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좋은 크리스챤'의 컴플렉스로부터 벗어나야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즉 '착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겨낼 방도에 대한 교회 내부의 일반적 동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비판도 못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에 기대고, 불의를 보고도 참고 인내하며, 그래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한 자성이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도적들'(lestes)이라고 부르셨고, 이들과 구별되게 가난한 심령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기도하는 자'(proseuche)라고 부르셨다(마태복음 21:13). 그리고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들을 빗대어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라고 하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고 경고하셨다(마태복음 21:19).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고 주문하신 다음,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구태여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누가복음 6:42). 눈감아주라거나, 너나 잘하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많은 설교를 통해 각인되고도 남았으리라. 다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며 하신 말씀, 즉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충고에서 '지혜롭다'(phronimos)는 말과 '순결하다'(akeraios)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좀 더 묵상해보자는 것이다(마태복음 10:16).

 

성경의 저자들은 '신중'(phronesis)과 같은 어근을 가진 '지혜로운'(phronimos) 이라는 형용사를 매우 조심해서 사용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14번 등장하는데, 9번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등장하고, 나머지는 바울의 서신에서 등장한다. 사실 이 단어의 동사는 '판단하다'(phroneo)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에, 무언가를 헤아리거나 판단하는 행위를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볼 때, 등장하는 맥락은 다르지만, 이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만이 지혜롭고(마태복음 7:24),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만이 지혜로운 종이며(마태복음 24:25),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만이 슬기롭고(마태복음 25:2 & 4), 이런 은혜만은 양보할 수 없는 사람(마태복음 25:9)의 것이 바로 성경이 전달하는 지혜다. 이것은 곧 솔로몬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지식'(da'ath) 또는 '지혜'(chokmah)라고 부른 것과 동일한 맥락이고(잠언 1:7), 사도 바울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로워야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취지다(고린도전서 4:10). 즉 지혜로운 분별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삶이 변화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누가복음으로 돌아가보자.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따로 택하시고 이들을 '사도'(apostolos)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가난한 자(ptochos)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basileia theos)가 너희 것이다"라는 누구나 기억하는 가르침을 주신다(마태복음 6:20). 이때 가난한 자는 '간절히 원하는' 행위를 지칭하기도 하고, 부와 풍요를 결핍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갈망하는 태도를 지칭하기도 한다(마태복음 5:3). 어떤 의미로 해석하든, 하나님께 마음의 중심을 두는 삶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가르침이 뒤를 잇는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충고다. 혹자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공자의 '네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말과 동일한 것처럼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라고 이어서 질문하시듯 '삼가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넘어 '좋은 일을 행하라'는 보다 적극적인 관계의 개선을 주문하신다(누가복음 6:31-32). 따라서 예수님께서 '하라'(poieo)는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선, 자기의 판단보다 성령에 의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겠다. 

 

이런 연후에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신다. '판단하지 말라(krino me), 그러면 너희가 판단받지 않는다'는 말씀이시고, '비난하지 말라(katadikazo me), 그러면 너희가 비난받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를 풀어보면 두 가지 명령의 조합이다. 첫째는 자기가 판관이 되는 행위를 피하라는 말씀이시다. 단순히 분별하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가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행위에 대한 경고를 전달하신 것이다. 둘째는 그러한 판단을 따라 '처벌'까지도 스스로가 내리는 교만은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위험이라는 지적이시다. '비난하다(katadikazo)에는 '누군가에게 선고 또는 처벌을 내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즉 비난을 하다보면, 누군가를 정죄하고 그 처벌까지 스스로가 내리기 쉽다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착한 크리스챤'의 컴플렉스를 벗어나려는 기독교인의 노력에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신앙적 잣대가 필요하다 점을 알게 된다. 바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판단하려는 우리의 욕심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기독교인은 스스로의 죄악에 분노해야한다. 철저하게 성찰하고, 늘 조심하며, 그리고 기도해야한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주변의 아픔을 직시해야한다. 정의감은 기독교인의 삶을 증명하는 하나의 거울이고, 이 또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누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어떤 정의감도 인간의 흠결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없이는 곧 '못된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되거나 '열매없은 무화과나무'가 된다고(누가복음 6:43). 이런 태도가 습관이 되면,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일을 두고 분노했던 바리새인처럼 되기 쉽다고(누가복음 6:11).

 

그러기에 가끔 욥의 친구들의 실수를 하는 스스로를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엘리바스처럼 곤란한 지경에 이른 사람에게 '전능자의 견책을 가볍게 보지 말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조언할 때, 죄인의 고난과 의인의 축복에 대해 마치 자기가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스스로를 보는 것이다(욥기 5:17-18). 그리고 빌닷처럼 모든 것은 '사필귀정'이라며,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느냐"는 욥의 탄식을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한다고 훈계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욥기 9:12). 그래서 누가가 전달하는 조용한 훈계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선택한 제자들에게 친히 당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태도는 곧 기도하는 사람을 도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누가의 경고에 숙연해 진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인간의 '흠결'과 '한계'에 대해 민감해야한다는 누가의 충고를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우리의 '헤아림'(metron)은 결코 완벽하지 못하다는 자성,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하다는 자각이 필요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누가는 당시 유대인의 지도자들에게서 이런 모습, 그리고 그들의 눈에 들어있는 '겨'(karphos)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듣고 보았을 것이다. '선택'이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선택'을 자격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의 욕심이 초래한 비극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흠결에 대한 자각, 그리고 하나님께서 판단자이심을 인정하는 태도, 바로 이것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자하는 사람들 모두가 기억해야할 '좋은 친구'가 되는 방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3, 2013년 11월, Diagog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