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지만, 소통과 사랑의 감정표시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2007년 9월말부터 10월 초에 걸쳐 열린 세계게임 챔피언대회인 WCG(월드사이버게임대회)는 미국 시애틀에서 열렸다. WCG의 주력 스폰서 회사의 지원 중단으로 WCG는 올해부터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어 주관사와 팬들 모두의 안타까움 속에 대회종료를 선언했지만, 지난 2001년부터 시작하여 국내와 해외에서 인기리에 열렸던 대회다. 사실 우리나라가 게임강국으로 만든 상징적인 대회로 12년 동안 지속된 축구의 월드컵이나 게임올림픽 같은 성격의 세계 최대의 게임대회다. 총 12회중 2004년 샌프란시스코, 2007년 시애틀, 2010년 LA 등 미국에서 3번 열렸다. 특히 2007년 미국 대회는 미국이 종합우승을 했지만, 필자가 단장으로 있던 회사가 운영하는 게임단 소속의 송병구 선수가 스타크래프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시애틀로 향하던 비행기안, 많은 출장 중에서도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느 조직에서나 있었던 상하간의 소통의 어려움 때문이었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설명을 추가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파생되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피곤해져 있었다. 여느 때라면 잦은 유럽이나 미주출장과 같은 장거리 여행의 경험으로, 이륙 1시간 내에 잠이 들고 착륙 1시간 전에 깨어나는 완벽한 시차적응의 비법을 실천했을텐데 그날은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연히 비행기안 영화를 검색하다 무심코 보게 된 영화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이 영화는 2003년 일본의 신예작가인 오가와요코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2005년에 코이즈미 타카시 감독이 만든 영화다. 중견배우 테라오 아키라가 박사 역을, 후카츠 에리가 주인공 가정부 쿄코 역할을 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형님 내외와 같이 관람을 위해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형은 현장에서 죽고, 형수는 다리를 다치고, 동생인 수학박사 주인공이 기억을 잃는다. 그래서 주인공은 사고 당시인 1975년을 기준으로 이전의 기억을 생생하지만, 사고 이후는 단지 80분(1시간 20분) 밖에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람의 일상을 통해, 이 영화는 사랑과 배려와 소통은 오히려 그 어떤 사람 보다도 기억력이 없는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밋밋하고 조용한 전형적인 일본 영화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로 집중이 되었다. 급기야 한번 보고 나서 다시보기로 세 번,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다시 두 번을 더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출장에서 돌아와서는 DVD를 사서 다시 세 번을 더 보고, 아예 DVD 10장을 더 사서 중간 간부들에게 나누어 주기까지 했다. 지금도 때때로 책과 영화를 다시 꺼내 보는데 지금까지 같은 영화를 10번 이상 본 몇 안 되는 영화일 것이다. 액션도 긴박감도 없는 무명의 외국 영화의 무엇이 그토록 필자를 빠져 들게 했을까?
그렇다. 그 동안 조직이나 개인간의 “소통을 위한 소통”을 위해 너무 많은 이야기와 대화가 있었다. 부족함이 아니라 넘침과 과잉의 작용과 반작용이 낮은 부작용이 심했던 것이다. 평소에 마치 서로에게 전혀 양보를 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던 부부가 ‘우리 대화가 필요해요’ 라고 말하고 대화를 시작하면 대부분의 부부는 10분내로 싸우게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또 다른 엄연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소통이나 감정의 전달에는 복잡한 설명과 지식이나 많은 기억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진정성과 반복적인 일에도 짜증내지 않고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 주는 상호작용이라는 간단하고도 명확한 이유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2. 계단수(階段數) 24
시끄러운 여학교 쉬는 시간, 새로 부임해오는 총각 수학 선생님, "루트"라는 별명을 가진 그 선생님은 어떻게 자기가 루트라 불리게 되었는지, 또 왜 수학 선생님이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고등학교 시절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 미혼모가 되자 루터의 어머니는 프로 가정부로써 긍지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데 루트의 엄마(코코)는 파출부 인력소개소에서 일하는 가장 어린 나이이지만 경력 10년의 베테랑 가정부이다. 최근 여러 명의 가정부를 갈아치운 기억 장애의 수학박사(테라오 아키라)에게 새로 가정부로 싱글맘인 쿄코(후카츠 에리)가 찾아온 것이다.
