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서기 8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서 바그다드에서 일어난 번역 운동에 대한 연구서이다. 그리스 문헌들이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 의해서, 얼마나, 또한 학술적으로 얼마나 엄밀하게 아울러 체계적으로 번역되었는지에 대한 추적이 책의 요지다. 그러니까, 한편으로 번역을 통해서 아랍 문명의 바탕에 착생한 그리스 사상들이 어떤 역할과 기능을 수행했는지를 일러주는 소중한 글이고, 다른 한편으로 번역 작업이 학문과 문화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학술 토대 활동임을 증명하는 역사 자료이기도 하다. 꼭, 읽어보시길! 저자는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예일 대학의 드미트리 구타스(Dimitri Gutas) 교수다. 저자의 권위도 권위이지만, 책은 일단 설득력이 있다. 번역도 정확하고 읽기에 편안하다. 이런 까닭에, 책의 내용에 대해서 굳이 그리고 감히 평가를 내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다. 

<그리스 사상과 아라비아 문화>! 한마디로 그리스 책들이 동쪽으로 가게 된 사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여러 책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그리스 사상과 아리비아 문화>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어느 책이든 다 나름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만, 적어도 서양 문헌 역사에서 그 기구함으로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만큼 파란만장한 운명을 겪은 것도 없을 것이다. 다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동쪽으로 가게 된 사연이다.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 기원전 60-서기 24년)의 보고다. 

여기까지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겪은 운명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다. 이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일부 남은 책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적어도 지중해 서쪽 유럽에서는 종적을 감추고 만다. 도대체 책들은 어디로 갔을까? 갑자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서부 유럽에 모습을 다시 드러낸 것은 중세 시대부터다. 흥미롭게도 이것들은 그리스 원전이 아니고, 알 킨디(Al-Kindi, 801년-873년), 알 팔라비(Al-Farabi, 872년-950년), 아비첸나(Avicenna 980년-1037년)와 같은 학자들이 작업한 아랍어 번역들이었다. 철학사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의 중세는 “아리스토텔레스 전성시대”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닌데, 실은 이 번역들 덕분이었다. 그리스 원전이 서부 유럽으로 들어온 시기는 15세기 초엽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수사학> 원전을 전승하는 파리 사본 1741(cod. Paris. 1741)이 이탈리아로 건너온 해가 1427년이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은 동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토록 재미없는 논리학 저술이 혹은 지금도 읽기 어려운,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론>이 동쪽으로 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사연인 즉 이렇다. 지중해의 서쪽 지역인 유럽에, 특히 로마에 중세의 어두움이 혹은 가톨릭 교회의 빛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즈음에 지중해의 동쪽 지역에는 신앙과 이념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예컨대 아리우스 파를 이단을 몰았던 니케아 공의회가 전투가 벌어졌던 대표적인 전투였다. 그런데, 이 전투의 주요 무기는 칼이나 방패가 아닌 말이었다. 따라서, 이 전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변증술이 큰 사랑을 받고 대접을 받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논리가 곧 칼이고 방패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말싸움에서 예나 지금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변증술은 아주 위력적이고 매우 유용한 무기이다. 아마도,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동쪽으로 향하게 된 첫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한데,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이에 해당될 지도 모르겠다. 소위 이단 전쟁이 대략 종료되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술들이 토사구팽의 운명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말과 논리의 전쟁터에 불려나갈 일이 줄었기에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 반전이 일어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의 용도가 전쟁의 무기에서 이제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도구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은 다시 사랑 받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용된 책은 <분석론>이 아니라 <범주론>이었지만 말이다. 추상 세계를 실제 세계로 세우고 입증하는 작업도 결국은 말(logos)로 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술어(述語) 이론이 중용될 수 밖에 없고, 이것이 <범주론>이 사랑 받았던 이유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더 동쪽으로 가게 된 또 다른 이유였을 것이다. 

이쯤에서 그 동쪽이 어디인지를 밝히겠다. 로마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다. 시리아(Syria)였다. 당시, 시리아는 동-로마제국에 속했다. 이 지역의 공용어는 코이네 그리스어였다. 이도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살아남게 된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또한, 소위 이단 전투가 가장 치열하게 벌어진 곳이 실은 시리아 지역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은 시리아의 수도원들에서 그리스 원전으로 읽혔고, 또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교재로도 사용되었다. 이는 서기 6세기까지는 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지중해 서부 유럽에서 사라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는 나름 융숭한 대접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서기 6세기 이후부터 쏟아져 나온 <오르가논>에 대한 시리아어 된 해설서와 번역서들이다 (참조, Daniel King(2010), The Earlist Syriac Translation of Aristotle’s Categories: Text, Translation and Commentary, Brill).

