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러시아 남하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었던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의 한 출판사에서, “한국소설(Korean Novel): 아홉 사람의 구름같은 꿈(The Cloud Dream of the Nine)”이라는 제목을 단, 영국 독서계에 “매우 낯선(extraordinary)” 소설 한 권이 간행됐다. 과문한 내가 보기에, 이는 한국의 소설이 영미권에서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완역(完譯) 출판된 최초의 사례로 보인다. 누군가가 한국의 소설 <구운몽>을 읽고, 정성껏 영어로 번역해, 출판사를 찾고, 편집하고, 지인이 써준 서문(introduction)과 삽화, 낯선 중국고전의 전고(典故)들에 대한 간략한 해설 부록까지 덧붙인, 꽤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책이었다. 당시 국제법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었고, 대한제국이 일본의 위력으로 멸망해 버린, 일본제국의 일부로서 “식민지 조선”이라는 지역(地域)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동맹국 수도 한가운데에서, “한국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이 기이한 운명의 책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절판되지 않고,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이 책의 번역자는 누구일까?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한 캐나다 청년이었다. 친일소설가 이인직(1862~1914)보다 한 해 뒤에 태어난 그는,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개신교 선교사의 길을 선택해, 개신교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조선”이라는 미지의 전제 군주국에 입국했다(1888년). 그는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고 호랑이가 빈번하게 나타나던 조선 땅을, 때로는 감자로 연명하며 다녀 가면서, 때로는 낡은 배와 뱃사공에게 목숨을 맡겨 가면서,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동료 선교사들의 죽음도 여러 차례 겪었고, 그중 한 사람의 아내와 결혼했다. 경신학교(연희전문 즉 연세대의 전신)의 초기 멤버였고, 정신여학교(현 정신여중․고)를 세웠으며, 이승만(1875~1965)의 미국유학을 도왔다. 구약과 신약성서 전편을 한국어로 자력 번역한 합본 성서를 출판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옛소설 <구운몽>을 영어로 옮겼으며, 런던에서 출판했다. 그밖에도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 많은 한국의 고소설을 영어로 옮겼지만, 수줍었던 탓인지 남들이 알아주지 않은 탓인지, 그의 육필 원고는 출간되지 못한 채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다(이상현, {한국 고전번역가의 초상, 게일의 고전학 담론과 고소설 번역의 지평}, 소명출판, 2012에 의거함).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앞장서 나섰고, 누구보다도 영어권에 한국을 알리는 데 기여한 사람. 그러나 극소수의 학자를 제외한 현대 한국인들로부터 잊혀진 사람. 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이다.

나는 <구운몽>을 주요 자료로 삼은 학위논문으로 문학석사를 받았다(<김만중 문학의 이중성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1998). <구운몽>은, 한국의 대표적 양반집안인 광산김씨이자 조선후기 최대 세력을 자랑하던 노론(老論)의 핵심 당인(黨人)이었던 서포 김만중(1637~1692)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고소설이다. 이 글은 <구운몽>과 주변 정황에 대한 꽤 자세한 분석으로, 이 작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일단 약 300년 이상 전에 씌어진 “매우 잘 된 연애담”으로 이해해 두고 따라오면 된다. 물론 한국 사람이라면 대체로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일부라도 읽어보았기 마련이다. 이 소설의 일부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국문과에 진학해 그의 대학원에 진학해 그의 이 유명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았고, “참으로 잘 씌어진, 기교가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무렵, <구운몽>의 여러 교주본 중 하나의 뒤편에, 영어로 옮겨진 <구운몽>이 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과문했던 나는 “한국 고소설이 영어로 번역되기도 하는구나”고 신기하게 여겼고(사실은 꽤 많은 고소설이 영어로 옮겨졌다), 번역자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그는 내가 위에서 언급한 바로 그 “제임스 게일”이었는데,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꽤 두꺼운 그 영어 번역을 읽을 엄두는 나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이름은 곧 내 뇌리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전통 한국의 대표소설인 <구운몽>을 이야기할 기회가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나는 삐딱한 성격인지라,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고 학계에서 인정하는 <구운몽>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일부러 피해 갔다. 잘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논의의 전개를 위해 작품의 줄거리를 미리 제시한다. 아시는 분들은 건너뛰어도 좋다.

나는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가급적이면 논의에 최대한 깊숙이 개입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객관적으로 내용을 요약하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놀랄 정도로 다채롭고 자연스러운 “양소유의 여성 편력”일 것이다. 물론 난양공주의 경우처럼 황실의 강제결혼 요구 때문에 투옥당하는 해프닝도 생기지만, 이 또한 정혼녀와 황실의 공주를 동시에 아내로 맞는 방식으로 해결되어 버린다. “여자가 여덟이다”고 하면 대단한 바람둥이 같지만, 사실 그중 여섯(진채봉, 가춘운, 적경홍, 난양공주, 심요연, 백능파)은 양소유의 노력 없이 “제발로 찾아온 여자들”이다. 양소유는 적극적으로 구애를 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손쉽게 애정을 얻는 것이다. 여자들은 대개 “뛰어난 남성에게 의탁하고 싶은 소망(진채봉, 적경홍, 난양공주, 심요연, 백능파)” 때문에 그렇게 하며, “주인의 명령(가춘운)”에 따를 경우에도 결코 양소유를 싫어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남성 형상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연애가 치열한 인정투쟁이며, 자존감의 상실로 귀결되기 쉬운 현대의 많은 평범한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커다란 위화감을 줄지도 모른다. 나 또한 <구운몽>을 읽으며 학위논문을 쓰던, 고학(苦學)하던 대학원생 시절에는, “뭐 이런 인물형상이 다 있나” 하며 거북해했던 기억이 있고, 그 거북함은 사실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유배중이었던 작가가 “모친께 보내 소일거리로 삼게 하려고” 쓴 책이라는 사실이다. 망측한 연애담처럼 보이는 이런 이야기를, 대제학(오늘날의 대학총장 또는 국립학술원장에 해당)을 지낸 점잖은 양반이 썼다는 것이, 일견 괴이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줄거리를 세밀하게 읽기만 하면 금새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남녀가 대등한 관계에서 연애를 하는 이야기이 아니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잘난 남자가 자신의 매력으로 미녀들을 흡인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망측한 이야기를 어미에게 읽힌” 작가 김만중의 괴이한 심리를,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아하~” 하며 이해할 기회를 얻었다. 2010년 2월 20일, 미국의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성추문과 불륜 사건으로 인한 은둔을 끝내고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사과 기자회견을 한 일이 있다. 그날 그의 옆에는 두 여자가 있었는데, 눈치없는 나는 그들이 우즈의 아내와 옛 여자들인가보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두 여자는 우즈를 애정이 넘치는 몸짓으로 포옹했는데, 그들 중 한 명은 우즈의 모친이요, 한명은 누이였던 것이다.

양소유나 타이거 우즈나 모두 대단한 호걸이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남성임에 틀림없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이런 유능한 남자들 주변에 여자가 모여드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지 모른다. 여기서 상상을 해 보자. 그러한 뛰어난 남자를 자식으로 둔 여자, 즉 그 남자의 모친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잘난 자기 아들이 아내 몰래 바람을 피웠다고 할 때, 모친은 같은 여자인 며느리의 분노와 배신감에 공감하며 아들을 나무랄까? 아니면 자기 아들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아내의 분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까? 물론 모친의 성격이나 인격에 따라 반응하는 내용은 달라지겠지만, 내 생각에는 꽤 많은 모친들이 유능한(?) 아들을 두둔할 것 같다. 타이거 우즈의 모친은 며느리의 분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음이 분명하다. 며느리를 배려했다면, 기자회견장에 나와 아들을 그토록 따뜻하게 포옹하는 제스처를 하지는 않았을 터이니까. 마찬가지로, 김만중의 모친도, 작품 속의 양소유를 자기 아들로 생각하며, 그의 여성편력이 짙어질수록 그것을 자기 자식의 유능함의 표시로 간주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작가 김만중은 모친이 그렇게 읽어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지 않았을까? 잘 알려져 있는 대로, 김만중이 태중(胎中)에 있을 때 부친이 죽어 그는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이로 인해 모자간의 정이 매우 깊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추론은 더욱 그럴듯해진다.

