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단순히 원시 사회에 대한 경험적 기술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 권력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제시하는 ‘철학적’ 저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국가 있는 사회’, 즉 소위 ‘문명사회’의 성원으로서 ‘국가 없는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뜨린다. 

오히려 클라스트르는 명령-복종 관계로서의 권력은 권력의 유일한 모델이 아니며 “하나의 특수한 사례”(p.30)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권력 있는 사회’와 ‘권력 없는 사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 권력이 있는 사회와 비강제적 권력이 있는 사회만이 있을 뿐이다.

강제적 권력은 사회 전체에 대하여 자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강요한다. 그렇다면 비 강제적 권력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클라스트르는 원시사회에서의 권력과 사회의 관계를 여성, 재화, 언어라는 ‘기호’의 흐름을 통해 파악한다.

원시 사회에서의 추장은 많은 부인을 거느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즉 집단은 추장에게 여성들을 '증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증여'는 일방통행이다. 혹자는 추장이 자신이 결혼한 여성들로부터 딸을 낳아 집단의 젊은 남성에게 줌으로써 '교환'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클라스트르는 "혼인 교환의 순환 속에 재투입된 딸들이 아버지의 일부다처혼을 보상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p.52)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디언 사회는 부계 사회이고, 따라서 한 세대가 흘러 딸들이 성장하는 동안 추장의 아들이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 일부다처혼의 특권을 세습적으로 물려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특권의 행사는 매 세대마다 딸들을 통해 전 세대의 일부다처혼을 중화시킬 수도 있을 가능성을 없애버"(p.52)린다. 이러한 상황의 반복은 구조적인 것으로,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은 일방적으로 집단에서 추장으로 이동한다고 볼 수 있다.

추장은 구성원들이 재화를 요구하면 구성원들에게 재화를 ‘증여’할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관대함’을 가지지 못할 경우 추장의 자격이 박탈된다. 그리고 추장은 이러한 재화를 마련하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노동을 한다.

원시 사회에서 추장은 말하기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 즉 일방적으로 말을 증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에는 왕의 그것과 같은 강제력이 없으며, 추장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말을 잘해야 한다. 여기서의 말의 독점은 권력의 강화로 이어지거나 특권으로 인식되지 않으며 심지어 사람들은 추장과 같은 장광설을 하는 것을 기피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추장은 집단에게 말과 재화를 일방적으로 ‘증여’하며 집단은 추장에게 일방적으로 ‘여성’을 증여한다. 그렇다면 추장은 집단에게 말과 재화를 증여한 대가로 여성을 증여받는 것으로, 즉 말과 재화를 여성과 ‘교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클라스트르에 의하면 이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클라스트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렇다면 추장이 집단에게 재화와 말을 주는 것은 ‘순수증여’이고 역시 집단이 추장에게 여성을 주는 것 또한 ‘순수증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여성’, ‘재화’, ‘말’의 교환과 순환이다. (1)

이러한 ‘교환’과 ‘순환’을 통해 구성되는 ‘의미작용의 장’의 바깥에 추장의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추장의 권력이 ‘문화’=‘의미작용’의 바깥에 있는 ‘자연’과 동일시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권력과 자연 모두에 대한 부정”(p.57)이다. 

이렇게 자연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사회에 대하여 주변적이고 나아가 외재적인 위치에 놓음으로써, 오히려 집단은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외재성이 집단으로 하여금 ‘교환을 파괴하는’ 권력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견제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를 통해 작동하는 사회는 자연을 부정하듯이 권력에게서 실질적인 강제력을 박탈한다.

여기서 ‘실질적인 힘’이란 강제력, 즉 자신의 명령을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권력이 이러한 강제력을 박탈당한다는 것은 권력이 순수한 ‘능력’, 즉 사회를 조직하고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능력은 구체적으로 ‘갈등’의 조정과 중재를 통해 사회 내부를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나 다른 집단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등으로 나타난다.

‘권력’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태도는 원시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었음을 공표하는 ‘입문의례’에서 잘 드러난다. 원시사회에서 이러한 ‘입문의례’는 언제나 신체에 대한 ‘고문’을 동반한다. 

이러한 ‘고문’에는 어떠한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 원시사회는 이러한 ‘고문’을 통해서 사회의 법을 젊은이들의 신체에 각인한다. 어떤 법인가? 그것은 ‘평등’의 법이다. 이것은 불평등을 생산해내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망에 대하여 폭력적인 금지를 신체에 각인하는 것이다. 모든 신체에 똑같이 새겨진 각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명령하는 위치나 복종하는 위치에 있지 않을 것을 강요한다.

 이러한 '입문의례'는 그 개념의 정의 자체가 사회체에 개별자들을 각인시키는 행위인데, 이러한 사회체에의 개별자들의 각인은 특이하게도 역으로 개별자의 신체에 사회의 법을 각인시키는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원시 사회에서 이러한 '각인'은 철저히 인위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서, 개인에게는 자연적인 기억을 넘어서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평등의 기억'을 반복해서 심어주는 것이고, 사회의 차원에서는 '불평등으로서의 자연'을 넘어서 평등의 문화를 재생산하도록 한다. 즉 원시사회에서 각인은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인간'으로서 존립하게 만드는 힘인데, 이 힘은 '불평등'과 '강제적 권력'을 부정한다.

 

원시 사회는 이처럼 ‘자연’으로서의 불평등과 역시 ‘자연’으로서의 강제적 권력을 ‘부정’하는 ‘인위적인’ 장치를 통해 작동한다. 이것은 자신을 ‘문명인’으로 생각하는 ‘국가 있는 사회의 성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발전’이 없는 ‘국가 없는 사회’를 비웃는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은 노동이 강제되고 이러한 ‘소외된 노동’을 통해 잉여를 끊임없이 축적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소외’는 어떠한 말도 강제력을 갖지 못하며, 더 나아가 '강제적 권력' 자체가 없는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선형적인 ‘축적’과 이를 통한 ‘발전’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발전도 퇴보도 없으며 선형적인 ‘축적’도 없으므로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이 자랑할 만한 일인가? 이러한 ‘역사 없는 사회’는 결코 ‘역사 있는 사회’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강제적 권력의 '야만성'을 개탄하면서도 정작 강제적 권력이 없는 사회, 그래서 선형적인 축적에 기반한 '역사'가 없는 사회를 무시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인종주의적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놀라운 정치적 테크놀로지를 배워야 강제적 권력을 극복하여 불평등과 야만의 정글에서 벗어나 수준 높은 '정치문화'를 향유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