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이라는 말 속에는 '인내' 또는 '참음'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종종 관용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인내'를 드러내기 위해 'toleration'이라는 단어를 'tolerance'와 구별해서 사용한다. 이때 전자는 어떤 대상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내린 이후에 취하는 관대한 태도 또는 행위를 의미한다. 반면 후자는 대상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나 견해가 없이 취해지는 수용적 태도 또는 반응을 말한다.

 

최근 이 두 단어는 크게 구별되지 않고 사용된다. 두 단어가 구별없이 사용되는 이유는 두 단어의 용례상 의미가 지금에 와서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즉 '관용'을 후자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더욱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명하고 객관적인 판단근거에 대한 회의,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태도가 곧 '상호존중'이라는 입장이 지배적인 견해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혼용은 두 단어가 갖는 장점을 모두 포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자에서 '관용'은 우리가 신이 아니기에 모두 알 수는 없다는 유보적 태도를 암시한다. 그러기에 뜻과 해석이 다르더라도 인내해야하고, 그것의 결과를 예단하는 태도를 절제하는 것이다. 후자에서 '관용'은 '관심'을 함께 요구한다. 즉 상대방의 호불호나 선호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이야기하고 논의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관용'이 신만이 알 수 있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면, 아울러 이 단어가 상대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어떤 태도를 지칭한다면, 아마도 '관용'이 사회에서 기능할 순기능의 상당부분을 망각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자신만이 옳다는 오만, 그리고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관용'의 정신을 올바르게 실천으로 옮길 수 없다는 말이다.

 

누가는 위의 구절이 시작되기 전,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심스럽게 피력하고 있다.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변론을 벌이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변론을 벌이기 전,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두 가지 말씀을 듣는다. 하나는 그들의 실패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고치지 못하는 병자를 예수께 데리고 가니, 예수께서 간질병 들린 아이를 고치신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고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꾸중하시는 것이다(누가복음 9:41). 또 하나는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신 이후 우쭐되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곧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누가복음 9:44). 이때 예수님께서 쓰신 말씀은 '담아두라'(thitemi), 즉 마음 속 깊이 새겨두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받는 지금의 칭찬과 경외는 곧 사라질 것이요, 너희는 내가 전한 말씀과 앞으로 벌어질 일을 가슴에 새기라는 말씀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에 따르면, 제자들은 여전히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예수님으로부터 찾고 있었다. 그러기에 '누가 크냐'며 변론을 벌이고, 그것도 모자라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했다"고 예수님께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있다(누가복음 9:49).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기보다, 예수님을 대신해서 판단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hos esti ou kata hemon)는 "우리를 위한는 자"(hyper hemon)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누가복음 9:50). 섣불리 우리의 판단으로 누군가를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가르쳐주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하나님과 같은 '능력,' 또는 예수님과 같은 '판단'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누가는 이들의 이런 모습을 사마리아인들에게 한 그들의 저주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앞의 일이 있은 뒤, 예수님의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이 과정에서 사마리아인들이 사는 지역을 지나게 된다. 사마리아인들은 앗시리아가 북왕조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뒤 이스라엘인들과의 이방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족이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받는 홀대에 대한 반발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때 야고보와 요한이 이렇게 말한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누가복음 9:54). 마치 자신들이 '엘리야처럼'(hos Elias poieo) 이들을 죽이겠다고 분기탱천해서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신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들을 훈계하듯, 바다의 바람에게 소리치시듯, 그리고 믿음없는 세대를 한탄하시듯, "돌아서시며 꾸짖으시는"(strepho epitimao) 것이다. 예수님께서 격노하심은 왜일까? 누가가 전달하는 이 말 속에 담긴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제자들이 사마리아인들에게 갖는 '무관심'이다. 이들의 분노에는 혼혈족에 대한 유대인의 우월감이 잔득 베어 있었고, 사마리아인들의 생사는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잘못된 신념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누가는 몇 구절 아래 '관습'과 '가족'에 얽매인 사람들이 곧 사마리아인들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었다고 기록한다(누가복음 9:57-62). 둘째, 이들의 무관심이 곧 이방인이나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멸시로 귀결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예수님앞에서는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기에, '누가 크냐'보다 '누가 선하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누가복음 9:48). 그러기에 누가는 선민의식에 내재된 '힘'에 대한 추구를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해야할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기에 누가는 예수께서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를 분명히 적고 있다. " 그들은 다른 촌으로 갔다"(poreuo eis heteros kome)"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누가복음 9:56)

 

'관용'은 수직적 위계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관용은 '자비'(mercy)와는 다른 말이다. 서로의 마음이 합하는 '공감'(concordia)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에 대한 수평적 인정과 존중을 필요로 한다. 아마도 이때 필요한 것은 '예수님 앞에서는 우리가 모두 어린아이'라는 생각일지 모른다. 즉 이런 수평적 인정은 곧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수긍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반대하지 않는 자'에 대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기도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울러 '관용'은 관심을 요구한다. 서로의 선호와 입장이 다르지만, 상대를 통해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대와 함께 그도 예수님 앞에서면 사랑스러운 '자녀'이자 '형제여 자매'라는 점을 인정해야한다. 그들이 사마리아인이라도 결코 달라질 것은 없다. '반대하는 자'라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타일렀듯이,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우리에게는 엘리아의 불로 타인을 멸절시킬 어떤 힘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해야한다. 어쩌면 서로의 관계를 파괴하는 '관용'이 아니라, 관계를 열망하고 기대하는 '관용'이 우리들에게 더 필요할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3, 2013년 11월, Diagog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