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며 이곳저곳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어떤 유대인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은 마치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진정 하나님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구원하시리라 생각하십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이신다. ‘좁은 문’(stenos pyle)으로 들어가기를 ‘다투라고’(agonizomai) 말이다. 큰 문은 들어가기도 쉽고 편하지만 ‘파멸’(apoleia)로 이끄는 길이기에, 좁고 힘들더라도 경주하듯 좁은 문으로 들어가 ‘생명’(zoe)을 취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마태복음 7:13-14).

 

이방인 누가의 ‘좁은 문’과 관련된 기술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바로 율법사나 바리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을 알던 사람 모두가 ‘지식의 열쇠’(kleis gnosis)를 가지고 있음에도, 크고 편한 길에 있는 문을 찾았기에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다’는 것이다(누가복음 12:52).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들 모두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충고하시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다”고 경고하시는 것이다(누가복음 13:30).

 

2.   

‘바리새’(pharisee)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구별되다’(parush)에서 파생되었다. 그리스어로는 ‘pharisaios’이고, 라틴어 성경에는 ‘pharisaeus’라고 되어있다. 흥미롭게도, 누가는 그 유명한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통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구별됨에 대한 오만’과 ‘선택받음에 대한 겸손함’의 차이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예수님의 예화에 등장한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들(loipos anthropos)과 같지 않음을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누가복음 18:11). 반면 세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고개를 들지도 못한 체, 이렇게 읊조린다. “하나님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는 죄인(hamartolos)입니다.”고 주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누가복음 18:13). 누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가 목격했던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사람이 갖는 문제점을 조용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기에 누가는 예수님께서 거듭 바리새인을 향해 전하셨던 충고를 성경에 담는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말씀을 여러 곳에서 다시 기술하는 것이다(누가복음 14:11; 18:14). 그리고 누가는 바리새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세례 요한을 통해 이미 경고된 바 있음을 기록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누가복음 3:5).

 

누가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구별하는 또 다른 잣대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돈’이었다. 누가는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들은 자기들의 ‘재물’을 곧 구별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누가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돈’에 대한 태도를 엄하게 꾸중하셨음을 강조한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누가복음 11:39)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먼저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바리새인들이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인간임을 몰랐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사도 바울이 밝혔듯이, 그들도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cf. 디모데후서 3:2).

 

그리고 누가는 바리새인들이 ‘불의한 청지기’처럼이라도 뺏은 돈으로 자선을 베풀 용기조차 갖지 못했음을 차분하게 전달한다.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이라고 쓴 것이다(누가복음 16:14). 이때 누가가 사용하는 ‘탐욕스럽다’(philargyros)는 말은 특별히 ‘돈’에 대한 집착을 일컫는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라고 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이 ‘사람들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하시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누가복음 16:15). ‘풍요’와 ‘부’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축복의 하나가 될 수는 있어도, ‘돈’을 그 무엇보다 사랑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눈에 어떻게 좋게 보였을까 말이다.

 

