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여러 갈등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예측불능의 미래를 앞두고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막무가내의 자신감이나 자기확신을 가진 사람을 보면 때때로 부러운 감정마저 느낀다. 그것이 어쩌면 아Q정전식의 가련한 정신승리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고 자신감을 느끼며 더불어 지속적 지향성을 가능하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수의 자기계발서에서 부채질하는 ‘자기긍정’과 ‘자기확신’에 대해 그들이 내세우는 논거의 불충분함과 사회적 맥락에서의 취약성을 아무리 공박하더라도 그것을 충분히 잠재우기가 힘들다. 그 수요는 이성적이 아닌 정서적 필요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그런 류를 한심한 책으로 치부하더라도 꽤 많은 사람은 여전히 거기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공고한 수요를 보면, 거기에 모종의 현실적인 생물학적 유효성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런 ‘자기확신’을 소비하는 스펙트럼은 의외로 넓게 분포한다. 열성적으로 다단계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확신에 찬 눈빛, 은혜 입은 종교인의 어떤 동요도 없는 신념에 찬 모습, 선거를 앞두고 출정식에 임하는 정치인의 태도, 여기에 더해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윤리학>에서 (악이 아닌) 선을 긍정명제로서 추구하는 혁명적 주체의 충실성까지. 그들에게 회의주의와 동요란 비겁함일 뿐 아니라 성취를 발목 잡는 방해물일 뿐이다.
경영대학원 교수인 필 로첸츠바이크의 <올바른 결정은 어떻게 하는가>(원제: Left Brain Right Stuff 이성적 사고와 이상적 자질)에서는 자신감과 자기긍정이 과연 우리의 성취에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를 깊이 있게 파고들고 있다. 경영자가 불완전한 미래예측 속에서 선택과 선택 이후에 그것을 밀고나가는 자기확신의 방식이 과연 유용한 것인지를 이 책에서는 검증하려고 한다. 자신감과 자기긍정을 재촉하는 주장들이, 현실에서 인지적 오류를 증폭할 뿐인지 아니면 모종의 기능적 유효성이 있는 것인지를 다각도로 검토해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궁금증에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자기확신은 좋은 결과를 낳는데 정말로 도움이 되는가?
(2) 자기확신이 통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의 구분점이 무엇일까?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 때에 맹목적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더 둘러봐야 하는가.
이 책의 핵심 논점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먼저 고전경제이론과 대비되는 행동경제학의 문제의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전경제이론은 인간의 이성적 행동에 대한 믿음이라는 초석 위에 세워졌다. 인간은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을 고려해 일관된 결정을 한다고 가정했던 것이다. 소비자들은 효용을 최적화하고, 생산자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등등. 인지심리학의 성과를 기반으로 성립한 행동경제학은 고전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모델’을 비판한다. 고전경제학이 말하는 (무한한) 합리성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모울 수 없고, 정보처리 능력에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일련의 혁신적 실험을 통해 인간이 합리적 행동이라는 원리와는 상충되는 방식으로 선택과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것은 경제 이론의 핵심을 뒤흔드는 중대한 발견이었고, 행동경제학을 탄생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그 담론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인지적 지뢰밭 위에 서 있으며 그것을 제대로 인식해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사례를 살펴보자.
예시1)
카메라를 구입하려고 하는데 2가지 선택사항이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평점은 소비자연맹의 평가이며, 만점은 10점)
- 카메라S1 : 30만원 (평점 6점)
- 카메라S2 : 60만원 (평점 8점)
이 질문의 경우 대부분은 S1 모델을 선택한다. 약간 더 좋은 카메라를 위해 2배의 지출을 하겠다는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다가 선택사항을 하나 추가하고 다시 질문을 했다.