문제는 또 있다. 공식적인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나 문학 참고서 등을 보면, <구운몽>의 주제는 “세상사의 덧없음” 즉 불교 사상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양소유의 꿈 내용보다는 성진의 번뇌와 깨달음을 다룬 작품의 서두와 결말 부분을 강조한 해석이다. 여성들이 양소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사실상 동침을 유도하는 듯한 <구운몽> 내부의 여러 핵심적 장면들은,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상대해야 하는 교육현장에서 가르치기 부담스럽기 때문에(강준호, <음란소설 구운몽 연구>, {배달말교육} 20호, 배달말교육학회, 1999), 이런 서두와 결말의 강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양소유의 부친이 신선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이 작품을 도가사상(道家思想)의 맥락에서 읽을 수도 있다. 양소유의 출세담을 유교의 영향으로 간주한다면, 이 작품의 주제를 “유불선(儒彿仙) 3교의 혼합”이라고 진부하게 규정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러한가? 이 작품의 “서두와 결말(성진 이야기)”은,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꿈 내용(양소유 이야기)”의 분위기와 매우 상충한다. 이를 흔히 국문학자들이 설명하듯 “세속의 덧없음을 깨닫게 하려는 계기”라고만 풀이할 수 있을까? 작가의 본심은 과연 어디를 강조한 것일까? 여기에 또 하나의 질문을 덧붙이면, 문제는 완전히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다. 대체 캐나다에서 온 선교사 게일은, 왜 이 작품을 그토록 정성들여 번역한 것일까? 그는 무슨 생각으로 번역했으며, 위에서 내가 던진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해, 과연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을까?

대학원 시절, 지적으로 아주 뛰어나지만 매우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뇌하는 지식인” 스타일의 선배가 있었다. 독서의 폭도 엄청났고, 정통 국문학자임에도 외국문학, 철학, 경제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관심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자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느닷없이 내게 “한국문학(여기서는 대화의 맥락상 고전문학을 가리켰음)을 누가 문학이라고 하나? 아무도 문학이라고 안하거든”이라고 격앙된 채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더욱 촌놈이었던 나는, 그 말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저 사람은 한국문학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것일까? 대학원에서 그나마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말이었기에, 울림은 더 오래 갔다. 그런데 나중에 그보다 훨씬 경박하고 젊은 또다른 선배는, 아예 대놓고 “한국 고전소설은 쓰레기”라고 말했다. 물론 그 말을 하고서는 자기도 좀 심하다 싶었는지, “그만큼 문학적 가치가 없다는 거지…” 어쩌고 하며,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이 말에는 나도 본격적으로 반감이 들었다. “아니, 진짜 그렇다면 소설 연구를 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연구대상을 왜 연구하나? 인생을 취미로 사는 모양이지.” 그러나, 촌놈인 나도 그들이 동일한 취지의 말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직감했다. 그리고 세월이 더 흘러, 촌티를 조금씩 벗어 가면서, 위에서 말한 두 선배들은, 매우 연원이 깊은, 한국문학에 대한 “어떤 일정한 합의된 견해”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 중 대표적인 몇 가지 견해들을 든다.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이 자기에게 낯선 것을 “미개하다”고 말하며 식민지를 정복해 온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위에 제시한 세 인용문은 그러한 시각에서 한국의 옛 문학 텍스트들을 바라보던 시각을 보여준다. (ㄱ)은 재조선 초대 영국영사를 지낸 애스턴(1841~1911)의 발언으로, 한글로 된 한국소설 문헌들은 조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혼란되어 있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다. 조선인의 손으로 한글 맞춤법이 통일된 것은 1933년으로, 그 이전에는 “있으니”의 표기 하나조차 “이시니, 이스니, 잇시니, 잇스니” 등으로 혼란된 상태였다. 대부분의 텍스트가 구전과 필사의 형태로 전승되고, 인쇄술이 문헌학적 검증 없이 영세하게 이루어지면서 상황은 개선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19세기 말 조선에 온 서양인들은, 문학은 언어로 된 예술이므로, 문학에서 말해지는 내용이나 주제 못지않게 언어의 외형과 조직, 형태 자체의 세련미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면에서 언어의 외적 형태조차 정비되어 있지 못했던 19세기 한국의 현실은, 고소설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일조했다고 할 것이다. 

(ㄴ)은 1890년대에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통역으로 근무하고, 한국의 서적출판에 대한 종합적 연구를 수행한 모리스 쿠랑(1865~1935)의 말이다. (ㄱ)과 달리 한국 고소설의 내용 면을 중점적으로 비판한 것인데, 100년 이상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가혹하고 신랄하게 느껴지는 설명이다. 이 구절은 특히 한국 고소설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대목이기도 하지만, 표현의 과도함이나 문화 우월주의가 문제일 뿐 그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어서, 그다지 반론의 여지는 없다. 생각건대 쿠랑의 이 견해는, 나의 대학원 시절 선배들이 “한국문학(특히 옛소설)은 문학이 아니거나 혹은 쓰레기”라고 인식하게 된 근원이라고 파악된다. (ㄷ)은 경성제국대학에서 최초로 조선어문학을 전공해 졸업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국문학 연구자라 할 조윤제(1904~1976)의 언급이다. 그는 놀랍게도 “한국에는 문학이 없다”는 주장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받아들인다.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 가운데에서는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경성제대 출신으로서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었으리라고 생각했음직하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출 경우 “조선문학 연구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은 설 땅이 없어지고 만다. 이것이 그의 고민이었는데, 그는 문학의 수준이 아닌 “문학을 재료로 한 민족성의 연구”로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이 위기에서 벗어난다(자세한 것은 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사상연구 1}, 일지사, 1984 참조).

고소설이 이와 같이 무가치하고 형편없는 텍스트라면, 고소설을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문학의 전반적인 퇴조 흐름을 타긴 하지만 아직도 4년제 주요 대학들의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에는 고소설 전공 교수진이 많이 배치돼 있으며, 고소설학회를 비롯한 관련 학회(판소리학회, 한국한문학회, 국어국문학회 등)는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구운몽> 역시 “이렇게 가치없고 쓰레기에 가까운 텍스트”인 고소설이 분명할진대, 제임스 게일은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이 “가치 없는(?) 소설”을 번역했단 말인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거점을 미리 마련해 두려고 한다. 첫째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걸쳐 한국어가 놓인 상황과, 그것이 겪은 격렬한 문헌학적 변화이다. 둘째는 약자를 사랑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 게일의 선교자적 정체성이다. 셋째는 번역의 문제로, 게일이 읽은 것은 단순한 축약된 국문본이 아닌 극도로 세련된 형식의 한문 문장일 가능성이다. 넷째는 게일 또한 깊이 고민했으나 끝내 해결하지 못한 “세계 속에서 한국의 전통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이라는 문제이다.

한국의 학계에서 “문헌학”이나 “실증주의”를 내세우면 고루한 사람 취급을 받기 쉽다. 문헌학은 창의성 없는 사람들이 자구(字句)의 뜻을 따지는 일이거나, 이본 대조와 같은 따분한 작업으로 종이를 낭비하는 짓으로 취급된다. 부끄럽지만 한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아무도 그것이 왜 중요한지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변명거리가 될 수 있을까!). 실증주의는 창의적인 사고를 가로막으며, 고지식하게도 문장 하나하나를 말할 때마다 그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는 답답한 태도를 뜻하는 풍토로 비판받는다. 일제 강점기의 식민사관이 왜곡된 문헌에 기반한 실증주의를 강요했기 때문에, 정신의 독립과 강인한 자주의지를 강조했던 민족주의 사학에서 이를 비판하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문헌학이나 실증주의의 전모는 아니다. 나는 특히,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는 “문헌학 과잉”이 아니라 “문헌학 부족”이 인문학계에 큰 질환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한다. 게일의 <구운몽> 영역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문헌학 일반을 먼저 이야기하는 뜻을 독자들은 헤아려주시기 바란다.

문헌학은 한 마디로 말해, 작업의 성격상 책과 문서를 다룰 수밖에 없는 인문학자들이 “타인에게 속지 않고,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해(즉 정직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고안해 낸 기술이다. 서양에서 문헌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다. 기독교의 사상 독점에서 벗어난 서유럽의 지식인들은 대체로 14세기 이후부터 고대 희랍과 로마의 이른바 “인문주의”로 묶이는 세속 문헌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들의 고충은 단순히 옛 문헌을 읽어내는 어학력 부족에 있지 않았다. 중세 기독교는 라틴어 교육은 꾸준히 해 왔으며, 새로 발굴된 고대의 필사본 문헌들도 (희랍의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라틴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새로 발굴된 여러 사본들의 차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예컨대 키케로의 {의무론} 필사본이 유럽 각지에서 여럿 발굴되었는데, 작품의 주제를 결정지을 수 있는 특정한 주요 구절에서 각 사본들의 내용에 차이가 있다면 어찌할 텐가? 난감한 일이다. 문헌학은, 이러한 여러 문헌의 선후관계를 살피고, 가능한 오류를 교정하며, 궁극적으로 작가의 본래 의도에 가장 근접하는(종이에 기록된 고대 문헌의 경우 원본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정본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술(skill)의 체계이다. 즉 문헌학 일반이 아니라, 최소한 “서양의 고전문헌학”에 한정해 말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문학적 취미 차원이 아니라, 일종의 출판사업을 위한 기반 학문이었다. 즉 문헌학과 르네상스 출판의 관계는 진정한 의미의 “산학협력”이었던 셈이다. 전문가의 설명을 인용한다.