어쩌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어느 부분에서도 ‘자기들에게 미칠 하나님의 징벌’에 대한 경각심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의 손에 묘사되는 삭개오와 같은 세리만큼의 경각심만 갖고 있었더라도,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하시먼, 즐거워하며 ‘불의한 청지기’처럼 행동했을 것이다(누가복음 19:5). 이런 경각심이 없었기에, 삭개오처럼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누가복음 19:8). 그래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를 모욕하신다.”고 불평하는 것이다(누가복음 11:45). 이들은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무례하게’(hybrizo) 대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한 번씩 바리새인들이 처음 유대인 사회에 등장했을 때를 상상해보곤 한다. 기원전 70년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파괴된 시점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사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민감한 사람들이다. 기원전 167년 셀레우코스 왕조(시리아)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우자, 기꺼이 마카베오 가문을 따라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벌였을 정도였다. 그리고 하스모니아 왕조의 무능으로 예배의 회복이 필요했을 때에도,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의 인도를 따라 다시 일어났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이후 모습들은 왜 이들의 운동이 ‘하나님’의 예배를 회복시키지 못했는지를 잘 가늠하게 해준다. 하스모니아 왕조 형제들 사이의 권력다툼이 사두개인과 바리새파의 분란으로까지 번졌고, 중재를 이유로 이스라엘로 들어왔던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이때 아리스토불러스 2세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바리새인들이 로마인들에게 협조한다. 어쩌면 이런 연유에서 로마인에게 아부해서 왕이 된 헤롯왕 일가에게는 사두개인보다 바리새인이 더 편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사두개인이 속한 전통 귀족세력과는 적대적 관계였고, 대중들의 호감을 사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연대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물론 바리새인들은 표면적으로는 헤롯 일가를 경멸했다. 율법에 어긋나는 정통성이 없는 왕이고, 자신들이 내세우는 순혈주의에도 적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두개인들과의 적대적 관계 때문에 자기들을 선처하는 헤롯 일가와의 은밀한 동행을 즐겼다. 막대한 부를 가진 헤롯으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고, 사두개인과의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헤롯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던 헤롯 안티파스와 바리새인과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좁은 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끝나자마자, 헤롯의 사주를 받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라고 말한다(누가복음 13:31). 이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당신의 위험을 일러주러 온 것이 아니라 헤롯의 경고를 전달하러 왔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신다.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시로서는 ‘가장 간사하고 해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여우’(alopex)라는 단어를 사용하신다. 즉 헤롯은 여우이고, 이 여우에게 빌붙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바리새인들은 ‘여우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어쩌면 바리새인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 이런 바리새인들이 늘 당신을 따라다니며 시비를 거는 것을 개의치 않으셨던 모습에 감사를 드리게 된다. 함께 식사하셨고, 그때마다 ‘바리새인’이 스스로를 ‘구별되었다고 인식한 것’에 무엇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 니고데모도 그런 가르침을 받았던 바리새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아직 ‘니고데모’의 이름을 말할 수 없었는지, 누가복음에는 ‘니고데모’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니고데모 같이 예수님 앞에서 잘못 알던 바를 고쳐 알게 되는 사람만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복음에 무척 고무된 듯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고 외치는 것이다(누가복음 14:15). 이에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잔치의 비유’를 꺼내놓으시고, 이 사람의 뇌리에 박힌 ‘선민의식’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지적하신다.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하시는 것이다(누가복음 14:24).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신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고(누가복음 14:34). 즉 하찮은 선민의식과 우월감 따위는 버리고, 너도 이제 세리처럼 기도해야한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이다. 모두 “제자”가 될 수는 없어도, 모두가 예수님의 잃어버린 양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계신 것이다(누가복음 14:33 & 15:7).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남의 눈을 피해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버리시지 않으셨다. 니고데모는 ‘우두머리’(archon)였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지위로는 유대인의 관리이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어쩌면 바리새인들 중의 바리새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겸손하게 자기의 닫힌 마음을 내려놓는다.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요한복음 3:2).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며 예수님께서 꾸중하실 때, 그의 영혼은 이미 거듭남에 눈을 뜨고 세리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서 있다(요한복음 3:10). 그래서 예수님의 체포를 두고 바리새인과 관원들이 논쟁을 벌일 때, 니고데모는 온갖 두려움을 무릅쓰고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며 따져 묻는다(요한복음 8:51). 아직 모든 것을 버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스스로를 구별하던 오만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었던 것이다.     

 

6.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숨겼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바리새인 니고데모만이 예수님의 시체를 마주한다. 그리고 밤마다 몰래 예수님을 찾았던 니고데모가 이제는 당당하게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들고 예수님 앞에 서 있다. 이때 그는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을 것이다(요한복음 2:19절). 아마도 그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인자가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 냈을 것이다(요한복음 3:14-15). 그래서인지,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돌아가심과 함께, 이제까지 버리지 못했던 것을 버리고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 유대인의 손에 순교할 때, 그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시 뇌리를 스쳤을 것이다. 

 

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근대화와 함께 성장해왔다. 그리고 이제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수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한 거대한 집단이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눈총과 멸시를 받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바리새인들의 실패가 우리의 거울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3, 2013년 11월, Diagog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