형수의 면접을 통과하고 그 다음날부터 출근한 별채 현관에 들어간 쿄코에게 박사는 “자네 누구인가?”, “자네 신발 사이즈는?” 라는 질문을 던진다. 가정부가 24라고 답하자 박사는 “참 깨끗한 숫자네, 4의 계단수이구먼.” 계단수는 4의 경우 1,2,3,4를 곱하면 나오는 수인데 2는 2의 계단수, 6은 3의 계단수, 24는 4의 계단수이다.
1 = 1
1 x 2 = 2
1 x 2 x 3 = 6
1 x 2 x 3 x 4 = 24
계단수(階段數), 모양이 마치 계단처럼 생겨서다.
평소 방에만 있던 박사님이 가정부 모자와 함께 야외 외출이 자주하고, 급기야 무리한 야구 연습을 한 후 감기 몸살로 몸져눕는다. 그래서 3일 동안을 퇴근도 안하고 간호하다, 나중에 박사님의 형수의 오해를 사서 가정부가 해고된다. 이 해고된 가정부는 다른 사무실 계단청소를 하면서, 4번째 계단에서 박사님이 가르쳐준 계단수를 떠올리고 혼잣말 처럼 중얼거린다. 마치 박사님과 대화 하듯, 눈에 보이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반면 사고로 인해 80분밖에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수학박사는 매일 아침이 첫 대면이고, 언제나 숫자로 된 인사를 반복해서 나눈다. 그 다음날도 똑 같은 질문을 한다.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도 “너는 누구냐? 너의 신발 크기는?”이라고 질문하고, 내일도 “너는 누구냐? 너의 신발 크기는?”하고 똑 같이 매일 묻는다. 이것이 대부분의 가정부가 얼마 있지 못하고 그만둔 이유다. 이런 따분하기 짝이 없는 박사님께 쿄코는 예전의 다른 가정부와는 달리 박사와 대화하는 법을 금방 찾았다, 어쩌면 미리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늘 처음처럼..
“자네 누구인가? 자네 신발 사이즈는?” 똑 같은 질문을 하는 박사님께 단순히 24라고만 답을 하지 않고 “24, 4의 계단수 이죠..” 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어제 일도 기억 못하는 박사님의 입가의 웃음이 그 짧은 시간 상대방과 소통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 상대방이 묻는 틀과 대답에 맞게 소통하자. 사람과의 소통에는 같은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잘 알아듣는 TV나 라디오 같은 무선채널이 따로 있는가 보다. 그 동안 채널을 맞추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그 많은 대화를 하고도 소통이 안된 단순한 진리가 여기에 있다.
3. 우애수 (友愛數)
생일을 묻는 박사에게 가정부 쿄코는 2월 20일이라고 하자 그대로 칠판에 220으로 표시하고 박사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어 뒷면에 새겨진 우수논문 학장상 번호 284번과 비교하여 220과 284의 약수의 합이 각각 상대방을 가리키는 소위 "우애수. 신의 손길로 연을 맺은 숫자." 라고 설명하고 즐거워한다.
220의 자신을 뺀 약수는 모두 11개인데 이들의 합은 1+2+4+5+10+11+20+22+44+55+110 = 284 이고
284의 자신을 뺀 약수는 모두 5개로 이들 약수의 합은 1+2+4+71+122 = 220 이 되어
신기하게도 220과 284는 친구의 관계에 있는 숫자이고 쉽게 존재하지 않는 쌍이라고 한다. 유명한 수학자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했다는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로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가정부의 생일과 박사의 손목시계에 새겨진 숫자가 이렇게 멋진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고 감탄을.. "
아무런 관계도 없는 220과 284에게서 이런 기막힌 관계를 찾아내다니, 서로 다르게 자라고 개개인이 우주의 중심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제와 소통에도 공통점을 찾아서 서로의 관계를 긴밀하게 맺어주는 우애와 사람이 필요하다.
누구를 만나든지 고향을 물어보고 나이를 물어보고 군대생활을 물어보는 동기는 참 좋다. 하지만 편가르기가 아닌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으로 이제는 바뀌어 외장과 머릿속의 포장이 아닌 몸에 배인 진정성 있는 생각과 느낌과 사랑을 이야기 할 때다.
