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은 돈 버는 조직이다. 돈 버는 조직은 타산적이지 않으면 망한다. 내가 땀 흘려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뭔가 일을 망쳤을 때 사무실이, 구체적으로는 파트너나 고용주들이 나에게 따듯하게 굴지 않고 차가운 눈빛을 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 원칙적으로 가정처럼 따스하고 곰살맞은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직장의 본질을 외면한 착각이다. 아마추어 선수는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운동선수이므로, 운동을 열심히 안 해도 되고, 운동을 안 해도 된다. 그러나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 선수는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고, 운동을 잘 못 하면 잘린다. 우리는 의뢰인의 돈을 받고 회사의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 선수이니, 당연히 힘들게 열심히 땀을 흘려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 아직도 학생인 것처럼, 땀을 흘리지 않고도, 서로 일을 잘 하나 못 하나? 눈을 부라리지 않고도, 당연히 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아마추어같이 굴면 안 된다!

인생과 일용할 양식 버는 일과 직장을 너무 낭만적으로, 은혜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 목적과 메커니즘의 본질에 대한 중대한 착각이고, 이러한 착각은 우리 인생에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 우리들이 먹고 사는 일과 관련하여 가지는 불만들, “일 하는 것이 힘들고 괴로운 것, 내가 하는 일이 재미가 없는 것, 직장생활에 낭만이 없는 것, 사무실이 타산적으로 구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아담의 죄 이후 우리가 겪는 숙명이거나 돈 버는 조직의 본질의 발현일 뿐, 회사의 잘못이 아니다. 회사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회사는 원래 그런 것인데 회사에 마구 화를 내고 앉아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죄인들이 운동하는 이 세상에 이상적인 직장, 행복한 직장은 있을 리가 없다. 꿈을 깨고! 어린 아이처럼, 학생처럼, 아마추어 같이 굴지 말고, 냉엄한, 냉정하고 엄숙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고 나서 곧바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내 손으로 일을 해야 한다. 직장과 가정에서 하기 싫은 일, 지루한 일을 계속 해내야 한다.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 잘못된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 오해를 하지 않으면 인생이 조금 더 분명해지고, 오해를 하면 인생이 조금 더 꼬인다.

일 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가, 하고 우리는 묻는다. 그러나 일 하는 것은 원래 힘이 든다. 그러니까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땀 흘려 일하지 않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우리 조상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는 죄를 지은 후 땅은 우리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우리는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창세기 3:17-19). 아담을 욕하든지 말든지, 그 이후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땀을 흘려야 일용할 양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땀을 흘리지 않으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 당연히 어렵다.

내가 하는 일들은 왜 이렇게 하나도 재미가 없는가? 이것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질문이다. 땅이 저주를 받은 후 일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저주가 되었다. 그러니까 만약 일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고 느끼는 상태가 오면? 오히려 내가 세상에 너무 빠져서 있는 것이 아닌지 신중하게 의심하고 묵상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변호사의 경우 10건 중 1-2건만 재미를 느껴도 충분히 인생을 견딜 만하다. 모든 사건이 다 재미있고 의미있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하기도 하다. 과거 모세는 40년 동안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광야를 이리저리 헤매면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는 직장생활을 했다 (출애굽기 2장, 사도행전 7:30). 그 40년 동안 모세가 남의 양을 치는 일에 무슨 재미가 있고 낭만이 있었겠는가? 하나도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모세의 직장생활보다 더 즐겁고 행복해야 할 정당한 이유나 근거는 없다. 40년 목동 생활의 끝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불꽃을 만날 때에도 모세는 아직 이드로의 양을 치는 평생 피고용 어소(Associate) 신세였으니, 10년 전후로 동업자(Partner)가 될지 여부가 결정되는 우리 처지는 그래도 모세보다는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이 직장에는 낭만이 없는 것 같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는 낭만이 없고 먹고사는 일에도 낭만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일을 죽어라고 열심히 하면, 낭만이 조금 생긴다. 그러나 직장생활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낭만과 보람을 주어야 한다는 기대는 접는 것이 현명하다. 진정한 낭만은 믿음을 파고들어 인생에 대한 자유를 얻으면 충만하게 느낄 수 있다. 연목구어(緣木求魚),구할 곳에 가서 구해야 하고, 구해도 줄 수 없는 곳에 가서 없는 것을 달라고 강짜를 부리면 인생이 꼬인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마구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오해이다.

