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첨단 과학 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실제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기반으로 이 말에 진심으로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기술이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다면 왜 지금의 세상이 우리가 어렸을 때 약속받았던 세상과 이렇게 많이 다르단 말인가? 오늘도 나는 만원 전철 속에서 사람들에 치이며 출근을 해야 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하다못해 시시껍절한 제트팩이라도 하나 날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우리나라처럼 워낙 밑바닥에서 시작한 경우에는 서양에서 몇 백 년 간 달성했던 기술 개발의 결실을 수십 년 만에 통으로 맛보았기 때문에 그나마 건물들 때깔이라도 좀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전통적인 선진국들의 경우에는 변화를 느끼기가 더 어렵다. 윌리엄 번스타인의 ’부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1825년에 태어난 사람이 50년 동안 느꼈던 변화는 1925년에 태어난 사람이 50년 동안 느꼈던 변화보다 훨씬 컸을 것이라고 한다. 변화를 얘기함에 있어서 철도와 전신의 발명이 있었던 시기를 따라 잡을 수는 없다. 자꾸 자동차에 집착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100년 전 자동차와 지금 자동차를 비교해 봐도 별 차이를 느끼기는 힘들다. 똑같은 연료에 똑같은 매연을 뿜어내고 동작 방식도 근본적으로 똑같다. 물론 요즘 자동차는 차 안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개콘에 나오는 말을 빌자면, 그래서 뭐?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는 뉴스는 많은데 (흰 마스크를 하고 강남 대로를 돌아다니는 언니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변에서 그 결실을 찾아보기 힘든 의료 분야 외에 확실히 큰 발전을 이루었다는 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분야가 바로 정보 통신이다. 무어의 법칙을 성실하게 지킨 반도체 산업 덕분에 나는 오늘도 침대에 누워 아이패드 위에서 까를 대제의 유럽 정복을 재현한다. (스티브 잡스 만세!) 구글에서는 사람 없이 혼자서 돌아다닐 수 있는 자동차도 만들고 있다. 정보 과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 지능 분야의 발전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 분야 역시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발전의 속도는 사람들의 예상을 훨씬 밑돌고 있다. 처음 음성 인식 시스템을 만들 때 사람들은 여름 한 철이면 쓸 만한 시스템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조금 쓸 만한 물건들이 나오고 있다. 인공 지능의 마일스톤이라고 여겨지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컴퓨터도 나오려면 요원해 보인다. 얼마 전에 누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느니 어쨌느니 하는 보도가 나오기는 했지만 실제로 컴퓨터가 한 답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저는 13살에 불과한 우크라이나 꼬마라서 그런 건 잘 몰라요'라는 답이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내 생을 마치기 전에 2001년 우주여행에 나오는 HAL과 같은 컴퓨터는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를지도… . 하지만 구글 자동차가 있잖아? 라고 말한다면 글쎄… 내 생각에는 그것도 요원한 일이다. 제도적인 뒷받침과 사람들 인식의 변화라는 커다란 의문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기술적인 면만 봐도 무인 자동차는 아직 젖먹이가 첫 걸음마를 딛은 것에 불과하다. 무인 자동차는 길에 있는 시커먼 형상이 피해가야 할 뻥 뚫린 구멍인지 무시하고 지나가도 될 누가 버린 신문 조각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일상적으로 우리가 쓰는 지도보다 훨씬 정밀하게 매핑된 지역(구글이 위치한 도시 하나 정도)을 벗어나면 제대로 동작하지 못한다. 눈이라도 오게 되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쉬는 날이다. 이 밖에도 엄청난 기술적 문제가 남아 있다. 무인자동차 주창자들은 이 문제들이 사소한 문제들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문제이지만 무인자동차는 해결되지 않으면 운행이 불가능해지는 문제들이고 사람들에게는 이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상식이라는 하나의 무기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만 무인 자동차의 경우에는 일일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런 문제가 무한정으로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되어 실제 도로를 달리는 것을 보는 것도 내 생애에는 힘들 것 같다. 이 말이 단순히 내 나이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대해 돌려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처럼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인공 지능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비합리적일 정도의 기대를 하고 있다. 얼마 안 가 사람의 지능을 대체할 수 있는 컴퓨터가 등장할 것이라는 믿음은 심지어 컴퓨터를 전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많이 다루게 되면서 실제로 자신들이 컴퓨터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실제 상호 작용은 소프트웨어를 설계한 프로그래머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생각일 것이다. 내가 오타를 쳤을 때 그것을 고쳐주는 것은 컴퓨터가 고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수정 알고리즘을 고안해낸 사람의 의도가 발현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단 말이다. 