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스마트폰이 대세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무료 와이파이까지 제공하는, 세상에서 가장 발달된 한국의 지하철 내에서 승객의 열중 여덟, 아홉은 스마트폰에 고개 숙인 일명 수그리족이다. 뉴스를 보고, 게임을 하고, 웹툰을 보고, 영화를 보고, 채팅을 하고, 또 성경이나 자신의 경전도 읽는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사람과 스마트폰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신기할 정도로 많이 닮았다. 외부자극에 반응도 하고 능동적이고 알아서 척척 일을 처리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피곤해하기도 하고 노쇠하여 부품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전체적인 성능이 떨어지기도 한다.
지난 수개월 동안 지키지 못하던 아내의 부탁을 오늘에야 겨우 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여느 남편처럼 나도 똑같은 핀잔을 몇 달 동안 듣다가 결국 오늘에야 한 일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고 핸드폰의 보조 밧데리와 충전케이스를 사오는 일이었다. 그 동안의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집 주변의 핸드폰 매장에서는 충전기 세트를 팔지를 않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제조사 서비스센터에 가야 하는데, 주말에는 서비스센터가 쉬고 주중은 내가 이런 저런 일정이나 회의 때문에 안 되었고 큰맘 먹고 가면 주차장 여유가 없었고... 참 궁색한 변명이다. 그런데 오늘은 만사 제쳐두고 마나님의 미션 달성만을 위해 작정을 하고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서비스센터에 가서 여유분의 밧데리 두 개와 충전케이스, 그리고 케이블을 샀다. 늦은 김에 부탁한 것보다도 더 많이.
이제 우리나라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5천만 인구 중에 핸드폰수가 5천만이요 그중에 스마트폰이 3천만을 넘는다고 한다. 전체 인구 중에서 핸드폰을 쓸 수 없는 유아나 고령자들을 빼면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쓴다는 이야기 이다. 덕분에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이제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장소에 상관없이 크게 비용 들이지 않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뉴스를 본다. 그 때문에 대의정치를 하는 국회의원이나 중앙과 지방정부, 선출된 단체장 등 정치가는 국민으로부터, 학교의 선생님들은 학생이나 학부형으로부터 실시간으로 평가를 받고 검증을 받아 무척이나 피곤한 직종이 되었지만 덕분에 국가적으로는 경제가 발달하고 통신 산업도 발달하여 자원도 인구도 작은 나라에서 겨우 텔레비전과 일반전화기를 만들어 팔던 우리의 작은 회사가 세계 1위의 스마트폰 제조, 판매 회사가 되어 수출에 크게 기여하고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핸드폰 세상. 편리한 세상, 그런데 한편으로는 더 불편하고 피곤한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핸드폰 밧데리 걱정을 안 해도 되었고 출장을 가거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예 연락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편지를 쓰거나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려 주는 인내의 시대였는데 요즘은 도대체 참지를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 실시간으로 답하지 않으면 답답해진 세상. 매일, 매시간 ‘글자’를 주고받고 정보의 교통량이 급격히 많아졌다. 하지만 종이에 정성껏 손편지를 써서 보내고, 다듬고 다듬어 마음속에만 있던 사랑고백도 하고, 마음에 있는 말들을 전하기도 하던 그 시절의 소통은 오히려 더 드물어진 것 같다. 특히나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던 인터넷이나 모바일이 이젠 중장년 층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여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즉흥적으로 바뀌었다.
기다려 주지 않아서 피곤한 것도 피곤한 것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확연히 짧아진 밧데리 수명이다. 며칠씩 가지고 다녀도 괜찮던 핸드폰은 이제 하루를 채우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분리형 밧데리가 가능한 스마트폰은 여분의 보조 밧데리를 가지고 다니면 되지만, 분리가 안 되는 유명 스마트폰은 외장 밧데리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래서 그 많은 서비스와 디자인 덕분에 매니아가 많았지만 간단한 밧데리의 불편함 때문에 시장 점유율은 자꾸만 낮아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더 화려하고 좋은 장식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소하기도 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은 밧데리와 충전 에너지의 문제는 어쩌면 가장 기본적이고 수명에 관한 것이다. 기름이 떨어져 가는 차안에서 에어컨을 가동할 수도 없고 밧데리가 다 되어가는 핸드폰으로는 전화통화 송수신만을 위하여 무선인터넷도 앱을 실행할 수 없는 것이다.
2. 편리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빨리 피곤해지는 세상
편리한 기기를 가지고도 왜 이렇게 피곤한 세상이 되었을까? 오랫동안 핸드폰 산업의 현장에 있는 필자는 한때 모바일과 헬스과제를 연구하면서 우리 인간의 피곤함과 스마트폰의 밧데리 소모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고 지금도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다. 사람이 피곤하다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것이고, 이것은 기계의 경우 밧데리나 전류소모가 많은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이 글은 연구 논문 보고서가 아니니 복잡한 상관 관계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겠지만, 관찰 결과 필자는 일종의 휴대용 컴퓨터인 스마트폰과 사람의 에너지 소모가 상당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의 경우에는 앱을 많이 돌리면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CPU를 많이 돌리고 이에 따르는 앱의 실행이 일어나면 열이 나고 밧데리 소모가 많아진다. 단순히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냈던 과거 일반전화기에 비해 앱을 사용하는 하는 여러 기능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훨씬 밧데리 소모가 많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경우 가장 피곤할 때는 근육을 쓸 때가 아니라 머리를 쓰거나 심장의 활동을 증가시켜 박동이 높아지는 때인 것이다. 오히려 근육을 많이 사용하고 몸을 움직이면 스스로 충전이 되어서 덜 피곤한데 움직이지 않고 생각을 많이 하거나 가슴이 마구 뛰는 일이 생기면 훨씬 피곤함을 더 느낀다.