우리가 아직 일을 잘 못해 허덕거리기 때문에 그 일들이 재미가 없고, 사람 간의 갈등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 짜증나는 것일 뿐, 우리가 하는 법률과 재판 일은 규모가 크든 작든, 내용이 정돈되어 있든 머리가 뽀개질 정도로 복잡하고 산만하든,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인생과 그 인생의 성패가 담긴 중요하고 엄숙한 일이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노동인 법과 재판 일을 통하여, 사람들의 인생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 인생의 갈등에 개입하며, 좋고 나쁜 결과들을 낸다.

앞에서 본 모세의 광야 40년 목동생활에는 하나의 중대한 반전이 숨어 있었다. 모세의 맹목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던 40년 광야 목동생활의 경험과 그때 쌓인 지식은, 이후 모세가 수십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끌고 나와 다시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도자로서 인도할 때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소송과 자문 일에 아무 흥취를 못 느껴도, 그 과정에서 쌓이는 공력과 경험은 이후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사람과 적절한 장소를 만날 때, 나와 의뢰인과 더 많은 사람들과 그리고 나의 믿음을 위해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낭만적인 생활과 낭만적인 업무결과는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은 담당 변호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암담하고 잘 풀리지 않는 사건을 앞에 놓고, 칠흑 같은 밤 담당변호사가 의뢰인과 법원에 대한 부담감으로 짓눌려 몸부림치면서 기록을 계속 째려보면, 갑자기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강이 열리는 역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사건의 승패는 미리 고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록을 째려보면 질 것 같던 사건도 이기고, 우리가 기록을 째려보지 않으면 이길 것 같던 사건도 지게 된다.

누구나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한다. 변호사가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면 사건에 투여할 시간이 최소화되고, 나에게 사건을 맡긴 의뢰인의 삶과 행복이 위태해진다. 그러나 변호사가 여유 있는 삶을 포기하고 자기의 시간을 부인하면, 사건이 살아나고 의뢰인의 인생이 살아난다. 우리에게는 다소 비극적인 일이지만, 변호사의 일용할 양식 구하는 일에는 (나에게 돈을 주고 사건을 맡긴)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한복음 15:13)는 예수님 말씀과 통하는 장렬한 면이 있다.

변호사의 마케팅에는 술과 골프, 인맥 관리와 자기자랑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마케팅 방법은 사건과 의뢰인에 애정을 가지고 내 시간과 나의 노력을 투입하여 나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애정으로 목숨 걸고 변론요지서를 써서 무죄판결을 받아 의뢰인을 구원하고, 설사 지더라도 있는 정성을 다해 사건을 끌고 갔을 때 변호사와 의뢰인은 전투적 동지애를 가지게 되고 신의와 사랑과 신뢰와 믿음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강력한 마케팅 방법이다.

(하지만 너무 죽어라고 일만 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한계가 오는 신호가 발생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조절이 필요하고,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불가피할 때에는 지혜롭게 후퇴를 하거나 퇴각해야 한다. 무조건 앞으로 나가거나 무조건 버티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신명기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으며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니,’ 믿음 안에는 큰 자유가 있다. 열심히 일하는 것과 절제하는 것을 함께 병행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적당한 선에서 절제를 하지 못하는 것도 죄이다. 일이 너무 많아서 못 견딜 정도가 되면, 현명하게 일을 멈추어야 한다.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분골쇄신하다 쓰러지는 것도 멍청한 일이고, 짜증 충만해서 파트너에게 화를 내고 일을 집어던지는 만행을 부리는 것도 좋지 않다.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고, 가장 말이 통하는 착한 파트너에게 SOS 구조요청을 해서 더 이상의 무리한 사건배당을 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영리함도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업무인 법적 분쟁들에서는 당사자들이 서로의 몫을 두고 다투고, 서로 억울해하고 미워한다. 다툼의 원인에는 서로 계산이 다르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민사재판에서 원고와 피고가 싸울 때 원고는 자기의 정당한 권리의 몫을 10 중 8이라고 생각하고, 피고는 자기의 몫을10 중 6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둘 다 억울해하고 자기가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원고에게는 피고가, 피고에게는 원고가, 십계명 중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제10계명을 위반한 죄인이 된다.