이에 대한 확장으로 왓슨이라는 컴퓨터가 퀴즈 게임 쇼에서 사람들을 능가하는 활약을 벌였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 공은 그런 알고리즘을 고안해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결국 발전한 것은 정교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기술자들의 솜씨일 뿐이다. 물론 사람들의 말처럼 곧 인간과 같은 컴퓨터가 등장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말을 빌자면 예측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특히 그것이 미래에 관한 것이라면. 어쨌든 이런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인공 지능의 속살을 제대로 발라낼 수 있는 수술칼이 필요할 것이다.
휴버트 드라이퍼스처럼 인공 지능에 대한 연구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그 한계를 지적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진정한 통찰을 보여주는 사람은 애매한 철학적 논증을 벗어나 실질적인 논리로 인공지능의 한계를 친절하게 설명한 ’괴델 에셔 바흐'의 저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이다. 이 책에서 호프스태터는 놀랍게도 비전문가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는 언어를 통해 인공 지능의 한계와 인간의 두뇌와 인공 지능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고 있는 그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왜 컴퓨터는 시킨 일 밖에는 하지 못하고 자신이 동작하는 기반에 대한 성찰은 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체스판을 뒤엎고 경기장을 뛰쳐나가는 행위는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는 이상 컴퓨터는 할 수 없는 일인가? 이 두꺼우면서도 밀도 높은 책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키포인트는 바로 ’인간 두뇌는 물질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 지능은 물질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나? 어차피 컴퓨터도 실리콘과 구리, 플라스틱이라는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물론 컴퓨터도 물질로 만들어져 있지만 컴퓨터의 지능과 물질 사이에는 ’추상화'라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추상화라 함은 간단한 기호로 현실을 표시한다는 뜻이고 호프스태터가 기호 체계에 대한 설명으로 이 책을 시작한 것도 이 추상화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추상화된 기호 체계로는 현실을 나타낼 수 없고 기호 연산으로만 인간의 인식을 표현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질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순이 있을 수 없지만 기호 체계는 괴델의 정리에 따라서 자체 모순을 가질 수밖에는 없다. 실질적으로 물질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현 상황에서 알기는 힘들지만 몇 가지 가능성 중에 하나가 양자역학이다. 인간의 감각이 양자역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양자역학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의 눈은 색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고 냄새도 지금처럼 맡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이 인간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다. 구성 요소만 피상적으로 보면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는 비슷해 보인다. 컴퓨터의 기본 연산 단위는 비트, 즉 소자에 걸린 전압이 두 가지 레벨 중 어느 것이냐, 좀 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0이냐 1이냐의 여부이고 인간의 신경 체계 역시 전류가 흐르느냐 마느냐의 여부에 따라 on/off 두 상태 중 하나로 나타낼 수 있는 구성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신경이라는 것은 생성되고 변화하고 노화하는 물질이다. 반면 컴퓨터는 철저한 추상 체계 위에서 인위적으로 새로 구성된 체계로서 자신을 구성하는 물질의 체계와는 철저히 절단된 체계이다. 따라서 인간의 두뇌와는 달리 물질세계의 다양함과 섬세함을 근본적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데카르트처럼 정신이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해서 두뇌와는 다른 수준에서 추상화된 사고를 벌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사실 ‘있다’라는 말로 나타내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합리적인 이성으로 따지기 힘든 종교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아주 신기한 것은 인공 지능의 한계를 이토록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호프스태터 자신이 인공 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라는 사실이다. 내 생각에 인간 지능을 이해하기에는 인간의 사고 체계 자체가 너무나도 큰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호프스태터는 좀 더 깊은 통찰을 갖고 연구를 계속한다면 그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컴퓨터 구조와는 전혀 다른 혁명적인 컴퓨터가 등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미래를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런 주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이토록 명쾌하고 쉽게 제시하는 책은 아직도 찾아보기 힘들다.
