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유부남과 몸을 섞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녀의 허기짐이 순간이나마 채워지는 느낌 때문에 도저히 이 남자를 거부할 수 없었다. 남자의 폭력에 의해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어느덧 그녀도 남자의 몸을 탐닉하고, 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일었다. 그래도 몸이 이끄는 대로 그 남자에게 벌거벗은 몸을 맡겼다. 그런데 갑자가 십 여명의 남자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그녀는 그 이후의 순간들이 기억에서 삭제된 것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미친 년, 창녀, 음녀와 같은 욕설이 허공에 맴돌았고, 그녀의 몸은 고깃덩어리처럼 이리 저리로 던져졌다. 그녀 옆에 있던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는 이 모든 폭력, 수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들이닥친 순간 직감했다. 이제 돌에 맞아서 죽겠구나!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은 독실한 유대교지도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그녀 같은 여자는 사회의 기생충 같은 존재로 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녀에게 겉옷만 입혀서 성전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 앞에 구릿빛 피부의 30대 청년이 앉아있었다. 그녀를 끌고 온 사람들은 그녀 뒤에 서서 그 청년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대체 이 상황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청년 주변에는 뭔가 모를 차분함이 흘렀다. 그래서, 그 공간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던 분노, 흥분, 열광이 조용한 호수를 만난 것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녀는 함께 침대에 누웠던 남자를 찾아서 고개를 숙인 채 둘러보았다. 그 남자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줄지 모른다는 실낱 같은 기대가 있었다. 지방의 유지였던 그 남자만 도망간 것일까? 그녀의 마음은 무거웠다. 잠자리를 같이 할 때, 그와 그녀는 하나된 듯한 일체감을 느꼈다. 그런 일체감 속에서 삶의 모든 짐들이 내려지고 순간이 영원으로 합치되는 듯한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지역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그는 종교적 사법권의 포위망을 피해서 달아나고, 무력한 그녀만 이렇게 재판정에 선 것이다.
그런데 이 재판정의 분위기는 이상했다. 그녀를 고소하는 종교지도자들과 앞에 앉아있는 낯선 사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고소하는 사람들은 그 사내를 전혀 신뢰하는 것 같지 않았고, 판결을 경청하겠다는 생각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녀를 이용해서 이 남자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그런데 그 사내는 그녀를 보고도 아무 말도 않는다. 다만, 고개를 숙여서 글씨를 쓰고 있다. 그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알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 사내가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사내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동안 종교지도자들과 군중들의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이 불편한 침묵이 그들의 안에 내면의 음성을 만들어냈다. 정의의 사도라고 자부하던 자신들의 마음 속에 뭔가 모를 부끄러움과 불편함 마음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몇 분 전만해도 그녀가 부끄럽고 불편했지만, 이제는 그녀를 고소하는 사람들이 그 수치심을 겪게 되었다. 무엇이 그들의 마음에 변화를 만들어낸 것일까? 그 사내는 아무 생각 없이 땅에 낙서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의 언어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진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마음이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달되자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진실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진실은 우리에게 고통스럽다. 진실은 내 자신이 그렇게 아름답지도, 위대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지나친 확신이 의문으로 바뀌고, 타인을 비난하던 마음은 자신에 대한 자문으로 바뀌며, 판단하겠다던 마음은 진지한 수용의 마음으로 변화를 겪는다. 예수님이 마음으로 전달할 메시지는 침묵이라는 강력한 언어를 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휩쓸었다. 정의를 집행하던 신의 대리자라는 열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불태웠듯이 알 수 없는 깨달음이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켜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와 예수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제는 그녀만 고개를 들고 예수님과 사람들을 둘러본다. 예수님은 고개를 숙이고 글을 쓴다. 흥분에 들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 표정 속에서 뭔가 불편하고 괴로워하는 내면이 느껴진다. 그녀는 문득 이 장소가 따스하고, 부드러운 공기로 가득 차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녀가 낯선 남자와의 잠자리를 통해 찾아 헤맸던 갈증이 이런 낯뜨거운 장소에서 자신도 모르게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랬다.
도저히 이 침묵을 견딜 수 없던 한 종교지도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 여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 율법에 정한대로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선생님의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사람들이 느끼는 이 불안과 부끄러움을 깨뜨려야 했다. 그리고, 예수로부터 뭔가 문제가 될만한 발언을 이끌어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자신의 의도와는 너무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책임자인 자신의 마음에 이토록 심한 동요가 이는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모두들 뭔가 알 수 없는 음성에 사로잡힌 듯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런 요청에도 예수님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한참 지나자 이제 때가 되었다는 듯 예수님이 입을 땐다.
“여러분들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세요.”
사람들은 이 돌로 쳐죽여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떳떳함을 상실했다. 이 사건을 선동해서 여인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온 사람들이 먼저 힘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 긴 침묵의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결코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합리화할 수 없었다. 진실이 자신의 연약함과 그림자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치기 보다 사람들이 진리를 직접 만나고 체험하도록 이끌어주었다. 단단하게 굳어있는 중년남성들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죄가 그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모두들 약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깨달음이 이들의 마음에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여러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녀를 증오하던 그들의 눈빛은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공감의 눈빛으로 바꿔있었다. 그녀는 그곳이 그녀를 품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모든 사람이 떠난 그 자리에 예수님과 그녀만 남아 있었다.
“당신의 죄를 지적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났네요. 이제 우리 주위에는 아무도 없군요.”
그녀의 마음은 놀라움과 경외감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 한 사내의 침묵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내의 마음은 알 것 같았다. 그는 처음부터 그녀를 비난할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그녀의 상처와 실패에 깊이 공감하는 듯했다.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깊은 존재와 연결되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며, 진심으로 수용하는 따스한 눈길이었다. 그의 눈은 그녀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따스함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성전을 지나치면서 신학자들, 종교지도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디서도 그녀의 심장에 공감하는 따스함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예수라는 이 사내는 말한다.
“저도 당신의 죄를 지적하지 않겠어요. 이제부터는 참다운 자신만의 삶을 살도록 하세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내팽개치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그는 가르치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는 공감하는 마음과 치료하는 언어가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주었다. 이제껏 얼마나 자신을 경멸했던가? 그녀는 낯선 사람에게나 자신의 몸을 주면서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허비하기에는 삶은 너무 고귀했다. 예수와 함께 했던 그 짧은 시간은 그녀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하고, 아껴주는 삶이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 이 글에 대한 권한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view of Books, Vol.4, No.9, 2016년 9월, 박현욱,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