- 카메라S1 : 30만원 (평점 6점)
- 카메라S2 : 60만원 (평점 8점)
- 카메라S3 : 95만원 (평점 7점)
새로운 선택조건에서 S3을 고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며, 다른 두 모델에 대한 선호도가 바뀌었다. S2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고, S1을 선택하는 사람은 줄었다. 단지 고가의 S3모델을 추가한 것만으로도 S2가 적당한 선택지가 된 것이다. 기존 경제 이론에 따르면 이와 같은 선택의 변화는 비합리적이다. 구매자가 가격-효용을 따져 S2보다 S1 모델을 선호했다면, S3 모델의 추가로 마음을 바꾸지 않아야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프레이밍 효과’인데, 판단이나 선택이 프레임(frame)이 달라지는 것에 따라 변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고전경제이론에서 기대효용의 ‘불변성’이라는 전제를 깨는 예시이다. 인간의 선택이란 합리적이지 않고, 특수한 인지적 환경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시 2)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판단을 내리는 방식을 조사한 실험이 있다. 예를 들어 나일 강의 길이, 모차르트가 태어난 해, 보잉747의 무게 같은 것들을 맞혀보라는 식이다. 정답이 포함됐다고 9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범위를 적어서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참가자들 대부분이 질문 10개중 4개 이상 틀렸으며 거의 다 틀린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적어 낸 답의 범위가 무척 좁았다. 이 테스트는 대상자와 내용을 조금 달리해서 시행해도 일관된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것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갖는 성향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런 예시 외에도 수많은 실험과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어느 심리학자의 연구에서 미국 운전자 중 93퍼센트가 자신의 운전 실력이 평균이상이라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다른 연구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중 25퍼센트가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자신의 능력이 상위 1퍼센트에 든다고 믿었다고 한다. 대학교 교수들의 94퍼센트는 자신들이 평균보다 강의를 잘한다고 믿는다.
이처럼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오류의 편향 중에서 가장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바로 ‘과신’이다. 우리 대부분은 지나친 자신감을 갖는 경향이 있으며, 과신은 사람이 오류를 범하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의 정신은 지나친 자신감을 생산하는 기계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행동경제학 연구결과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우리 대부분이 예측을 할 때 자신감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 외에도 우리는 여러 가지 편향적 사고 때문에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사람들은 자기 기대에 반하는 정보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걸 확증하는 정보를 찾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사람들은 임의로 발생한 일들에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패턴을 찾는 잘못을 범한다. 그리고 사후 확증 편향이 있으며, 자신이 처음부터 옳았다고 믿는다 등등.
이 같은 여러 가지 편향에 대한 우리의 성향을 인식하고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교과서적인 조언이다. 이것은 우리가 결정을 하는 데 합당한 조언이다. 그러나 아주 중대한 결정들을 포함해 ‘다른 종류’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지심리실험 모델의 특성과 한계
앞에서 제시된 예시와 실험들은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사람이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판단하라고 요구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나일강의 길이와 모차르트가 태어난 해는 바꿀 수가 없다. 판단 대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설계된 실험인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리라고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경쟁이라는 요소가 없는 것이다. 실제 현실과는 다르게 나 이외의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실험 디자인인 것이다. 제한된 연구실험의 특성상 신속히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 결과를 즉시 알 수 있다는 특성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많은 결정들은 오랜 시간이 흐르고서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설계된 실험 덕분에 우리는 사람들이 선택과 판단을 하는 방식을 많이 알게 됐다. 소비자의 구매 결정 심리에서부터 사람들이 은퇴를 대비해 저축하는 방식과 운전자들이 혼잡한 도로에서 교통 신호에 반응하는 방식 등에 대해서 까지 말이다.
현실에서는 상당수의 결정은 실험에서처럼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선택 조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많은 경우 우리의 행동이 크든 작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대개의 결정은 경쟁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우리는 그저 잘 하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경쟁자보다 잘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실험실에서 얻은 결과를 다른 조건을 가진 상황에 적용 할 때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검증된 많은 결과들은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는 성공적이지만, 추가적인 변수가 많고 조건이 다른 현실의 환경에서는 만족스러울 수 없다.