문헌학이 할 일은, “필사본 수집, 필사본의 검토, 차이의 원인 검토, 가능한 경우 삭제된 문헌의 복원, 끝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그대로 제시,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최선의 정본(定本) 제작”이라는 모든 단계를 망라한다. 서양의 고전문헌학은 이러한 사본들의 차이를 제시하는 각종 기호들을 정해 두었는데, 이를 “문헌비판 장치(apparatus)”라고 하는데, 오늘날 서양고전학계에서 이러한 문헌비판 장치를 두지 않은 텍스트를 인용하면서 논의를 전개하면 아무리 고상한 얘기를 한들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즉 서양 고전문헌학은, 고전어에 대한 어학적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문헌의 전승이나 책 제작과정, 잉크나 종이의 재질은 물론 보존 환경에 대한 지식까지 요구하는 종합 학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정본을 염가로 대량 판매할 수 있는 인쇄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서양의 고전문헌학은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운동의 지적 기반이 될 수 있었다. 

정본은 반드시 문헌비판 장치를 두어야 한다. 한국문학의 수많은 텍스트 가운데, 이러한 문헌비판장치를 구비한 정본은 {바로잡은 무정}(김철 교주, 문학동네, 2003)뿐이다. 교주자 김철은 연세대학교의 한국 현대문학 전공 교수이며, 본래 서양 고전문헌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문헌비판 연구에 뛰어든 계기를 살펴보면, 우리는 주목할 만한 사정을 알 수가 있다. 김철 교수는 우연히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사업에 자문을 하게 되었는데, “춘원 이광수(1892~1950)의 대표작 <무정>(1917)을 일본어로 번역하려고 하는데, 저본(底本)으로 믿을 만한 한국어 번역본을 추천해 달라”는 일본인의 요청을 받고 난감해졌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한데, 한번도 그런 문제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씌어진 원문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는 작업이므로, 정확한 원본의 중요성은, 마치 르네상스 인쇄업자들(오류 양산을 예방해야 함)에게 느껴지는 중요성에 맞먹는다. 그런데 김철 교수는, 자기가 한국문학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일본인의 질문에 대답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정직하게, 1917년에 연재된 {매일신보}의 판본부터 시작하여, 시중에서 출판된 모든 <무정> 판본을 조사하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이본들의 차이를 모두 제시한 정본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이른바 {바로잡은 무정}인 것이다.

교주자 김철 교수도 책의 머리말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 사업은 (1) 초인적인 인내심, (2) 한국어에 대한 절대적 애정 없이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무정>의 {매일신보} 연재본에는 인물의 대화에서 수많은 일본어가 난무한다. 주인공 이형식의 친구 신우선은 “물론, 과연”이라는 조선말을 놔두고 “나루호도(なるほど, 과연, 그렇지 등 긍정과 확인을 의미하는 일본어 감탄사)”를 외치는데, 이것이 1910년대 중반 조선인 지식사회의 말투였다. 기사(記事)의 취재원이 대체로 총독부의 일본인 관료들이었던 1910년대에,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가 조선말보다 일본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일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당시 서울에서 신문이라 하면, 재조선 일본인들이 자체적으로 발간하는 사설신문을 제외하면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일문)}밖에 없었고, 모두 총독부 기관지였음). 그러나 해방 후에 나온 많은 <무정>의 판본들은, 이런 일본어 표현들을 슬쩍 한국말로 바꿔 놓거나, 심지어 지워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일은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럽고, 경우에 따라 분노를 유발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고대의 필사본을 검토하는 서양 고전문헌학자들에게, 이런 일은 흔히 접하는 것이었다(물론 서양의 경우 문제가 필사본에서, 한국의 <무정>은 인쇄본에서 변개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인쇄본의 고의적 변개가 훨씬 더 악질적이고 부작용이 큰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전문헌학자들의 태도는 냉혹할 정도로 엄정하다. 그들은 당황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A 사본에는 이렇게 적혀 있고, B 사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책 아래의 문헌비판 장치에 적시해 둘 뿐이다. 물론 사태가 심각할 경우 삭제, 추가, 난문표시 등으로 개입하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지웠다(seclusit)”,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추가했다(inclusit)”는 식의 약호를 써서, 고친 행위와 그 행위의 주체를 명확히 기록해 둔다. 한국의 고전문학에도 이와 비슷한 이본 대조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 자기가 최선본(最善本)이라고 믿는 어떤 텍스트의 우수성을 증명하려는 의도에서 행해질 뿐, 문헌비판 장치를 갖춘 정본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없다. 

어떠한 문헌비판 전통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일본인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는 부끄러움 하나 때문에 김철 교수가 한 일은, 역사적으로 산출된 <무정> 텍스트 전체에 대한 문헌비판 작업이었다. 물론 김철 교수의 {바로잡은 무정}은, “문헌학적 정본”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에 대한 우리 선배들의 망각을 폭로하는 작업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작업의 이면에는, 그러한 망각에 희생된 자기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 선배들에 대한 분노가 놓여 있었다. 서양의 고전문헌학과 같은 엄정한 로고스(이성)가 아닌, 어마어마한 위력의 파토스(감정)가 깔려 있었던 연구인 셈이다. 그런데, 갑자기 뚱딴지같은 이야기 같지만, 나는 여기서 놀라운 우연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광수가 <무정>을 써서 {매일신보}에 연재하던 1916~17년의 기간 동안에, 앞에서 말한 제임스 게일이 <구운몽>의 영역본 {The Cloud dream of the Nine(아홉 사람의 구름같은 꿈들)} 초고(草稿)를 쓰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이다. 나는 이 추론은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데, 한 연구자의 설명에 따르면 게일이 한국문학을 번역해 {Korea Magazine}이라는 잡지에 투고했던 것이 1917~19년의 일이며, 그가 {구운몽} 영역본을 런던에서 출판한 것은 1922년이기 때문이다(이상현:2012, 15면).

논의가 여기까지 이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제임스 게일 역시, 김철 교수에게 물은 그 일본인처럼, “<구운몽>을 영어로 번역하려고 하는데, 믿을 만한 저본이 뭡니까?”라고 주위의 한국인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그때 그는 무슨 대답을 들었을까? 참고로 말하면, 2015년 현재까지도, 서양 고전문헌학에서 말하는 방식의 문헌비판 장치를 갖춘 <구운몽>의 정본 텍스트는 나와 있지 않다. 앞서 한국의 이본 연구는 “정본 제작”이 아니라 (사실상 결론을 내는 것이 가망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원본 추적”을 목표로 한다고 했음을 말한 바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원작이 한글인가 한문인가 하는 논쟁까지 끼어들어, 사정이 서양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있다. <구운몽>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한글원작설과 한문원작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텍스트의 상태도 어느 한쪽의 손을 결정적으로 들어주기 어려운 형편이다(이 문제에 관한 가장 최근의 연구는 정길수, <구운몽의 원본>, {구운몽 다시 읽기}, 돌베개, 2010 참조).

한국에서 평생을 살다시피 했으며, 한국어에 능통했음은 물론(그는 한국에서 선교사로서 정년을 마친 뒤 영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국의 지인들과는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였다) 한문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갖고 있었던 게일이, 내가 앞 절에서 인용한 애스턴의 말(한국소설은 철자법조차 정리되지 않은 한심한 상태)을 몰랐을 리 없다. 게일의 꼼꼼하고 박식한 성격상, 한국인들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구운몽>의 여러 판본, 필사본들을 직접 탐색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캐나다 명문 토론토 대학을 나오고, 라틴어․프랑스어․독일어․고전을 공부한 사람이다(그가 대학을 다니던 19세기는 독일 고전문헌학이 최전성기이기도 했다. 니체는 우리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한 증거다). 그가 한국 고전소설 텍스트의 “황량하고 잡다한 혼란상태”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내가 확신컨대) 한국을 사랑한 게일은, “한국의 문헌학적 후진성을 조롱한” 애스턴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몇 개의 <구운몽> 텍스트를 잡아 머릿속에서나마 정본 텍스트를 구성했던 것 같고, 그에 입각하여 “실제로 번역을 하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나아갔다. 만약 그가 텍스트의 확정불가능성을 이유로 <구운몽>을 번역하지 않았다면, 1922년 런던에서 영역본 <구운몽>이 출간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면, 나의 박사학위 연구주제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한국인들이 쓰던 글의 내용과 형식이 변화하는 과정이었다({근대적 글쓰기의 형성과정 연구}, 소명출판, 2008). 이 시기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복잡하다. “한문의 폐지, 국문(한글)의 부상, 일본어의 개입, 국한문체의 형성, 일본제 한자어를 통한 서구 개념어의 도입, 인공 문체로서 언문일치의 수립, 정서법의 확정” 등 몇 가지 두드러진 사건들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각 개별 사건들의 비중이라든가 상호 관계, 사건들이 역사적으로 실현되는 방식, 그러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궁극적인 힘, 그에 대한 반동과 저항의 실상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더 큰 문제는, 상황이 복잡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황의 세부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며, 그 무지를 밝힐 수 있는 자료들이 점차 인멸되어 가고 있다는 데 있다. 또 한 가지의 운명적인 우연을 덧붙이자면, 게일이 한국에 와서 활동하며 한국어를 숙달해 가던 1880~1920년대가, 바로 내가 학위논문에서 다루었던 이른바 “한국어 글쓰기의 근대화 시기”에 고스란히 겹친다는 사실이다.  