‘노름판에 본전이 안 맞는 것’처럼, 세상의 분쟁들은 모두 사람들의 본전이 맞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법적 분쟁을 처리하는 업무과정에서, 변호사들끼리(직장 내에서) 또는 변호사와 의뢰인 간에 벌어지는 분쟁과 다툼과 상처의 발생 원인도, 마찬가지로 본전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어소시에이트(피고용) 변호사들은 같이 일을 한 상사(上司) 파트너와의 사이에서 짜증을 받을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파트너들이 미워지고, 사무실이 나빠 보인다. 하지만 파트너 변호사의 계산과 입장은 전혀 다르다. 어소 변호사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일을 해내지 못하면 파트너는 무척 괴로워진다. 그러면 파트너들은 제대로 성질도 못 내고 어소 변호사 앞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표정을 짓게 된다. 이때 그 상대인 어소 변호사는 자기 인격을 무시당한 것 같은 모멸감을 느끼고, ‘저 인간은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성질만 낸다’고 파트너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이 사람도 미워지고 저 사람도 미워지고, 내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이 상황이 파트너에게는 그렇게 괴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소 변호사에게는 인생의 치명적 위기로까지 진척되고, 사무실 생활이 매우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심한 경우에는, 지옥을 따로 상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힘들어 진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피아간의 채권과 채무를 정확히 인식하고, 정확하지 않거나 불공정하게 상대방의 빚 크게 주장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주기도문 다섯 번째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의 NIV 영어성경 번역은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라고 하여 빚(채무, debt), 빚진 자(채무자, debtor)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상대방의 빚(채무)을 용서해주는 것, 탕감해주는 것은 내 것을 버리는 일이므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채무, 잘못을 용서해줄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기 전에, 우선 과연 상대방이 빚진 자(채무자)인지 아니면 내가 빚진 자(채무자)인지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고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알고 보니 두 사람 중 채무자는 상대방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었다면, 굳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대방의 빚(잘못)을 용서해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화를 낼 필요도 없게 되니까, 인생이 훨씬 간편해 진다.