안타깝지만, 추적은 여기에서 멈춰야 하겠다. 일단, 추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리아 번역 탓일지도 모르겠다. 번역 때문에 원전을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러나 잠깐,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시기부터 번역된 시리아어 번역들과 그리스 원전들은 9세기부터 아비첸나와 같은 아랍의 문헌학자들에 의해 다시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이 번역들은 한편으로는 아랍의 철학과 종교, 다른 한편으로는 중세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부활을 예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아랍어 번역이 그리스 원전에서 혹은 시리아어 번역을 거쳤다는 사실에 눈길이 간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기서 멈추자. 연구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에 속단은 이르지만, 서양고전문헌학계에서 알고 있는 상식과 통설을 뛰어넘는 결실들이 맺어질 지도 모르겠다.  자못 궁금하다. 

물론, 여기까지가 다는 아니다.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기에.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추적이 요청되지만, 예컨대, 8세기에 당나라 황제의 공인을 받은 경교(景敎) 일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애용했던 무리였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전교와 번역 과정에서 시리아 번역이나 아랍어 번역이 혹은 그리스 원전이 어떤 종류의 모습을 띠고 한자(漢字)로 변신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들이 경교와 함께 동양에도 흘러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전거는, 징기스칸이 유라시아를 제패한 이후의 시기에 활약했던 바르 헤브라이우스(Bar Hebraeus, 1226년-1286년)의 사람이 시리아로 남긴 저술들(여기에는 <오르가논>,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등이 소개되어 있다)이다. 이것들은 또한 시리아 정교(Syrian Orthodox)는 물론 경교에도 매우 중요한 문헌들이었다. 그렇다면, 책들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아직까지 그 전모가 밝혀진 것은 아닌 셈이다. 

여기에서 잠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 책들(?) 혹은 이야기들도 있다. 황당하지만,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다.

인용은 로마의 자연학자 플리니우스의 <자연학> 제8권에서 끌어 온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진기한 사람들에 대한 이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고 서양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 되었고, 이는 문헌에서 문헌으로 전승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증거가 1375년에 제작된 Carta Catalana(현재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마자랭 전시관에 소장됨: Morel-Fortio’s Sp. MSS. No. 119)이다. 

 

위의 지도 오른 쪽 상단을 보면, 플리니우스가 전하는 진기한 인종들이 그림들로 소개되어 있다. 물론, 이 그림들의 원천은 플리니우스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마르코 폴로 이전에 몬테 코르비노의 요한이나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서 동양의 진기한 인종들에 이야기들을 배웠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엄밀한 문헌 조사가 요구된다. 아무튼, 중앙 아시아의 북부에서 취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서양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이에 대한 전거는 대표적으로 요한 맨드빌이 1459년에 지은 <여행기>다. 

진기한 인종들에 대한 이야기의 출처가 플리니우스든 아니면 맨드빌이 실제로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것들이든, 이 것들 하르트만 세델(Hartmann Schedel)에 의해서 1493년에 독일에서 출판된 <누른베르그 연대기(Liber Chronicarum)>를 종합된다. 

그림에서 작은 그림 세 개만 소개하겠다. 먼저, 왼쪽 두 번째의 외눈 종족을 보자. 물론 외눈박이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야> 에서 발견된다. 키클롭스 이야기가 그것이다. 해서 서양인은 물론 우리의 귀에도 익숙한 이야기이다. 플리니우스의 보고는 이렇다. 

플리니우스는 외눈박이가 사는 지역이 중앙 아시아에 있는 어느 지역이라고 전한다. 어쩌면, 오뒷세우스가 방문한 폴뤼페무스의 동굴이 코카서스 산맥의 어느 산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보고가 황당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가 있다. 각설하고, 외눈박이 이야기가 실은 동양의 신화집인 <산해경>에서도 발견된다. 

“눈이 하나”라는 언명 밖에 없어 조금 아쉽다. 하지만, 뭔가 연관은 있어 보인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른쪽 세 번째 그림으로 가자. 이에 대한 플리니우스의 보고다. 