게일은 “조선인들에게 조선어와 조선문화의 우수성을 깨우쳐 준” 사람이었다. 그는 단순한 오리엔탈리스트(orientalist, 서양인의 왜곡된 시각으로 동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하는 이들을 가리킴)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게일에 대한 종합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상현 선생은 “책을 펴내는 지금 이 순간도 검토하지 못한 게일의 저술들이 있다. 그 사실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이상현: 2012, 6면). 한국인들 중 게일의 한국 이해 수준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그가 한일병합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해서 친일파라고 비판하거나, 그가 한문 전고[典故]를 잘못 이해했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나치게 가혹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서양의 학문전통에서 대학교육까지 마친, 뼛속 깊은 곳까지 “순정한 서양인”이었다. 그가 “그다지 읽어줄 사람이 분명하지도 않은” 한국의 고소설 영역본을 만드는 데에 소중한 시간을 바친 이유도 궁금하지만, 이는 조금 후에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여기서는 우선, 텍스트에 대한 엄정한 문헌학적 기준이나 확신 없이 번역에 임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한 게일이, 어떤 기준으로 번역 대상이 될 텍스트를 설정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다.

오늘날 한국사의 경우에는 상당한 외국인 연구인력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아직도 한국문학, 특히 옛 문학을 연구․강의하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마샬 필 교수가 판소리 광대의 연행를 연구한 업적이 거의 유일한 것 같다. 현대문학의 경우에는 하버드의 데이비드 멕캔 등이 있었음). 한문만 읽으면 어느 정도 접근이 가능한 역사자료에 비해 문학 텍스트의 언어는 여전히 외국인이 접근하기에 철옹성과 같기 때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예컨대 일본문학을 연구하는 미국인은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영어로 번역된 일본문학 작품의 독자 수는 한국문학에 비해 훨씬 많다. 애스턴과 모리스 쿠랑 이래로 면면히 계승되어 온 “한국 옛문학 쓰레기 이론”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한국인들이 이 때문에 분노하거나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데, 한국인들 자신이 한국의 옛 문학을 잘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 주변에서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은 <구운몽>”이라든지, “나는 <춘향전>을 읽고 내 삶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든지, “<흥부전>을 읽고 삶의 지침을 얻었다”든지 하는 반응을 들어본 일이 없다. 반면 <파우스트>, <죄와 벌>, <천로역정> 등 외국문학을 읽고 이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많았다. 그 이유는 좀더 깊이 따져야겠으나, 자국인이 사랑하지 않는 문학을 외국인이 사랑할 리 만무한 것이다. 둘째, 애스턴과 쿠랑이 말한 “쓰레기 이론”은, (한글로 된)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상태가 가장 열악할 때인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상태에 기반한 관찰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한국어의 상태가 얼마나 불확정적이고 위태로웠는지에 대해서는, 한 연구자의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어느 정도 실감이 가리라고 믿는다. 1909년 12월 29일에 주시경, 게일, 타하카시 토오루가 한어연구회(韓語硏究會)를 조직했다는 사실을 소개한 뒤의 설명이다.

한국의 옛 문학을 번역해 소개하고자 한 최초의 외국인은, 일본인이었다. 1903년 조선교육계에 근무하기 위해 조선에 입국한, 동경제대 한학과 출신의 타카하시 토오루(1877~1967)는, 1910년 자신의 <춘향전> 일본어 번역을 세상에 공개했다({朝鮮の物語集 附 俚諺}). 그런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번역의 원전인 한국어 텍스트에 대한 존중의식이 거의 없었다. 타카하시는 번역을 위해 자신이 참조한 <춘향전>의 한국어 저본을 적시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한국어를 무시해서만은 아니다. 번역의 저본을 확정하려는 의식은, 원작자가 글을 쓰면서 행한 어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므로, 창작자의 책임에 의한 글쓰기, 즉 문어체가 성립된 문장을 번역할 때에만 유의미하다(앞서 한 일본인이 김철 교수에게 <무정>의 번역을 위한 저본을 문의한 것은, 그 작품이 춘원 이광수 개인의 책임하에 이루어진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910년 당시 한국 고소설을 기록하던 한국어는, 정서법도 정비되어 있지 않았고, 한자음을 통일적으로 표기하는 원칙도 없었다. 게다가 <춘향전>은 당시 판소리 <춘향가>로도 널리 연행되고 있었던 만큼, <춘향전> 자체가 “고정되고 확정된 문장어 텍스트”가 아닌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구어체 텍스트”로 인식되는 경향마저 있었다. 이 때문에 타카하시는, <춘향전>의 텍스트를 구성하는 어휘들을 존중하여 직역으로 보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단순한 한국어 멸시가 아니라, 당시에 한국어가 처해 있던 조건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파악한 결과인 셈이다.

그러나 1912년이 되자 괄목할 만한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판소리 전문가이자 박식한 신소설 작가인 이해조(1869~1927)가, 정본(定本)으로 구실할 수 있는 “문장체 춘향전”을 <옥중화(獄中花)>라는 제목으로 {매일신보}에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해조는 그밖에도 한국 고소설 가운데 “판소리계 소설”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작품들을 자기식의 문장으로 모두 개작하는 사업을 벌였다. 이처럼 한국인의 손에 의해 편집된 (사실상 서양 고전문헌학적 의미에서 정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텍스트가 나오자, 이를 가장 반가워했던 사람은 게일이었다. 그는 1918년 <춘향전> 번역본을 {The Korea Magazine}에 발표했는데, 번역의 저본으로서 <옥중화>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고정된 텍스트를 충실하게 번역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국한문체로 기술해 “정비되지 않은 순한글체”의 불명료성을 극복한 한국어 텍스트는, 번역의 과정 중에서도 존중받을 가치를 얻게 되는데, 게일은 그러한 한국어의 변화를 최초로 감지하고 그 가치를 인정한 첫 번째 외국인인 셈이다.

