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독서모임에서 선정했으나, 그다지 읽을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고 유보한 책이었다. 나는 이과 남자에 나름 과학 책 보는 취미가 생겨 꽤 읽었고, 최근에는 과학 책 독서모임도 운영하고, 그리고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미묘한 중간 지점을 열심히 탐구해 온 입장에서, 뒤늦게 과학 공부한 한 사람의 소회를 담은 것처럼 보이는 책을 과연 내가 읽어야 하나, 라는 짜증이 슬쩍 있었다.
일전에 재야 공부쟁이들 중에 선수들이 모인다는 '수유너머'의 핵심 멤버이자 리더격인 고미숙씨가 쓴 <동의보감 몸과 우주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읽을 때의 고역이 생각난 것이다. 나름 MD출신에 한국에서 좋은 데서 수련을 받고 전문의를 땄는데, 한 인문학자가 고전을 탐독하고 의료 관련된 어쩌구 하는 썰을 푸는 것을 참고 듣고 있자니, 참으로 힘들었다. 그분을 싫어하지 않지만, 뜻하지 않게 냉소를 날리게 되는 입장에 서는 것이다.
의료나 의학이란, 썰(이론)의 내재적 정합성으로 포착되거나 포괄되지 않는, 이질적인 실재의 복합적 결과물일 뿐이다. 진화가 어떤 방향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무방향적 부동 속에서, 기능적으로 얻어 걸린 효율적인 어떤 기능들의 이질적 모자이크들의 합산이라는 것을 진화론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일종의 모델링에 불과한 일관된 하나의 그럴듯한 개념과 철학이란, 몸이라는 복합적이고 일질적인 생물학적 실체 앞에서 우스운 소꼽장난 언어유희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동의보감 어쩌구하는 하는 인문학자의 피상적 썰을 읽으면서는, 역시나 싶었던 것이다. 임상적 현실과 무관한 자기만족적 썰에 치우치는 몽매적인...
물론 나는 유시민씨를 좋아한다. 그의 자유주의적 태도, 겸손함과 사회에 대한 헌신, 젠체하지 않는 명징한 언어 사용과 지적 자세가, 딱 내가 제일 선호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의 책도 여러 권 읽었다. 하지만 그런 문과 남자가 내 나와바리 이웃쯤 해당하는 과학분야에 대해 뒤늦게(50대 이후로) 책을 탐독 하고, 나름 잘 소화하고, 그것에 대해 책을 쓴 것에 대해, 내가 과연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하여튼 어제, m독서 모임 멤버들과 신림동에서 탁구 모임을 하고, 근처 순대타운에서 뒷풀이 하면서, 리더격인 모 멤버가 이 책 끝내준다 어쩐다 해서, 혹시나 싶어 구립도서관에서 빌리게 되었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전날 밤에 한 챕터 읽다가, 오늘 거의 하루 종일을 투자해 마저 완독했다.
역시나, 허세 없는 그리고 명징하게 글쓰는 유시민 작가 특유의 문체가 좋긴 했다. 그리고 내가 읽지 못했던 여러 자연과학 책들에 대한, 주석에서의 소개도 좋아서 여러 권을 읽을 거리로 기록해 두었다.
근데 리스펙하는 유시민 작가지만, 뭔가 이 책의 결점도 한두 군데 보였다. 그는 이 책에서 문과적 성향자들을 위해, 우선 수식 없이 이해 가능한 뇌과학부터 소개하고, 차례로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에 대해 말한다. 종합하여 얘기하기 보단, 자신이 접하고 읽은 책 중심으로, 내용을 추려서 소개를 약간하고 덧붙여 자신의 문과적 상념을 다소 생각보다 길게 말하면서 나름의 자기 서사를 덧붙인다. 뭐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약간 덧붙이자면 생물학 분야를 말할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소개하고 그것에 자신의 상념을 추가하는데, 거기서의 혈연선택(혹은 개체선택)론만 소개하고 말고 있다. 책에서 자주 언급했던, 에드워드 윌슨은 말년에 <지구의 정복자>에서 해밀턴이 정량적으로 입증하고, 도킨스가 소개하면서 유명해진 개미의 유전적 친근성에 근거한 사회적 행동의 가능성에 대해, 흰개미나 기타 다른 종류의 사회적 동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여러 근거가 제시한다. 사회적 동물의 사회성은 근원이 해밀턴이 말했던 유전적 근친성 만으로서는 설명되지 않는 사례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유전적 근친성에 근거한 이타성의 사례로 설명되지 않는 '집단 선택'의 가능성을 얘기한다. 윌슨의 그동안의 행태로 보관대, 뭔가 커다란 사상적 전회를 한 것이다. 이 큰 사건에 대해, 아마도 유작가는 윌슨의 <지구의 정복자>를 읽지 않았는지, <이기적 유전자>로만 설명되지 않는, 그 빈 자리를 자신의 인문적 교양으로 보충한다.
추가로 환원주의 논쟁에서도, 뭔가 결핍이 보인다. 통섭을 주장한 윌슨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분개와 반발을 소개하면서, 본인은 그럼에도 환원주의적 과학이 주는 영감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물리학(혹은 수학의) 삼체 문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여러 개체들이) 상호작용하는 계의 특성은 선형적이 아닌 비선형계의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세계는 결정적이라더라도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과학계에서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수학적 사실 혹은 복잡계 과학이 이미 자명하게 말하고 있는 바를 잘 모르는지, 이에 대한 언급이나 통찰에 대한 소개가 없다. 단지 환원주의적 과학의 방식이 약간 과격한 부분이 있지만 맞는 말 같고, 그래도 사실이 아닌 인문학 고유의 가치에 대한 부분이 있다는 방식으로만 방어한다.
필립 볼의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라든지, 던컨 J. 와츠의 <상식의 배반>을 읽었다면, 혹은 카오스 이론이나 복잡계 이론이나 그 분야 책을 읽었다면 가능한 통찰들이 부재한 것을 보니, 유작가님이 사회학과 과학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놀라운 부분이 이미 있고 상당한 성과를 보이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를 덜 하셨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유작가님이 주석에서 소개한 여러 책들 중에 내가 안 읽은 책도 꽤 많아서, 기록해 두고 읽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 부족한 책에 대해, 독서모임에 내가 과연 참여할지, 아니면 그 시간 아껴서 딴 책을 읽을지는 좀 생각 좀 해봐야 겠다. 도움은 되지만 경탄 할 만한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