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서 모유나 우유를 먹고, 조금 지나면 이유식을 하고, 네발로 기다가 돌이 되면 아장아장 걷는다. 결혼하여 첫 애를 맞은 부모는 아이의 몸 뒤집기나 기어서 다니는 것 하나하나에 눈가를 적시며 감격해 한다. 이어 아이는 유모차나 장난감 자동차를 타다가 곧 세발 자전거를 타게 된다.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달리기를 할 때쯤 되면 아이가 아버지로부터 자전거를 배우게 되는데, 그 때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두고두고 언제나 새롭다. 퇴근 후나 주말에 가까운 동네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 한 켠에서 아빠가 뒤를 잡아주는 자전거를 타면서, 아이가 “잡은 손을 놓으면 안돼!”하면 어느 아빠이든 “그래 놓지 않을게”하면서 금방 거짓말쟁이가 되어 손을 놓게 된다. 잡은 손을 놓지 않으면 아이가 스스로 자전거를 탈수가 없음을 아빠는 알기 때문이다.
뒤에서 잡아주는 손길을 믿고 어느 정도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아빠의 손이 떠난 것을 느끼는 순간 아이는 몸이 균형을 잃고 흔들흔들 거리다가 결국 넘어지고 만다. 필자의 경험과 관찰로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우기 까지 3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그 첫 단계로는, 처음에 자전거가 넘어지려고 하면 몸을 무의식적으로 자전거가 넘어지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안 넘어 지려고 한다. 그렇지만 아이는 몸을 돌리는 순간 그 자리에서 즉시 넘어진다. 결국 팔꿈치나 손바닥을 땅 바닥에 부딪쳐 가벼운 찰과상을 입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첫 번째 단계에서 경험을 몸이 알게 되어 지난번과는 다르게 자전거가 넘어지는 방향으로 몸을 같이 움직인다. 이렇게 하면 몸을 반대로 하지 않으니 처음 보다는 좀 더 굴러서 나가게 된다. 그러나 낮은 웅덩이에 빠지거나 울타리와 충돌하게 되어 첫 단계에서 보다 더 심하게 넘어져서 다치기도 한다.
세 번째 단계가 되면, 자전거 타는 법이 익숙하게 되는데, 자전거가 넘어지려고 하면 순간적으로 자전거와 같은 방향으로 몸을 맞추다가 자전거와 내가 한 몸이 된 순간 다른 방향으로 자전거 핸들을 돌려서 지그재그로 앞으로 나가게 된다. 자전거는 고속으로 달릴 때를 제외하고는 일직선으로 가는 것보다 약간씩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달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자연의 흐름에 따르면서 페달과 땅의 기울기를 잘 활용해서 달리는 것이다.
2. 조직생활의 적응과 자전거 배우기
조직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직장인들도 자전거를 타는 과정을 매핑해 보면 조직 적응에 다소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초보 직장인은 대부분 직장의 규칙이나 상사의 지시에 대부분 순응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상사나 조직의 지시가 방침이 자기와 잘 맞지 않음을 알게 된다. 더러는 그 자리에서 즉시 반대를 하거나 거부를 할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앞서의 자전거 타기 첫 단계처럼 자전거가 넘어지듯, 자신도 상사로부터 야단맞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미생의 한백기 같은 캐릭터가 되어 직장 생활이 고단해 진다.
조직 생활의 두 번째 단계는, 몇 번 깨지고 나면 체념하고 무작정 상사의 지시나 조직의 흐름을 따라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조직이나 상사는 항상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몸을 완전히 맡기면 낮은 골자기나 구렁으로 빠지게 된다. 결국은 상사를 무조건 따라만 가다가 위기에 빠지게 되고 잘못 되면 그 원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다.
조직생활의 세 번째 완전 적응 단계로, 자신의 몸이 조직이나 상사의 지침이나 지시에 맞추어 방향(벡터)이 맞춰지고, 조직과 상사를 약간씩 방향 이동을 시켜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된다. 조직이나 상사가 이미 생각도 같고 한 몸이 되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는 약간 방향을 바꾸어서 제대로 된 길을 달릴 수 있게 된다. 자연스레 조직의 일원으로서 기여하고 자신도 발전하게 된다.
3. 자동차와 제조업
지난 50년 동안, 한국의 경제 발전은 눈이 부실 정도이고, 그 중심에는 제조업이 있었다. 제조업은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관련 업계를 발전시킨 산업의 원동력이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에서의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제조업에서,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의 선진 기술을 배워 그들보다 더 노력하고 개선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요즘은 치열한 경쟁과 이익구조의 악화로 제조업이 위기를 맞았지만, 고용과 지속경영의 한 축인 제조업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잘 해 나가야 한다.
사실 제조업은 부품이나 완성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판매하여 공급하고 난 후 불량이 발생하면 수선이나 교환하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산업이다. 따라서 리콜이 일어나는 순간 회사는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회사의 신뢰성이나 마케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제조업은 오랜 경험과 자본, 그리고 풍부한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에 적합하다.