<산해경>은 이렇게 전한다. 

이쯤 되면, <자연학>과 <산해경>의 비교-검증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황당한 소리라고 일축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좋다. 그러면, 그림3으로 가자. 다시, 플리니우스의 보고로 들어보자. 

 

같은 이야기가 <산해경>에서 발견된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도대체 <자연학>과 <산해경>에서 발견되는 저 유사함은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이 유사함이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플리니우스의 보고 자체가 원래 중앙 아시아 혹은 중국의 서쪽 지방에서 수집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연인 즉 다음과 같다. 때는 바야흐로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정을 나섰을 때이다. 그는 안전한 원정과 정복 전쟁을 수월하게 치르기 위해 항상 의사와 생물학자와 지리학자와 같은 학자들은 데리고 다녔다. 이들 학자들이 수행한 임무는 대개는 정복할 지역의 지리와 종족의 특성을 미리 탐색하는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도착한 시기는 기원전 330년 즈음인데, 마찬가지로 일군의 학자들이 먼저 히말라야 산맥은 물론 인근의 신장 지역과 내몽고 지역 일대를 미리 수색하고 탐사하였다. 이 시기에 이 임무를 수행한 학자는 바로 메게스테네스(Metesthenes)와 바이톤(Baeton)이었다. 참고로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자 친척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들이 히말라야 산맥에서 사는 종족들에 대한 것이라면, <자연학>과 <산해경>은 어쩌면 같은 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한 것들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 걸음 물러나 황당한 이야기의 경우야 믿거나 말거나 한 것이라 치더라도, 그 기원이 중앙 아시아 혹은 현대 중국의 서쪽 지방으로 추정되는 많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광물이 지역 구분에 따라 체계적으로, 물론 제한적이지만 나름 체계적으로 동양을 서양에 소개한 책이 바로 <자연학>이라는 점 정도만을 이 자리에서는 지적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 문명 교류사의 관점에서 본격적인 비교 연구는 아직 시도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정은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나는 이와 관련해서 당나라 때에서 단성식(段成式, 803-863)이 저술한 <유양잡조, 酉陽雜俎>라는 책에 주목한다. 이 책은 30편 20권으로 된 책으로 <사부총간 四部叢刊>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비서(秘書)와 이사(異事)를 모든 것으로 선불인귀(仙佛人鬼)로부터 동식물을 소개한다. 30편으로 분류되어 있는 이 책은 충지(忠志), 예이(禮異), 천지(天咫), 옥격(玉格), 호사(壺史), 패편(貝編), 경이(境異), 희조(喜兆), 화조(禍兆), (중략), 낙고기(諾皐記), 광동식(廣動植), 육확부(肉攫部)로 되어 있다. 또한 이 책은 ≪흥부전 興夫傳≫의 근원설화(根源說話)라고 일컬어지는 ‘방이설화(旁說話)’가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식물에 대한 기술이다. 단적으로 <유양잡조>에 소개되는 식물 목록이 그리스의 의학자였던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 서기 1세기)의 <약학, DE MATERIA MEDICA >의 약재 목록과 거의 일치하거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단성식이 이 책을 저술을 할 때에 디오스코리데스의 아랍어 번역 혹은 시리아 번역을 참조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보다 엄밀한 문헌 비교가 요청된다. 어쨌든, 어떤 매개 과정을 거쳐서 그리스 문헌들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밝혀주는 연구 가운데에 하나가 <그리스 사상과 아라비아의 문화>일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겠다. 다름 아닌, <알렉산드로스 전설>에 대한 이야기다. 소개의 이유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한 전설이 그리스어뿐만이 아니라, 라틴어, 유럽어들, 이집트어, 콥트어, 아르메니아어, 시리아어, 히브리어, 아라비아어, 페르시아어, 에티오피아어, 콥트어, 돌궐어, 심지어는 몽골어로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중앙 아시아에서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전설이 발견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지면관계상, 중앙 아시아의 역사와 관련 있는 언어들의 버전들만 참고로 소개하겠다. 돌궐어로 소개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기의 제목은 Iskender Nâmeh이다. 저자는 아흐메디(Tâj ud-Din Aḥmed ben Ibráhîm el-Aḥmedî, 1437년 사망)이다. 리외(Rieu, Catalogue of theTurkish MSS. In the British Museum, London 1888, p. 162)에 따르면, “아흐메디의 알렉산드로스 전기는 페르시아의 전기를 저본으로 참조하였고, 많은 부분에서 이야기는 독창적으로 구성되었다. 이 점에서 돌궐 버전은 페르시아 버전과는 다르다. 