4. 루트(√)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온 몸에 종이를 붙이고 다니시는 박사님은 종이에 기억해야 할 것을 적어서 옷에 옷핀으로 붙이고 다닌다
어느 날, 박사는 가정부 쿄코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그녀에게는 혼자서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10살 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비통하게 운다. 가정부의 어린 아들은 혼자 먹게 하고, 자기는 저녁밥을 얻어먹는 것이 미안하다고 울면서 당장 가정부를 집으로 가라고 한다. 얼마 뒤 산책을 나가서 나물을 뜯던 가정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네에게 아들이 있어?” 라며 똑 같은 질문을 하고, 봄놀이 산책을 그만두고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오는 사건을 경험한다. (이렇게 정당히 고용한 가정부의 혼자 있는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박사님의 모습과 최근에 발생한 대형 조난사고 시 혼자 도망간 선장과 배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어간 어린 학생승객들의 모습이 어지럽게 섞여서 떠오른다. 우리 어른들에게 이 80분 기억의 박사님과 같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 ).
결국, 가정부의 혼자 지내는 아들을 걱정하던 박사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들도 집에 들르도록 하고 저녁도 같이 먹고, 머리 모양을 보고는 루트(√)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수학과 야구이야기로 소통을 한다. 곧, 수학과 야구라는 콘텐츠와 서로 아끼는 마음의 콘테이너로 서로 교류를 한다..
" 이제부터 넌 루트야. 루트기호는 어떤 숫자도 마다 않고 자기 안에 받아들이지. 루트는 아주 마음이 넓은 기호란다. 어떤 수도 마다 않고 자신 안에 감싸준다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다"
이보다 더 중요한 감동은 가정부 쿄코가 아들 루트한테 “박사님이 어떤 똑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처음 듣는 것처럼 답을 하라” 고 가르치는 대목이다. 나도 이 대목에서 크게 반성을 하게된다. 어릴 때 부모님이 아이들이 매일 똑 같은 말과 질문을 해도 귀찮아 하지 않으시고 마냥 귀여워 하셨는데, 자라서 성인이 된 우리는 배우자든 부모님이든 똑 같은 말을 하면 짜증을 내었으니 나를 탓하랴 내 입술을 탓하랴.
5. 완전수 (完全數)
1975년에 기억이 멈추어진 박사는 유달리 28을 좋아한다. 박사가 좋아했던 당시 타이거즈 야구선수 등 번호(28) 에나쓰 유타카는 훌륭한 투수인데 박사는 30년이 지나서도 아직도 그가 은퇴한 것도 모르고, 그의 방어율과 팀의 갖가지 기록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28은 또한 완전수 인데, 완전수는 6과 28과 같이 자신을 제외한 약수들의 합이 바로 자신이고 또한 연속된 숫자들의 합과 같다. 곧, 완전수는 자신의 약수의 합일 뿐만 아니라 연속된 자연수의 합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8은 약수인 1+2+4+7+14=28이고 연속된 자연수 합도 1+2+3+4+5+6+7=28이다. 박사와 가정부의 아들 루트는 공통점인 야구를 좋아하고 한신 타이거즈의 팬이라는 것이다. 박사는 루트에게 야구와 함께 많은 수학적 지식을 가르쳐 주게 된다. 이 또한 공통관심사의 발견과 발전이다,
1975년 당시 타이거즈 에이스투수 에나츠의 백남버 28. 가정부가 우연히 발견한 28의 약수를 다 더하니 자신의 수가 된다고 좋아하고 칭찬도 받는다. 완전수 가장 작은 수는 6이고 그 다음이 28이고, 그 다음이 496 과 8128 이라고 한다.
6 = 1+2+3 (약수의 합이자 연속된 자연수의 합)
28 = 1+2+4+7+14 (약수의 합),
28 = 1+2+3+4+5+6+7 (연속된 자연수의 합)
496 = 1+2+4+8+16+31+62+124+248 (약수의 합)
496 = 1 ~ +31까지의 합(연속된 자연수의 합)
완전수를 기준으로 완전수가 아니면 약수의 합이 자신보다 커지든가 작아지는데 커지면 과잉수 이고 작으면 부족수라고 한다. 18은 약수의 합이 (1+2+3+6+9=21) 18보다 크니 과잉수이고, 14는 약수의 합이 (1+2+7=10) 14보다 작으니 부족수라고 한다. 딱 1이 부족한 수는 얼마든지 있지만 딱 1이 많은 과잉수는 없다(없다는 표현보다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는다고 한다.)