동업자인 파트너와 파트너 간의 갈등은 상대방의 이익을 침범할 때 생기고, 파트너와 어소시에이트 간의 갈등은 보통 업무수행의 퀄리티나 마감시간 deadline이 잘 맞지 않았을 때 생긴다.일이 좀 꼬이고 파트너가 나에게 신경질을 내면, 상대방을 ‘나쁜 놈, 나에게 잘못한 자, 나에게 빚진 자’로 생각할 필요 없이, ‘이번에는 내가 일을 조금 잘 못했구나, 다음에는 잘해야지’하고 나 자신을 빚진 자로 생각하고 나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간명하고 정확하다. 내가 진 빚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빚만 너무 깊이 묵상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서의 벽'에 부딪히고,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몸부림치게 된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 인간성의 좋고 나쁨과 친절함 여부와 무관하게, 나에게 일을 맡기는 파트너는 나에게 일을 주는 고마운 의뢰인(client)이다. 변호사는 어소이든 파트너이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존재이다. 회계 경리상의 처리, 직책상의 분류와 무관하게 나에게 법률 일을 주는 사람은, 사람이 일반인이든 변호사이든, 같은 사무실의 변호사이든 다른 사무실의 변호사이든, 동료 변호사이든 선배 파트너이든 모두가 나의 소중한 의뢰인이다. 의뢰인은 나에게 돈을 주는 채권자이고 나는 의뢰인에 대한 채무자이다. 나에게 일을 주고 때때로 인상을 쓰는 파트너에게 나는 채무자인 것이다. 아직 일을 썩 잘할 능력이 없는 빚진 자로서, 나의 클라이언트이자 채권자인 파트너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가급적 최대한 잘 서비스해주는 것이 법률회사 직장생활의 비결 중의 하나이다. 내가 잘해주면 파트너도 나에게 잘해주게 된다. 어용이 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현명하게 하자는 것이다. 오히려 클라이언트들에게 일로서 잘해주면, 하고 싶은 말 다할 수 있고 어용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아주 현실적인 얘기를 전개해본다. 이것은 아마 거의 모든 직장에서 매일매일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신입 변호사가 어떤 파트너와 처음 일을 하게 된다. 무슨 처음 보는 법과 관련해서,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기업, 전문부서에서도 답이 안 나와서 보낸 난문(難問)을 놓고, 어떤 해석이 옳은지 어떤 방침을 세우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법률질의에 대한 의견서를 써야 한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씨름하면서 끙끙거리면서 1주일을 걸려서 의견서를 쓰고 파트너에게 주었다. 막판에는 내용에 자신도 없고 시간은 없고, 파트너는 한 마디 조언도 해주지 않고…… 한계 상황에 몰려서 스스로 확신이 가지 않는 의견서를 대충 끝내고 파트너에게 이메일로 초안을 날려 보낸다. 파트너가 시비를 걸지 않고 착하게 그냥 넘어가주기를 간절히 기도했건만, 파트너는 내 의견서의 잘못된 점 얼렁뚱땅 쓴 부분만 귀신같이 꼬박꼬박 찾아내서 고칠 것을 요구한다. 답답한 마음으로, 나로서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대충 고쳐서 보냈는데, 파트너는 급기야 도저히 안 되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자기가 직접 의견서를 써서 의뢰인에게 보내고, 나에게 싸늘한 눈길 한방을 날려 보낸다. 나는 잠시 당황하였다가는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한다(창세기4:5). 나를 뽑아올 때에는 그렇게 친절하게 굴더니, 이게 뭐냐, 좀 쉬운 일을 주던지, 어려운 일을 주었으면 힌트를 미리 주고 가르쳐주던지, 그러지도 않고, 나를 무시하고, 자기가 직접 쓴 의견서를 읽어보니까 그것도 그리 대단한 명문장도 아닌 주제에…… 이렇게 성질을 내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 그 파트너가 주는 일은 잘 하기도 싫고 잘할 자신도 없어지고, 저 사람은 나를 계속 미워하고 싫어하고 무시하게 될 것 같고, 그런 눈치보는 나 자신이 불쌍하고, 이렇게 세 번 정도 악순환이 계속되어 일을 망치면 그 파트너는 더 이상 나와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이때 문제의 해결은 사실 굉장히 단순하다. 앞에 있었던 불편함은 내가 한 번 일을 잘못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며 그냥 흘려보내고, 그 다음 기회에 잘하면 되는 것이다. 다음에 그 파트너와 한 번 더 일을 하는 기회에 내가 온 정성을 다해서, 2번, 3번 내 손으로 자체 리뷰하고 수정작업을 하고, 정말 잘 모르겠으면 가까운 1, 2년차 위 선배에게 물어보거나 그래도 답이 안 나오면 최대한으로 착해 보이는 다른 파트너에게 조언을 받아서라도, 나의 성의를 다한 의견서나 소송서면을 만들어 내면, 나빴던 기억은 끝이고 선순환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파트너는 일에 화를 낸 것이지 사람에 화를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멍청했던 놈이 다음 에는 아주 똑똑하게 일을 해내면 너무 고맙고 행복해진다. 믿고 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기 때문이다.나의 production이 충분치 못해서 일이 한번 꼬였을 때, 성경이 가르쳐 주는 ‘선한 일을 행해서 낯을 드는 방법’을 생각하고 사용하면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고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일이 꼬일 때 안색이 붉어져 분함을 지속하고 원망을 지속하면 나의 인생은 문 앞에 엎드려 나를 노리고 있는 죄에게 먹히고(창세기 4:7), 나는 원망과 분노의 사무실 생활을 보내게 된다.

세상의 직장에는 항상 경쟁이 있다. 내가 가장 높이 인정받는 사람이 되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항상 나보다 더 잘하는 동료가 있다. 예상외로 내가 일을 잘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며 당황하게 되고, 또는 평균 정도 밖에 못하거나 잘 못하는 측에 속한 느낌으로 우울하게 된다. 나에게는 인상이 딱딱한 파트너가 내 동기 친구 변호사에게는 막 다정하게 웃음을 날릴 때, 나에게는 소가(訴價)가 적은 시시한 대여금 사건만 주고 그에게는 세상에 소문난 M&A case 같이 고급 사건의 주심을 막 맡길 때, 우리는 기가 죽기도 하고, 짜증도 난다. 나에게는 좋은 사건을 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무실과 파트너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고소사건 대여금 사건 등 나에게 오는 허접한 사건들은 더 이상 열심히 하고 싶지도 않고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이렇게 되면 망한다. 아직 나에게 사건이 오고 있다면, 나는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 중 가장 잘 나가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두 달란트 가진 자’이거나 최소한 ’한 달란트 받은 자’에는 해당한다.