그렇다면 실험실의 제한된 조건에 기반 한 행동경제학의 교훈들을 넘어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더 나은 결정을 위한 첫 번째 열쇠
: 행동이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달리 행동하라
내일 날씨가 맑거나 비가 올 확률,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이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 특정 날짜의 주가 지수 등. 우리가 영향을 행사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긍정적 확신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대상들에 대해 행운의 부적 등과 같은 소망을 투여하면서 생기는 편향은 제거되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행동경제학의 시사점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거나, 시험 성적을 좋게 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피아노 연주하기 등의 많은 활동들은 대체로 우리가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골프 경기에 참여한다면 직접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경우이다. 골프를 잘하려면 기술을 익히고 훈련을 해야 한다. 거기에다가 긍정적인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다. 수많은 골프 관련 서적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명제가 “골프는 자신감의 게임”이라는 것이다. 자기확신이 골프 성적에 미치는 효과는 여러 실험을 통해 다각도에서 입증되었다고 한다.
예시 3)
어느 심리학자가 36명의 골프 선수를 모집해서 1.7m의 거리에서 표준 홀에 퍼팅을 하게 했다. 홀 위에 설치된 영사기가 아래쪽으로 동그라미를 투영해 착시 현상을 만들어냈다. 절반의 영사기는 11개의 작은 동그라미를 홀 주위에 투영해서 상대적으로 홀이 크게 느껴지도록 했다. 절반의 다른 영사기는 5개의 큰 동그라미를 투영해서 홀이 작게 느껴지도록 했다. 실제로 홀의 크기는 같았지만, 참가자들의 두뇌는 홀 주변을 둘러싼 동그라미들에 의해 크기가 다르게 인식되도록 한 것이다. 작은 동그라미 때문에 홀이 크게 ‘인식된’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2배나 높은 퍼팅 성공률을 보였다. 단순히 인식을 형성하는 것만으로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홀이 더 크다는 (인지적) 믿음이 더 정확한 퍼팅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예시 4)
스포츠운동학과의 어느 교수는 평균 연령 30세인 9명의 남자 운동선수를 모집한 뒤 고정식 자전거를 이용한 실험에 참여시켰다. 실험 첫날 참가자들은 4km에 해당하는 거리를 가능한 빠르게 달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첫날 기록은 최대 노력의 기준치로 사용됐다.
다음 며칠 동안 각각의 선수들은 두 번 더 실험에 참가했는데, 이번에는 참가 선수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2개의 아바타가 등장하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페달을 밟았다. 아바타 중 하나는 페달을 밟고 있는 선수의 현재 노력에 대한 기록을 실시간으로 보여줬고, 나머지 하나는 실험 첫날 기록했던 기준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피드백했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무작위로 정해진 두 번의 실험 중 한 번은 아바타가 첫날 기준 속도보다 2퍼센트 더 빠르게 달리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연구의 논점은 ‘속임수 아바타’를 보고 있는 선수들이 더 좋은 기록을 성취하는지 여부였다. 그 결과는 다시 한 번 명확하게 “그렇다”로 나타났다. 속임수 아바타를 보고 있을 경우 9명중 8명은 자신이 이전에 세웠던 최고 속도보다도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슬그머니 부풀린 피드백에 의해 실제로 시간을 단축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후속 연구에서 속임수 아바타의 속도를 5퍼센트 올려봤으나, 선수들에게 너무 버거운 속도였기 때문에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는 의사결정에 관한 지금까지의 설명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종래의 견해는 ‘편향에 치우치지 말라’고 ‘낙관주의와 비현실적인 자기평가를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충고는 우리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에 대한 결정에서는 옳다. 그러나 예시 3, 4에서처럼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긍정적 사고의 힘은 스포츠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작가나 운동선수뿐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는 직접 관여해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상황에서는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을 목격한다. 자기확신적 태도는 사람들에게 현재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행동하도록 이끈다. 이것은 우리가 역경에 맞서고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빨리 회복하고 패배를 쉽게 인정하지 않도록 해준다. 긍정적 사고는 창의성을 더 발휘하게 해주고, 경쟁에 직면했을 때 목표를 이루도록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확신의 효과에 반색하기에 앞서 다시금 유념해야할 것이 있다. 자기확신이 효과가 있으려면 우리가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우선적으로 구별해야한다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변화시키려고 해봐야 좌절과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영향을 끼칠 수 없을 경우 최선의 접근법은 (행동경제학이 조언하는)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이다.
