는 증거에 근거해서 사실을 말했습니다. 폭력으로 진실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쯤 되자 자신의 예리한 심문능력 앞에서 예수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던 안나스도 예수님을 가야바에게 넘겨버린다. 예수님을 결박하고, 그의 뺨을 내리쳐도 굴복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 어두운 밤에도 알 수 없는 강인함, 단호함, 확신을 보여주었다. 안나스는 예수를 계속 대제사장 사저에 두면 다른 유대인들이 그에게 설득될 것이 두려워졌다. 밤새 괴롭혔지만, 소득이 없었다. 대제사장 무리가 말을 하면 할수록 그 정당성은 떨어졌다. 그만큼 예수는 더 정의롭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예수님은 진실의 힘을 믿었다. 그들이 폭력으로 예수님을 괴롭힐지는 몰라도 그런 폭력 때문이 진실이 거짓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강압적인 언어와 무력으로 예수님을 압박하고자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흔들림 없이 객관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그들의 말에 영향을 받아 흥분해서 자신을 두둔하는 반동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객관적인 진실과 증거를 들이대면서 말한다. 이런 강압과 폭력 속에서도 객관적인 진실을 말하고,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재판정에서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한 반격이었다. 예수님은 차분한 진실의 언어로 좌중을 압도한다. 대제사장의 종교적 권위가 무색해지고, 경비병의 우락부락한 주먹이 부끄러워진다. 진실을 담담히 말하는 예수님 앞에서 권력은 무력하게 보였다.

그래서 자신 선에서 예수님을 무너뜨리겠다는 가야바의 계획도 실패한다. 가야바는 아침이 밝자마자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낸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을 추진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이방인과 접촉을 금지하는 유대율법을 지켜야 했다.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총독관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빌라도가 이들을 만나러 관저 밖으로 나온다. 빌라도가 귀찮다는 듯이 묻는다.

“무슨 죄로 이 사람을 고발하는 것인가요?”

유대지도자들은 죄명을 분명하게 언급할 수 없었다. 사실 고발할 마땅한 죄명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교묘하게 답변을 회피한다.

“저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아침에 이 사람을 여기 데리고 올리는 없겠지요. 귀찮으시겠지만, 저희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무슨 죄인지 묻는 질문에 중요한 죄인이라고 의뭉스럽게 둘러대는 말을 듣고, 빌라도는 이것이 유대종교 문제임을 직감했다. 

“여러분의 율법대로 스스로 재판하면 되지 않나요?”

유대인들은 대답한다.

“저희는 사형에 처할 권한이 없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를 적절히 통제하여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하지만, 밤새 심문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로마의 사법권을 의지하여서 예수를 처형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을 앞두고 이방인 총독을 접촉하는 것은 이래적인 일이었지만 지금은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로마총독의 사법권이 절실히 필요했다. 무엇보다 사형판결이 필요했다. 예수만 죽이면 유대지도자들의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보호할 수 있음이 분명했다.

빌라도는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라는 인물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음을 한눈에 알아 차렸다. 그들은 예수가 로마제국의 반역자라고 몰아세웠다. 빌라도가 보기에 그런 증거는 조금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말이다. 오로지 분명한 사실은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를 처형시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부담감을 안고, 로마 총독은 예수를 심문한다.

“사람들이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사실인가요?”

예수님은 대답한다.

“총독님은 생각에 제가 유대인의 왕 같나요? 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억지로 떠밀려서 제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것 아닌가요?”

빌라도의 마음이 정말 그랬다. 이런 사람을 로마의 반역자인 유대인의 왕으로 심문하는 것 자체가 좀 어색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로마의 정당한 사법권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지도자들의 압박에 떠밀리고 있는 것이었다. 빌라도는 변명하듯이 둘러댄다.

“로마인인 내가 당신을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할 리는 없지요! 하지만,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이 내게 당신을 재판해달라고 넘겼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저렇게 난리인가요?”

예수님은 말을 이어간다.

“제가 말하는 나라는 총독님이 생각하는 그런 국가가 아닙니다. 저는 폭력으로 다스리는 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만약, 제가 그런 나라를 원했다면 이렇게 총독님 앞에서 재판 받을 일도 없습니다. 제 지지자들이 칼로 저를 보호했을 테니까요. 저는 로마제국에 반역할 생각도 없고, 그런 행동을 한 사실도 없습니다. 저는 진실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권유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참다운 관계를 맺는 공동체를 추구했습니다. 제가 꿈꾸는 나라는 이 땅의 권력자들이 추구하는 그런 세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빌라도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로마법상 반역자가 아니라는 심증은 굳어졌다. 하지만, 유대지도자들의 부탁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지금 수많은 유대인들이 밖에서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들을 무시하면 자신도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것이 분명했다. 그에게 예수를 죽이라고 종용하는 유대지도자들에게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들이 로마 본국에 자신의 비리나 무능을 고소하면 로마총독 자리를 내려놓고 본국에 소환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예수를 두둔하면 그의 정치적인 입지가 위험해질 것을 직감한다. 지금 이렇게 무력하게 서있는 예수라는 인물을 죽인다고 뭐 큰 일이 날 것 같지도 않았다. 이제 빌라도는 예수를 다그쳐서 유대지도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한다.