저자 아흐메디는 이야기에 세계의 기원과 세계의 모습에 대한 철학적인 내러티브와 인간에 대한 신체적인 구성과 심리적인 특성과 덕과 악덕에 대한 논의도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 이를 전하는 화자가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알렉산드로스에게 알렉산드로스 이전의 왕들과 그를 이을 후대의 왕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전하는데, 여기에는 동양의 역사가 소개되어있다. 이는 전기의 사분의 일을 차지하는 분량이다.” 인용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돌궐 문헌에 등장한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어쨌든 Iskender Nâmeh가 지어진 해는 15세기 초이다. 이 문헌은 10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페르시안 문헌을 바탕으로 한다. 페르시아 버전은 아랍 버전을 바탕으로 저술된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설은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였던 에우튀키우스(Said ibn Batrik)이 <보편 역사>에 소개된다는 점을 지적해둔다. 또한 위그로 문자로 기록된 중기 몽골어 문서(T 1 D 155 (U 588))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문서는 1902년에서 1903년 사이에 돈황에서 발견된 것이다. 내용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불멸의 물을 찾아 다니는 이야기다.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메르 산을 오르는 이야기가 첫 부분이고, 바다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이야기가 두 번째 부분이며, 어둠의 나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세 번째 부분이고, 미시르(Misir)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마지막 부분이다. 문서 자체의 기록은 16세기 혹은 17세기로 추정된다(참고, Volker Rybatzki, Linguistic Particularities in the Middle Mongol Alexander Romance, in Turfan Reivisited (2004), 284-296).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의 형성 시기다. 폴커는(앞의 논문, 284-285), 그 시기를 서기 7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여기에는 중국 북서부에서 이미 세력을 확장한 경교(景敎) 종파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추정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8세기에 이르면 경교 (경교는 네스토리우스 일파가 세운 기독교의 이단 종파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현재 논란 중이다. 당나라에서 공인해 준 경교의 교인들이 네스토리우스 일파인지, 시리아 정교의 분파(멜카이트))인지, 아니면 콥트 정교의 분파(도마)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엄밀한 문헌 고증과 현장 검증이 요청되는 문제다. 해서, 이 글에서는 네스토리우스 일파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나라 황실의 공인을 받았고, 그 세력도 매우 컸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7세기에 즈음에는 중앙 아시아에도 알렉산드로스와 연관된 기독교 이야기들이 널리 퍼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바르 헤브라이우스가 <왕조들의 역사, Historia compendiosa Dynastiarum auctore Gregorio Abul-Parjio, Oxon. 1663, p. 89)에 알렉산드로스를 자세하게 소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13세기 이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한 이야기와 기독교의 교리들이 이미 중국의 서북부에는 널리 퍼져 있었다는 소리다. 또한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에 헤브라이우스가 흉노족의 왕들은 물론 몽고 제국의 칸들에 대해서도 전기도 남기 놓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양의 주요 역사에 혹은 동양의 주요 사서에서 변방으로 취급되어 언급되지 않았던 유라시아의 잃어버린 역사가 혹은 적어도 아시아 북방의 역사에 대한 실마리가 이와 같은 이야기와 자료들을 통해서 풀리거나 운이 좋으면 복원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동서 교류에 대한 연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시키기 위해서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다시, <그리스 사상과 아라비아 문화>로 돌아가자. 이 책은 주제의 관점에서 볼 때에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연구 영역이다. 하지만, 이 연구가 동서교사의 관점에서 보면 물론 중요한 교점이지만 아직까지는 분과적 연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서, 서기 2세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프톨레미오스가 지은 <알마게스트(Almagest, 그리스어 Μαθηματικὴ Σύνταξις)>를 소개하겠다. 이 책은 천문학을 담고 있는 그리스 문헌이다. 이 책이 아랍어로 번역된 것은 9세기다. 칼리프 알마문(Al-Ma’mun)의 후원을 받아서 살 이븐 비스르(Sahl ibn Bishr)가 번역하였다. 