지금까지 나는 (한국 고소설의 외국어 번역과 관련하여) 1910년대에 벌어진 한국어의 문헌학적 격변을 기술하기 위해 전후 맥락을 살펴야 했다. 한국어가 한문이나 영어 등의 도움이 없이 근대사회의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한글이 전통 사회에서 행하던 바, 한문의 토를 달아 독해를 원활하게 한다든가, 문어로 정립되지 못한 구어 상태의 말을 간단히 기록하는 수준을 넘어, 그 자체로 문어체 문장으로 성립할 수 있어야 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한국어만으로 글을 써서 승부를 보리라”는 의식을 가진 문인들의 수가 늘어나야 했는데, 그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 대략적으로 “문장체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식으로 문장 모델을 합의하는 시기가 바로 1910년대였던 것이다. 이러한 문장 모델을 이른바 “언문일치체”라고 하는데, 일제 강점의 초기이자 한국인에게는 암흑기였던 이 1910년대는, 바로 이러한 언문일치체의 조용한 모색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게일이 한국의 고소설 번역에 뛰어든 이유를 이처럼 이성적이고 어학적인 관점에서만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사태를 부분적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약자를 사랑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 게일의 선교사다운 면모를 아울러 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게일이 “한국인보다 한국문화를 더 사랑했던 외국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한국에 대한 열정을, 단순히 “사랑”이라는 주관적이고 비유에 가까운 어구로 풀이하고 마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다. 사랑은 좀더 구체적으로 해석돼야 한다. “존경, 연민, 맹목적 친근감, 동정…” 등등으로 말이다. 나는 그의 한국에 대한 태도가, “핍박받는 자에 대한 기독교적 연민”과, “전통 한국이 지녔던 찬란한 문화적 유산(특히 고급의 한문문화 유산)에 대한 존경심”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연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사실 불쾌한 일이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얼마전 총리후보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문창극이라는 사람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하느님의 뜻”이라고 했다지만,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국의 기독교 확산에 기여했다”는 정도로 온건하게 해석된다면, (그저 일반 개신교 신자의 발언이었다면) 크게 문제삼기 어려운 발언일 수도 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게일 역시 “일본의 조선 지배는 하느님의 뜻이고, 그것이 일시적 시련이 될지 영구적 병합이 될지는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이러한 정치적 현실에 물리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일은 일생의 반 이상을 한국에서 보낸 사람이었고, 다른 어떤 영미인들보다 많은 한국인 친구들을 두고 있었고, 그래서 일본인의 한국병합으로 인해 한국인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1910년의 병합 자체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그 침묵은 상황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었으나, 민족주의자들이 그를 개량적인 타협주의자로 간주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본질적으로 정치가가 아니라 탁월한 학자였고,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사랑했던 너그러운 선교사였다. 식민지배는 하느님이 조선민족에 주는 시련이고, 한국인은 구세주의 뜻에 따른 시련을 통과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정치적 투쟁은 선교사라는 자기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을 떠나지 않고, 한국인들의 곁에 있어 주었던 그의 선택 이외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고 욕심일 것이다. 그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타카하시와 함께 한국어를 연구하기도 하는 등, 재조선 일본인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조선인들이 저항을 하리라곤 생각도 못하던 일본 통치집단이 3․1운동으로 멘붕에 빠졌을 때, 그는 일본인 관료들에게 “조선인은 그렇게 괄시받을 민족이 아니”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한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젠가 한국인 친구들에게, “내가 조선사람이었다면 고대의 그 훌륭한 문화를 세계에 한번 자랑하겠소”라고 이야기했다는 일화가 있다(일서생, <게일박사의 인물과 일화>, {조광} 1937.4월호). 이것은 단순한 자신감 고취를 위한 허언(虛言)이 아니라, 그의 깊은 내적 확신이었다. 한국의 정치제도가 백성을 구하는 데는 실패했으나, 한국의 문화가 찬란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그는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게일의 확신은, 그의 한국학 연구 및 한국 고소설 영역(英譯) 작업의 직접적 추동력이 되었다. 그는 영국인 존 버니언의 종교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했고, 성서 전체를 독자적으로 국역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한국어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특히 한국어 텍스트는 한번 생산되면 독자도 분명하고, 확실한 수를 가늠할 수 있었다(한국의 수십만 개신교도). 그러나 한국문학 텍스트의 영어 번역은 사정이 다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한국문학, 특히 옛문학의 영어 번역본은 극히 적다. “한국문학(고소설) 쓰레기론”이 횡행하는 마당에,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이 한국문학에 정성과 관심을 쏟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독자도 불분명하고, 그 수도 극히 적다(놀랍게도, 사정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는 수십 편의 한국문학 작품을 영어로 직접 번역했는데, 그중의 상당수가 출판은커녕 인쇄되지도 못한 채 자필원고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토론토대학 토마스 피셔 희귀장서실). 그는 전문학자가 아니었으니 논문이나 저술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었고, “모든 것은 구세주의 뜻”이라고 믿는 기독교인이었으니만치 출판으로 자기를 알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이와 관련하여 남는 질문은 하나이다. 게일은 그 수많은 외국인들이 빠졌던 유혹적인 편견, 즉 “한국문학 쓰레기론”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약자에 대한 연민 때문일까? 그럴 수 있지만, 그것은 간접적인 이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글로 적힌 몇몇 고소설이 한국인의 전모를 보여준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한국문화의 힘을 진정으로 믿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일본에게 철저하게 짓밟힌 한국이지만, 한때는 “동방의 희랍”이었다고 극찬했다. 타고르식의 극동에 대한 신비주의적 환상이 아니라면, 참으로 놀랍고 과분한 찬사다. 그가 이토록 한국의 문화유산을 높이 평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게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의 견해에 따르면, 게일의 한국문학연구(고전학)은 “서구와 대등한 종교, 역사를 그리고 내부의 항수(정신)을 지닌 한국민족을 창출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이상현, 위의 책, 276면). 그는 열린 마음을 지닌 개신교 선교사로, 서구의 기독교에 해당하는 어떤 “정신적 자산”이 한국인들에게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삼아, 그러한 정신적 자산의 실체를 한국의 각종 고전들, 특히 한국인의 내면적 목소리가 담긴 문학에서 찾아내려 했던 것이다. 게다가 학계에 소속되지 않은 게일은, “개인적 정서의 표출”이나 “사회의식의 반영”이라는 서구의 문학개념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

이상현이 정리한 연보에 따르면, 게일은 1910년 이후 선교사와 교육자로서의 본업보다 한국문화 연구, 일종의 “초창기적 한국학 연구”에 더 열을 올린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가 한국 체류기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을 보는 눈이 깊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1910년 한국의 식민지화로 인해 선교의 환경이 질적으로 변화되면서(어떤 의미에서 선교의 내적 동력은 더욱 강화될 수 있었다.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하늘나라를 약속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생활과 감정에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한국과 한국인, 한국적인 것을 더욱 근본적으로 탐색하는 길을 모색하는 데서 나온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 무렵, 한국의 놀라울 만큼 풍부한 “한문 문헌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눈뜨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모리스 쿠랑과 같은 문헌 수집가(蒐集家)나, 타카하시 같은 총독부 소속 관리가 아니고서야, 전통 한국의 한문 문헌을 실제로 접하고 그 세계를 확인할 능력이 되고, 능력이 된다 해도 그런 업무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외국인은, 근대 학문으로서 한국학이 존재하지도 않던 1910년대 이전까지는, 존재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1910년 이후 재조선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피지배 범위가 된 조선을 제대로 알자”는 붐이 일어났고, 이로써 조선의 옛 한문 서적들(주로 제도,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다룬 것들)에 대한 관심이 증대해, 이들 서적을 근대적 출판물로 재간행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게일은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조선고서간행회(1908)의 출간물 형식으로 된 {대동야승}을 처음 접했고, 여기에 나오는 귀신이야기 등을 통해 조선인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시도했다. 선교란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행위요, 조선인에게 선교하려면 조선인의 마음을 알아야 하니, 조선인의 마음이 기록된 조선인의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게일은 이제 한영사전 편찬과 성서국역 같은 초기적 사업을 넘어서, 한문 공부를 시작하고 한국인이 쓴 한문 서적을 수집해 읽는 방향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한국인 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집은 작은 한문전적의 도서관과 같았다고 한다. 이 모든 노력은, 조선인의 마음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게일이 선택한 길이었다.

상당히 먼 길을 돌아 왔다. 이제 우리의 주제로 돌아가자. 게일은 전문 학자가 아니었던 탓인지, 아니면 세상에 자기 주장을 내놓는 것을 주저했던 성격 탓인지, 수많은 한국의 고전들을 읽고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서도, 상당수의 자필원고를 출간하지 않은 채 묵혀 두었다. 따라서, 게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아닌 소개에 불과한 이 짧은 글에서, 그의 한국고전 연구를 전면적으로 다룰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구운몽>에 한정하여, 그가 왜 이 작품을 번역했는지, 작품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 그로써 게일이 최종적으로 노렸을 “한국의 정신”으로 발견해낸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가 발견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지를 성찰해 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게일은 서문을 직접 쓰지 않고, 동양학자 로버트슨 스콧(Robertson Scott) 여사에게 부탁했다. 작품의 부제는 “기원후 840년 무렵의 중국 당나라 시절의 이야기(A Story of the Times of the Tangs of China about 840 A.D.)”이다. 스콧은 이 작품을 “여지껏 씌어진 일부다처 제도 이야기들 중 가장 감동적인 로맨스(the most moving romance of polygamy ever written)”라고 했다. 여성의 지위가 (정치적으로는 제약되어 있더라도) 윤리나 이념의 면에서는 남성과 동등했던 20세기 초의 영미권에서, 일부다처제는 사악한 제도였다. 내가 위에서 “일부다처 제도”라고 번역한 원어 “폴뤼가미(polygamy)”는 “복혼(複婚), 중혼(重婚), 다혼(多婚)” 등으로도 옮겨질 수 있으며,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특히 배우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복혼의 관계가 성립할 경우, 중대한 범죄로 간주된다. (이 문제를 다룬 윌리엄 버틀러의 <The Way of All Flesh>가 있을 정도임) “일부다처제”라는 동양식 용어는 남성중심적 사회 분위기 탓에 범죄적 행태를 가리키지 않는데 비해, “폴뤼가미”는 범죄의 어감을 강하게 지닌다. 스콧은, <구운몽>의 “폴뤼가미”를 범죄로 읽을 경우, 작품의 의도와 감동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으므로, 이 작품이 어느 정도 “폴뤼가미를 정당화하고 있는 현실”을 미리 암시하고, 독자들의 양해를 요청한 것이다.

또다시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면, 나는 국문학 관련 학술대회에서 <구운몽>의 남녀편력담적 성격을 강조하는 주장을 개진했다가, 토론자로 나선 한 명문대 교수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산 일이 있다. 그 반발의 요지는, <구운몽>을 불교사상이나 도교사상 등과 같은 뛰어나고 고상한 이념들과 관련지어 파악한 선행연구를 무시하고, 양소유의 문란한 여자관계만을 강조하는 것이 작품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교수의 학문적 엄숙주의에 혀를 찼으나, 지금은, 그러한 나의 주장이 <구운몽>의 엄숙성을 해치는 것은 아닐지라도(나는 <구운몽>이 엄숙한 작품이라고 믿지 않는다), 최소한 <구운몽>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겠다는 점은 인정하게 되었다. 서문을 쓴 스콧 여사 역시, 이 작품이 “우리 영미인의 세계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이질적 사회의, 독자적 규범에 지배받는 남녀 관계를 다룬, 완성도 낮은(naive) 이야기” 정도로 파악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는, “<구운몽>은 동아시아 중화권 사람들의 영혼 내면의 깊은 곳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의 감정, 열정, 생각들의 기록”이며, “동양인들이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사물들에 대해,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숨겨진 진실들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드러내 주는 자료”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극동 아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앎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할 것”이라고 말한다(이상 introduction, ix).

