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적 보편과 구체적 보편 사이에서

               

1. 프랑스에서 까뮈의 이미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비프랑스어권 독자에게 카뮈는 <이방인>과 <페스트>의 저자로서 그리고 생존했을 때에나 사망 직후에나 세계적인 작가라는 뚜렷한 이미지가 있다. 그의 간결하고 단아하고 정직한 문체, 영혼의 정직함에서 비롯되는 걸작 수제품의 느낌.

또한 까뮈와 거의 동시대의 작가인 사르트르는 같은 실존주의자이며, 작가이자, 프랑스의 대표적 문호로 우리는 기억한다. 작품 스타일상 구분하자면 카뮈가 단아하다면 사르트르는 좀 더 현란하고 까다로운 문체를 구사한다는 정도랄까.

전문적 연구자를 제외한, 일반적 독자는 까뮈와 사르트르의 입장차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대충의 감조차 없다. 그저 우리의 기억을 담당하는 뇌속에서 대략 비슷한 인접한 스냅스에 위치하는 것이다.

1957년 까뮈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당시, 그의 명성이 추락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생소한 사실이다. 수상 당시 비평가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까뮈를 매장하려고 했다. 우파에서는 자크 로랑이 카뮈의 수상을 두고 ‘노벨이 끝장난 작품에 왕관을 씌운다’고 선언했고, 좌파 성향의 <프랑스 옵세르바퇴르>지는 스웨덴 한림원이 젊은 작가를 찾아냈다고 믿었겠지만 실상은 ‘조기 경화증’을 확인했다고 썼다. 카뮈는 순진한 철학적 성찰 때문에 사르트르의 반격에 고통을 당해야 했고, 그 결과 ‘정통’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카뮈의 신뢰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까뮈에게 가장 안좋았던 것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알제리 독립전쟁으로 칭해지는, 프랑스령 알제리의 비극이 제기한 딜레마였다. 동화주의적 식민주의와 전투적 민족주의 사이의 타협을 바랬던 카뮈의 호소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테러를 거부했기에 알제리 내전이 한창일 때 무기력한 침묵에 빠졌다. 그때문에 까뮈의 평판은 사후에도 계속 하락해서, 경멸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고, 뒤 세대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2. 사르트르의 구체적 보편

헤겔은 특정한 주장을 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사회적 파장이나 지불해야할 대가를 거부하는 사람을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비꼬아 얘기했다. 그런 태도는 ‘추상적 보편’이라는 몽상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헤겔은 실제적 행위 속에서 드러나는 ‘구체적 보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럼 ‘추상적 보편’과 ‘구체적 보편’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개념적 언어의 인플레 의존한 구별점 말고 과연 실제적으로도 유효한 개념적 구분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점에 나는 한 표를 던지겠다.

이에 대한 훌륭한 예시를 인용하고 싶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1965년 일본에서 했던 강연을 모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 나온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많은 사이비지식인이 인도차이나에서 벌인 우리의 전쟁에 대해 또는 알제리의 독립 전쟁 동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식민지 통치 방법이 지나친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해외 영토에는 너무나도 많은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쪽에서 비롯된 것이든 모든 폭력에는 반대합니다. 나는 학살자도, 희생자도 둘 다 되기가 싫으니까요. 내가 식민지의 지배자에 대한 원주민의 반항에 반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급진적인 사유에서 보면 분명한 이러한 사이비-보편주의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식민지의 피지배자에게 자행되는 식민지 지배자의 만성적인 폭력에 찬성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것은 종국에는 사라질 사소한 악이니까요. 하지만 나는 식민지의 피지배자가 자신을 억압하는 식민지의 지배자에 대항하여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에는 반대합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급진적인 사유를 하는 지식인은, 사람들이 피억압자의 역-폭력을 금지시키는 순간부터, 억압자를 향해서 완곡한 비난이나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학사, 2007) 중에서

이처럼 추상적 보편과 구체적 보편을 현실정치에서 날카롭게 식별해내는 사르트르의 통찰은 이어서 말한다. 양비론적이며 심판자적인 태도는 사이비 보편주의이며, 우리에게 보편적 가치란 현실정치에서 구체적 편들기와 승리를 통해 완성된다고.

