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를 떠나라, 거주할 땅은 풍요하고 많으니 네가 좋은 쪽을 먼저 선택하라, 네가 먼저 좌편를 선택하면 나는 우편을 선택하겠고, 네가 먼저 오른쪽을 선택하면 나는 왼쪽을 선택하리라” [창세기 13장 9절]

상생(相生)은 같이“사”는 것을 넘어서, 같이“잘사는" 것, 그것도 똑같이 “풍요와 부를 누리자”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상생에 대한 이런 해석보다 서로를 세워주거나 상대방을 제대로 인정해 주는 것 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자본주의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에 못지 않은 상당한 단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장점은 기회의 평등이며 누구나 부지런히 일하면 자신의 노동의 결과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단점 또한 극명하다.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빈익빈, 부익부이며, 노동으로 획득하는 부보다 자본을 이용해서 버는 돈이 휠씬 쉽고 많다는 것이다. 자본가나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노동자에게 고용을 제공하고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 할 터이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이용해서 쉽게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일 뿐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쌍방 모두 상대방이 나름의 어려움과 고통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갖지만, 짐작만 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사람이 만든 제도이긴 하지만 자연적인 요소도 많다. 예를 들어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그것인데, 바로 이 자유가 문제다. 자연생태계도 사람이 관여하지 않으면 동물이든 식물이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관여하지 않는다고해서 완전한 자유가 보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자유는 커녕 생존도 지키기 어려운 이른바 약육강식, 곧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밥이 되는 것이다. 순식간에 자라는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먹는 채소는 키울 수조차 없다. 

그렇다면 서로 잘 살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상생이 잘안되는 여러 가지의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은 잘못된 영문번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Win-Win, 뜻은 좋지만 이론적으로 애초에 둘 다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느껴진다. 풍요와 잉여의 시대. 어떤 사람은 시간이 남고 어떤 사람은 투자한 시설이 남고, 어떤 이는 재간이 남고, 어떤 이는 사랑이 풍요롭고 남아 돌고. 이렇게 자기가 가진 잉여를 내어 놓고 상대방의 부족을 채워 주는 그런 단어는 없을까?

2005년 작은 게임개발사 네오플이 던전앤파이터 라는 복고풍 게임을 개발하고, 필자가 부서장으로 있던 부서에서 독점 판권계약을 하여 Publishing 사업을 조용히 시작했는데, 제조업이 본업인 당시 회사에서는 게임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되었다. 마케팅 비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가전제품처럼 대형광고를 하거나 대기업의 이미지를 고려하면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접점창구의 확보가 근본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 팀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게임-과자 연계 마케팅이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어린이는 과자도 좋아한다는 착안과 던전앤파이터의 게임 고객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직장인들이 많아서 감자칩 과자를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동일한 가격바구니를 가진 소비자 입장에서 제한된 1만원으로 과자를 살 것인가 게임을 할 것인가. 아니면 5천원씩 반반으로 할까 또는 6:4, 8:2 으로 어떻게 비용의 분배를 하든 포기하는 금액은 아쉽고 방법이 없다. 과자도 게임도 모두를 1만원 어치를 사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라는 아주 고객입장의 기본적인 고민을 현실화 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초코파이로 유명한 오리온제과 신제품 감자칩 “예감”과 공동으로 한 마케팅이다. 700원짜리 신제품 '예감'에다 던전앤파이터 게임 아이템 700원을 더하여 고객에게는 700원으로 총 1,400원의 가치를 제공한 결과, 오리온제과의 예감은 출시 3개월 동안 계획대비 총 3배의 매출 증가를 이루었고, 던전앤파이터 개발사 네오플은 100만 명에 불과했던 게임고객의 의미있는 척도인 동시접속자가 같은 기간동안 300만명으로 증가하는 등, 게임과 과자를 만드는 전혀 다른 두 회사가 각각 3배의 성장을 이루는 대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중국 텐센트에 3년간 판권으로 4천만불에 수출계약을 하였고, 급기야 네오플은 넥슨에 성공적인 M&A을 이루어 오늘날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명한 인터넷서비스 회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상생의 구조가 가능했던 것은 재료비가 드는 실물(real goods)인 과자와 재료비가 전혀 들지 않고 한계원가 제로인 가상물(cyber goods)의 결합을 통하여 서로에게 다른 가치를 부여하여 서로를 밀어주는 전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는 필자가 경험한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5:5나 7:3 분배로는 전혀 만들 수 없는 100: 100의 상생구조가 가능한 한 사례이다.

