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에 품은 생각이나 감정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 혹은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방법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인터넷과 전자매체가 발달하기 전까지는 아날로그 방식, 즉 느리지만 정제되고 절제된 말과 글로 소통이 이루어져 왔다.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도 많이 필요했고, 화려하고 현란한 기술보다는 다양한 면을 고려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간결한 문장들이 오히려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디지털 방식의 소통문화가 주류가 된 현시점에는 정보의 빠른 전달과 무한경쟁의 산물인 ‘시선끌기’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다. 

특히 요즈음의 인터넷 매체들은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오탈자도 거르지 못한 채 정보와 지식의 자극적 생산에만 몰두하는 듯하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 그 원인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예리하게 분석하며, 새로운 해석을 통해 시대적 담론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특정 목적을 위한 끼워 맞추기나 마녀사냥 같이 집요한 물어뜯기에 치중하는 행태도 많이 보인다. 또한 무한 카피와 퍼나르기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다. 창조적 고민보다는 손끝 하나로 쉽게 해결하려는 편의적 생각들이 너무 만연하다. 세상이 디지털화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양식까지 디지털화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드는 생각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잠시 침묵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켜켜이 쌓인 디지털의 색채를 우려내고 아날로그의 색채로 다시 물들여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만의 감성이 묻어난 글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시점에는 자신이 쓴 글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알 수 없다. 작은 글 하나, 작은 사진 하나, 작은 말 하나가 세상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시대적 담론까지는 아니더라도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이나 용기를 갖도록 작은 위안을 줄 수 있다면, 그러한 글들은 오랜 생명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침묵은 내면과의 대화이며, 글을 읽는 독자와의 대화일 수도 있다. 

                                                          [대청호 문의마을] 이심전심, 아날로그적 미소

말을 하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웅변술이나 대화법에 관한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돈다. 그런데 소통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보자면 서로의 마음이 통해야 비로소 소통이 이루어지게 된다. 입에 발린 말보다는 작은 표정이나 몸짓이 더 소통에 적합한 경우도 많이 있다. 즉 침묵한다고 해서 소통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침묵이 더 큰 소통을 이루어 내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끼리는 눈빛 만으로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이 필요한가? 오히려 말을 꺼내는 것이 더 어색하고 분위기를 망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저 사랑의 눈빛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와도 긴 말이 필요 없다. 이거! 하면 그만이다.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그 다음 상황들이 예측되기 때문이다.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나, 많은 것을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침묵하는 다수라는 말도 있듯이 자신의 생각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다음에 일어날 상황이 예측된다면, 현명한 사람들은 경청과 침묵 모드로 전환한다. 우매한 사람에게도 현명한 사람에게도 침묵은 유익한 경우가 많다. 물론 이심전심의 단계에 이른 침묵이 가장 유익할 것이다. 더군다나 세상의 정보가 너무나 빠르게 유통되는 사회에서는 어쩌면 침묵이 더 유용하고 진정성 있는 소통방식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 무아지경

침묵하는 순간 비로서 세상을 관찰하는 눈이 떠진다. 해맑은 아이들을 통해 한가지 배운 것은 아이들은 세상을 관찰한 후에 말한다는 점이다. 만져보고 살펴보고 자신과의 관계를 따져본 연후에 비로소 그 사물에 대해 말을 한다.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침묵은 그래서 태생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찰 정보가 종합되어야 하고 그 정보를 신뢰하기까지는 반복적으로 관찰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는 침묵의 순간들이 반드시 개입된다. 침묵하는 동안 관찰된 정보가 사고의 형태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잠을 자는 것도 혹시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조용히 그리고 면밀히 세상을 관찰하지 않으면, 과거의 허상을 현실의 진상으로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침묵의 순간들은 진실을 찾는데 있어서도 유용하다.    

                                                    [탄도항] 붉은 태양은 일몰의 순간에도 말이 없다.

사람이 늙어가면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살아온 인생의 무게와는 반대로 입술은 가벼워 지니 이 또한 삶의 모순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경험과 지혜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경험과 지혜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젊은이들과 마주앉아 대화를 할 때면 가벼워진 입술은 자신의 경험을 쏟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부지불식간에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한번 터진 입술을 봉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그 많은 말들이 자기자랑에 가까운 얘기들이라면, 젊은이들은 면전에서야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실상은 선배들의 잔소리쯤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오히려 침묵하며 젊은이들의 얘기를 들어주느니만 못할 것이다. 대게 사람들은 칭찬을 해주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해줄 때, 혹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때 친밀감을 갖게 된다. 대화에 있어서 적절한 침묵은 중요한 기술이다. 말을 해야 할 때는 해야겠지만 불필요한 말까지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침묵에 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남겨보았다. 살아가면서 침묵이 필요한 순간들이 많이 찾아온다. 침묵을 하는데도 많은 절제와 용기가 필요하다. 침묵의 미덕을 나도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