더 나은 결정을 위한 두 번째 열쇠
: 절대적 성과인가 상대적 성과인가를 고려하라
훌륭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두 번째 열쇠는 주어진 과제가 경쟁적 상황인지 비경쟁적 상황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라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절대적 성과를 목표로 삼는 비경쟁적 상황이다. 그리고 월드컵 경기에서 우승을 두고 다투는 것은 경쟁자보다 더 잘하기 위한 상대적 성과를 목표로 한 경쟁적 상황이다.
가령 한 환자의 회복이 다른 환자의 회복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환자에 대한 치료는 절대적 성과의 문제다. 효과적이었던 치료 방법과 경험이 비슷한 다른 환자에게 전달되어 활용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반면에 경쟁적인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한 기업의 성공이 다른 경쟁 업체들의 희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런 상황에서의 정보공유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성과가 절대적일 때는 현명하던 조치였던 것이, 경쟁적 상황에서는 자살과 다름없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적 상황에서 성공하기 위한 핵심 원칙은 행동 지향적 편향이다. 이것은 반복되는 분석과 보고서를 통해 문제의 해법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무엇이든 행동을 취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성공과 실패를 포상하라.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경우는 처벌하라.’ 행동하지 않는 죄가 행동하다 실패한 죄보다 더 크다는 뜻이다. 행동으로 옮기면 최소한 성공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행동 지향적 편향은 성과가 상대적이고 보상의 기울기가 큰 경우 막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성공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반도체라는 극도로 경쟁이 치열한 산업 부분에서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기업만이 미래에도 생존할 기회를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모든 업계에 적용될까? 그렇지 않다. 외식업이나 법률 회사처럼 변화의 속도와 보상의 분배가 너그러운 업종이라면 이 격언은 합당치 않을 것이다. 또한 초콜릿 제품이나 면도날처럼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소비자 취향이 많이 바뀌지 않는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은 리스크가 큰 새로운 접근법에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벌일 필요는 없다.
이렇듯 행동이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경우에 자기확신은 필수적이다. 특히 경쟁적 상황에서는 과감한 행동 지향적 편향이 또한 요청된다. 그러면 이제는 자기확신이 지나쳐서 생기는 과신으로 인한 문제를 고찰하면서 무엇이 가장 적절한 자신감일 수 있는지 알아보자.
과신이라는 이상한 꼬리표
사전을 찾아보면 과신(overconfidence)은 지나친 자신감 또는 상황이 보장하는 것보다 더 큰 자신감이라고 정의돼 있다.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과신은 썩 좋은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과신을 피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앞에서 우리는 긍정적 사고로 성과를 향상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왜 매우 높은 수준의 자신감을 좋은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없는가? 성과가 상대적이고 경쟁자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할 때, 매우 높은 수준의 자신감은 유용한 정도를 넘어 필수적인 요소이지 않은가? 과신이 ‘지나친 자신감’을 뜻한다며, 도대체 무엇과 비교해서 지나치다는 말인가?
