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을 통해 “사회 속의 기독교인에 대한 일반적 평가”를 주제로 작은 에세이를 하나 써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글은 일반적 평가라기 보다는 개인적 생각의 범주를 넘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우선 현재의 나 자신은 소위 Sunday Christian으로 경계인 또는 주변인이라고 볼 수 있으며, 경계인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에서의 기독교인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한국사회는 단일민족이면서도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특이한 사회인 것 같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외에도 많은 종교인들이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종교의 본질은 믿음과 신념의 체계인 만큼 상호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상호간의 타협을 통한 평화는 현실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타협은 사회계약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특정 종교가 득세를 하면 불리한 계약관계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회에서의 기독교인을 평가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은 지향이 다른 교단들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교단과 복음전파를 중심으로 전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교단에 대해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순전히 비종교인의 관점에서는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순기능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즉 종교적 규율과 가치가 그 사회의 제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호감을 가질 것이고, 문제를 야기시킨다면 반감을 가질 것이다. 역사교과서에 등장하는 일제에 저항하는 기독교인과 일제에 동조하는 기독교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이러한 점을 잘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다. 교회에서 사회적 봉사활동을 장려하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활동들은 일반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는 활동이며, 확성기를 이용한 거리전도나 대규모 부흥회 등은 그들만의 리그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관점과는 정반대의 의견들이 나타날 수 있다.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것이기에.
그렇다면 이러한 판단기준을 비종교인의 시각에서 보아야 할지, 종교인의 시각에서 보아야 할지도 어려운 부분이다. 결국 사회적 규범을 따를 것인가 종교적 규범을 따를 것인가, 그리고 우선순위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사회적 규범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엄밀히 말해서 진정한 신앙인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서구의 많은 기독교 국가들이 기독교적 규범에서 자꾸 멀어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우선순위가 인간의 가치기준으로 변화되기 때문인 것 같다. 동성애를 용인하고, 종교다원주위를 받아들이는 것들이 그 예일 것이다. 오늘날은 너무 많은 불완전한 정보와 가치관들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이며, 종교인들 조차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 적응하고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시대이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왔고, 미래에는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갈 텐데, 기준이 없는 변화는 결국 혼돈으로 발산할 가능성이 높다. 종교는 이러한 기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한데, 세상에 쉽게 드러나는 모습과 쉽게 드러나지 않은 모습을 같은 테이블에 올려두고 보는 것이 공정할 것 같다. 우선 인구에 회자되기 쉬운 모습은 통상적 사회규범 상 통용되는 가치에 위배되는 개인적 비리나, 사회적 정의 실현에 앞장서는 모습일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식에게 교회를 대물림 한다거나, 교회헌금을 유용한다거나, 교회를 개인자산처럼 매매하거나, 교회 재건축과 관련된 비리 등은 신문지상에까지 출현한다. 또한 직접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정의실현의 중심에 서서 정치적 이슈를 제기하는 것도 쉽게 회자되는 일이다. 한편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염원과 함께 엄숙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며, 사회적으로도 귀감이 될만한 선한 일들을 끊임없이 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일들은 종교인이라면 일상적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로 치부되고 만다. 개인화되고 파편화 되어가는 물질만능의 현대사회에서 선한 공동체를 이루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자체가 전체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기초가 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가정이 회복되고, 이웃과의 나눔을 통해 지역사회의 건전성을 높이고, 국가적 이슈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과정들 속에서 사회적 긴장감은 완화되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행위로써 의롭다 하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 말씀처럼 기독교인들의 최우선 가치는 믿음이 되어야 하고 믿음 속에서 의로운 행위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봉사활동이 많이 펼쳐지지만 스펙 쌓기나 자기만족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교회의 봉사활동도 대외적인 명예나 의무감으로 사회구제를 하는 것보다는 사랑의 마음이 확장되는 실천이라야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경계는 모호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벌써 2000년이 넘었다. 한국사회도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강의 기적과 국민들의 노력으로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세계적인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이 고픈 게 현실인 것 같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사랑이라는 핵심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늘 긴장해야 할 것 같다. 이 글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남을 평가하기 이전에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글을 맺고자 한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1, 2013년 9월, 이재호, SK 이노베이션 글로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