보편적인 평화만을 원한다면 기껏해야 도덕적으로 전쟁을 뭉뚱그려 비판하는 일에 그치게 된다고. 진정한 지식인은 그런 추상적 보편에 머무는 도덕주의자나 이상주의자가 아니며, 예를 들어 베트남의 유효하면서 유일한 평화는 눈물과 피의 값을 치러야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그 평화는 미군 철수와 폭격의 중지에 의해서 시작되리라고.

3. <페스트>의 장 타루

까뮈의 소설 <페스트>는 알제리의 그랑이라는 도시에서 194x년 봄부터 그 다음해 초까지 페스트가 퍼지면서 도시가 봉쇄되고 그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번지는 질병에 대항한 인간들의 노력과 좌절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급이자 서술자인 베르나르 르외는 30대 중반의 젊은 의사로서 페스트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또한 절제되고 정갈한 자세,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눈높이를 맞춰 성실하고 친근하게 대하는 열린 태도 등으로 작품 속에서도 선호와 선망의 대상이다. 이는 아마도 까뮈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라고 연상된다.

두 번째 주요인물은 장 타루라는 인물인데, 외부인으로 호텔에 거주하며 여유가 있고 스페인 무용수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르외가 사는 집의 꼭대기층)에 자주 드나드는 남성이다. 부족함 없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이지만, 16세 때 자신의 아버지가 검사로 사형수를 심문하고 구형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심문하고 죽일 수 있는 것일까, 라는 (다소 순진한) 문제의식에서 방황을 하고 아버지와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데 페스트의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자원봉사대를 조직하고, 페스트의 위험성에도 아낌없이 헌신한다. 이것은 아마도 까뮈의 사고 방식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추측된다. 이 소설은 그리하여 거의 까뮈의 두가지 태도과 사고에 해당하는 베르나르 르외와 장 타루의 브로맨스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들이 같이 수영하는 장면을 상기해 보라.

그런 장 타루가 의사 르외에게 자신의 인생사와 가치관에 대해 뜬금없이 긴 주절거림으로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근데 이 장면이 꽤 중요한데, 신을 믿지 않는 세속적인 장 타루, 하지만 헌신적이며 성자적 삶을 지향한다. 또한 동시에 사람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폭력 체계를 거부하고자 한다. 인간이 어찌 인간을 심판할 수 있냐는 스탠스.

어쩌면 이러한 까뮈의 순진한 도덕주의적 태도가 장 타루라는 인물의 주장을 통해서 잘 엿보인다고 하겠다. 즉자적으로는 미시적으로 인간에게 깊게 호소하는 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사회라는 세속의 상징체계는 정직함과 순수함만으로는 구성되지 않으며 피, 땀, 눈물, 분노, 고통, 소외 같은 인간의 이상한 분비물을 중요 요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소외의 거부, 혹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 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 속에 까뮈의 철학적 약점이 있을 것 같다. 마치 거기에는 추상적 보편의 알집 속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하면서 손에 피를 묻히는 구체적 보편이란 행위 앞에 주저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면모가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사르트르나 그 비슷한 진영의 사람들의 도마에 올라 칼질을 당한 것이리라.

4. 토니 주트의 까뮈 옹호, 그리고 그 윤리적 모호함

역사가이자 탁월한 서평가인 토니 주트는 사후 출판된 까뮈의 소설 <최초의 인간>이 프랑스에서 수십만 권이 팔리면서 호평을 받는 상황에, 까뮈의 생애를 아루르는 서평글을 1994년 10월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실으면서, 까뮈의 복권을 옹호한다. 영미권의 사민주의자로서 유럽의 신좌파의 급진적인양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피상적인 그들의 모습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토니 주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평가일 거 같다.

유럽의 좌파가 수백 수천만의 목숨을 수단으로 삼아, 그들의 숭고한 대의에 충실하고자 했을 때, 그리고 그 대의가 다분히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이었으며, 그런 거대한 윤리적 도박이 성공하지 못하고 끝내 명백한 실패로 귀결되었기에, 좌파의 윤리적 확신과 오만함에 대비해 까뮈의 겉멋 들지 않는 정직함과 소외에 대한 자기 책임을 일깨우는 호소가 오히려 새롭게 권위를 얻게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심각한 폭력이라는 수단을 거부하는, 인간 개개인을 중시하는 아마도 자유주의적인 듯한 태도는 그럼 불변의 진리일까? 까뮈는 옳고 냉냉하고 날카로운 사르트르는 틀렸을까? 그런데도 왠지 사르트르의 ‘구체적 보편’이 말해주는 뭔가가 철학적 현실적 울림이 있지 않는가?