기업의 전통적인 가치사슬은 일방적인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의 증식과 비용의 증가가 동시에 일어나는 수직 구조였다. 광물질이든 농산물이든 산지에서부터 채취나 이동 등 물건의 가치가 상승하는 동시에 비용이 비례적으로 늘어나는 단일 방향의 가치 구조였다. 즉 채소가 밭에서 길러져 수확하는 철이 되어도 인건비가 없으면 수확이 어렵고 비용을 들여 채취를 하고 다듬어서 수요고객이 있는 도시로 이동하거나 김치공장으로 가서 더 가공을 하면 부가가치는 점점 올라가지만 상대적으로 인건비나 배송비와 가공비가 같이 늘어나는 구조다. 

1차 산업인 농수산물이나 광물만이 아니라 2차 산업인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재료를 가공하고 조립하여 완제품으로 만들고 판매점이나 판매상이 최종 소비자에게 팔 때는 항상 비용이 들고 또한 그 제품의 가치와 더불어 소비자 가격을 매기는 구조다. 이것을 보통 단면시장 이라고 하는데 그 용어는 단면시장의 상대 개념인 양면시장의 출현 이후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면시장에 비하여 양면시장은 그 가치가 보는 면에 따라서 다르게 평가되는 시장이다. 우리가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하게 되는 쓰레기 분리배출이나 중고가구의 처리과정을 보면 쉽게 양면 시장을 이해 할 수 있다. 가정에서 종이나 플라스틱 같은 쓰레기를 분리하여 배출하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환경물 처리회사는 재활 물건들을 거의 그냥 가져간다.

그냥 버리고 그냥 가져 간다는 것은 한쪽은 필요가 없고 한쪽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한쪽에서 필요가 없어서 버리는 쓰레기가 다른 한쪽에서는 가치가 있는 공동품이 되는 구조이다. 공동품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집에서 색상이나 크기가 맞지 않아서 책상과 의자를 버려야 하는데 옆집의 고학생이 그냥 가져 간다면 한쪽 집은 귀찮은 가구를 치워 공간을 확보해서 좋고 옆집 학생은 돈을 들이지 않고 중고 가구를 획득하고 보너스로 옆집 안주인에게 커피나 음료까지 얻어 먹을 수 있는 구조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굳이 장학금이나 기부금을 내지 않더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잉여 제품이나 운동장이나 강당 등 고정 시설들은 공유하고 이웃에 개방한다면 사회는 훨씬 밝아지고 따뜻해 질 것이다.

애플이나 구글에서 운영하는 앱스토어는 전형적인 양면 시장의 대표사례이다. 스마트폰을 만들어 팔아서 수익을 얻는 애플이나 안드로이드 라는 스마트폰 운영체계를 공짜로 제공하고 광고수익을 얻는 구글은 각각 앱을 유통할 수 있는 앱시장, 즉, 앱스토어를 운영하고 지금은 각각 100만 여 개의 앱들이 확보되어 “앱경제(App Economics)라는 신조어 까지 만들어질 정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애플이나 구글은 내부에서 앱 개발자를 뽑고 앱을 만드는 일을 직접 하지 않고 앱스토어 플래폼만 만들어 공급하면 외부의 수많은 개인이나 기업 개발자가 스스로 앱을 만들어 앱시장에 올리면 수익의 일부인 30%만 수수료를 떼고 개발자는 70%의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이다. 

애플이나 구글이 앱을 직접 만들면 비용이 많이 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앱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반면 이들이 앱을 직접 만들지 않고 외부 생태계를 만들어 공개하면 비용도 절약되고 다양하고 좋은 앱 들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앱 개발자는 1인 개발자이든 영세 중소기업이든 앱 만 개발하면 판로나 판매 비용들을 들이지 않고 최종수금까지 책임져 주는 회사가 있어서 안전한 사업을 만들 수 있다.