성경의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를 보고 질투하고 화를 내지 않은 채, 열심히 장사해서 두 달란트를 더 남기고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는 주인의 칭찬을 받았다. 주인의 칭찬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 간에 아무 차이가 없었다(마태복음 25:20-21).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짜증을 내고 주인을 미워하다가 가지고 있던 한 달란트도 빼앗기고 말았다.

일을 시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의 크기, 양질 여하를 막론하고 작은 사건 하나를 완전히(thoroughly), 책임적으로(responsibly) 해내는 사람이 가장 고맙다. 소가(訴價) 1천만 원 이하의 동네 사채 대여금 사건, 서류도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고 고소․고발이 지저분하게 얽혀 있는 사건을 찡그리지 않고,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잘 처리하는 변호사에게는, 그 다음에 1억 원짜리 사건 10억 원짜리 사건, 수백억 수천억 원짜리 소가의 대형 사건도 믿고 맡길 수 있다. 매일 고급 사건만 하고 싶어 하고 작은 사건은 싫어하는 사람, 작은 사건을 주면 짜증내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겁이 나서 결코 큰 사건, 좋은 사건을 맡길 수가 없다. 작은 사건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큰 사건을 줄 수 있고, 큰 사건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겁이 나서 작은 사건도 줄 수 없다.

나보다 더 잘 하는 사람, 나보다 더 인정받는 사람을 보고 시험에 들지 말고 지금 나에게 맡겨진 사건에 그냥 성의를 다하는 것, 꼭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되려고 할 것 없이 지금 나에게 맡겨진 두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큰 일, 더 고급의 사건, 전문성 있는 사건을 할 기회를 가지는 유일한 길이다.

이 세상에서 충분한 수임료를 내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 힘든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고 공익과 인권 변론에 투신하는 착한 변호사들이 있다.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고 기쁜 일이다. 우리 모두는 좋은 일을 하는 동료들이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동역자로서 함께 고민하고 공궤(供饋)하고 중보해야 한다.

그러나 인권과 공익 또는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는 일만이 보다 가치가 있고, 일반적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직장인, 변호사들의 일상적인 일은 가치가 없다고 멸시하거나 세상 타협적이고 신앙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생각은, 비성경적이고 한편 위험하기까지 하다.

우선 성경은 내 손으로 일해서 먹고 살 것을 명령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려면 직장에 들어가든지 사무실을 차리든지 땀을 흘려서 식물(食物)을 구하기 위한 노동을 해야 한다.예수님도 요한복음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지 세상 속에서 살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그러니까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려면, 직장에 들어가서 사건을 수임하고 수임료 흥정을 하고 때로는 잘 난 척도 하면서 세상을 살고 견뎌내야 한다. 성경 어디에도 먹고 사는 일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없다.

다음으로 먹고 사는 일상의 일은, 나의 삶과 이웃의 삶, 즉 직장 동료들의 삶과 의뢰인의 삶이,긴밀하게 연결되는 장소이다. 우리 모두의 직장과 가정에서의 일상은 우리가 세상과 인생 속에서 믿음으로 하는 씨름의 주전장(主戰場)이다.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칙과 세상 나라의 원칙은 격렬하게 부딪힌다. 이 속에서 진지하게 내 손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이 세상의 정욕에 휩쓸리지 않고 더 크고 자유한 소망을 구하면서 차분하고 진지하며 당당하게, 그리고 나 개인을 넘어서 주변의 사람들을 돕고 격려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생업과 직장과 가정생활을 천시하고 이것을 무시하면, 결국 우리가 할 일을 하지 않는 무책임으로 귀결될 것이다.

변호사 일만 하면 인생이 그렇게 재미있고 즐겁지 않다. 가끔 잘 나갈 때, 하는 소송마다 이길 때에는 재미가 있지만, 그 재미는 한정 없이 지속되지 않으며 반드시 덜컥 멈추는 날이 온다. 그러나 믿는 일의 재미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변호사를 하면서도 믿는 일의 재미를 넘치게 누리면, 인생 자체가 즐거워지고 우리의 변호사 생활로도 즐거움이 흘러넘치게 된다.