과신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많은 케이스를 살펴보면,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에 원인으로서 갖다 붙이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 으레 자신감 덕분이라고 말하며, 패배했을 경우에는 지나친 자신감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과신은 지난 일을 회고하면서 뭔가 잘못된 이유를 설명하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잘못된 것이 모두 자신의 잘못만은 아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이 세계에서 행동과 결과 사이의 연관성은 불완전하다. 운칠기삼의 세계인 것이다. 심지어 좋은 결정을 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과신이라는 용어는 명료성이 결여된 채 자주 사용된다. 상황이 어떻게 판명됐는지 알고 나서야 자신감의 수준이 과했다고 뒤늦게 갖다 붙이는 것이다. 결과를 토대로 과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후합리화일 뿐이다.
3가지로 구분되는 과신
앞서 미국 운전자 중 90퍼센트 이상이 자기 운전 실력이 평균이상이라고 평가했다는 것이나 나일 강의 길이 등의 일반 상식을 묻고 답을 추정하는 실험에서 보듯이 사람들이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인다. 여러 예들을 감안하면 사람들이 과신에 시달린다는 증거는 압도적인 듯 보인다.
돈 무어와 폴 힐리는 2008년 발표한 논문에서 과신이라는 단어가 정확성과신(overprecision)과 과대평가(overestimation), 위치상향인식(overplacement)이라는 3가지 매우 다른 편향을 말하는 데 사용돼왔다고 설명했다. 각각 다른 유형의 과신을 관례적으로 같은 것으로 가정하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정확성과신 편향은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지나치게 확신하는 편향이다. 질문에 9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범위를 요청했던 연구들의 경우가 정확성 과신 편향의 예다. 자기 예측이 과도하게 더 정확하다고 믿는 경향을 말하며, 이 편향에는 풍부한 근거들이 있다.
과대평가 편향은 객관적으로 보장된 것보다 뛰어난 수준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경향을 말한다. 골퍼들이 자기 퍼팅 성공확률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이 바로 과대평가 편향의 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과대평가’는 절대 평가의 일종이다. 과대평가 편향의 증거는 정확성과신 편향의 증거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특히 어려운 일에 당면할 경우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해낼 거라고 믿지 않으며, 심지어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은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다.
위치상향인식 편향은 우리가 남들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경향이다. 이는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다. 미국 운전자 중 90퍼센트가 자기 운전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믿는 것은 그 예다. 그러나 위치상향인식 편향에 대해 믿어왔던 상당수는 과장됐을 뿐 아니라 부정확하다. 여러 사람에게 친숙한 운전과는 전혀 다른 기술인 ‘데생’에 관해(“초상화를 얼마나 잘 그리는가?”) 질문을 했을 때, 대부분이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59퍼센트의 사람들이 평균 이하라고 자신을 평가한 것이다. 또한 대학생들에게 아마존 강 유역의 토착 식물에 대한 퀴즈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추정해보라고 한 실험도 있다. 놀랍게도 압도적인 94퍼센트 학생들이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을 것 같다고 응답했다. 사람들이 위치상향인식 편향을 일관되게 갖고 있다면 이는 예상을 빗나간 결과다.
이렇게 과신을 구분해서 부분부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이 자신을 남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한다는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논의되고 있는 특정 기술에 대한 친숙도와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이런 경우, 편향이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근시안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요약하면, 과신 편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정확성과신’과 ‘과대평가’, ‘위치상향인식’ 편향이라고 부르는 전혀 다른 3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 편향에 대해서는 아주 강력한 증거가 있지만, 나머지 두 편향의 증거는 부족하다.
과신과 적절한 자신감의 차이
그럼 가장 적합한 수준의 자신감은 무엇일까?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면서 안일함에 빠지지 않는 적절한 자신감 말이다. 그리고 적절한 자신감은 과신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과신이라는 이상한 꼬리표는, 그 쓰임새에서 보이듯 실패한 결과에 대한 소급적 수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과신은 그 자체로 정의 내릴 수 없으며, 동시에 적당한 수준의 자신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나 의도와 결과가 불일치하는 세계의 불확실성을 인정한다면, 현실에서 과신과 적절한 자신감의 구분 불가능성은 한층 더 심해질 것이다.
