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닥친 불행은 누구 탓일까? 거대한 고통은 끊임 없이 누군가를 비난하게 만든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외면할 길을 찾아 다닌다. 고통 속에 머무는 시간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더 쉬운 길을 찾는다. 고통 속에서 아파하기보다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찾아 비난하는데 에너지를 쏟는다. 그래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분노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다. 

예수님은 길가에서 구걸하는 한 사내를 본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선이 그 눈먼 거지를 향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들은 늘 궁금하던 질문을 예수님에게 쏟아놓는다.

“이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에 이렇게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일까요? 자기 탓인가요? 부모 탓인가요?”

시각장애인은 상당한 불편함을 감수하며,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인생을 산다. 그런 고통이 우리에게 닥칠까 두렵기도 하다. 그리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 고통은 너무도 거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제자들은 시각장애의 고통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 이런 장애의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은 것이다.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면, 불만을 표출할 대상부터 찾게 된다. 그 사고를 발생시킨 당사자에게 책임을 추궁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알 수 없는 분노에 압도되어 혼자서 씩씩거린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가족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는 짜증을 퍼붓곤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런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한다. 

예수님은 시각장애라는 고통 앞에 두고서 그 불행에 관한 도덕적 책임 소재를 따지는 제자들을 나무란다. 예수님은 우리의 불행, 어두움, 암흑에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잘 아셨다. 고통에 처한 상대방을 윤리적, 도덕적, 종교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태도의 문제점을 인식한 것이다. 예수님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이 허름한 행색의 앞 못 보는 사내를 만나는 이 순간이 말이다. 예수님은 누구에게 잘못이 있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예수님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오로지 이 사내에게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를 눈먼 사람, 거렁뱅이,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수식어로 보지 않는다.

 

예수님의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의 눈은 굳어있다. 예수님의 빛나는 눈을 반사할 수 없는 깊은 구덩이 패인 듯했다. 예수님은 뭔가 결심했다는 듯이 흙 위에 침을 뱉는다. 그리고, 진흙과 함께 반죽을 만든다. 그리고는 그 반죽을 사내의 눈에 바른다. 알 수 없는 따스함이 예수님의 손끝에서 반죽으로, 반죽에서 눈으로, 눈에서 심장으로 전해진다. 그의 심장은 자신도 모르게 쿵쾅거린다. 앞에 있는 예수라는 사내의 심장이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순간 예수님은 말한다.

‘씻으세요’라는 말은 그의 삶에 결핍된 단어였다. 이 말이 오늘처럼 청량한 음악처럼 들린 일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씻어본 기억이 없다. 늘 지저분한 얼굴, 초라한 행색만큼이나 그의 마음은 한 없이 억눌려있었다. 그의 인생은 저주, 책임, 죄, 수치심이라는 단어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신학자들은 그를 가운데 앉혀 놓고 시각장애와 저주의 관계에 관해 논의했다. 아이들은 그 사내를 저주하는 욕을 내뱉으며 돌을 던졌다. 그는 저주의 아이콘이자, 놀림거리였다. 그런 취급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죄를 자책해야 했고, 저주받은 존재임을 자인했다. 그런데, 이 예수라는 청년은 그의 편에서 말한다. 그의 인생이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고, 그 누구의 죄 때문에 장애를 얻게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런 언어는 너무도 낯설었다. 누군가가 그의 편에 서서 이야기해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 온기가 서린 침을 진흙에 뱉는다. 그 침과 진흙을 섞어 반죽을 만든다. 그 반죽이 그의 눈에 닿는 순간 그는 전율했다. 마치 예수의 체온이 그 반죽을 타고 눈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그는 온몸의 감각이 새롭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고여있던 피들이 갑자기 따뜻해져서 온 몸을 순환하는 것을 감지했다. 그의 마음은 그를 압도하는 따스하고, 친근한 느낌에 녹아 들었다. 굳어있던 마음, 상처받은 마음에 변화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그의 눈가에는 촉촉한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예수는 처음으로 장애와 무관하게 그를 소중하게 대해주었다. 체온의 따스함을 흙과 마음에 담아 전해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도 사람과 부딪힐 일은 있었지만, 예수와의 만남은 달랐다.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진흙은 그를 수용해주고, 인정해주며, 이해해주는 감정을 선사했다.

그가 처음 태어났을 때, 부모님들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 후 집안은 저주받았다는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다. 동네사람들의 비난, 놀림, 정죄,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자신의 탄생이 가족에게 드리운 어두움을 때문에 집을 떠나야 했다. 그는 자신을 한 없이 자책했고, 죽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그는 지금 새로운 기대를 품은 채 실로암 연못을 향하고 있다.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의 실로암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예수님이 나를 실로암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진흙을 씻으라고 한다. 진흙을 씻는 순간 그는 자신의 더러움, 죄, 저주, 학대, 놀림, 비판, 비웃음이 쓸어져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는 새로운 빛의 세계가 열렸다. 어둠을 뚫고 밝은 빛과 구체적인 형체가 그의 삶에 들어왔다. 회색과 암흑만이 자욱하던 세상이 화려한 원색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이 사내가 눈을 뜨게 된 뉴스에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안식일에 금지된 행위를 통해서 눈먼 사내가 눈을 떴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은 구원과 치유가 안식일의 규정을 준수하고, 예루살렘 제사장들의 성전의식을 통해서만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구원은 성전, 율법과 제사의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프레임을 깨뜨리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예수는 이단자이고, 제거되어야 할 악에 불과했다. 그가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그 치유가 그 사내에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예수는 유대교를 위협하는 위험인물일 따름이었다.

사람들은 종교를 수호하기 위해서 생명을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을 살리고, 병을 치료하는 행위까지 악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정한 교리, 율법, 절차에서 벗어난 행위가 보이면 악과 이단으로 몰아버린다. 이런 종교의 틀과 패러다임 속에서는 참다운 만남이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이 시각장애인의 저주의 원인이 누구의 탓인지를 따지는 형식적이고, 관념적인 토론만 오갈 뿐이다.

이 눈먼 거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를 저주하지 않고, 그를 탓하지 않고,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한 명의 친구가 필요했다. 예수님은 모두가 그를 비난하고, 비웃을 때, 그의 편에 서주었다. 그의 눈에 흙반죽을 발라주고, 처음으로 자신의 눈을 씻는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자신의 눈을 덮고 있던 흙이 씻겨나가는 순간, 그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정작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신학자들, 종교인들, 지도자들은 무엇이 한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인지, 살리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그 사내는 길가에 앉아있는 한 사람의 거지에 불과했다. 그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애초에 관심거리조차 아니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한 사람을 바라 보았다. 그의 마음을 만졌고, 그와 개인적인 접촉을 했다. 그 만남, 새로운 관계가 어둠 속에 갇혀있던 사내의 눈에 빛을 선사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대화다. 사람을 저주받은 존재가 아닌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대할 때 구원과 치유가 임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참다운 만남을 갖고, 의미 있는 접촉을 하는 속에서 구원을 경험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걸었던 길이고, 시각장애자를 인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