헨리쿠스 아리스티푸스(Henricus Arsitippus, 12세기 중엽 활약)가 <알마게스트>를 그리스 원문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시기는 12세기 중엽이다. 따라서, 이 때까지도 유럽은 프톨레미오스의 천문학에 대한 지식을 톨레도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였던 크레모나의 제라르도(Gerardo da Cremona, 1114–1187)가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책에서 구했고, 실제로 권위와 영향력도 제라르도의 번역이 아리스티푸스의 그것보다 더 컸다.  동쪽으로 갔던 그리스 문헌들의 극적인 귀향인 셈이다. 이렇게 다시 서쪽으로 돌아간 책들도 많지만, 문제는 어떤 책들은 동쪽으로 더 동쪽으로 향해 나간 책들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프톨레미우스의 천문학에 대한 책들이다. 단적으로, 원나라 때에 만들어진 회회력(回回曆)이 그 증거다. 이는 다시 명나라를 거쳐 조선에도 들어오는데 <칠정산외편>에서 근본적으로는 프톨레미우스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보다 엄밀하게 추적해야 하겠지만, 서양의 천문학의 흔적을 불교의 대장경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서명들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T21, n1299 文殊師利菩薩及諸仙所說吉凶時日善惡宿曜經>, <T21, n1300 摩登伽經>, <T21, n1301 舍頭諫太子二十八宿經>, <T21, n1302 諸星母陀羅尼經>, <T21, n1303 佛說聖曜母陀羅尼經>, <T21, n1304 宿曜儀軌>,<T21, n1305 北斗七星念誦儀軌>,<T21, n1306 北斗七星護摩要儀軌>, <T21, n1307 佛說北斗七星延命經>, <T21, n1308 七曜攘災決>,<T21, n1309 七曜星辰別行法>,<T21, n1310 北斗七星護摩法>, <T21, n1311 梵天火羅九曜>. 이렇게 길게 책 제목들은 열거한 이유는 <그리스 사상과 아라비아 문화>와 같이 분과적 연구도 중요하지만, 동양과 서양에 대한 교류의 연구를 혹은 소위 동서비교학를 바로보는 지평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어쨌든, 중국의 부상으로 요즈음 동서교류에 대한 연구는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 해도 지나친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동서 교류에 대한 연구들이 각국의 역사적 필요와 이유에 의해서 분과적으로 혹은 고립적으로 연구되고 있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요컨대, 중국은 중국대로, 일본은 일본 식으로, 한국은 한국적인 이해의 범위에서, 서양은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과 서양의 만남과 교류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구의 방향이 문제인데, 동양은 동양 문화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과정, 즉 서진(西進) 역사만을, 서양은 서양 문화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과정, 곧 동진(東進) 역사의 추적에만 힘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 단계이기에, 각각의 연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언어 문제가 개입되어 있긴 하지만, 어떤 연구는 특히 번역 문헌들의 경우, 대개 내용적으로 문헌들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기독교 관련 문헌들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를테면, 어떤 문헌의 경우는, 그리스 문헌과 시리아 문헌, 시리아 문헌과 아랍어 문헌, 시리아 문헌과 페르시아 문헌, 시리아 문헌과 위그르 문헌, 시리아 문헌과 돌궐 문헌, 시리아 문헌과 소그드 문헌의 비교, 소그드 문헌과 한문 문헌의 비교, 아랍 문헌과 한문 문헌에 대한, 때로는 부분적인 때로는 전면적인 문헌 비교가 요청되고, 실제로 그렇게 할 때 해독되는 문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돈황에서 발견되는 문헌 가운데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문헌들이 그렇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이처럼 언어적인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동서비교학 자체가 결코 쉽지는 않은 연구다. 대략 시대별로만 분류해도, 이 연구는 고대 시대에 일어난 동서 교류와 비교 분석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시노-헬레닉(Sino-Hellenic) 연구, 중세 시대에 있었던 교류 연구, 특히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역사에 대한 연구, 근세에 와서 특히 17세기 이후의 동서 교류, 특히 예수회 신부들의 활동에 대한 연구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연구들 하나 하나가 만만치 않는 미지의 대륙(terra incognita)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절망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연구들이 언젠가는 공시적으로든 혹은 통합적으로든 한 자리에 모이게 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글로벌 시대를 사는 우리의 정체성 규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동양과 서양의 비교-연구에 대한 필요가 이를 강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지금 우리는 이미 동서 교류의 단계가 아닌 동서 융합의 세계에 살고 있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