그래서 제조업은 시간보다 안정성과 품질이다. 철저히 시험하고 개선하여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며 더 이상 손댈게 없어야 한다. 자동차나 기차는 길 위에 올리는 순간부터 타이어나 휠 밸런스, 각종 기능이 철저히 정비되고 준비 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출시 자체를 멈춰야 한다. 그래서 1:10:100 의 법칙이 있다. 연구소에서 불량을 찾으면 1이라는 비용이 들고, 공장제조과정에서 발견하면 10이 들고, 회사에서 불량을 못 잡고 시장에 나가면 100이상의 비용이 든다.
4. 자전거와 인터넷 서비스업
집집마다 차 한대씩 있는 마이카 시대를 지나 이제 성인기준으로 한 가구당 직장인 수대로 자동차가 있는 집이 많아졌다. 우리도 자동차가 많이 없던 시절 개인용 교통수단이 당연히 자전거였던 때가 있었다. 중고자전거 하나를 사서 닦고 기름치고 하던 시절이 아련하다.
요즘은 자전거를 단순히 교통수단이 아닌 건강의 도구나 취미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엔진이나 기름을 통한 동력 공급에서 벗어나, 스스로 페달을 움직여 동력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제2의 심장인 허벅지도 굵어지고 폐활량도 키우는 운동 기구가 된 것이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달리 두 바퀴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멈춰있을 때에는 온전히 서 있을 수 없다. 자전거에 몸을 실어 핸들과 페달을 적절히 밟아 몸과 자전거나 한 몸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자전거는 두 발로도 온전히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부품이나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 제조업이 완벽한 품질을 추구해야 한다면, 인터넷이나 통신 관련 콘텐츠 서비스는 일정 수준의 품질이 되면 시장으로 나가 실시간으로 평가를 받고 즉시 고쳐 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 한번 출시하면 리콜이나 교체하기 전에는 수선이 안 되는 제조품과는 달리, 서비스나 인터넷 서비스는 연속성과 주관적 서비스를 지속해 나갈 때 비로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제조업을 전통적으로 해온 대기업이 신규사업으로 인터넷 서비스 업이나 소프트웨어 콘텐츠 사업에서 고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제조업은 규모의 경제와 품질 관리와 완벽성을 따져야 하는데, 발 빠르게 요리조리 골목으로 다니는 자전거 같은 새로운 사업을 대로를 달려야 하는 자동차, 그것도 대형차로 다닐 수 없는 것이다. 품질 만능과 부작용을 미리 생각해야 하는 대기업은 하고 싶어도 하기가 잘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5. 몸을 움직인다는 것.
시간적 자유가 거의 없다시피 한 기업에서 근무할 때는 언제나 팀워크를 위해 출근과 퇴근이 본인의 의지가 아닌 조직의 규율이나 일의 진척에 따랐다. 이제는 기업을 떠나 학교로 근무처를 옮긴 후, 새로운 다짐으로 시작한 습관은 가능한 한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대중 교통과 도보로 출퇴근 하는 것이다.
출퇴근 시에 대중 교통을 이용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지난 학기 동안의 경험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너무 멀기도 하지만 교통 체증으로 도무지 시간을 가름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였다. 한적한 시각에는 한 시간도 안 걸리기도 하지만, 출퇴근 시간 정체되거나 특히 월요일 오전이나 금요일 오후라도 되면 이동하는데 3시간도 부족하다.
또 다른 이유는 지난 가을 학기 동안은 늘 마음을 졸이면서 운전하고 다니다 보니 운동량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부족한 하루의 운동을 하려면 결국 퇴근 후에 따로 시간을 내여 아파트 주위를 여러 바퀴 돌거나 헬스 클럽을 가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서 도보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집에서 멀어 가능한 대중 교통을 다 타면 6번의 버스와 전철을 타야 한다. 그런데 마을 버스 2정거장 정도는 걷고, 버스든 전철이든 4번 정도만 갈아탄다. 시간은 자동차로 다니는 평균보다는 더 걸리지만, 두 세시간의 여유를 두고 미리미리 움직이면 손도 자유롭고 눈도 자유롭고 생활운동을 즐길 수 있다. 독서와 운동이 동시에 해결된다.
자동차의 편리함에서 벗어나 때로는 도보로, 때로는 자전거를 타면서, 시간과 장소에 매이지 않고 두 손과 두 발이 자유롭게 만든다. 때로는 걷기도 하고, 때로는 쉬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한다. 많은 사람들과 옷깃도 스치고, 삼삼오오 짝지어 떠드는 사람들과도 접하면서, 달려가는 급한 사람에게 양보도 하면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이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명경시, 돈을 위해 인간성과 윤리를 버린 사건 뉴스들이 들려온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는 법과 자기 개발만 강조하는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동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면서, 좀 더 주위를 돌아 보며,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양보하면서, 창조주가 지으신 세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찾고 싶다. 효율 지상주위에서 벗어나 느리지만 재미있는 루브 골드버그 장치를 만드는 마음으로, 자녀들이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때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2, 2015년 2월, 권강현, 서강대 교수/전(前) 삼성전자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