나는 개인적으로, 세속적 가치만을 좇아 움직이는 주인공들로 빼곡이 차 있으면서도, 작품 전후에서 불교적 색채를 도입해 그러한 세속성을 희석시킨 <구운몽>에서 어떤 위선 비슷한 것을 느껴 왔다. 나의 이러한 감상이 근대 독자의 편견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최대한 편견을 제거하고, <구운몽>의 이야기 화소(話素)만을 검토할 때, 그것은 “유능한 남성 주위에 여자들이 모이는 이야기”로 읽힐 수밖에 없다(이 점을 냉철히 인식하여 교육현장에서 <구운몽>을 퇴출하자고 하는 주장마저 개진돼 있다. 강준호, 앞의 글). 물론 그것이 <구운몽>의 전모는 아니지만, 서사구조의 골자임은 분명하다. 스콧조차 영미권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작품을 철두철미하게 감상하고 싶다면, 남녀관계의 윤리에 관한 서양적 개념들을 잠시 유보해둬야 할 것”이라고 당부할 정도이다(위의 책, 같은 곳). 작가가 그러한 남성의 행태를 정당화하고 욕망을 긍정한 것으로 볼지, 그러한 남녀의 욕망을 헛된 것으로 본 전후 삽화를 강조해 욕망을 부정한 것이라 볼지는 그 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한 게일 본인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여러 선행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번역자 게일은 <구운몽> 원본에서 남녀 주인공들의 성적 관계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을 상당히 순화시키거나 삭제했다. 이는 칼뱅주의에 입각해 있는 개신교 선교사라는 게일의 정체성으로 설명될 수 있으나, 나는 다른 설명을 하고 싶다. 나는 위에서 스콧 여사가 <구운몽>의 성격에 관해 언급한 여러 내용들, 특히 “동양인들이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사물들에 대해,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숨겨진 진실들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드러내 주는 자료”라고 규정한 것을 주목하고 싶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 기독교에 상응하는 극동 아시아인들의 정신세계 내부에 대한 게일의 관심에 상응하는 것이며, 단순한 스콧의 해설이 아니라, “게일 자신의 구운몽에 대한 관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 게일은, 청년기에는 조선 선교를 시작하면서 한국어의 혼란상과 발전 가능성에 눈을 떴으며, 장년기에는 한일병합을 맞아 좀더 긴 호흡으로 한국적인 것의 심층을 탐사하기 위해 한문고전의 세계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가 도달한 결론은, (조선이 1910년 이후 겪게 된 정치현실의 곤경과 상관없이) “과거의 조선은 책을 사랑하고 문인들이 대접받던 찬란한 문화국가”였다는 사실이다. 스콧 여사의 게일에 대한 소개글에서 몇 자를 인용해 본다. 

한국인으로서는 쓰라림 없이 읽을 수 없는 구절이리라. 그러나 그다지 놀랄 것 없다. 나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이 책 <구운몽> 영역본이 1922년 영국 런던에서 출간되었으며, 당시 영국은 일본과 동맹국이었다는 사실을 표나게 강조했던 적이 있다. 강대국끼리의 거래는 그랬고, 언론은 그 거래의 내용을 국가기구로부터 받아 그대로 떠들어댔으며, “여행자”로 일컬어지는 평균적인 영미인들에게 “일본은 미개한 조선의 구원자”였다. 물론 게일은 여행자가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선교사였던 까닭에, 언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당연히 속지 않았다. 스콧 여사가 곧이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 한국인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까: “허나, 이 여행자는 추측건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소설 <구운몽>은 분명히 독자들을 극동 아시아의 신비로운 세상과 풍경으로 안내하며, 이제껏 봉인되어 온 문들 중 몇 개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언급이, <구운몽>을 “서구적 문학 개념에 부합하는” 독자적인 예술 작품으로 보기보다는, 한국인(혹은 극동 아시아의 사람들)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는 자료로 바라보려는 게일의 기본 태도임을 알고 있다.

<구운몽>을 자세히 읽으면, 참으로 다채롭고 많은 “한국의 여러 관습과 사정들”을 알 수 있다. (1) 한 젊은 불교 승려가 세속의 달콤함을 몰래 흠모했다가, 그 벌로 인간 세상에 환생해 온갖 부귀와 향락(특히 성적 쾌락)을 누리고 그 허무함을 깨달아 다시 불가(佛家)로 귀의한다는 내용은, 인도나 중국,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에서는 흔한 불교계 설화이지만, 20세기의 서양인들에게는 “동양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졌을 법하다. (2) 양소유의 부친이 사실은 신선이어서 양소유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승천해 버린다든지, 양소유가 귀신과 사랑하러 가는 길에서 만난 도사가 “이 세상은 천상세계에 비하면 한없이 누추한 곳(humble place)”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도교(道敎)의 흔적임이 분명하다. “지상 것에 마음쓰지 말고,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사명으로 했던 게일이, 이런 동양인들의 사고방식을 포착하지 못했을 리 없다. (3) 과거 급제, 재상집 규수와 약혼, 황제의 여동생과 정식결혼, 외적을 격파하여 상서의 벼슬에 오르는 일, 여섯 여자를 첩으로 두는 일 등은 모두 “세속적 성공”으로, 황제가 아닌 신하된 자로서 이룰 수 있는 “유교적 성공”의 최대치를 보여준 것이다. 고등학교 교과서 등에서 <구운몽>의 주제를 “유․불․선 3교의 통합”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결국 근원을 따지면, 게일의 <구운몽>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주제를 그런 식으로 파악하는 것은, 결코 문학을 예술 작품으로 감상하는 태도는 아닌 것이다. 

나는 이 글이 너무나 길어졌음을 잘 알고 있다. 마무리를 짓고 싶지만, 너무나 거대한 연구대상 앞에서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민한 독자들은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절망적이게도, 아직도 검토해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아, 조만간에 내가 입을 다물게 될 것은 확실하다는 사실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국문학을 통해 한국인의 내면세계를 포착하고자 했던 게일의 시도는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바를 바탕으로 “잠정적 대답”을 제출한 뒤, 글을 마치고자 한다. 게일은 1923년에 쓴 <한국문학>이라는 논문 형식의 글에서, 자신이 파악한 한국의 문화적 상황에 대해, 비교적 명료하게 서술했다.

위의 언급은 한국 자체의 혼란을 제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게일 자신의 한국에 대한 관점이 혼란을 겪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견해는 겉보기에는 명료하다. 한국은 찬란한 한문고전의 전통을 갖고 있었으나,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그에 대한 수요가 없어지면서 그 전통이 끊어졌고, 한국인들은 혼란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일은 새 시대의 한국인들이 조상들이 쓴 문학적 업적은 읽지 못하고 서양문학이나 철학을 얄팍하게 배워 그것을 모방하는 풍조를 한심하다고 개탄하였다. 조선의 보수적인 유림(儒林)이나, 쇄국정책을 주장하던 위정척사파의 주장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실제로 그는 1928년에 쓴 다른 글에서 조선의 3대 성현으로 김유신, 세종, 율곡 이이를 들고, 율곡의 뛰어난 점은 “벼슬살이를 하지 않더라도 차라리 일개의 사람다운 사람, 일세의 부귀공명과 속론(俗論)을 초월했던 사람, 투철한 식견과 개결한 기개와 지조, 역경에 종순하는 달관, 견실하고 심원한 이상의 소유자였다는 점에 있다”고 주장한다(황호덕․이상현 역, 위의 책, 181면에서 재인용). “역경에 종순하는 달관”을 제외한다면, 일본에 맞서 죽창으로 나섰다가 체포, 일본의 밥을 거부하고 대마도에서 굶어죽은 최익현의 모습이 당장 떠오른다. 왜 게일은 자신과 시대를 같이했던 최익현(1833~1907) 같은 사람을 피하고, 멀리 있는 율곡을 언급하며 변죽을 울린 것일까? 