누구나 경험하듯이 몸을 움직여 한 시간 산보하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서 한 시간 회의를 하거나 공부(수업)를 하고 나면 더 피곤한 것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긴장을 많이 하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많이 피곤하다. 결국 머리를 쓰는 일이 많은 사람이나 앱의 실행이 많은 핸드폰이 훨씬 피곤하고 밧데리 소모량이 많은 것이다. 생각 끝에 사람이든 스마트폰이든 좀 덜 피곤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어떤 조직이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위임을 많이 하라고 한다. 관장 업무나 결정권을 위임하라는 이야기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이 할 일까지 관여하고 잔소리만 하지 말고 맡길 것은 맡기고 정책을 세우고 방향을 정리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써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믿고 맡길 수가 없으니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맡겨주지 않으니 믿음이 가도록 일을 처리할 수가 없단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이니까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치고 우리의 몸은 어떤가?
우리가 머리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몸과 팔다리로 빨리 내려 놓아야 하지 않을까?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해야 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몸과 팔다리는 움직임이 없이 생각만 하고 걱정만 하고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몸은 몸대로 피곤하고 팔다리는 팔다리 대로 가늘어 진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일을 내려주고 위임을 해 주듯이 우리의 머리도, 뇌도 손발로 실행하게 내려 주어야 하겠다.
최근 들어 필자는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 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분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 몸에 단식이 아닌 다이어트가 있다면, “미디어 다이어트”나 “인터넷 다이어트”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나도 모르게 익숙하게 된 실시간 문자나 뉴스, 메시지 확인으로부터 탈피하여 이젠 미디어 다이어트, 인터넷 다이어트를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평소에 쓰던 스마트폰의 데이터 플랜을 줄이고 보통 때에는 데이터사용을 막아놓고 살아보기로 했다. 어차피 집이나 사무실, 심지어 지하철에서도 와이파이가 되니 데이터 통신이 안 되는 길이나 사람들과 만나는 유료 인터넷 장소를 답답해 하거나 불만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잠시 꺼두는”, “고맙다는 말도 하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라는 광고 문구처럼 인터넷 다이어트를 해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광고비의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통신사들의 키 워드는 “빠르고, 무한한 제한 없는 데이터 사용”이다. 콸콸 쏟아진다는 표현부터, 최근의 A통신사의 소녀명창을 동원한 광고나 B통신사의 인기 있는 두 남녀 연애인의 코믹 광고까지 거침이 없다. 온 국민을 광대역과 빠름의 흐름으로 몰아넣고 있다. 단말기 제조사나 통신사의 마케팅 홍수시대이다.
3. 사색(思索)보다는 검색(檢索)을, 안면(顔面)보다는 화면(畵面)을 보는 아쉬움
소통의 도구가 극대화된 이 시대에 오히려 소통 없이 내 의견만 쏟아내고 좋은 글은 퍼서 신속하게 친구들에게 나르고 다시 나에게로 오고, 반복하는 소통의 본체인 내용과 마음과 사람이 아닌 소통의 그릇 역할만 하다가 하루가 간다. 우리는 인터넷 강국이라는 미명 하에 생각하는 사색(思索)이 줄어들고 검색(檢索)만 하면서 살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모임을 가든 조찬미팅을 가든, 서로의 얼굴과 대화보다는 화면에 비치는 발표문만 보고 오는, 안면(顔面)보다는 화면(畵面)만 보다가 온다.
이렇듯 인간과 스마트폰이 외부와 반응하고 지식이나 활용도가 축적됨에 따라 도구로서의 좋은 기능 뒤에 오는 피로도 증가나 밧데리의 소모량 증가도 해결해야 할 숙제이지만, 한계와 제약이 주는 잇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나친 몸과 마음의 사용으로 몸이 피곤해지고 스마트폰의 밧데리가 닳으면 더 이상 사용을 절제해야 하는 아쉬움 속에 절제와 “한계의 가치”, 곧 한계가 주는 가치, 모자람이 주는 이익이다. 자기는 겸손해지고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너무 건강하여 휴식이나 충전이 필요가 없거나 너무나 똑똑하여 주위의 도움이 필요 없다면 이것은 오히려 “스마트” 하지 않다. 내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자만과 어리석음이며, 오히려 우리가 피곤을 느껴 휴식이 필요하고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고, 절대자 신에 의지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불편함이나 모자람이 아닌 오히려 축복이기도 하다고 옛 성인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4. 피곤하면 휴식을, 방전되면 충전을. 남을 때 나눠주고, 모자랄 때도 자족을
나의 실력이나 힘은 나만의 힘이 아닌 이웃과 하늘의 힘을 합친 전체의 힘이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강함이 승리의 자산이 아니라 외부의 좋은 자원을 튕겨내는 딱딱한 철판이라면, 피부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스폰지로 만들어져 외부의 의견과 자원을 받아들이고 내가 모자란 분야에서 도움을 받아 그들도 살고 또 이를 통해 친구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생태계(Ecology System)를 이루는 지름길이고 이것이 스마트폰이 예전의 일반폰과 다른 것이고 인간이 로보트와 다른 점일 것이다.
“스마트하다”는 것은 단어의 뜻처럼 그냥 “똑똑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족하고 내가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남으로부터 다른 의견과 다른 자원을 받아들여서 그들과 같이 성장”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같은 가치를 두고 상생은 결코 이룰 수 없다. 서로가 보는 다른 가치를 찾아서 서로에게 그 가치를 밀어줘야 진정한 상생(相生)이다. 그렇지 않으면 크고 힘이 센 자만 일방적으로 살아남게 되는 상생(上生)이 될 뿐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3, 2014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