완전수, 과잉수, 부족수, 필자가 처음에 생각하기는 쓸데없는 수학자의 장난인 것처럼 느꼈으나 생각할수록 나는 나의 분신(약점, 강점, 부분 모습)과 같은 사람일까? 영화나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해변가에서 루트와 야구공을 주고 받는 박사님의 등뒤에 새겨진 등 번호 28번, 이들을 바라는 가정부 쿄코와 오해하고 시샘했던 박사님의 옛 연인 형수의 나란히 않은 보습. 80분의 기억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성과 끈기와 진정성의 결집으로 만들어진 사랑을 실천하는 힘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남을 탓하고 말꼬리로 결국은 주제와 벗어나고 목적과 수단이 엉키어 어쩐지 기분 나쁜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이 세상의 삶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이다. 계단수와 우애수에 이어 전혀 완전해 보이지 않는 수인 28을 완전수로 발견하고 불러주고 또 생활속 삶에 몸으로 적용하는 박사와 가정부 그리고 아들 루트를 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낀다.
이 책/영화의 제목인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바로 오일러의 공식(등식)으로, 전세계 수학자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고 한다.
e = 2.71828182… 무한수 이고,
π = 3.141592653… 원주율이고
i = (√-1)는 허수(상상의수)이다.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들인 e, π, i 의 모임인 e^(πi) 여기에 1을 더하면 0, 즉 완성 또는 무(無)의 상태가 된다. 모순되는 것들에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하나로 모여서 0을 이루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0과 無로써 존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도 이처럼 나의 작은 희생과 역할이 축복과 공동체의 완성의 통로가 되었으면 한다.
인간의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일러의 공식에 따르면 존재하고 있다(0, 無)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물질에도 자연현상에도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거야.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해.."
“마음으로 보면 시간은 흐르지 않아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본다”
5. “내 기억은 80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걸로 충분하다.
사고로 1975년 전의 수학적 전공지식과 순수한 아름다운 기억들은 다 있지만, 그 사고 이후로는 오직 80분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박사의 마음은 오히려 제약이 없는 거의 무한대였다. 정확한 수학자이었지만 정답만 원하지는 않았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어설픈 새싹들의 주장을 참고 들어주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소통하려는 우리의 잘못이 빗물처럼 씻겨졌으면 좋겠다. 80분밖에 기억을 못하지만 루트에게 감동을 주는 박사나, 무학의 상태에서도 자녀사람과 인생의 경험으로 한두 마디 충고해 주시는 예전의 부모님들은, 요즘의 어떤 똑똑한 부모나 전문가 보다 더 우리에게 필요한 선생이고 멘토이고 어른이셨다.
영화 속의 박사는 고용주인 형수가 쿄코가 매일 11시 ~ 7시 근무시간의 규칙을 지키지 않고 3일간 주야로 머무는데 반해, 아픈 박사를 간호한 가정부를 오해하여 해고하고도 계속해서 아들 루트가 박사를 만나는 저의를 불러서 다그치는 형수, 그리고 형수의 말을 옆방에서 듣고 있다가 형수에게 다가와 독백하듯 말하면서 내민 오일러 공식이 자꾸 생각난다. 전혀 수학자답지 않은 오일러 공식의 해석이 말이다.
“나는 80분밖에 기억하지 못합니다. 잃을게 이젠 아무것도 없어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고 자연스럽게 몸을 내맡겨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볼 생각입니다. "
영화의 끝, 엔딩 자막에 흐르는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와 야구하는 박사와 루트의 배경장면. 이젠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인다.
“하나의 모래에서 하나의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하나의 천국을 보고,
손바닥 안에 무한을 실어 순간 속에서 영원을 느낀다.”
머리의 기억력은 비록 80분에 머물러 있지만 박사님의 몸은 이제 점점 기억력과 상관 없이 가정부를 알아보고 아들을 알아보고 루트의 야구친구들에게 30년 전의 타이거즈 야구단의 백넘버를 붙여서 알아본다. 머리의 기억을 초월한 몸의 기억. 그야말로 본 컬럼의 주제인 로고스와 레마, 곧, 로고스(머릿속의 기억)와 레마(몸의 기억)의 해석과 너무나 잘 맞는 영화이다.
하나(1)는 우주이고 모든 것이다. 하나(1)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리..
수많은 작은 것들이 모이면 다시 오직 하나가 될 뿐이라고.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3, 2014년 5월, 권강현, 삼성전자 고문/전(前) 삼성전자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