결국 과신과 적절한 수준의 자신감은 식별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다 똑같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저자가 바람직한 상으로 제시하는 것처럼 이성적 사고와 이상적 자질이 조화롭게 균형 잡힌 건전한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자질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사회 속에서 결과로서 나타날 때에는 (본인들이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요인들이 관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드러나는 방식은 오직 외적으로 성공이나 실패의 형태를 띤다. 그럼 우리는 소급적 수사를 다시 반복할 것이다. 성공에는 적절한 자신감을 할당하고 실패에는 과신을 할당할 것이라는 말이다. 세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적절한 자신감과 과신의 (아마 어느 정도는 있었을) 차이는 현실적으로 식별 불가능해 진다.
맺으며
자기계발서를 몇 권 펼쳐보면, 그 주장의 근거가 그럴듯한 것도 있고 해괴한 것까지 다양하게 있다. 어떤 책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인용하면서 짐짓 과학적 근거에 기반 하는 척 하지만, 그것을 몽매적으로 전유하면서 수사적으로 갖다 붙이는 것이 태반이다. 그런 책들은 공통적으로 근거보다는 메시지의 반복적 전달을 우선시한다. ‘간절히 바라고 확신을 갖고 자기긍정 하라’는 메시지를 약간씩의 변주를 가하며 무수히 반복하는 것이다. 탄탄한 이성적 설득이 중점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세뇌 비슷한 것, 좋게 말한다면 믿음을 통한 도약을 유발하려는 전략처럼 보인다.
거리를 두고 그런 주장을 보면, 황당할 정도의 허황된 자신감을 불어 넣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가까이에서 마음으로 접하는 사람은 긍정의 환상을 통해 힘을 얻고, 안주하지 않고 행동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받고 역경에 맞설 힘을 얻기도 한다. 행동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논리 보다는 믿음과 확신이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기확신의 힘은 우리의 행동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일부분 좋은 결과를 낳는데 도움이 된다. 자기확신은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반드시 요청되는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가령 자기 반려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누군가와 만남을 도모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반려자를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가만있는 것보다야 당연하게도 훨씬 낫다.
이처럼 자기확신을 촉구하거나 부채질하는 것에 토를 달기는 궁극적으로 힘들다. 그것은 기업가이건 운동선수이건 작가이건 일정한 성취를 이루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일부 자기계발서가 지적받는 문제라면 그 긍정적 확신의 태도가 갖고 있는 내재적 논리의 오류가 아니라 그 확신의 소유자들이 기반 하는 좁디좁은 지평과 세속적 일방향성일 것이다. 그런 긍정주의 소비자들은 더 넓고 풍성한 지평의 세계로 유혹해야 할 뿐 폄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자기확신의 효과가 발휘되는 조건과 토대를 밝혀줌으로써 그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해준다.
부정적인 사고나 회의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낙천적 사람들이 놓치는 위기의 징후를 더 잘 읽어낸다는 보고도 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나름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회의주의적 태도나 부정적 태도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들은 현실 추수적인 긍정성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런 부정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부정은 현실적으로 존재론적인 것이 아니라 방법적 부정일뿐이며 더 큰 보편적 긍정성으로의 이행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부정성’이나 ‘긍정성’이라는 단어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표현을 통해 무엇을 의도하는가이다.
이러한 회의주의자와 비교하여 긍정주의자의 가장 중요한 장점이라면 바로 행동 편향성이다. 회의주의자는 잘해야 괜찮은 비판을 할 수 있어도 이뤄내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 긍정주의자는 아무리 막무가내로 시작했어도 행동을 통해 현실 속에서 피드백을 받으며 성장하고 자신만의 생명의 나무를 키운다.
* 이 글에 대한 권한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view of Books, Vol.4, No.4, 2016년 4월, 이승범 가정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