2.형식 체계와 의미
작자가 앞쪽에서 소개하는 형식 체계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자. 작자가 형식 체계를 맨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형식 체계를 통해 표현과 실제라는 인간 인식의 근본적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이다. 추상화된 기호와 그것이 나타내는 현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것이 나타내는 현실이 실재하는 현실과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 그 문제를 최대한 형식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형식 체계와 그 형식 체계에 어떻게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서는 형식 체계의 정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수학이나 컴퓨터 관련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먼저 형식 체계가 아닌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뭘까? 바로 언어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어를 생각해 보자. 지금 바로 당신 눈앞에도 한글이 깨알같이 적혀있을 것이다.
한국어라는 체계가 형식 체계가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언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불명확한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형식 체계의 정의에 비교해서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한다면 첫 번째로는 그 범위의 불확실성일 것이다. 형식 체계와의 비교를 위해 글로 쓰여진 한국어만 생각해 봐도 그 범위는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한글과 숫자, 그리고 구둣점으로 이루어진 글들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 보기를 생각해 보자.
(1) 뵈햏떠크파샤킄
(2) Babidabida
(3) 와떠퍼카류토킹어바웃?
(1), (3)번은 한글로 쓰여져 있긴 하지만 한국어라고 하기는 힘들고 2번은 영어로 쓰여져 있긴 하지만 알파벳을 아는 한국 사람이라면 대충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언어가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라면 이 중에 어느 것이 한국어라는 체계에 들어가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국어 대사전에 나오는 단어들만 사용한 글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납득이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장담컨데 한국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리고 있는 글들에서 한국어 대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리고 의미가 없거나 문법에 맞지 않는 글들을 언어라고 봐야할지도 분명치 않다. 문법에 맞으면서 한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단어들을 사용한 글이라고 범위를 좁혀 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법이라는 것이 사람들마다 생각이 틀린 것이고 아무리 정교한 문법책이라도 사람의 수준에서 정교한 것이지 실제로는 그다지 정교하지 않다. 문법이 그렇게 정교했다면 한글 오류 수정 프로그램들이 아직도 그렇게 헤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편집자 여러분 여러분의 직업이 컴퓨터에 의해 위협받을 시대는 아직 멀었으니 일자리 걱정 하지 말길. 비교를 위해 아주 간단한 형식 체계를 하나 소개하겠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형식 체계인데 가장 짧은 구성요소는 MF이고 그 밖의 다른 요소들은 MF에 S나 D라는 글자가 여러 개 붙은 것이다. 따라서 MF, MFSS, MFDSD 등은 이 형식 체계의 구성 요소가 맞고 MFM이나 MMSDS등은 구성요소가 될 수 없다. (이러한 ’가족'이라는 형식 체계의 정의에서 의도한 바는 전통적인 가족 구성의 형태이다.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아들, 아들', ‘엄마, 아빠, 딸, 아들, 딸'은 이 체계에 속할 수 있지만 ’엄마, 아빠, 엄마'라던가 ’엄마, 엄마, 아들, 딸, 아들' 같은 경우는 이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형식 체계를 정의할 때의 문제점은 조금 뒤 형식 체계의 의미를 설명할 때 다시 다루겠다)
또 하나 한글이라는 체계가 형식체계와 거리가 먼 이유는 생성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생성 규칙이란 기존 구성 요소로부터 새로운 구성 요소를 이끌어낼 수 있는 규칙이다. 다시 앞의 간단한 ’가족'이라는 형식 체계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 형식 체계의 생성 규칙은 다음과 같다.