이제 나는 지금까지의 “맹목적 존경”에 가까웠던 게일에 대한 태도를 잠시 유보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 언급을 하려고 한다. 일단 위에서 인용한 1894~1922년 사이의 시대인식은, 그 자체로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단순화했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894년에 과거가 폐지됨으로써 유교가 죽고 한문전통이 끊어졌다는 주장은 옳지만, 이로 인해 조선이 어떤 혼란을 겪을지언정 암흑에 빠졌다거나, 서양의 것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면서 얄팍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식의 서술은, 게일의 성급한 판단 내지 “엄숙주의의 오류”라고 여겨진다. 한문이 폐지가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성립조건”으로 선험적으로 주어진 후에 태어난, 1894년 이후의 조선인들은 어떤 글쓰기를 해야 했는가? 그들이 일시적으로 서양을 모방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과연 게일의 표현대로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시도들”이었을까? 물론 게일이 읽은 현대시라는 것들은, 1920년대 초에 나온 퇴폐주의 계열의 시였기 때문에 이런 비판을 했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씨앗이 처음으로 뿌려졌기에, 그 시행착오 끝에 기독교적으로도 성숙하고 한국어로서도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비극적이고 순정한 세계관을 담은, 위대한 윤동주(1918~1945)의 한국어로 된 걸작시들이 나오게 된 것은 아닐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이 순간 게일은 무척 초조했던 것 같다. 혹시 그 초조함의 정도가, 당시 게일이 깊이 빠져 있었던 한문전통에 대한 공감의 정도에 비례했던 것일까? 만약 이런 추론이 옳다면, 게일은 역사의 사회적․현실적 힘을 직시하고 분석하기보다는, 현실의 역사를 어떤 이상적 틀에 맞추어 평가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을 한 셈이 된다. 나는 어느 정도 게일이 이러한 성향을 지닌 분이었다고 확신하는데, 그것은 그가 조선이 멸망한 이유로, 정치경제적 실력의 부족이 아닌, “상상에 일치하는 인물, 즉 대표적 조선인의 역사적으로 축적된 정신, 조선혼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것을 잃어버린 것”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황호덕․이상현 역, 위의 책, 같은 곳). 물론 나는 게일의 분석이 탁월하다고 생각하며, 전적으로 옳다고 본다. 현대 한국인들은, 자기 조상들이 쓴 100년 전의 한문 문집보다, 거의 300년 전에 영국에서 나온 <걸리버 여행기>를 더 잘 안다(물론 이러한 앎도 자세히 따지고 들면 피상적인 것이니, 한국인들은 조상 것도 서양 것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따질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옳은 말이라 해도, 그 말이 어느 지평에 놓이느냐에 따라, 사태를 왜곡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조선은 과연 1894년 이후, 과거에 이상으로 삼았던 인물, 삶의 목표 내지 귀감으로 삼아야 할 인물이나 정신의 모델을 잃었고, 이상주의(理想主義)를 박탈당한 채 냉혹한 제국주의의 현실로 내몰려 노예 상태에 빠졌다.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때 해야 할 급무는, 멸망에 이른 표면적 이유를 분석하며 자학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멸망의 심층적 이유를 찾고 재생할 방안을 찾는 일이다. 김유신과 세종대왕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율곡 이이나 최익현의 삶이, 20세기 이후에도 한국인이 삶의 모범이나 이상으로 삼을 만한 것이었나? 나는 그분들의 인격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제임스 팔레는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 시스템을 유지해 온 조선왕조가 19세기 후반에 외세의 저항을 막지 못하고 급격히 몰락한 이유로, “상층 양반들의 공적 책임 회피(조세 저항, 군역 회피)로 인한 중앙권력의 약체화”를 들었다. 이이와 최익현은 고결한 상층 양반으로서, 과연 이러한 사회적 세력 변화에 아무런 책임이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최소한 이이는 몰라도, 최익현만큼은 외세에 대한 저항 못지않게 양반들에 대한 국가의 과세 시도를 “신분제도와 명분의 붕괴”라며 극렬하게 저항했던 인물이다(제임스 팔레, {전통 한국의 정치와 정책} 참조). 

나는 한국, 한국인, 한국고전을 두루 사랑했고, 원만한 인격자였던 게일에게 가장 부족했던 점이, 바로 이러한 사회세력의 중요성과 균형, 파괴력을 가늠하는 능력이었다고 생각한다. 게일은 대체로 한국고전을 편견 없이 읽었으며, 거기에 나타난 유교윤리나 이념(예컨대 <춘향전>의 열[烈]이나, <심청전>의 효)을 소중한 것으로 긍정했다. 유교에 대한 시선 역시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은 사실, 사회과학적인 검증의 도마에 오를 경우 살아남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오늘날 남녀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여성의 일방적인 열(烈, 한 남자만을 섬기기 위해 죽음조차 불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 신의이며, 개인에게 효의 부담을 지우기보다는 국가가 노인복지를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한다고 합의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게일의 어쩌면 순박한 유교 옹호 논리에 대해, 헐버트 등이 “유교는 신분 제도와 같이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서열을 정당화하고, 유교 경전은 평등한 국민 모두가 공유하기 어려운 한자․한문과 같은 난해한 문화자산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코 새 시대의 지도이념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한 것은, 당연하고 합당한 지적이었다.

다시 <구운몽>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20세기 이후의 한국인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삶의 이상을 찾을 수 있는가?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없다! 결코 없다! 내가 <구운몽>을 개인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다(가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가치 없다고 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가치는 작품의 내적 자질에 대한 것이며, 싫어한다는 것은 근대인으로서 나의 취향을 가리킨다). 나는 지하에 계신 게일 선생께서도 내 말에 동의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구운몽>이 보여주는 세계는, 스콧 여사가 명확하게 지적했듯이, “전근대 극동 아시아인의 사유, 세계관, 꿈, 이상” 같은 것들이지, 20세기 이후의 삶을 위한 지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일이 그토록 소중한 시간을 소모해 가며 <구운몽>을 번역한 것은, 그러한 아름답고 현란한 세계가 과거 극동아시아에 존재했었다는 것, 오늘날 극동아시아(중국, 한국)가 겪는 정치적 고난은 결코 사태의 전모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게일은, 제임스 팔레가 지적했듯이, 전통 한국이 국가 시스템으로서 구성원들의 삶을 궁극적으로 통솔하는 데 실패했다는것을 인정하지만, 그렇게 된 사회적 원인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전통 한국이 유지되는 동안 사람들이 추구했던 이상을 묘사하는 데 주력했던 것이다.

이제 내가 게일의 영역본 <구운몽> 자체에 대해서 할 말은 다 했다. 마지막 남은 것은, 내가 글의 맨 첫머리에 내걸었던 제목 “한국문학은 세계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뒷수습이다. 나는 꽤 이른 시기인 20세기 초반에, 선진국의 국민임에 분명한 제임스 게일이 한국문학의 여러 작품들에 주목하고, 이를 손수 번역해 일부는 출판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에서, 이 작품을 “한국문학 세계화의 한 사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분석을 시작했었다. 분석이 일단 한 차례 막바지에 도달한 지금, 그 질문을 다시 떠올리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게일의 <구운몽> 번역은, “외국인이 한국문학의 가치를 한국인이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알아준 사례”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한국문학 세계화의 전형적 사례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좀 심하긴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어 보겠다. <구운몽>을 번역해 영어권에 소개하면서 이를 “한국의 대표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한국의 서양사학자가 9세기 서유럽의 노예문서나 어느 봉건군주의 여자 관계를 다룬 문서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이것이 서유럽의 현 모습이자, 서유럽인들의 삶의 이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게일은 결코 그런 의도로 소개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구운몽>이 보여주는 것은 현대 한국인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그것은 과거의 한국이며, 게일의 눈에 아름답고 찬란하게 보였던 옛 한국의 모습이다. 현대의 독자인 나의 감수성이 거기에서 위화감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게일 선생 역시, <구운몽>의 작품적 가치에 대해서는 확신했겠지만, 그것이 현대 한국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꽤나 대답하기 곤란하실 거라고 믿는다.