흔히들 유럽 좌파가 신뢰를 잃은 것은, 현재의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미래를 들먹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래의 완전한 유토피아를 위해 현재의 수단적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윤리의 기묘한 외설적 측면을 고찰해 봐야 한다. 사람들은 선량한 의도를 주된 윤리적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의도와 결과 사이에는 여러 긴 고리들이 있고, 거기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지점들이 있다. 또한 윤리적 판단에서는 의도뿐만 아니라 결과도 중요하다. 그래서 도달하는 외설적 결론은, 의도와 결과 사이의 긴 사슬에 영향을 끼치는 우연적인 요인들에 우리의 윤리적 행위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선명한 이해를 위해, 슬라보예 지젝이 <오늘날의 이데올로기>라는 글에서 예시하는 것을 인용해 보겠다.

20년 전 헬무트 콜이 늦게 태어난 덕분에 홀로코스트에 연루되지 않을 수 있었던 독일인들의 상황을 요약하며 ‘늦게 태어난 은총’이라는 말을 썼을 때, 많은 논평자들은 이러한 정식화를 거부했다. 이러한 말은 도덕적 모호함과 기회주의의 표시로, 오늘날의 독일인들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부인할 구실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콜의 정식화는 도덕성의 역설적 신경 – 버나드 윌리엄스가 ‘도덕적 행운’이라 명명하는 그것 - 을 건드린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윌리엄스는 고갱이라는 아이러니한 이름의 화가를 예로 든다. 고갱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타히티로 떠났다. 고갱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없는가? 윌리엄스의 대답은 모험적 결단의 최종적 결과를 확인한 후 소급해서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천재 화가가 되었는가 아니면 되지 못했는가?

급진적 칸트주의자들은 이런 유의 딜레마 앞에서 경악할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 앞에서는 행동의 윤리적 가치가 전적으로 ‘병리적인’ 조건, 즉 철저하게 우연적인 결과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요컨데, 도덕적 딜레마를 수반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밖에 없다. “운이 좋다면,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은 후일 도덕적인 행동으로 밝혀질 것이다!” 이런 유의 ‘병리적’ 근거가 인간의 도덕적 태도를 지탱한다는 것은 선험적 필연이 아닌가? 우선, 상식적 의미에서 그러하다.

                                                      (슬라보예 지젝의 <오늘날의 이데올로기> 중에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라는 판돈이 큰 도박. 그에 대한 비난은, 그것의 현실적 실패에 기인한다. 피를 흘린 것에 대한 비난은, 피라는 그 소외 비용 자체가 아니라 그 비용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초래한 해방적 가치가 적었기 때문이다.

식상한 예를 들자면 이렇다. 마치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 부모가 소판 돈을 갖고 도시로 도망을 갔다. 그 혹은 그녀는 과연 사업을 크게 성공하여 금의환향하느냐 아니면 날려 먹고 도망 다니며 평생 불효자로 남는가도 철저히 그 행위의 도박적 결과에 따른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큰 도박은, 그 사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혁명의 유산을 현대 대다수 국가의 사회구성 원리로 받아짐으로서 성공한 도박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피를 부질없는 것이라고, 그 혁명은 인간 목숨을 수단으로 삼은 잔인한 폭력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맥락에서 카뮈의 가치는 어디에서 빛을 발하는가.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후, 세계가 의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공통의 체계로 수렴되고 안정됨으로써, 어쩌면 역사의 종언이라는 근본적 혁명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세계체계 속에서, 마치 영원히 잠든 듯한 밤 속에서 빛나는 달빛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사회를 지탱하는 주된 패러다임이 위기에 처하고, 근본적인 재구성이 필요한 시기가 온다면, 안전하고 아름다운 달빛이 아니라 우리는 다시 위험하고 뜨거운 태양빛을 요청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