애플이나 구글이 수많은 내부 개발자를 확보하지도 많고 원하는 서비스를 쉽게 확보하는 반면에 수많은 외부 개발자들은 저비용으로 앱을 만들고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거나 수익을 올리지 못할지라도 많은 고객만 확보하면 비싸게 회사를 매각할 수도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상생의 가장 좋은 예인 양면시장을 통한 지속적인 상호 이익 확보 이다. 돈을 많이 버는 애플이나 구글이 거금을 들여 기부를 하거나 소규모개발사에게 일방적으로 개발비를 제공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사회기여이며 일시적인 기부 행위가 되지만 스스로 살아가고 성장하는 기반은 이렇게 양면시장의 육성을 통하여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가치 사슬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제 상생은 나도 너도 이기는 뜻의 Win-Win이 아닌, 나의 잉여를 줄여서 나도 건강해 지고 상대방도 도우는 지속적이고 생산적인 관계의 기초가 되었으면 한다. 서로를 도와주고 세워주는 상생은 일방적으로 한쪽에 붙어사는 기생과는 완전히 다르다. 또한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일방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인 보장차원에서 정부나 또는 기업이나 개인의 기부금으로 반드시 운영해야 하지만 적어도 상생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해 단체는 쌍방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리는 것 좋겠다. 일시적이고 시혜적인 단면적인 도움 보다는 쌍방이 제 역할을 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가 지닌 다른 가치를 찾을 때 지속적이고 건강한 양면시장적인 상생 생태계가 지속되고 더욱 발전 되리라 생각된다.

조금 더 가진 자나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 내가 가진 도구가 무엇인지를 보고 내게 있는 도구가 상대방이 사용할 때 나의 도구도 녹슬지 않고 상대방도 덕이 되는 양면가치의 관계를 찾아보자. 누구나 가치로운 인생이다. 비록 돈의 가치는 달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부여한 24시간과 백년 이내의 한정된 수명 안에서 사는 우리가 돈의 가치만이 아닌 시간과 관심과 위로와 경청과 기도가 서로를 세워주고 나도 녹슬지 않게 하시는 진정한 상생이 아니겠는가?

매주 목요일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산더미 종이와 플라스틱, 그리고 버리려 내어 놓는 각종 가구들을 보면서 반세기전 학창시절 쓰레기 통을 뒤지던 빈곤과 자원, 그리고 지식부족의 나라에서 이렇게 풍요와 잉여의 시대에도 더욱 상생이 강조되는 것은 이웃 사랑의 부족일까 아니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결과일까? 그 해답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내 주머니를 굳이 털지 않더라도 내가 가지고 받은 은사만으로도 남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나의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다. 헌혈이 그렇고 자기가 축적한 재능의 기부, 즉, 프로보노가 그렇다. 주어도 없어지지 않고 더 숙련되는 재능의 기부, 가장 좋은 상생의 사례이다. 직장인은 일과 후에나 주말에 또 학생은 방학을 맞아 재능기부에 나서는 젊은이를 보면 험난한 사회를 밝히는 희망의 촛불과도 같아 보인다.

이제 33년 이상 다니던 첫 직장을 떠나 두번째 직장인 대학교 초보 교수로 이동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게 됨과 동시에 후배회사가 지원하는 창업지원 인큐베이팅 센터의 엔젤클럽에서 후배들을 지원하는 자원멘토 역할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 동안 단면 시장에서 기업의 이익과 경영의 논리에서 얻은 교훈을 후배들에게 전해야 할텐데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할 듯 하다. 도서관에 산더미 처럼 쌓여있고 지겹도록 반복해서 들었던 로고스 같은 좋은 말과 훈수로 인생의 압축된 지혜를 고단위 단백질이나 농축 영양제처럼 후배들에게 먹여주어도 그들은 소화도 되지 않고 그냥 배설만 될 뿐이다. 이제는 근육을 같이 움직여 후배들과 눈높이와 고민을 같이하면서 풀어가는 친구 같은 선배가 되어야 하겠다.

지난 30여년간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와 지식과 산업 성장기의 여러가지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하여, 웬만해서는 부모가 이룬 업적이나 위치에 가보기도 전에 성장이 멈춰버린 정체된 사회에서 좌절하고 고뇌하고 있는 어린 후배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장은 멈추었으나 주위를 살펴보면 만족은 하지 못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풍요의 자원, 거꾸로 보관료가 필요한 잉여의 자원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창의와 재능을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 양면시장의 생태계를 만드는데 작은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제 2기의 인생이 더욱 보람되고 어떤 돈으로도 살수 없는 새로운 가치가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