시작점(책에서는 ’공리'라는 용어를 쓴다)은 MF
어떤 것이 구성원이라면 그 뒤에 S 또는 D를 추가한 것도 구성원이다. (책에서는 구성원이란 말 대신에 ’정리'라는 용어를 쓴다)
왜 생성규칙이 필요한가? 앞에서 말한 ’MF 뒤에 S나 D라는 글자가 여러 개 붙은 것'이라는 정의로는 불충분한가? 이 정의와 위의 생성 규칙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생성규칙의 경우는 단계적이고 명확한 판별 방법을 알려주는 반면에 ’MF 뒤에 S나 D가 여러 개 붙은 것'이라는 정의는 전체를 보는 눈을 필요로 하고 구체적인 알고리즘을 정의하지 않는다. 사람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정의로 체계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컴퓨터의 경우에는 한 글자 한 글자 단계적으로밖에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정의가 구체적인 알고리즘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생성규칙의 경우 그러한 알고리즘을 제공해줄 수 있다.
한글이라는 체계의 경우 이러한 생성규칙이 없다. 물론 한 문장에서 다른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문장에서 사람을 적당한 명사로 대치하면 다른 문장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라고. 따라서 이러한 규칙은 일종의 생성 규칙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정의할 경우 모든 문장 형태에 대해서 별도로 규칙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그 규칙 자체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딱히 한글이라는 체계가 형식 체계가 아닌 이유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형식 체계의 논의에서 비유의 대상으로 삼기도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한글 체계에 속하는 문장이 우리 마음속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창출해낸다는 것이다. 앞의 ’가족'이라는 형식 체계에 대한 설명도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다. S를 아들, M을 엄마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것은 이미 형식 체계에 의미를 부가한 것이다. 형식 체계는 철저히 철자 비교의 수준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부가적인 의미를 마음에 두고 형식 체계를 볼 경우 예를 들어 이런 오류를 벌일 수 있다. ‘MF3S’가 ’가족'이라는 형식 체계에 속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는 MF3S가 엄마, 아빠 그리고 세 아들 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체계의 의미를 보면 이 체계에 속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MF3S는 이 형식 체계에 속할 수 없다. 3이라는 글자는 S도 아니고 D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인 이상 어떤 체계를 접할 때 그 의미를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의미가 부가된 것이고 항상 우리 마음속에는 ’형식체계'+’의미'가 복합적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형식체계의 구성원을 따진다던가 하는 형식체계 수준의 작업을 할 때는 철저히 의미를 배제해야만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형식체계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앞의 문장도 사실 상당히 애매한데 형식체계의 뜻이나 의도, 그 의의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형식체계를 다룰 때 ’의미'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아, 이런 애매한 언어로 형식 체계를 다루려니 좌절감이 들지만 형식체계의 의미라는 말이 나오면 그 의미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미라는 단어와 다른 특별한 용어라는 사실만 잊지 말자. 그렇다고 형식체계의 의미의 의미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미라는 말의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인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언어에서의 의미란 그 말에 대응되는 두뇌 안의 어떤 개념을 의미한다. 물론 두뇌 밖에 존재하는 독립적이 개념이 말에 대응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개념이 두뇌 밖에서 실제 존재할 수 있느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철학적인 토끼굴로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행위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두뇌 안의 개념만을 생각하기로 하자. 두뇌 안의 개념이라는 말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에 대해서는 책 뒤에서 어느 정도 다루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는 두뇌 안에 개념들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토끼’라는 개념이건 ‘탈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이든 모호함이 없이 정확히 정리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ㅌ,ㅗ,ㄲ,ㅣ’라는 기호들로 이루어진 ‘토끼’라는 단어는 머리 속의 ‘토끼’라는 개념과 대응이 되게 되고 이런 대응 관계를 우리는 단어 또는 문장의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는 일대일 관계는 아니다. 하나의 단어가 두 가지 이상의 개념에 대응될 수 있고 두 개의 단어가 하나의 개념에 대응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 flies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이 단어가 ‘난다’라는 개념에 대응되는지 ‘여러 마리의 파리’라는 개념에 대응되는지를 다른 정보 없이 정할 수는 없다. 대응되는 개념을 정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상황이란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 등을 한데 묶어서 이루는 말로서 형식적인 기호로서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문장 수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문제를 다룰 때에 흔히 얘기되는 다음 세 개의 영어 문장을 보자.
