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아트밸리라는 곳으로 출사여행을 나갔다가 “소원의 하늘정원”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바람에 하늘하늘 날리고 있는 수많은 소망들이 나의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몇가지 소원들은 은근한 미소를 불러일으키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두고두고 눈에 밟힌다.
“탐정이 되고 싶어요.”
“삼팔광땡 잡게 해 주세요. 뻥카 치지말게 해 주세요. 제발.”
“떠나는 널 이제 붙잡을 수 없지만 너답게 늘 당당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랄께 내사랑 ￠½¡±
“SKY ! – I’m still flying.”
“빚 빨리 갚게 해 주세요. 2014년까지는 꼭!!”
“To. 사랑하는 남편에게 여보 미안해요. 저 혼자 왔어. 놀러오니 자기에게 미안해요. 가게가 번창해 같이 놀러와요.”
“앞으로는 울지 않길”
“우리아들 말 잘 듣게 해주삼^^”
“내가 말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참 소박하고 재미난 소원들이다. 탐정이 되고 싶다는 꼬맹이의 소원을 요즈음 세상에 누가 귀 기울여 줄까? 아니 누군가는 귀 기울여 주어야 할텐데. 노름판에서 뻥카에 크게 당한 경험이 있을 법한 젊은이가 사회 속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뻥카족들에게 다시는 뻥카 치지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남기고 있구나. 이별을 앞둔 한 청년의 사랑고백은 첫사랑에 대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하고, 자신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지만 학벌사회의 지나친 경쟁에 대해 일갈하는 재수생의 패기. 어쩌다 빚더미에 앉은 사람의 절박감 속에 홀로 꽃피우는 희망의 씨앗. 혼자 놀러왔다가 남편에게 미안해하는 아내의 애뜻한 사랑의 마음. 사랑에 실패한 외톨이의 다시는 (너를 위해) 울지 않겠노라는 다짐. 아들에 대한 애정어린 미소. 마지막으로 신의 경지에 오른 건방진 소원까지.
그들과의 무언의 대화를 통해 나 자신은 물론 내 주위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비밀스레 들여다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많은 이들이 고달프고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다들 이러한 소원을 가슴에 품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러 잠시 숙연해진다.
저 사진 속의 수많은 소원들이 어떤 역학관계 속에서 이루어져 나갈지를 상상해 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서로 다른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소원을 빈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자신이 새겨둔 저 소원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지나쳐가다가 슬쩍본 것에 불과한 필자의 이 글 속에 자신들의 소원이 다시 새겨지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저들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을까? 또 자신들이 저기에 새겨둔 소원을 얼마나 이루었을까? 이런 상상들은 또한 내 주변의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갈지에 대해 작은 힌트를 준다. 꿈과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살맛 나는 사회가 될 것 같다.
늘 새해가 되면 습관적으로 지난 한해 동안 무엇을 얼마만큼 이루었는지 되짚어 보고, 올 한해는 무엇을 얼마나 이룰 것인지를 계획하게 된다. 그런데 무엇을 이룰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이룰 것인가가 더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사실 누구나 그 내면세계에는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것들로 꽉 차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무언가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은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서 행동에 옮길 때만 가능한 것이다. 한 계단 한 계단 딛고 올라가는 사진 속의 저 계단처럼, 무엇 (What) 보다는 어떻게 (How)를 이룰 것인가를 고민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1, 2014년 1월, 이재호, SK 이노베이션 글로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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