우리는 민법도 잘 알고, 형법도 잘 알고, 민․형사소송법도 대충 안다. 일을 하기 위해서 매일 매일 민법과 형법과 소송법을 땀을 흘려가면서 깊이 묵상하고 연구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일하는 법(法)은 잘 알지도 못하고 잘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러면 사법시험, 변호사시험이나 회사 일에서는 과락을 면할 수 있겠지만, 인생 시험에서는 필연 과락을 면할 수 없다.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존적인 고민에 부딪힐 때 신 앞에 나간다. 고마우신 하나님은 바닥에 쓰러져 울면서 매달리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서, 다리와 발목에 곧 힘을 얻고 다시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사도행전 3:7).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실존적인 요구만을 무한정하게 반복적으로 도와줄 의무를 부담하는 채무자가 아니다.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신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의 성공과 성취와 안락한 생활에 대한 요청을 끊임없이 받아주어야 할 것인가? 이런 요구는 정당하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고 공평하지도 않다. 힘들 때만 하나님을 찾고 힘들지 않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내 힘으로 사는 믿음은, 어리고 무력한 믿음이다. 어리고 연약한 믿음에는 힘이 없고, 즐거움도 없으며 세상의 고민과 고통을 극복할 실력이 없다. 평생 나 자신에 대한 기도제목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지만, 사람들의 요구와 어리광을 무한정 받아주는 수염 잡힌 할아버지가 아니다. 사랑이 넘치지만 냉정하게 사람들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간절한 위로를, 때로는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게 하는 분이다(사무엘하 7:14). 하나님을 사람들의 기도만 들어주시는 분, 들어주셔야 하는 분으로 오해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우상󰡑을 믿는 것이다.

말씀을 공부하고 몸에 체화시켜서, 우리의 믿음으로 삶의 모든 문제를 대면하고 풀어나가는 장성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장성한 믿음은 냉정한 입장에서 나를 다루고 대등한 입장에서 세상을 다룰 수 있다. 고통이 와도 감당해내고, 시간이 지나가면 다 이겨낼 수 있다는 태도로 의연히 버티어 내야 한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떼만 쓰지 말고 내 손으로 일용할 양식을 벌어야 한다.매일 시험에 들지만 말고, 다른 사람이 시험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는 힘 있는 손이 되어야 한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는 아이가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장성한 믿음을 갖지 못하면 나(self)에 의하여 다룸을 당하고, 세상에 의하여 다룸을 당한다. 다루는 자는 주인이고 다루어지는 자는 종이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 세상과 일과 직장의 종으로 사는 것은 억울하고 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을 잘 알면 법이 재미있어지고, 재판을 열심히 하면 재판이 재미있어지는 것처럼, 성경을 참고서 진도 떼듯 정욕으로 자꾸 읽어내면 말씀이 자꾸 내 뇌신경과 마음속에 한 겹, 두 겹, 세 겹 축적되고 마침내는 말씀이 나의 영혼 속에서 춤추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 믿음은 괴로운 것이 아니고, 즐겁고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이다.

단단한 믿음은 사람들의 인생에 당당함과 자유를 준다. 실력 있는 믿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은 믿는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지침을 제공한다. 세상에서 인생을 사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먹고 사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믿음의 힘은 세상의 힘보다 훨씬 세다.

우리들은 모두 열심히 일을 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동료들 이웃과 함께 도와가면서 천연덕스럽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내 삶의 현장을 나의 온 천하로 삼고, 그 곳에서 나의 욕망과 허영을 부인하면서, 장성한 믿음, 실력 있는 믿음을 사용하며 세상이 강요하는 가치에 당당하게 저항하고 싸우면서 살아가는 각자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세상이 나를 흔들고 나에게 시험을 줄 때, 그 시험에 빠져서 넘어지거나 쩔쩔매지 말자. 오히려 사나이답게, 여장부답게, 냉정하고 현실적인 시각으로 그 모든 시험을 이기고 받아넘기며, 오히려 우리의 힘과 지혜와 당당하게 맞서는 욕으로 세상을 시험에 빠뜨려 버릴 수 있다는 담대한 기백으로 이 세상을 이겨나가자.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이병주 칼럼]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1, 2014년 1월, 이병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