“그래서 당신은 왕입니까? 아닙니까?”

예수님이 이 순간 자신은 왕이 아니라고 답변하면 간단히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소명이 있음을 감지했다. 자신의 죽음으로 유대민족의 모순, 죄악, 어두움, 적폐가 해소될 것을 기대했다. 자신에게 지워진 소명은 이 순간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인간의 연약함, 죄악, 실패, 콤플렉스, 그림자를 직면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순간의 대답에 그의 생명이 달려있었다. 예수님은 천천히 대답한다.

“저는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입니다. 그 지도자를 왕이라고 부른다면, 저는 왕이 맞습니다. 사실 당신이 말하는 그런 왕은 아닙니다.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은 저를 찾아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지도자입니다.”

빌라도는 이제 자신이 원하는 진술을 확보했다. 예수의 생명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음에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예수가 순순히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반역죄로 십자가형에 처할 핵심적인 자백을 얻어낸 셈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궁금증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예수님에게 묻는다.

“당신이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가요?”

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질문을 할 호기심은 있었지만, 진리가 무엇인지를 들을만한 진정성은 없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진리의 흔적을 얼핏 느꼈다. 하지만, 더 이상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자신 앞에 나타난 현안을 처리하는데 급급했다. 그래도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는 것은 뭔가 찜찜한 데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에게 말한다.

로마 총독 관저에 모인 유대인들은 소리를 질렀다. 모두 종교지도자들을 따라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준비했다는 듯이 연호했다.

“예수는 안됩니다! 바라바를 사면하시오! 바라바를 사면하시오!”

빌라도는 예수를 두둔하면, 유대군중이 폭도로 변할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기쁘게 해주는 조치를 취한다. 예수에게 심한 채찍질을 가하고, 군인들은 그를 둘러싼 채 조롱한다. 예수님에게 가시로 만든 왕관을 씌우고, 왕과 귀족이 입는 자주색 옷을 입힌다. 그리고, 비웃는다. 이런 상황에도 무기력하게 서있는 예수를 보면서 예수를 두둔할 이유가 없음이 분명해졌다. 이제 유대군중은 더 큰 소리로 사형판결을 요구한다.

빌라도는 이들의 주장이 터무니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들의 요청을 들어준다.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유대인들의 외침이 불의한지는 관심 밖이었다. 이 결정이 그에게 선사할 이익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로마제국이 파견한 총독이었다. 그의 권위와 권력은 막강했다. 그의 뒤에는 강력한 로마군이 버티고 있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유대 최고의 실력자였다. 그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정당한 재판이었다. 그러나 빌라도에게서 당당한 지도자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는 로마총독의 멋진 갑옷과 자색망토를 두르며 거드름 피울 줄은 알았다. 정작 유대지도자들이 선동한 무리들이 예수의 십자가형을 요구하자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들의 요구에 좌우된다. 권력자가 군중의 부당한 요구에 겁을 집어먹는다. 그는 유대인들이 비난이 두렵다. 유대지도자들이 본국에 자신을 고소할까 봐 걱정한다. 그는 권력자의 옷만 입은 철모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권력을 어떻게 얻고, 어떻게 유지할 지는 너무도 잘 알았다. 하지만, 권력이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권력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 지에는 무지했다. 그는 권력자의 옷을 입은 무능력자였다. 결국, 그가 마지막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것뿐이었다. 

“당신들이 그를 데려가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판단됩니다.”

유대인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빌라도는 머리가 복잡했다. 뭔가 모를 찝찝함과 불안감이 마음을 엄습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다시 불러서 심문한다.

예수님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불안해진 빌라도가 예수님을 다그친다.

예수님은 담담히 대답한다.

“저는 총독님의 결정에 제 생명이 달려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총독님의 재판권은 하나님이 정의를 실현하라고 부여한 일시적인 권한에 불과합니다. 재판권은 하늘에서 총독님에게 위임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저를 반역자로 몰아서 고소한 사람들은 더 큰 책임을 져야 하고요.”

“로마 황제 앞에서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풀어주면 당신은 황제를 배반하는 겁니다! 본국에서는 반역죄를 처벌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이제 판결선고 시간이 다가왔다. 정오의 태양이 뜨거웠다. 재판석에 앉은 빌라도는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언급한다. 그를 죽이라는 군중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군중들은 이제 사형을 연호한다. 빌라도는 못이기는 척하면서 예수님에게 십자가 형을 선고한다. 그가 진행하는 재판에서 그가 재판장인지 의심스럽다. 그는 끊임없이 이 판결 결과를 유대지도자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장이었지만 정의와 진실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군중과 유대지도자들에 의해서 끌려 다닌다. 판결할 권한과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만 자신이 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유대군중의 압박을 묵인하는 형태로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하는 것이다. 그는 한사코 자신이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판결은 엄연히 빌라도가 내린 것이었다. 이 재판에 대한 최종 책임은 빌라도가 져야 했다. 그는 재판장이 아닌 연예인으로 행동한다. 진실보다 인기에 목을 멘다. 지위에 집착해서 진리를 내던진다. 그는 그 순간 유대군중의 압박은 모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가장 불의한 재판관으로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