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능력을 지닌 여성들이 살았었다. 하지만 그들은 많은 경우 마녀로 몰려 엘사처럼 마을에서 쫓겨나고, 배척당하고, 심지어 불태워졌다. 자아실현을 추구하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21세기의 여성들은 100년 전엔 마녀였다. <겨울왕국>은 이제 추방당했던 마녀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틀에 담아내고 있다. 과거 마녀로 치부되었던 여자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여자, 자아를 추구하는 여자, 자연과 교감하는 여자(약초를 알고 병자를 치료하는 여자, 엘사도 “난 바람과 하늘과 하나가 되었어”라고 외치는 부분에서 자신이 마녀임을 드러낸다), 남자를 거부하는 여자 등. 한마디로 가부장적인 사회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여자들과 체제에 위협이 되는 여자들은 마녀로 낙인 찍혀 쫓겨나고, 배척당하고, 고문당하고, 불태워졌다. 

마녀를 뜻하는 영어의 witch는 그 남성형인 wizard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흔히 “마법사”로 번역되는 wizard가 “어떤 일에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반면, 마녀는 “사악한 여자”라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마녀는 보통 우리말로는 “마귀할멈”이라 번역되곤 하듯이, 사악하고 늙고 추한 모습을 한 여자로 아이들을 잡아먹고, 검은 고양이와 박쥐를 거느리고 길고 더러운 손톱을 가지고 있으며, 동물을 죽이고, 사람들을 저주하는 등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졌다. 하지만 여성들이 자신의 자아를 찾고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요즘, 과거에 박해 받았던 마녀들은 이제 특별한 재능을 지닌 매력적인 여자들로 새로이 조명되고, 마녀라는 단어자체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마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도되었지만, 최근 들어 전반적인 이미지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 예로, 해리포터 시리즈는 “마녀”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만드는데 일조했고, <연금술사>의 작가로 유명한 파울로 코엘료도 <포르토벨로의 마녀>, <브리다> 등의 소설에서 신비주의적 탐색을 통한 우주적 자아를 추구하는 현대판 마녀들의 자아발견의 여정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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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의 여성의 삶은 결혼과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것을 지탱해 주는 것이 “진실한 사랑”에 대한 찬양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한 사랑이란 용기있는 멋진 남성이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인 여주인공을 위험에서 구해주고 (때론 신분상승을 약속하며) 결혼에 이른다는 이야기 틀을 가지고 있다. 

<겨울 왕국>에도 전통적인 “진실한 사랑”의 모티프가 등장한다. 엘사의 동생 안나는 언니의 대관식에 초청받아 온 멋진 왕자 한스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대관식 도중 비밀이 드러나 떠나버린 엘사를 찾으러 가는 길에 착하고 순박한 크리스토프를 만난다. 하지만 엘사에게 다시 돌아오라 설득하는 과정에서 안나는 얼음이 심장에 박혀 죽을 위험에 처한다. 안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한 사랑”의 키스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크리스토프는 사랑하는 안나를 그녀의 약혼자인 한스 왕자가 있는 성으로 데려다 주고 쓸쓸히 떠난다. 하지만 왕자는 죽어가는 안나를 구하기는커녕, 엘사와 안나가 둘 다 죽으면 안나와 약혼한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그녀를 죽게 내버려둔다. 동화 속 멋진 왕자가 비열한 악당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결국 왕자의 키스 대신 죽어가는 안나를 살려내는 것은 자신을 위해 희생한 안나를 위해 흘리는 엘사의 뜨거운 눈물이다. <겨울 왕국>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남녀간의 진실한 사랑을 통한 구원이라는 전통적인 플롯을 전복시키고 대신 자매간의 사랑을 그 자리에 대체한다. 진실한 사랑(true love)의 의미를 남녀간의 사랑에서 인간의 사랑으로 확대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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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의 영어 원제목은 <Frozen>이다. “얼어붙은”이라는 의미의 이 단어는 생명이 활동을 멈춘 정지의 상태, 겨울, 그리고 죽음을 상징한다. 정서적 또한 성적으로 남성을 거부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동생 안나와 달리 엘사는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엘사의 관심사는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반면에 안나의 경우 두 남자와의 사랑이야기가 얽혀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안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니 엘사의 무사귀환과 자매간의 우애이다. 엘사와 안나, 두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겨울 왕국>은 여성의 삶에서 사랑과 결혼이 필수가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한다. 엘사는 엘사대로 안나는 안나대로 자신들이 선택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사회는 엘사와 같은 여성들의 삶을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신을 모시는 여사제나 수녀와 같은 성직자 수도자는 예외로 치부되었다. 이들의 삶은 자신의 욕망과 재능과 자아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에 대한 헌신이기 때문에 남성중심적 사회의 틀에 크게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독사과를 먹고 잠든 백설공주나 물레바늘에 찔려 백 년 동안 잠든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생명과 시간이 정지한 “얼어붙은(frozen)” 상태에 놓여있다. 그들의 생명을 깨어나게 하려면 “진실된 사랑”의 “키스”가 필요했다. 백마 탄 멋진 왕자의 키스는 처녀성의 상실을 의미하는 동화 속 상징물이다. 여성의 삶에서 가장 큰 사건은 결혼과 출산이었고, 그 인생의 궁극적 목표를 위해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남자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들을 “데려갈” 왕자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진실된 사랑”의 키스만이 죽음의 얼어붙은 상태에서 그녀들에게 생명을 일깨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 왕국>은 이러한 기존의 이야기틀을 전복시킨다. 엘사는 왕자를 기다리지 않고, 얼음왕국(즉, 남성이 찾지 않은 여성만의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바람과 하늘과 하나가 되는” 마녀로써 자신만의 왕국의 여왕이 된다. 그리고 얼어붙은 안나의 생명을 깨워내는 것은 왕자의 키스가 아니라 언니 엘사의 진실된 사랑의 키스였다. 이렇게 <겨울왕국>은 사악한 얼음마녀인 <눈의 여왕> 이야기를 뜨거운 열정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로 다시 풀어내고 있다. 엘사와 안나, 이들 자매의 삶에서 이성과의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이고,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이다. 이처럼 <겨울왕국>은 우리가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틀을 제시해 주었고, 그 점이 바로 2014년 새해 벽두부터 이 영화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게 된 핵심적 이유일 것이다. 

1960년대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가 당시 새로운 형태의 삶과 자유를 열망하던 젊은이들에게 만트라가 되었듯이, <겨울왕국>의 “Let it go”는 숨겨진 욕망과 열정을 드러내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삶을 추구하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만트라를 제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