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순간도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는 유일한 동료는 “시간”뿐이다. 하지만 시간은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공기나 물이 너무 흔해서 그렇듯.
시간은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이 있는데, ‘일각이 여삼추’라던가 ‘세월이 유수 같다’라는 말들은 심리적 시간에 해당된다. 누구나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바이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심리적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데,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있다고 한다. 뇌과학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학설을 제시한다. 인간의 뇌에는 시간을 지각하는 감각회로가 있으며,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이 회로의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또 다른 학설은 기억의 양과 관련이 있는데, 어렸을 때 혹은 충격이 큰 사건을 접할 때에 기록되는 기억량에 비해 노년기에는 기억력이 떨어져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기억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일상에 빠져 살다 보면 누구나 쉽게 겪는 일이지만, 소위 말하는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인생의 선배들은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충고 한다.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일은 신비롭고, 주의를 많이 기울여서 그런지 기억에도 많이 남는다. 첫사랑의 추억이 그렇고 첫 직장을 구해 사회에 첫발을 디딜 때도 그렇다.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면 기억량도 증가하여 심리적 시간도 더 늘어날지 모른다.
[서울숲] 우린 언제 어른이 되나요?
한편 시간과 관련된 가장 재미있는 상상 중 하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역사의 영웅이 되어보는 것이다. 타임머신은 과연 미래에 출현할 것인가? 어렸을 때 공상과학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들이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속속 현실로 등장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낼 마지막 산물은 타임머신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만일 먼 미래의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와서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면, 현재라는 지금 이순간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대략 난감해진다. 또한 그는 과거에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타임머신의 발명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섞어서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릴 가능성이 많다. 한때 “Back to the Future” 라는 영화에서 이런 상황을 잘 연출한 바 있다. 물론 현대과학으로는 타임머신의 제작이 불가능한 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을 거슬러 가기 위해서는 빛보다 빠른 이동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질량이 있는 물질이 빛의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과학자들은 타임머신에 관한 상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빛보다 조금 더 빠른 입자가 발견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가 너무 흔해서 물마냥 공기마냥 대접하고 있는 시간은 이처럼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아마도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의 발명은 과학에 집착하는 인류에게는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일 것 같다.
[능내리] 시간의 터널을 지날 때
영화를 만들 때에는 편집이 아주 중요하다. 시간의 순서보다는 스토리의 전개가 더 중요하므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스토리의 전개에 맞도록 편집된다. 상상의 나래를 펴면 우리도 시간을 쉽게 초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시간의 굴레에 갇혀 있으며, 단 1초도 벗어날 수 없다. 반면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시간을 제어할 수 있는 절대자 하나님. 그분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며 인간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님이 시간에게 맡긴 임무는 사람들과 평생 동료로 지내면서 그들의 삶을 시간표에 잘 기록해 두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제작하듯 그 기록들은 절대자 하나님의 스토리에 따라 편집될 것이다.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으나 시간은 우리 삶을 기록하는 감시자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까 시간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간을 단지 아껴 쓰자는 말은 아니다. 살아가는 순간 순간을 진실되게 살아가려고 노력해보자는 얘기다. 복잡 다난한 현대사회에서 짧은 시간이라도 거짓없이 진실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진실인지 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에겐 성서와 같은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두물머리] 함께하는 시간들
어느 장로님의 간증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간증 중에 “시간은 곧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간증의 주제와는 좀 다른 맥락의 얘기였는데 왠지 모르게 이 말씀이 인상이 깊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얘기이며, 시간을 보내면서 그만큼 남은 인생도 짧아지는 것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분 일초도 아깝다고 한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람되게 사용할 것인지가 그들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도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인류의 역사라는 긴 흐름에서 보자면 약간의 수명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 그 자체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겐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간은 참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동료이자 감시자이며, 또한 우리의 생명 그 자체이자 소중한 선물로 현현한다. 글을 쓰면서 한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나와의 소중한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겠다는 것이다. 글은 자신을 반추하는 거울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글을 맺는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11, 2014년 11월, 이재호, SK 이노베이션 글로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