Time flies like an arrow.
Fruit flies like an apple.
Toilet flies like a hammer.
이 세 문장은 대충 보면 거의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의미에서는 유사점을 찾기 힘들다. 한글로 번역하자면 첫 문장은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이고 두 번째 문장은 ‘초파리는 사과를 좋아 한다’이고 세 번째 문장은 의미를 규정하기 힘들다. 여기서 세 번째 문장 뿐 아니라 첫 번째 두 번째 문장도 사실 쉽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문장이 왜 ‘시간 파리는 화살을 좋아 한다’라고 번역되지 않는지 알려면 언어를 형식적인 기호로서만 받아들인다면 파악하기 힘든 현실에 대한 상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언어의 의미란 개념과 일대일 관계도 아니고 대응 관계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어의 의미라는 것도 어떤 기호와 그에 대응하는 다른 어떤 것(언어의 경우에는 ‘개념’)과의 대응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형식 체계의 의미는 언어의 의미보다는 훨씬 정교해야 한다. 관계 자체가 명확해야 하고 하나의 기호는 의미는 하나만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의미라는 것은 형식 체계에 외부에서 부여한 것이지 형식 체계에 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의미가 워낙 명확해서 그 의미 이외의 다른 것은 부여하기 힘든 형식 체계도 있지만 이것은 개별적인 형식 체계의 특징으로 봐야 하며 의미는 형식 체계와는 구별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어떤 체계를 이런 식으로 의미와 철저히 분리해서 받아들이라는 요구는 인간에게는 너무 무리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인지되는 모든 체계에서 패턴을 찾으려고 하고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이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생존 기반이며 사는 것이 복잡할수록 인간이 부여하는 의미에는 역사적, 심리적, 상징적, 정치 이데올로기적 기타 등등 온갖 꼬리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앞에서 내가 예를 든 ’가족'이라는 형식 체계에 대해서도 왜 MMS나 FDS같은 경우는 왜 배제하는 거지? 이 꼴통 전통 수호자 같으니라고 하는 반응을 보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형식체계를 다루는 부분을 읽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되는 자세이다. 지나친 과잉 확장 해석은 이 책의 강점인 구체성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 앞부분에서 다루는 형식체계는 언어의 의미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명백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의미란 형식체계에 속하는 기호 조합과 다른 어떤 대상 간의 ’대응 관계'를 말한다. 이 책에서 형식체계의 의미는 ’정수론의 어떤 서술'이다. 형식체계 내의 모든 기호 조합들은 각각 정수론의 하나의 서술에 대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응관계를 부여했을 때 생기는 문제와 형식 체계의 한계, 이러한 논의들이 어떻게 인간의 인식과 실제 현실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들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하자.
* 이 글에 대한 권한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11, 2014년 11월, 이상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형태14-11-09 20:01
필력이 굉장히 좋으신데요ㅎㅎ 형식체계를 한국어를 통해 비교해주셔서 이해하기가 더욱 쉬웠습니다.
역시.. 해커가 철통 보안 시스템의 개발자가 되는 것처럼 호프스태터 또한 인공지능 연구자였군요.
책은 책으로만 남을 수 없다는 말처럼 현실에서의 응용이 중요하죠. 다음글이 기대가 되네요.
다시 한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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