물론 <구운몽>을 정독할 경우,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호소력이 있는, 완전히 새로운 주제가 추출될 수도 있다. 나는 적경홍이 양소유에게 접근하는 모습에, 마치 생존을 위해 모든 염치와 가식을 벗어던지고 인정투쟁에 결사적으로 나서는, 가난한 집안에서 평범한 외모를 갖고 세상에 태어난 여성들, 부유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압구정동 성형외과에서 번호표를 뽑고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을 많은 여성들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적경홍은 계섬월의 친구로서, 본래 미천한 출신으로서 연왕의 집요한 구애를 받았으나, 양소유를 한번 보고 난 뒤에는 그를 평생의 의지처로 삼기로 결심한다. 그는 양소유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남장을 하고 접근했다가, 그것이 발각되자 다음과 같은 말로 용서를 청한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양소유 묘사에서와 달리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구운몽> 전체에서 현대인들에게 가장 호소력있는 부분, 어쩌면 유일하게 건질 만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구운몽>이 중세의 소설쓰기 관습을 적절히 활용하며 변용한 뛰어난 작품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에 공감하며, 잘 꾸며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구운몽>에 갈등이 없고, (거짓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여덟 여자들의 조화와 상호 애정만이 나타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작가 김만중이 왕실의 처첩갈등에 연루되어(그는 서인으로서 장희빈에 빠진 숙종에게 인현왕후 편을 드는 말을 하다가 숙종의 미움을 샀음) 유배된 상태에서 이 작품을 썼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다(정길수, 앞의 책 참조). 그러나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맞추려면, 세계인이 공감하고 거기서 배울 만한 보편적이면서도 새로운 내용, 혹 그런 게 없다면 획기적인 표현기법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구운몽>에 나타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중국의 유교, 불교, 도교사상이며, 환몽구조 역시 설화나 귀신소설에서 흔히 쓰이던 기법이다. 유일하게 새롭고 참신하다 할 “애정 획득을 위한 필사적 인정투쟁”의 모티프는 굳이 문학으로 그릴 필요가 없는 “동물의 세계”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묻는다. 한국문학은 세계화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질문은, 해석이 필요한 질문이며, 역사적 조건에 따라 생성된 질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러한 질문 뒤에 다음과 같은 “진짜로 궁금한 것”을 숨겨놓는다. “왜 한국인들은 노벨문학상을 못받는가? 왜 한국에는 카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둘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무라카미 하루키(일본의 대중작가이자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같은 작가가 없는가?” 같은 질문들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인기 작가들을 말하기 전에, 캐나다의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는 게일의 고소설 영어 번역 자필원고들이 왜 출간되지 못했는지 물으면, 우리는 “한국문학이 세계화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카와바타는 유능한 미국인 번역가(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를 만난 덕에 운좋게 노벨상을 탔다(즉 카와바타에게 주어진 노벨상은, 일본어가 아닌 영어 텍스트에 주어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권영주 옮김,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4 참조). 카와바타의 노벨상 수상작 <설국>에는, 놀랍게도, <구운몽>보다도 더 주제가 없다. 권태와 우울의 분위기, 그리고 소름끼칠 정도로 정밀한 묘사가 있을 뿐인데, 사실 이것은 카와바타뿐 아니라, 어느 정도는 일본문학 전반의 고유한 특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8년, 일본의 국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돼 노벨상을 받을 차례가 되었고, 카와바타는 (다른 후보였던 미시마 유키오에 비해) 비교적 성향이 온건하며, 좋은 영어 번역이 알려져 있었던 덕에 수상했을 뿐이다.

나는 김만중의 <구운몽>이 카와바타의 <설국>보다 뒤지는 작품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두 작품은 “영미권에서 작품의 내적 가치를 스스로 알아보고, 원작자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번역이 이루어진 경우”라는 공통점이 있다. 노벨문학상은 생존한 작가에게 주는 것이니만치 김만중의 수상할 가능성은 없지만, 노벨상 수상작이라는 것들이 <구운몽>에 비해 그다지 뛰어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노벨상 위원회에서 발표한 바, “탁월한 감수성으로 일본인 정신의 핵심을 정확하게 드러낸 이야기 구조(narrative mastery, which with great sensibility expresses the essence of the Japanese mind)”라는 표현은, ‘일본’만 ‘한국’으로 바꾸면 김만중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구운몽>이 그렇게 탁월한 작품이 아닌데도 이 정도이다. 그런데 왜 <구운몽>은 세계 속에서 거의 잊혀지다시피 하고, <설국>은 불멸의 이름을 남겼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번역자의 성향과 원작을 생산한 나라의 국력 차이다 사이덴스티커는 문화 기획자에 가까운 적극적 성향의 미국인인 반면, 게일은 겸손을 실천해야 하는 보수적인 개신교 선교사였다. 

한국의 문헌학 수준이 낮다는 것 역시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게일은 자기의 문헌학적 확신을 가지고 <구운몽>의 정본을 머릿속으로 구성해 영어 번역에 임했다고 했다. 이것은 “한국인의 마음을 세계인에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고 말리라”는, 게일 본인의 구도자적 결의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책과 출판을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본도 없고 표기체계조차 확정되지 않은 낯선 나라의 문학 텍스트를 “내적 확신”만으로 번역하는 수고를 하겠는가? 문헌학적으로 엄밀한 정본을 갖추고 있었던 카와바타의 작품을 번역했던 사이덴스티커는,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카와바타의 정확한 원문을 창의적으로 개조하는 “강자의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우리 한국인들은 참으로, 게일 선생을 곤경에 처하게 한 한국의 열악한 문헌학적 환경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하고,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고 번역을 해내신 선생께,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주님의 뜻”에 감사해야 한다(참고로 말하지만,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구운몽>이 잘 씌어진 작품이고, 전통 사회에서 한국인들이 보였던 제한된 시각과 삶의 이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정도의 가치는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 한국이 일본만큼의 경제력과 국제적 위상을 지니고, (2) 현대 작가 중 누군가가 <구운몽>을 창의적으로 개작하여, (3) 사업수완과 문필력을 동시에 갖춘 유능한 미국인 번역가를 만났더라면, <구운몽> 개작본이 노벨상을 받지 말라는 법도 없으리라. 만약 노벨상이 진짜 대단한 거라면, 나는 카와바타의 노벨상 수상은 “과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현대 인류가 처한 문제를 깊이와 설득력을 갖추어 형상화하거나, 지역적 특수성 속에서 인류가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넓히는 데 기여한 바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이는 <구운몽>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억울해해야 하나? 국력을 기르고, 살아있는 작가들 중에서 한국의 전통을 형상화하는 작가를 육성하고, 영미권에서 판로를 개척할 유능한 미국인 번역가를 용병으로 고용하면 우리도 “노벨문학상 수상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

노벨상 수상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여기서 나는 질문을 바꾸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한국인들은 노벨상을 왜 받으려고 하는가?”라고 말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문학의 심각한 문제는 국력이 약한 것도, 전통을 다루는 신예작가가 없는 것도, 유능한 미국인 번역가를 만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부차적이다. 우리는 <구운몽> 이후, 세계에 내세울 만한 어떤 가치 있는 문학작품을 내놓았는가? 2011년에 영문판이 발간된 신경숙의 <Please Look After Mom(엄마를 부탁해)>이 2백만 부 팔렸다고 한다.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1689년(<구운몽> 저작시기로 추정되는 해)과 2011년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그동안 무얼 했는가? 한국인들은 자기 문학을 살뜰하게 가꾸었는가? 한국문학은 정말 세계인들에게 내놓을 만큼 읽을거리가 다양하고, 가치와 깊이가 있는가? 외국인들이 믿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표기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한국문학 정본들을 만들어냈는가? 혹시 정본을 만들어내는 어려운 작업은 소홀히한 채, 한때에 유행하는 작가 한두 사람을 급히 영어로 번역하여 제출하고, “노벨상이 안 굴러들어오나” 하는 식의 도박에 가까운 심보를 보이지는 않았는가?

한국문학에 대한 한국인 자신들의 평가는 분열돼 있고 위선적이다. 자국문학(특히 옛문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한국문학은 우수하고 가치가 있다”고 주문(呪文)처럼 되뇌이지만, 독서 대중들은 재미도 없고 얻을 것도 별로 없는 한국문학을 잘 읽지 않는다. 학자들은 문제가 있어도 보지 않으려 하고, 얄팍한 대중들은 그나마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한국문학의 가치를 애써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자는 학문적 엄숙주의로, 후자는 “먹고살기 힘든데 문학은 무슨 문학이냐”는 식의 반지성주의적 체념으로 정당화된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도둑놈 심보다. 비교하기 불쾌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는, 가만히 있어도 미국인들이 저절로 찾아와 “영어로 번역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며 애걸하고 나선다. 그의 작품 내용이나 주제가 본받을 만한 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재미있고, 실존적 아픔을 과도하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에게 호소력을 지닌다. <구운몽>이 중세적 상층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과도하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하루키는 어쩌면 “물구나무를 선 <겐지 모노가타리>”이자, “거꾸로 읽는 <구운몽>”일지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보다 “국어국문학의 제자리 찾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긴 글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국어국문학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한국어가 바로 서야 하고, 한국어가 바로 서려면 책을 엄밀하게 읽는 마음을 제도화할 수 있는 문헌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인들은 지난 1백여 년간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고, 많은 실수를 했으며, 지금도 그 여파를 겪고 있다. 한국인들의 상상력은 편향된 채 발달하고 있고, 말할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된다고 볼 수 없다. 분단으로 인한 지리적 한계도 무시할 수 없고, 전통사회의 고루함도 면면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살기 위해 새로운 유행과 사조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지금 내가 쥐고 있는 한 줌의 자산마저 빼앗아갈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정이 한국문학을 위축시킨다. 문제는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아니다. 문학을 제대로 하려는 용기, 말할 자유를 얻기 위한 싸움,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냉철한 문헌학적 제도 정비가 더욱 시급한 것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3, No.5, 2015년 5월, 배수찬,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